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202)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96)화(202/207)
***
매년 기일 무덤 앞에서나 되새기던 기억을 교황 앞에서 주절거리고 있자니, 묘한 감회가 덮쳐왔다.
린제나는 무거운 감정을 떨치기 위해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런 거지. 안타깝게도 엄마와 했던 마지막 약속은 지키지 못하게 되었지만…….”
건조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던 린제나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너, 울어?”
동굴을 비추는 작은 빛줄기 아래에서도 햇살처럼 빛나는 백금발. 긴 속눈썹 아래로 그늘진 청회색 눈동자 아래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얼음으로 조각한 듯 수려한 왼쪽 뺨에 고요하게 흐르는 한줄기 눈물이 이상하리만치 처연해 보였다.
“그저…….”
아인이 입술을 열자 끝이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스스로도 그것을 느꼈는지 그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감정을 추스르는 듯 말이 없다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고생 많았다.”
“어, 어?”
“그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험한 나샤에서 혼자…….”
아인은 입술이 떨리는지 길지도 않은 말을 하는 동안 몇 번이고 멈칫거렸다. 린제나는 무심코 그가 몇 번이나 아랫입술을 씹는지 눈으로 세어보았다.
“이렇게 무사히 커 주어서, 고맙다.”
여섯 번이었다.
그가 얼마나 말을 골랐는지 보여서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다행히도 아인이 다른 화제를 꺼내 주었다.
“…그런데, 마지막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었다는 게 무슨 뜻이지?”
“아, 그거.”
내 딸로 태어나준다면 그때는 정말 잘하겠다던, 린제나가 그녀의 엄마와 한 마지막 약속.
그것은 영영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되었다.
“나는 아이를 못 가지거든.”
마법사의 마력은 자생능력이 너무 강한 나머지, 임신하면 태아를 공격한다. 그래서 아이를 가진 마법사들은 유산을 막기 위해 몸에 있는 마력을 뽑아내곤 했다.
하지만 마법사 중에서도 특히 더 강한 힘을 가진 대마법사들은 임신부터 어려웠다. 기록에 따르면 대마법사 중에서 아이를 갖는 데 성공한 사례는 없었다.
임신 준비단계부터 마력을 제거하는 등 극단적인 방법을 쓰며 시도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다음 생에, 내 딸로 태어나요.’
린제나의 마지막 말에, 엄마는 대답 대신 사랑한다고 말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약속은 제 욕심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살아생전에 늘 성신의 국민이 되고 싶어 했으니까.
어째서 치유 신관의 딸에게서 그녀처럼 강한 마력을 가진 마법사가 태어났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린제나의 딸은 강한 마력을 지닌 채 태어날 것이다. 어머니같은 사람이 그런 삶을 원하지는 않겠지.
‘그러니까 제발, 내 발목 잡지 말아요.’
이브엔나가 그랬던 것처럼.
린제나는 과거 불우했던 유년 시절을 기억했다. 제가 어머니에게 얼마나 끔찍한 원망을 퍼부었는지 또한 기억했다.
그녀는 스스로가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나, 미숙했던 유년의 기억만은 아직도 굳은살이 배지 않고 역린처럼 남아 있었다.
린제나의 표정을 보고, 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이해되는군.”
아인은 린제나가 그들 사이에 아무런 결실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했다. 그때는 그 말이 서로의 입장 때문이라 생각했지만, 그 말에는 이런 뜻도 내포되어 있었을 것이라 추론했다.
“응.”
린제나는 그가 제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 것을 알았지만 딱히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문득 머릿속에 이브엔나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분홍색 머리칼과 오른쪽 눈동자, 강한 마력을 가진 것, 그리고…….
“내 엄마의 이름도 이브였어.”
“이브?”
“그래, 이브 N 아이리스.”
그렇게 말하고 린제나는 입술을 꾹 눌렀다.
괴로웠던 유년을 전하는 해방감을 알아버려서 그랬을까.
돌아가신 엄마의 풀네임을 누군가에게 알려준 것 또한 처음이었다.
아인은 묘한 표정을 짓더니 새삼 린제나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닮은 지점이라도 찾은 듯이.
‘그래, 나도 운명 같다고 생각했지.’
결과적으로 그 아이에게는 악연으로 남게 된 것 같지만.
린제나 또한 아인을 바라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무거운 의무를 짊어졌던 것은 안타까웠지만, 그가 이브엔나의 보호자 자리를 꿰차고 있다는 것만은 부러웠다.
아인은 성자이니 교황이 되고 싶어 하는 그 아이가 참 잘 따르겠지. 다가오지 말아달란 말도 듣지 않을 테고.
린제나는 씁쓸한 마음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저를 잡아가지 않으실 건가요, 교황 성하?”
며칠 전 나샤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처럼 공손한 어투로 존칭을 부르자, 아인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뭐?”
“범죄자가 눈앞에 있잖아요.”
아인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제국법상 열두 살 미만의 아이는 처벌 대상이 아니다. 아이가 버티기 가혹한 상황이었고…….”
린제나는 웃음을 터뜨리지 않기 위해 주먹을 움켜쥐었다.
“크흠, 정말 다행이네요.”
이 말은 진심이었다. 신기하게도 그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가벼워졌다. 그가 성자여서일까.
아인은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테헤라 정교 사제들의 허물은 내 허물이기도 하지. 혹시나 남은 잔당이 있다면 반드시 단죄를.”
“다 죽었는데 단죄는 무슨.”
린제나가 단호한 목소리로 아인의 말을 끊었다.
그녀가 열 살일 때는 아인도 열 살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어깨가 무거워 보이는 그에게 쓸데없이 짐을 얹어주고 싶지 않았다.
“위로나 해줘.”
“…물론이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지….”
“아니, 그런 거 말고.”
린제나가 장난스럽게 딴청을 부렸다.
“나는 해줬는데.”
그러고는 눈치 주듯 입술을 가볍게 붙였다 뗐다.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한 장난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는지, 아인의 귓불이 서서히 붉어졌다.
“푸흡.”
예상치 못한 반응에 린제나가 소리 내서 웃으려는 찰나. 아인의 손이 뻗어왔다.
“어?”
아차 하는 사이 단단한 손바닥이 뒷머리를 감싼다. 린제나는 입술을 벌리면서도 눈을 깜빡였다. 무심코 고개를 숙여 제게 입 맞춘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아인은 눈을 꼭 감은 채, 일견 간절함까지 비치는 얼굴로 키스에 열중하고 있었다.
린제나는 내심 존경을 느꼈다.
‘이래서 성자라는 걸까.’
암흑 같은 시대에도 이토록 성실한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속이 간질거렸다. 그녀는 눈꺼풀을 내렸다.
한참 후 아인이 입술을 떨어뜨리며 속삭였다.
“이런 것으로 위로가 되나?”
“…꽤 많이?”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서 성실하게 입 맞추는 아름다운 교황. 기분이 나아지지 않기가 어려웠다.
린제나의 확언에 아인의 눈빛이 묘해졌다.
“그래, 너도 좋단 말이지.”
그러고는 재차 고개를 가까이했다.
속눈썹을 내리는 단정한 얼굴을, 린제나는 천천히 눈에 담았다.
입술이 닿는 순간, 어쩌면 영원히 이곳에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린제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바깥의 복잡한 사정들이 전부 머릿속 환상에 불과했던 것처럼, 이 동굴 안에 두 사람만 존재하는 것처럼.
쿠구구구구…….
그러나 갑작스러운 진동이 공기를 깨뜨렸다.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는 린제나를 아인이 팔로 받쳐주었다.
두 사람이 눈을 맞췄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뭐지?”
“…일단은 여기서 나가는 게 좋겠어. 힘은 회복됐어?”
“어느 정도는.”
“좋아, 내가 보조할게.”
아인이 고개를 끄덕이고 검을 빼들었다.
그들의 목표는 드래곤에게 반응할 틈을 주지 않고, 일격에 동굴을 무너뜨려 탈출하는 것.
고요한 검에 새하얀 신성이 깃들었다. 아인이 천장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순간.
“그르르르…….”
어디선가 인간의 것이 아닌 목 울림이 들려왔다.
그리고 두 사람은 동시에 한 쪽을 돌아보았다.
넓은 공동에 있던 두 개의 동굴 입구 중 나머지 하나.
어두컴컴한 구멍 사이로 붉은 눈동자가 그들을 보고 있다는 것을.
린제나와 아인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어떻게 한 것인지, 드래곤에게서는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순간 반짝 느꼈던 거대한 마력은 물론이고, 생명의 기운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의 존재 자체가 이세계의 것처럼 이질적이다.
벽 한편을 다 채운 눈동자가 천천히 굴러가며 아인과 린제나를 번갈아 본다.
그들을 살피듯이, 확인하듯이.
쿠구구구……!
곧 한쪽 벽이 거칠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아인은 경계하며 천장을 향하던 검을 드래곤에게 겨누었다. 린제나 또한 공격 태세를 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어라?”
“…이건.”
짧은 진동이 멎고, 아인과 린제나는 의아하게 눈을 깜빡였다.
그들이 벽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지금 보니 거대한 바위였다. 바위가 옆으로 밀려나자 짙은 햇살이 공동으로 들어찼다.
바깥으로 보이는 전경은, 바위산 중턱이었다.
“…설마 드래곤이 우리에게 길을 터준 건가?”
린제나의 아연한 목소리에, 아인은 동굴 입구를 노려보았다.
그와 시선을 맞추던 드래곤이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는…….
스르르.
말없이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잠깐의 침묵 후 아인이 작게 중얼거렸다.
“…저건 정체가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