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205)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98)화(205/207)
요한은 대체 어떻게, 왜 사라진 걸까.
질문에 답해줄 사람을 찾지 못한 채로 시간은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유모가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했다.
“성녀님, 내일 성하께서 돌아오신다고 해요.”
“그래?”
나는 최대한 기대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물었다.
“혹시 다른 소식은 없었어?”
“네, 아쉽게도…….”
유모는 안타깝다는 듯 나를 꼭 안아주었다.
아빠가 별다른 소식 없이 돌아온다는 건, 니르겐을 찾지 못했다는 뜻이겠지.
“음…….”
나는 방 안을 서성거리며 연신 눈을 감았다 떴다.
니르겐을 찾지 못했다. 거기에다가 요한까지 사라졌다. 내 힘으로는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나는 요한의 발간 뺨을 기억했다.
무심한 듯 보여도 늘 주변을 주의 깊게 살피던 루비색 눈동자를. 앳된 얼굴 뒤에 숨겨진 깊은 속내를 기억했다.
이렇게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는데 만날 수 없다는 게 답답했다.
‘이 시대에서도 이런 기분을 느껴야 해?’
삶에는 내가 바꿀 수 있는 일보다 바꿀 수 없는 일이 훨씬 더 많다. 무력감, 공허감, 갑자기 세상이 고통을 선사하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좌절감. 나는 그런 감각에 누구보다 익숙했다.
하지만 타임리프에 성공한 이후로는 세상을 대하는 내 태도가 알게 모르게 많이 달라졌던 것 같다.
아무런 시도도 못 해보고 소중한 사람을 또 잃어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날 밤에는 악몽을 꿨다.
“안 돼요, 니르……!”
잠에서 깬 나는 새까만 창밖을 내다보다가 충동적으로 황성을 빠져나왔다.
유희 마법으로 만든 분신을 두고 왔다. 상황이 걱정돼서 마력을 철저히 아끼고 있던 타이밍인데. 뚜렷한 계획도 없이 상급 마법을 사용하고 말았다.
마법으로 바꾼 외견은 타임리프를 쓰던 16살 때 모습으로, 왼쪽 눈은 안대로 가렸다. 20살의 나와 4살의 내 모습은 신문에 박제되어 버렸으니까.
목적지는 정보 길드, 밤부스의 숲.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벽에 부딪히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그곳밖에 없었다.
정확하게는 그곳에 있는 한 남자였지만…….
나는 이성을 누른 채로 걸음을 옮겼다.
“우리 저기 좀 들를까?”
“엄마, 같이 가!”
사람들의 웃음소리, 다투는 소리, 달음박질 소리가 내 곁을 스쳐 간다.
오랜만에 와도 수도 번화가는 여전히 활기가 넘쳤다.
나는 마차를 타고 목적지를 말했다.
창밖을 보고 있자 밤부스의 숲 길드장을 찾기 위해 자주 가던 술집이 눈에 들어왔다.
니르겐을 처음 만났던 곳이었다.
마차는 술집을 지나 길헬름의 한적한 거리에 나를 내려 주었다.
술집에서 니르겐을 만나, 그의 뒤를 밟아서 쫓아갔던 길이었다.
잔뜩 취해서 주머니에 손을 꽂고 비틀거리면서도 계속되던 그의 노랫소리가 떠올랐다.
그때는 노래가 니르겐이 유일하게 못 하는 일이라는 것을 몰랐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더 좁은 골목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니르겐에게 미행을 들킨 곳.
‘이제야 아귀가 맞네.’
그때 그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했던 말도 떠올랐다.
달빛을 등지고 나를 돌아보던 그의 붉은 눈동자.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던 니르겐의 속내 모를 모습은 사람을 압박하는 힘이 있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변명할 거리를 생각해내려 애썼었다. 그리고 이어지던 니르겐의 목소리.
‘사랑한다는 핑계 하나로 모든 걸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착각한 겁니다.’
‘……에, 네?’
‘당신, 내 스토커잖아.’
그때를 떠올리자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엉뚱한 구석이 있다니까.
나는 어두컴컴한 골목을 지나, 그를 따라갔던 술집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내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없었다.
니르겐과 함께 들어왔을 때는 바텐더와 모든 직원이 친절하게 맞이했었는데. 나는 조심스럽게 바텐더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테이블을 준비해 드릴까요?”
“바, 밤부스의 숲을 찾아왔어요.”
“…….”
바텐더는 말없이 미소 지었다. 16살의 앳된 외모와 안대로 가려진 한쪽 눈을 살피는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니르겐과 함께 왔던 기억을 되짚어, 애써 당당한 태도로 주방 안쪽으로 들어갔다.
주방과 이어진 통로를 지나는 동안, 앞서가던 니르겐의 등을 떠올렸다.
“……읏.”
나는 무언가 울컥 비집고 나올 것 같아 손등으로 입술을 눌렀다. 문득 숨통이 막혔다.
갑자기 억눌렀던 진실이 머릿속을 강타했다.
‘니르겐은 죽었어.’
나는 입술을 틀어막은 채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뭘 계속 아니라고 말하는 거야. 죽는 걸 눈앞에서 봤잖아.’
갑자기 발밑이 아득해졌다. 니르겐의 마지막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니르겐은 죽었다. 그가 흘린 피가 내 시야를 채웠다.
‘다시, 만나면…….’
그의 마지막 유언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나는 그의 다시 만나자는 말을 붙잡고 늘어지며 니르겐이 죽지 않았을 거라 믿어왔다.
하지만 그에게는 원래 엉뚱한 면이 있었다. 그러니 환생 같은 것을 믿어서 내게 그런 유언을 남긴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이성적이었다.
그런데도 과하게 의미 부여를 했다.
니르겐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버거워서.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선 사실 짐작하고 있었다.
‘니르겐은 죽었어.’
그에게 무슨 커다란 비밀이 있어서 그렇게 피를 흘리고도 살아남았을 확률보다는, 그대로 죽었을 확률이 훨씬 높다.
사라진 시체를 찾지 못한 것도, 그런 커다란 재난에 휩싸였으니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전혀, 울 필요가, 없…….’
장난스럽던 니르겐의 평소 모습을 생각해봐도, 죽어가는 순간에마저 저러는 건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생명을 지닌 존재가 그렇게 담대할 수는 없다고. 하지만….
‘괜찮, 아…….’
나는 비올라 고모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황성을 빠져나오기 전에 꿈에 나왔던 장면이었다.
‘눈을 감았다 뜨면, 모든 게 끝나 있을 거야. 눈을 감았다 뜨면, 모든 게 끝나 있는 거야.’
내게 힘을 주기 위해, 기도처럼 되뇌던 목소리.
그리고 눈을 뜬 내게 보였던 건.
‘말려들게 해서, 죄송합…….’
피범벅이 된 니르겐의 얼굴이었다.
이미 알고 있었다.
생명을 지닌 존재도 죽음 앞에 그토록 담대할 수 있었다.
다정한 사람들은 그랬다.
“으흑, 윽…….”
멍청한 이브엔나, 나약한 이브엔나.
기나긴 회피를 끝내고 직면한 차가운 현실 앞에 몸이 얼어붙었다. 한 번 터진 상처는 걷잡을 수 없이 벌어졌다.
‘또야.’
이래서 내가 제일 먼저 사라지는 사람이 되겠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절대로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겠다고 했잖아.
‘또 나 때문에 사람이 죽었어.’
“윽…….”
어떡하지?
요한은 사라지고, 니르겐은 죽었다.
“그러면 안 되는, 안 되는데.”
초조하게 떨리는 손으로 턱 끝에 맺힌 눈물을 쓸었다. 걸음을 멈추고 한참 눈을 가리고 있자, 문득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한 번 더 할까?’
타임리프.
이 시대에서, 한 번만 더.
다음에는 니르겐이 더 어리고 건강하던 시절로 돌아가는 거다. 펠멋 가문에 접근한다면 그의 병이 어떤 것인지 알아낼 수 있겠지. 요한의 곁을 철저하게 지키면 그 애를 잃을 일도 없다.
이미 성공한 적이 있으니 다음에도 또 성공할 수 있다.
“그래, 한 번만 더…….”
물론 위험성은 있다.
지난번 시도에서 내 몸은 15년 이상의 나이를 잃어버렸다. 아기가 되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 16년 이상이 날아갔다면 내 존재가 그대로 소멸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어차피 내 존재는 곧 세상에서 사라질 거잖아.’
그러니까 사라지기 전에 한 번 더 해보는 건 나쁘지 않은 시도가 아닐까?
‘내 존재가 확실히 사라지는 건 내 생일.’
엄마의 임신 기간까지 포함한다면 1년 정도 남았다고 생각해도 되겠지. 보수적으로 생각해서 앞으로 반년.
사실 반년 만에 부모님을 돌아가시게 만든 배후를 완전히 파헤칠 자신도 없었다.
헤일로, 신이라는 존재를 생각하면 눈앞이 까마득해졌다. 그 촉박한 시간 동안 어떻게 신에게 맞설 방법을 찾는단 말인가.
그러니 반년 동안 헤일로에 대해서 더 파헤쳐보다가, 아빠에게 모든 걸 넘기고 타임리프를 시도해보면 괜찮을 것 같다.
생각할수록 좋은 발상이었다. 성공하면 얻는 건 많고, 실패한다고 추가로 잃을 것도 없다.
딱 한 번만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번에는 정말 아무도 잃지 않고, 처음부터 완벽하게 할 테니까.
“그, 그래, 그러면 되겠어, 그러면…….”
괜찮은 계획이 세워지자 조금씩 떨림이 진정되었다.
나는 젖은 뺨을 닦고 고개를 들었다. 목조 건물 가장 안쪽 문이 보였다.
‘길드장실.’
나는 무심코 쓴웃음을 지었다.
밤부스 숲의 내부는 미로처럼 복잡했는데, 생각에 빠진 사이 내 발이 무심코 니르겐과 함께 왔던 그 길을 따라 걸어왔나 보다.
여기까지 왔는데, 뭐라도 알아보고 갈까. 요한의 실종에 대해서는 도움을 받기가 어렵겠지만, 헤일로에 대해서는 알아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
‘오랜만이네.’
이 문을 열면 니르겐이 읽기 힘든 얼굴로 앉아 있을 것만 같았다.
현실을 직면한 나는, 더 이상 그런 낙관적인 꿈을 꾸지 않지만.
괜히 향수에 젖은 채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
그리고 상의를 벗는 중인 남자와 딱하고 눈이 마주쳤다.
엉망으로 흐트러진 검은 머리칼, 그 아래 숨겨진 보석 같은 붉은 눈동자. 살짝 피곤해 보이지만, 누가 봐도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저 남자는…….
“니르.”
“…이브엔나?”
나는 눈을 의심하면서 방에 들어섰다. 손끝이 잘게 떨렸다.
‘내가 헛걸 보나?’
현실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러지 못했던 걸까. 예전에 환각을 봤을 때는 정신상태가 최악에 가까웠다. 나는 스스로를 깨우기 위해 양손으로 뺨을 짝 소리 나게 때렸다.
“괜찮은 겁니까?”
그러자 니르겐이 상의를 벗어 던지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나는 기묘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내 손을 떼는 체온이 느껴졌다.
‘이건 진짜야.’
순식간에 현실감이 밀려왔다.
‘진짜 니르겐이야.’
입술이 덜덜 떨렸다.
“살아, 있었어요?”
“음, 그게…….”
니르겐이 곤혹스러운 듯 말꼬리를 흐렸다.
지금 느껴지는 게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다.
“길드에 있었던 거예요?”
“음.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은데, 설명은 나중에…….”
“살아 있었으면 연락이라도 주지! 내가, 내가 얼마나.”
겨우 멎었던 눈물이 다시 터져 나왔다. 아까 복도에서 흘렸던 것과 같은 눈물이었지만 속성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죽은 줄 알았다가 다시 만났는데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태연한 얼굴을 마주하니, 야속하고 억울한 기분이 치솟았다.
나는 그의 팔을 잡으며 외쳤다시피 물었다.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그게, 잠깐….”
펑!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묘하게 익숙한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나는 놀라서 어깨를 움츠렸다.
“이게, 뭐…….”
그리고 펼쳐진 광경에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작아진 키.
낮아진 눈높이.
“후.”
새까만 머리칼에 붉은 눈을 가진 소년이 이마를 쓸어올리는 게 보였다.
난감한 듯 한숨을 내뱉는 얼굴이 필요 이상으로 눈에 익었다.
“……요한?”
너무 놀라서 눈물이 쏙 들어갔다.
방금까지 나를 지배하고 있던 격정이 단숨에 휘발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서 스르르 무너져내렸다.
“그치, 그렇게 반응하게 된다니까?”
바닥에 풀썩 주저앉은 나를 보며, 요한인지 니르겐인지 모를 소년이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