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201)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95)화(201/207)
린제나의 몸에서 검은 마력이 용솟음쳤다.
원래라면 마법사가 아닌 이들은 마력을 볼 수 없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모두가 목격했다.
악몽처럼 꾸물거리며 발밑으로 뻗어와 살의를 싣고 형상화되는 검은 힘을.
“아래에 뭔가가 있어!”
“저, 저게. 당장 그만두지 못…!”
“으아아아악!”
겉보기에 린제나는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린제나에게 다가간 사제와 용병들이 하나같이 상해를 입고 바닥으로 풀썩풀썩 쓰러져갔다.
“뭐, 뭐야…….”
눈앞에서 동료들의 죽음을 맞닥뜨린 이들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 한 가지 사실만 확실했다.
저 마녀의 근처에 다가가면 죽는다.
“으, 으흑.”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아비규환.
린제나를 중심으로 지옥의 문이 열린 듯했다.
그때 천천히 걸어오던 린제나가 고개를 들었다.
충혈된 분홍색 눈동자와 마주친 남자들이 질겁하며 몸을 떨었다.
“도, 도망가!”
“빨리, 으아아악……!”
그러나 그들은 멀리 도망치지 못하고 굴러 넘어졌다.
발을 헛디딘 것도, 뭔가에 걸린 것도 아니다.
그저 무언가가 발목을 잡아채는 것을 느꼈다.
헐떡이며 고개를 들자 그들을 향해 걸어오는 소녀가 보였다.
뚜벅, 뚜벅.
깡마른 몸에 부르튼 피부. 분홍색 머리카락은 엉망으로 엉켜 있었다. 낡은 옷은 더러워보였고 마차에서 굴러떨어져 까진 무릎에서는 피가 흐른다.
여리고 작은, 상처까지 입은 열 살짜리 소녀.
하지만 사제와 용병들은 동시에 생각했다.
“……악마.”
그리고 개중에는 생각을 입밖으로 내뱉는 이도 있었다.
“마젤란의, 악마.”
린제나의 모친을 칼로 찌른 기사였다.
“아아악……!”
“아, 안 돼…….”
그 순간, 그의 양옆에서 함께 달아나던 동료들이 단말마를 지르며 엎어졌다.
공포에 질린 기사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허억……!”
그는 재빨리 바닥을 짚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자신이 마지막 생존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모래바람이 부는 평야에 살아남은 것은 단둘뿐.
“오, 오지 마! 이 악마야!”
“……악마?”
소녀의 입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흘러나온 직후.
“커헉……!”
기사가 숨을 삼키며 고개를 내렸다.
배를 더듬자 피가 묻어났다.
공포에 질린 기사는 린제나를 향해 빌었다.
“자, 잘못했습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사과한다고…….”
비굴하게 바닥을 기는 남자를 고요히 바라보던 린제나가 손을 들었다.
“상처가 낫기라도 한다니.”
“끄윽……!”
퍽, 소녀가 남자를 걷어찼다. 그가 그녀의 어미에게 그랬던 것처럼.
연약한 발길질이지만 부상을 입은 채로 반격하기는 쉽지 않았다. 남자는 신음을 흘리며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기분이 어때?”
“아아악!”
그때, 남자가 린제나를 향해 권능을 휘둘렀다.
하얗게 빛나는 검이 린제나의 뺨에 길게 상처를 낸다.
“오, 오지 마!”
그러고는 등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린제나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았다.
린제나를 돌아보며 입을 움직이는 남자의 얼굴. 무언가를 말하고 있을 텐데도, 잘 들리지 않는다.
먹먹해진 세상 속에서 진득한 불씨만이 멈추지 않고 끓어올랐다.
그녀는 둔감해진 감각 대신 넘쳐흐르는 마력을 넓게 퍼뜨려 상황을 파악해냈다.
마치 범고래가 초음파로 먹잇감을 찾아내듯이.
이윽고 마력장에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그녀는 마력을 이용해 사냥감을 붙잡아 제 앞으로 끌어당겼다.
“사, 살려줘……!”
린제나는 공포에 질린 남자의 몸에 올라탔다. 주먹을 쥔 손으로 남자의 뺨을 때렸다.
뼈와 뼈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 날카로운 남자의 비명과 애원이 점점 더 멀어진다.
곧 사방이 고요해졌다.
욕설과 비명으로 신경을 거스르던 사제들, 용병들의 목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위험 지대에서 이렇게 요란을 떨며 피 냄새를 흩뿌리는데도 마수들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바람조차 고요히 분다.
린제나는 기사가 죽기 전에 외쳤던 말을 떠올렸다.
‘악마.’
자신은 정말로 그런 존재가 되어버린 건지도 몰랐다.
바닥에 널린 인간의 시체가 동족의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태풍의 눈에 선 듯, 모든 게 고요해진 무감각의 가운데.
“린지…….”
희미한 목소리가 그녀를 깨웠다.
살아 있다.
린제나는 넝마가 된 남자를 던져두고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걸어갔다.
“내, 딸…….”
거기에 그 여자가 있었다.
“괘…….”
린제나는 여자의 옆에 주저앉아 입을 열었다. 아주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은 사람처럼 목 안쪽이 따끔거렸다.
“괜찮아? 치, 치료를…….”
린제나는 말하다 말고 흉터 난 여자의 이마를 보았다.
그 여자가 성흔이 부서졌다고 말한 것이 떠올랐다.
“구, 국경을 넘으면 돼.”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린제나의 눈에 금화 꾸러미가 들어왔다.
“그래, 금화, 금화를 가지고 국경으로 가자. 마, 마침 마차와 말도 그대로 있으니까…….”
“린지.”
그런데 그 여자가 웃는 낯으로 팔을 들었다.
힘없는 손가락이 뺨에 닿았다.
“예쁜 내 딸 얼굴에 또 상처가 났어…….”
맞닿은 곳에서 새하얀 신성이 빛난다. 뺨 위에 감도는 따스한 체온에, 린제나가 얼어붙었다.
그 여자의 이마 부근에서 무언가가 파삭거리며 완전히 부서지는 소리를 냈다.
린제나가 울컥 화를 냈다.
“뺨에 난 상처가 뭐라고, 죽어가는 와중에……!”
목소리가 높아졌다. 노여움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었다.
“자기 몸이나 치료하지, 왜 나한테!”
“미안하다.”
여자가 작게 속삭였다.
“네 곁을 더 지켜주고 싶었는데…….”
린제나는 깨달았다.
그 여자가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미련이 맺힌 눈동자에 린제나가 비쳤다.
문득 그녀의 목에 걸린 은색 목걸이가 들어왔다.
목걸이라기보다는 쇠줄에 가까운, 투박한 모양새.
하지만 그 여자는 저것을 보물처럼 아꼈다.
‘린지, 이 목걸이는 어디서 났어? 너 설마…….’
‘훔친 거 아니야. 내가… 산 거야!’
기근을 나기 위해 가지고 있던 목걸이를 헐값에 팔아버린 다음 해, 그 여자의 생일이었다.
린제나는 마을 일손을 돕고 번 돈을 모아 낡은 목걸이를 하나 샀다.
그것은 여자에게 늘 짜증만 퍼붓던 린제나가 처음으로 보였던 애정 표현이었다.
원래 그 여자가 차고 있던 목걸이에 비하면 초라하기만 한 외관이었으나…….
그 여자는 뛸 듯이 기뻐했었다.
‘우리 착한 딸.’
‘숨 막혀!’
그 여자는 린제나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
‘린지, 언젠가 크면 꼭 너 같은 딸을 낳아.’
‘…저주하는 거야?’
‘무슨 소리니.’
그 여자는 진심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가 주는 행복이 얼마나 큰지 몰라.’
참 이상한 여자였다.
자신을 엄마라고 불러주지도 않는 딸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그 여자.
린제나는 이지를 가지게 된 이후부터, 한 번도 그녀를 엄마라고 불러주지 않았다.
정이 들지 않기 위해서.
이런 세상에서는 마음을 준 만큼 상처로 돌아오기 마련이니까.
그러니까, 린제나는 오래전부터 예견해 왔던 것이다.
이런 날이 오리라는 것을.
신성을 가진 젊은 여자와 마력을 가진 어린 딸이 함께 살기에는 녹록지 않은 세상이니까.
그 여자가 자신을 버리거나, 어느 한쪽이 죽거나. 결국에는 떨어질 수밖에 없는 날이 오고 말 거라고.
짜증을 내고 미운 짓만 골라 하면서, 한편으로는 두려움을 숨기고 있었다.
하지만 린제나는 이 순간 밀려오는 후회를 느꼈다.
머지않아 헤어질 것을 알았다면, 주어진 시간에 더 충실할 것을.
어쩌면 제 나쁜 예견들이 이런 상황을 불러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엄마.”
눈물이 시야를 가렸다.
린제나는 자신이 똑똑한 줄 알았지만, 그녀는 아직 세상을 잘 몰랐다.
제게 애정을 쏟아붓는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도.
“미안해요.”
힘없이 늘어진 손이 린제나의 눈가를 닦았다. 그녀가 입을 벙긋거린다.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뭐라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엄마가 미안해, 그런 말이나 하고 있겠지.
“엄마가 나한테 나 같은 딸 낳으라고 했었던 거 기억나?”
린제나는 눈가를 더듬는 손등을 잡으며 속삭였다.
“엄마 말대로, 나는 나 같은 딸 낳을게. 그러니까 엄마가…….”
린제나는 울음을 억누르고 힘겹게 말했다.
“다음 생에, 내 딸로 태어나요.”
“린지…….”
“내 딸로 태어나서, 내가 준 상처를 다 돌려줘. 그때는 내가, 내가 잘할 테니까…….”
엄마의 오른쪽 눈동자에 눈물이 차오른다. 일그러지는 얼굴로 미소를 지으려고 애쓰는 듯도 했다. 그녀가 버석거리는 입술을 움직여 속삭였다.
사랑해.
마지막 말은 바람 소리처럼 작았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눈동자에 딸의 얼굴을 담은 채.
린제나의 친모, 이브 N 아이리스의 시간이 영원히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