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23)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23)화(23/207)
4. 마녀를 다루는 법
별궁의 휴게실 문이 열리고 시녀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이닥쳤다. 커튼을 착 걷고 창문을 활짝 열자 샹들리에를 켠 듯 실내가 환해졌다. 하지만 모서리에 놓인 장식장 뒤로 드리운 그림자까지는 빛이 닿지 않았다.
“그 이야기 들었어요?”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제4성 근무자, 비올라의 시녀였다.
“공의회에서 가장 마지막에 나온 안건이 교황의 대관식에 대한 것이었다면서요?”
“어머, 그렇게 의회를 미루고 미룬 이유가 있었네요.”
황족들의 나이가 아직 어린 만큼, 황실의 시녀들도 대부분 미혼의 귀족 영애들이었다. 하인들과 달리, 그들은 노동에 대한 급여를 따로 받지 않았다. 대가는 오로지 신성한 황실을 위해 일한다는 명예뿐이었다.
혹은, 권력의 중심인 황족과 친분을 만들 기회 그 자체.
수행원으로서 황족들의 주요 공무를 따라다니는 만큼, 그들은 정세에 관해 누구보다 빠삭했다.
“마침 아인 전하도 올해로 성년이 되셨으니, 성하께서도 드디어 마음을 놓으신 거겠죠.”
“그러면 전하의 거처가 대신전으로 옮겨지는 걸까요?”
“글쎄요, 건국 이래 황실에서 교황이 나온 적이 없었으니…….”
“그것도 그렇지만, 폐하께서 아인 전하를 놔주실까요.”
탁. 팔걸이에 손을 올리며 하는 화통한 발언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 사람에게로 돌아갔다.
말을 꺼낸 것은 이곳의 최연장자인, 황제의 수석 시녀였다.
“설마 폐하께서 요즘도 아인 전하를 따로 부르시나요, 공작 부인?”
“그럼요, 공의회 다음 날도 저녁 식사를 함께하셨는걸요.”
“오.”
시녀들의 얼굴이 복잡해졌다. 황제가 원래라면 적장자일 첫째 황자보다, 성자로 태어난 둘째 황자를 귀애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해는 됐다. 다른 곳도 아닌 신성제국에서 신전보다 황실의 위세가 더 강해진 건, 둘째 황자가 태어난 이후였으니까.
농사지은 밀의 반을 뜯어가더라도 그게 성자가 살 태양궁의 건축비에 쓰일 것이라고 하면 아무도 화를 내지 않는다. 위대한 성신 테헤라님이 보내 주신 아이니까. 신의 아이는 자라서, 반드시 받은 것보다 많은 것을 돌려준다. 그것은 신성연합국의 국민이라면 모두가 가진 믿음이었다.
“하지만 아인 전하께선 원하지 않으시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폐하께서 워낙 강력하게 바라고 계신 데다가.”
수석 시녀가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또 아주 근거 없는 이야기도 아니니까요.”
실내의 공기가 일순 멈췄다. 시녀들은 조심스럽게 눈빛을 교환했다.
수석 시녀는 오래전에 황실에 들어온 명문가의 부인이었다. 폐하의 총애를 받지 못하는 첫째 황자보다 그녀가 더 황제의 업무에 깊이 관여하고 있을 것이다.
확실히 폐하가 둘째 황자를 황제와 교황을 겸하는 신성 황제로 만들려는 것에는 실리적인 근거가 많았다. 황실과 신전이 하는 일이 비슷한데, 기관이 둘로 나뉘어 있어 효율적이지 못한 것은 사실이니까.
“그래도 당사자인 아인 전하가 원하지 않으시니까요.”
그때 리벨의 시녀 중 하나가 탐탁잖은 목소리로 말했다.
“황궁에는 황궁의 법규가 있는데, 교황이 되실 전하께서 사사로운 분란으로 황실의 정서를 어지럽히실 일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럴 성품도 아니시고요.”
그녀의 주변에 앉아 있던 리벨의 시녀들이 동조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수석 시녀와 리벨의 시녀들의 시선이 마주쳤고, 실내에 적막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논쟁에서 한발 떨어진 제4성과 5성의 시녀들은 눈치를 보며 말을 골랐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분위기를 환기할 겸 모두가 좋아하는 주제를 던졌다.
“저는 성녀님의 거취가 어떻게 될지도 궁금하네요.”
“헉, 그러고 보니 전하가 성녀님을 입양한다는 소문이 있었죠.”
“아인 전하가 성녀님을요?”
“모르셨어요? 그걸로 폐하와 얼마나 다투셨는지 몰라요.”
“전하가 성녀님을 아끼시는 건 좋지만 전 조금 염려가 되네요, 아, 아직 피앙세도 없으신데…….”
어디선가 나온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시녀들의 얼굴이 복잡해졌다. 과묵하고 아름다운 둘째 황자를 흠모하는 영애들은 아주 많았다. 게다가 그가 차기 황제로 거론되는 인물인 만큼, 훗날 있을 승계 문제도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정말 동화 같은 이야기지 않아요? 황실에 버려진 성녀님을 보육원에 맡기기 직전에 만나셔서 그렇게 인연이 되신 거잖아요.”
“맞아요. 예전에는 전하를 보면 엄청 긴장했는데, 성녀님과 함께 산 이후론 많이 부드러워지신 것 같아요.”
“그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늘 잘 제련된 칼처럼 단정하고 딱딱한 무표정만 짓던 황자가, 아기 성녀를 만나고 나서부턴 조용히 있다가도 혼자 멍하니 웃는 일이 많아졌다. 정성 들여 빚은 세공품같이 잘생긴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오르면 길을 지나가다가도 발을 멈추고 심장을 부여잡아야 했다. 품 안에 분홍색 꽃송이처럼 사랑스러운 아기가 안겨 있기라도 한다면 그 효과는 더욱 강력해졌다.
“하아아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모습에, 시녀들은 다 같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 즐거운 대화가 끝나면, 시녀들은 저마다 제 가문의 사람들이나 친인들에게 돌아가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을 공유할 것이다. 황족들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하는 사람들이 전하는 정보는 권세가가 정치적 결정을 할 때도 큰 고려사항이 된다. 그들의 소문에는 힘이 있었다.
무르익는 대화의 장. 그 한쪽 구석에 있는 커다란 장식장 뒤로 새까만 그림자가 조용히 꿀렁거렸다.
***
-아기님이 글쎄, 첫마디를 뗀 이후부턴 곧잘 말하고 걸어 다니신대요.
-성장이 아주 빠르신 게, 아무래도 영재 아기신 것 같다죠?
-어머머, 유모님이 많이 걱정하셨는데 정말 다행이에요.
-아기들도 제각기 성격이 달라서, 신중한 성격의 아기들은 확신이 서기 전까진 시도하지 않기도 한다던데. 성녀님이 그러셨나 봐요.
-세상에, 그렇게 생각하니 너무너무 귀엽….
“라테.”
나는 노란 프리지아를 한 아름 안고 시동어를 중얼거렸다. 그러자 본디 인간의 귀로는 들을 수 없었을 목소리들이 뚝 끊겼다. 그동안 여러 곳에 귀를 심었지만, 역시 가장 유용한 건 시녀들의 휴게실에 심은 귀였다. 나는 뿌듯하게 고개를 들었다.
“뭐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유모와 눈이 딱 마주쳤다. 아뿔싸, 내가 시동어를 중얼거린 걸 들은 걸까. 난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 이거.”
“어머나.”
내가 품에 안은 프리지아를 불쑥 내밀자, 유모가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저 주시는 거예요?”
“우.”
고개를 끄덕이자 유모가 입을 틀어막았다.
난 머쓱하게 고개를 숙였다. 어린애가 엉성하게 만든 꽃다발 같은 거, 정말 마음에 들 리도 없는데 감동한 시늉을 해준다. 친딸도 아닌 애 뒤치다꺼리하느라 많이 힘들 텐데 유모는 정말 아기를 좋아하는 선량한 사람 같았다.
“헤헤…… 우아.”
난 꽃을 건네주며 바보같이 웃다가 바닥에 철퍽 넘어졌다.
내가 외출한다고 시녀들이 열심히 입혀준 노란색 원피스가 축축한 흙으로 엉망이 되는 순간이었다.
“아…….”
난 흙바닥에 주저앉은 채 살짝 긴장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유모가 나를 휙 안아 올렸다.
“괜찮으세요?”
유모의 얼굴은 짜증은커녕 걱정만 가득했다. 나와 맞닿은 그녀의 옷에도 흙이 묻고 있는데, 그녀는 본인 옷에는 시선도 안 주고 나만 보고 있었다. 나는 주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넘어졌는데 울지도 않으시고. 씩씩하기도 하시지.”
심지어 유모는 기특하다는 듯 웃기까지 했다.
“이제 들어갈까요?”
“녜…….”
난 머뭇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양궁 사람들은 죄다 인내심이 대단한 것 같았다. 어른스럽달까, 직업정신이 넘친달까.
‘린다 유모 너무 좋다…….’
엄마를 만나도 이런 느낌일까? 어떻든 만날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성에 있는 내 방으로 향하던 도중, 난 문득 손을 들었다.
“쩌기.”
“네? 아.”
내 손을 따라 시선을 돌린 유모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전하의 집무실이에요.”
“빠.”
“지금은 안에 안 계신 것 같은데.”
내가 간절히 손을 휘젓자 유모가 곤혹스럽게 눈썹을 휘었다.
“으음, 그럼 조금 기다려 볼까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유모가 못 말린다는 듯 웃으며 집무실 앞에 섰다.
“입이 트이시더니 자기주장이 강해지셨네요.”
양심을 찌르는 중얼거림을 흘려넘기며, 나는 집무실 문턱의 그림자 속에 마력을 흘려보냈다. 이제는 익숙해진 마법진을 그리자, 그림자 속에서 조그만 귀가 꿀렁거리며 나타났다.
“허밍버드, 마라.”
그리고 입 속으로 시동어를 중얼거렸다. 그건 소리를 낸다기보다는, 입으로 마력을 흘려보내는 것에 가까웠다.
“네?”
유모가 어리둥절하게 날 내려보자 난 고개를 저으며 빙긋 웃었다.
‘이걸로 6개째.’
요즘은 이렇게 산책을 하는 척하면서 황실에 귀를 하나씩 심고 있었다. 낮에 계속 잔다는 오명도 벗을 수 있고, 마력도 아끼고, 귀도 심고. 그야말로 일거양득이었다.
***
씻고 옷을 갈아입자마자 나는 보란 듯이 하품을 했다. 낮엔 활동적으로 살았으니 저녁에 좀 일찍 잔다고 부진한 아기 취급을 하진 않을 거다. 아니나 다를까 유모는 나를 침대에 눕혀주었다.
“마라.”
눈을 붙이기 전에 아빠 집무실에 심어둔 쥐의 이름을 속삭였다. 그리고 살짝 졸고 있는데, 귓가에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발소리와 말소리……. 손님이라도 왔나?
-린드벨, 넌 이쪽으로 와.
때마침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린드벨…? 귀에 익은 이름이다. 난 기억을 헤집다가 헉하고 숨을 삼켰다.
‘린드벨 클로에 공작?’
리벨 삼촌의 최측근이었던, 8명의 추기경 중 하나.
신전의 높으신 분들은 죄다 나를 벌레 보듯 했었다. 그들의 차가운 시선이 생각나 오한이 일었다.
그가 이 시대에는 아빠와 친분이 있었던 걸까?
-무슨 생각으로 성녀를 입양하겠다고 한 거야?
린드벨의 목소리에 난 흠칫 놀랐다. 시종들을 다 내보냈는지, 방 안에는 아빠와 공작의 목소리만 울렸다.
-어차피 내가 맡기로 한 애야.
-그러면 후견인이 되면 돼, 꼭 호적에 올릴 필요까진 없잖아.
‘내 이야기를 하고 있어.’
난 티 나지 않게 손으로 입을 막았다.
아빠가 왜 나를 입양까지 하려고 마음먹었는지는 나도 확실히 모른다. 아마도 우리 아빠는 다정한 분이시니까, 부모 없이 버려진 성녀가 불쌍해서 책임감을 느끼시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도 좋았다. 이유야 어쨌든, 또 한 번 아빠 딸이 될 수만 있다면야.
아빠를 말리는 린드벨의 목소리를 듣자, 딱 그 설레던 마음만큼 불안해졌다.
그런데 린드벨이 한숨을 쉬며 지적했다.
-너 지금 고작 열여덟 살이야. 그런데 갑자기 애 딸린 미혼부가 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