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206)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199)화(206/207)
부드럽고 결 좋은 까만 머리카락, 커다랗고 반짝거리는 빨간색 눈동자. 하얗고 앳된 얼굴에 오밀조밀하게 자리 잡은 이목구비가 하나하나 섬세하고 예쁜 이 소년은, 분명 내가 아는 요한이었다.
요한 탄닌, 전대 교황 셀라디온 탄닌이 끼고 살던 외손자.
첫 만남에선 눈싸움을 벌이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와 요한은 소꿉친구 같은 사이가 되었다.
미래에서도 소꿉친구는 사귀어본 적이 없었기에, 내게 요한은 소중한 존재였다.
‘이부는 요한이랑 결혼하꺼예요!’
‘…….’
요한은 어떤 충격적인 일이 펼쳐져도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무뚝뚝한 아이였지만…….
‘요한, 내가 너한테 부모 같은 사람을 만들어 주께.’
‘그게 진심이었어?’
‘응, 물론이지!’
‘……고마워.’
가족이 되어주겠다고 약속하자, 처음으로 미소를 보여주었다.
조용하고 무뚝뚝한 겉모습 이면에 따뜻한 마음을 숨기고 있는 소년.
그래서일까. 드물게 요한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주면, 나는 늘 마음이 움직이곤 했다.
내게 소중한 존재가 된 요한의 그 귀여운 외모가 그대로 저기 있었다.
하지만 그 얼굴에 자리한 표정.
그 표정이…….
“괜찮습니까?”
사람 마음을 뒤집어놓고 뻔뻔하게 손을 뻗어오는 능글맞은 태도.
그런 건 요한의 것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의뢰가 들어왔군요!’
술집에서 만난 순간부터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던 주정뱅이.
대륙에서 가장 비밀스럽고 뛰어난 정보 길드 ‘밤부스 숲’의 길드장, 할스테리어 사교계의 유명 인사인 평민이며, 추정 나이 20대 초반.
에런, 아반 등의 가명을 쓰고 다니며 나이에 비해 지나친 유능함을 자랑했던, 의뭉스러운 인간.
‘걱정하지 마, 내 사랑. 이곳에서 결혼할 수 없다면 모든 걸 버리고 함께 도망가자. 그대의 곁이 나의 집이니까.’
오직 자신의 흥미를 기준으로 의뢰를 받고, 늘 실실거리며 웃는 얼굴에, 뻔뻔한 연기력까지. 참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쾌락주의자… 인 줄만 알았는데.
‘병약한 시한부 미청년. 저에게는 그런 설정이 있었죠.’
갑작스러운 시한부 선언.
‘정말로 4살이었다고?’
코튼 캔디의 진짜 모습을 본, 최초의 상대기도 했지. 내가 마녀임을 알아챈 후에도 나를 끊임없이 도와준 조력자이자…….
‘다시, 만나면…….’
내 눈앞에서 죽은 사람.
니르겐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발이 넓고, 웃음이 많고, 종잡을 수 없던 사람이었다.
그 뻔뻔하면서도 매력적인 어른의 표정이 사랑스러운 요한의 얼굴 위로 그려지고 있었다.
혼란스럽다.
요한과 니르겐이 눈 색과 머리 색이 같기는 했지. 하지만 그 외에는 나이, 신분, 이름, 성격, 말투까지. 무엇 하나 겹치는 부분 없이 전혀 다른 세계를 사는 이들이었다. 그랬는데…….
‘그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이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실현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나도 그랬거든.
<대마녀 캔디, 대사제를 시해하다!>
<신의 아이, 신의 일을 행하다>
나 또한 하루아침에 같은 신문사에서 사상 최악의 마녀가 되었다가 세상을 구원할 성녀가 된 전적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코튼 캔디와 성녀 이브엔나도 결코 접점이 없는 두 사람이었겠지.
유희 마법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내 눈앞에서 니르겐은 요한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마치 내가 코튼 캔디의 모습을 유지할 힘이 없어져서 4살짜리 이브엔나의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처럼.
정확히 내 상황과 같았다.
‘모든 비밀은 풀렸어.’
생각을 정리한 나는 눈을 반짝 떴다. 내 앞에서 요한도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요한, 너…….”
“이브엔나, 당신도…….”
“시간 여행자였던 거지?”
“드래곤입니까?”
“……?”
“……?”
우리는 서로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요한이 눈살을 찌푸렸다.
“시간 여행자라고?”
“드래곤이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나는 머리가 뱅글뱅글 도는 것을 느꼈다.
드래곤이라면, 전설 속의 그 신수 말이야?
‘갑자기 그 이름이 여기서 왜 나오는데?!’
“대체, 무슨, 아으…….”
“이브엔나?”
내가 앓는 소리를 내자 요한이 당혹한 얼굴로 나를 살폈다.
그러고 보니 여기서 맞닥뜨린 순간부터 니르겐은 되게 자연스럽게 나를 ‘이브엔나’라고 불렀지. 제대로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늘 이부라고 불렀던 주제에…….
‘처음부터 다 알면서 나를 놀린 건가?’
지금까지 내가 본 요한과 니르겐의 모든 모습이 연기였다면 저 남자는 당장 배우 일을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극단에서 실감 나는 명연기를 펼치는 니르겐의 모습이 뇌리를 스쳤다.
‘잘 어울리네…….’
혼란을 견디지 못하고 엉뚱한 생각을 떠올리는 참에, 요한이 내게 손을 뻗었다.
동시에 요한의 상체도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여기에 왔을 때, 옷을 갈아입는 중이었던 것 같았는데.
상의를 탈의한 요한이 내 뺨에 손을 올렸다. 요한이 6살 소년일 때는 아무 상관 없었지만, 지금은 그 애의 태도가 너무… 니르겐이었다.
“당신, 눈가가…….”
“옷을, 좀.”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나는 참지 못하고 반라의 소년을 밀쳤다.
“옷부터 좀 입어요……!”
***
드래곤.
이름부터 웅장한 전설 속의 신수.
신의 힘을 사용한다는 신비로운 종족.
“그런 드래곤 고유의 힘 중 하나가, ‘유희’였고…… 당신이 그걸 마법사들에게 가르쳐 준 거라고.”
나는 반대편에 앉은 요한-니르겐을 마주 보고 고심하다가 입을 열었다.
“맞나요, 요르겐씨?”
“…요르겐은 또 뭡니까.”
인두겁을 쓴 드래곤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니르겐, 그쪽이 본래 이름입니다.”
“진짜 이름이 존재하긴 했군요.”
“그렇습니다, 캔브엔나양.”
“…….”
요한의 모습을 한 니르겐이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겉모습은 여섯 살 꼬마 요한인데 왜 말투는 니르겐인 것일까.
요한은 어리지만 침착하고 의젓한 소년이었다. 조용하고 표정 변화가 적어서 4년째 알고 지내면서도 소리 내서 웃는 건 한 번도 보지 못할 정도다.
그런데 지금은 요한의 섬세한 이목구비가 나를 향해 다양한 표정을 만들고 능청스러운 말을 뱉었다.
“그런데 이브, 눈가가 빨갛군요.”
“으…….”
“울었습니까?”
그래, 당신 때문에.
그러나 이제는 심장이 짓눌리는 듯했던 슬픔까지도 황당함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 얼굴로 존댓말 하는 건 삼가주시겠어요?”
나는 여태 붉은 콧등을 손으로 문지르며 고개를 돌렸다.
“요한의 모습일 때는 요한답게 행동해주세요. 자아정체성이… 아니, 타아정체성이 흔들리니까?”
“그거야 어렵지 않지.”
니르겐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다리를 꼬았다. 완벽하게 요한의 평소 모습으로 돌아온 니르겐이 턱을 까딱했다.
“이제 좀 진정했어?”
나는 무심코 입을 벌렸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태도가 휙휙 변하죠?”
“사람이 아니니까?”
“그, 그건 그렇지만…….”
나는 니르겐을 흘끔거렸다. 붉은 눈동자와 검은 머리칼, 섬세하고 예쁜 이목구비. 이제 보니 요한과 니르겐은 나이대만 다를 뿐 똑같은 얼굴이었다.
“이렇게 똑같이 생겼는데, 왜 같은 사람인 걸 몰랐지…?”
“설정을 다르게 잡았으니까.”
니르겐은 태연자약한 태도로 길드장실 안쪽 방에서 찻잔 세트와 차를 가져왔다. 그리고 내 앞에 허브 향을 풍기는 꿀차를 따라주며 말했다.
“드래곤은 유희를 하는 동안 다른 종족들 사이에 스며들 수 있도록 주변을 유심히 관찰하거든. 니르겐 펠멋일 때는 정보 길드장으로 활동하기 위해서 근처 길드장들의 태도를 관찰하고 눈에 띄는 녀석들을 몇 골라서 그대로 따라 했지.”
“…그 사람들이 주정뱅이였나 보네.”
“음주 가무를 즐기는 녀석들이긴 했지.”
그는 내게 찻잔을 들려주고 반대편 자리에 다시 착석했다. 그 능숙한 태도는 니르겐과 비슷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이제 표정 변화가 없었다. 요한답게 행동해 달라고 부탁한 건 나였는데도 어쩐지 기분이 미묘해졌다.
내 작은 감정 변화를 눈치채기라도 했는지 그가 설명을 이어갔다.
“요한 탄닌일 때는 사제들의 태도를 참고했어. 어린아이 모습이니 완벽히 하려고 노력하진 않았고, 단지 니르겐과 겹치지 않으려고 했지. 보시다시피 내가 인간화할 수 있는 모습이 그리 다양하지 않아서 말이야. 사람들은 생각 외로 비언어적 표현들에 많이 집중하거든. 표정, 시선, 말투, 자세, 버릇. 디테일이 모조리 다르면 같은 사람이라고 연상하지 못해.”
“표정이나 버릇까지 따라 한다고?”
“당연하지, 네가 개로 변신해서 들개 무리에 섞여들어야 한다고 상상해봐. 꼬리 흔드는 법부터 배워야 할걸.”
그의 설명은 이해하기 쉬웠다. 덕분에 나는 더 떨떠름한 기분이 되었다. 니르겐이 사람들 속에 적응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인간들을 타자화하는 시선까지 이해해 버려서.
듣고 보니, 니르겐과의 첫 만남과 두 번째 만남의 인상이 크게 달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길헬름 뒷골목에서는 질 낮은 주정뱅이였는데, 할스테리어에서는 누가 봐도 명문가 도련님이라 혼란스러웠었지.
그때는 그저 다양한 면모가 있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보여준 게 전부 연기라면… 드래곤은 원래 감정표현을 어떻게 하는 거예요?”
“글쎄, 그 정도로 격한 감정 변화를 느낀 적이 드물어서.”
“……아.”
이야기를 나눌수록 머리가 차가워졌다.
인간을 관찰하고 자신의 버릇이나 표정을 어떻게 할지 하나하나 조정해 왔다는 소리가 아닌가.
‘개가 꼬리 흔드는 걸 따라 하듯 내게 감정을 표현해왔던 건가?’
정말 다른 종족이라는 실감이 왔다. 여태까지 요한, 그리고 니르겐과 쌓아온 유대가 덜그럭거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에 대한 태도를 결정짓지 못한 채로 물었다.
“그럼 처음부터 내 정체를 알고 있었던 거예요?”
“네 정체?”
니르겐이 눈을 깜빡이다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코튼 캔디와 이브엔나가 동일 인물인 건 첫눈에 알았어. 오드아이에다가, 네 마력은 눈에 띄니까.”
“드, 드래곤도 마력을 볼 수 있어요?”
나는 당황해서 외쳤다. 니르겐이 피식 웃었다.
“당연하지, 나도 마력이 있는데.”
신수면서 마력까지 가지고 있다니. 드래곤이라는 종족을 더 알 수가 없어졌다.
“그래도 아기 성녀 쪽이 본모습인 걸 알았을 땐 놀랐어.”
니르겐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눈앞에서 어린아이로 변했을 땐 눈 하나 깜짝이지 않던 니르겐이, 어린아이 모습이 본체라고 밝혔을 땐 당황해서 넘어지고 말았었지.
“그래서 당연히 드래곤인 줄 알았는데…….”
“…….”
“시간 여행자였다니.”
내 목울대가 꿀꺽 울렸다. 나를 바라보는 니르겐의 붉은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