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24)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24)화(24/207)
‘윽.’
난 입술을 꾹 다물었다.
고위 사제들에겐 아니꼬운 마음이 가득한 나조차도, 린드벨의 말은 틀린 점이 없었다. 친구를 걱정해서 하는 진심 어린 충고처럼 들렸다.
-게다가, 네가 아직은 마음에 품은 레이디가 없다지만. 나중에 생기면 어떡할래?
‘헉.’
-그 레이디가 애 딸린 남자 싫다고 하면? 둘을 저울질하는 일이 생기면 어쩔 거야? 애한테도 레이디에게도 못 할 짓이다, 그거.
철없는 친구를 훈계하듯 쏘아붙이는 린드벨 공작의 말에 내 심장이 덜컹거렸다.
우리 아빠처럼 얼굴 잘생기고 하늘이 내린 능력에 성격 좋고 신성하고 집안은 황실인 데다 일편단심이기까지 한 남자를 거절할 사람 있다면 나와 보라 그래, 라고 말하고 싶지만.
‘엄마가 아빠 애 딸려서 싫다고 그러면 어쩌지……?’
난 엄마에 대한 기억이 없어서 엄마가 아빠의 수많은 장점 중 어디에 반하신 건지 전혀 몰랐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엄마가 사랑에 빠졌던 아빠는 애가 딸리지 않았단 사실 뿐이다.
내 상상 속 두 분의 첫 만남은 설렘과 풋풋함만이 가득했다. 칭얼거리는 아이 목소리가 아니라.
그때 아빠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브엔나를 못 받아들이겠다면, 나도 받아들일 수 없다.
그와 함께 설레는 첫 만남을 시작하던 머릿속 엄마 아빠의 이미지도 와장창 깨졌다. 나는 내적 비명을 질렀다.
‘안 돼!’
엄마를 처음 만났을 때, 아빠의 나이는 고작 21살이었다. 아마 엄마의 나이도 그와 비슷할 텐데. 그 나이 때의 아가씨가 애 딸린 남자를 환영할 리가 없었다.
‘황자님…… 전 황자님을 사랑하지만, 역시 애 아빠와는 결혼할 수 없어요. 주변 언니들이 다들 저보고 미친 짓이래요.’
‘자, 잠깐만, 린지!’
‘미안해요, 황자님…….’
상상 속 부모님의 귀여운 낭만 로맨스가 순식간에 비극 멜로로 장르를 탈바꿈했다. 난 초조하게 아랫입술을 물었다.
‘이러다 나…… 못 태어나는 거 아냐?’
-왜 그렇게까지 그 아기를 입양하려는 거야?
그때, 한마디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는 린드벨 공작이 질문을 던졌다.
‘헉, 정말 궁금해.’
나야 아빠가 내 아빠인 게 당연하다지만, 솔직히 아빠의 입장은 다를 터였다. 아직 18살인 데다, 앞날이 창창한 황자 전하시다. 이제 막 걸어 다니는 젖먹이를 대뜸 떠맡으려 들기엔 여러모로 걸리는 게 많았다. 그런데 아빠는 나를 보자마자 덥석 태양궁으로 들이더니, 이젠 양녀로 들이겠다고 했다. 리벨 삼촌도 소피아를 대단히 예뻐하였지만 입양을 하려고 들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물론 아빠는 나를 그가 받은 첫 신탁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계시니까, 특별하게 여기시는 건 당연했다. 그러라고 소피아 흉내를 냈는걸. 하지만 가끔은, 그것만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를테면 밤을 새운 여파로 낮에 통잠을 자다가 문득 깨어나 날 내려다보던 아빠와 눈을 마주쳤을 때. 가만가만 흐트러진 내 머리칼을 쓸어주며 서로 색이 다른 내 눈을 살피는 아빠를 보면…… 꼭 그가 뭔가를 아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이 말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그때 아빠가 답지 않게 머뭇거리며 운을 뗐다.
-그 애를 보고 있다 보면, 묘하게 나와 닮은 부분들이 보일 때가 있어.
-뭐?
나는 순간 입을 틀어막았다. 자는 척 침대에 누워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것도 잊고 비명을 지를뻔했다.
-그 애가?
-언뜻 봐선 모르는데, 자세히 보면 말이야.
쉽게 꺼낼 이야기가 아닌지, 말을 하다 말고 뭔가를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크라바트라도 끄르고 계신 걸까. 나도 목이 갑갑한 기분에 턱받이를 끌었다. 귀로 들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무슨 말을 듣고 있는 거지?’
-특히, 그 눈 색…….
나는 숨도 멈춘 채 아빠의 말을 경청했다.
-물론 파란색 눈은 흔하지만…… 그렇게 회색이 섞인 청색은 많지 않잖아.
심장이 크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설마.’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던 기대는 확신으로 변해갔다.
아빠는 눈치채신 것이다. 내가 누구의 딸인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그러니까, 내 말은.
나는 양손을 꼭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저는 아빠 딸이에요.’
부모와 자식은 하늘이 내린 인연이라고 한다. 비록 미래에는 죽음 앞에서 갈라지고 말았지만…… 시간을 뛰어넘어, 아직 내가 태어나지도 않은 세계에서도 서로를 알아보는 인력.
그것이 바로, ‘천륜(天倫)’.
-아무래도 그 아기…….
어느덧 넘친 눈물로 속눈썹이 촉촉해졌다. 술렁이는 내 마음을 아빠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아버지의 사생아인 것 같아.
-…….
“…….”
나와 린드벨은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어버렸다.
내가 방금 무슨 말을 들은 걸까. 생각지도 못한 발언에 머리가 이해를 거부했다.
아빠의 아버지면…… 나의 친할아버지. 지금의 황제.
내가 친할아버지의 사생아라고……?
그럼 아빠는…… 고모는…… 엄마는……? 엄마가 내 새언니야?
부모의 형제들과 같은 항렬이 돼버린 충격에 눈앞이 뱅뱅 돌았다. 내 머릿속에서 상식선으로 정리되어 있던 라인하르트 황실의 가계도가 순식간에 엉망으로 엉켜버렸다.
제국 황실의 가계도를 개족보로 만들어버리는 충격 발언에, 들떴던 심장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식었다.
-얼마 전에 아기가 처음으로 말을 뗐다.
굳어버린 내 귓가에서 분위기 파악을 못 한 아빠가 말을 이었다.
-나를 ‘오빠’라고 부르더군.
방금까지와는 다른 의미로 손끝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난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아히야아아……!”
‘아니야!’
갑작스러운 내 외침에, 내가 곤히 자는 줄 알았던 유모는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아, 아기님?”
한달음에 달려온 유모가 나를 안아 얼렀지만, 나는 쥐의 귀로 듣는 집무실의 목소리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그때 린드벨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성녀님의 나이는 고작해야 10개월 정도야. 폐하의 몸 상태를 생각했을 때, 그건 불가능해.
-재작년까지는 꽤 건강하셨지 않나.
-그런 관계인 분이 계셨으면 너나 내가 알았겠지. 파리엘 전하 때도 다 말씀하셨잖아.
-그럼 이브엔나는.
-생판 남이야.
-…….
겨우 정상궤도로 돌아온 대화에, 난 버둥거리던 손을 툭 떨궜다.
‘다행이다.’
아빠에게 생판 남이라고 인식되는 건 슬펐지만, 아빠의 동생이 되는 것보다야 훨씬 나았다.
“이제 괜찮으세요? 나쁜 꿈을 꾸셨나.”
충격이 잦아들고 나서야 유모의 말이 귀에 들어왔다. 나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말 악몽 같았어.’
-너도 진심으로 그 애가 네 동생이라고 확신한 건 아니겠지만, 그런 말은 좀 자제해. 네가 말하면 지나치게 진지하게 들린단 말이다.
나의 대변인인 린드벨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미래의 린드벨과는 접점이라곤 없었는데, 어쩐지 이 시대의 린드벨에겐 공감을 잘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빠는 별것 아니라는 듯 린드벨의 말을 흘려 넘겼다.
-하지만 아기의 첫마디가 오빠였던 건 진짜다.
‘아니래도.’
***
열린 창문 사이로 적당한 볕과 시원한 바람이 솔솔 들어왔다. 나는 속눈썹을 간질이는 바람의 촉감에 잠에서 깨어났다. 어렴풋이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는 기분이 들었다. 잘 떠지지 않는 눈을 힘주어 뜨자, 흐릿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안녕, 아기님.”
온 세상 햇빛은 혼자 받는 듯, 결 좋은 백금발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작은고모가 차가워 보이는 인상을 지적한 이후부턴 날 보면 미소부터 지으시는 것 같다. 완벽한 예술품 같았던 무표정이 지워지고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웃으면 인간적으로 보여야 정상일 텐데 어째 아빠는 좀 더 신성해 보이시는 것 같다.
“아니, 아니지. 이제 이름을 정했으니.”
그때 아빠는 살짝 쑥스러운 듯 헛기침을 했다. 이제는 좀 인간적으로 보였다. 그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이브엔나.”
‘아.’
나는 느릿느릿 눈을 깜빡였다. 마치 먼 옛날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다. 물론 눈앞의 아빠는 내가 기억보다 훨씬 앳된 얼굴이시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미래의 아빠도 참 젊었다. 내 기억 속에서, 아빠는 서른 살로 영원히 박제되어 있었다.
“이브엔나로 결정된 거예요?”
“음, 파리엘이 강력히 주장하더군.”
아빠가 내 이마로 손을 뻗었다.
“잘 어울리는 이름이긴 해.”
머리를 쓸어올리는 아빠의 따뜻한 손길에, 아쉬웠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나는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쓰다듬는 아빠의 손가락을 꼭 잡았다. 아빠가 살짝 놀란 듯 나를 내려다보자, 나는 눈을 접으며 웃었다.
‘그래, 건강하시기만 하면 됐지.’
아빠가 자기를 오빠라고 부르면 뭐 어때. 이렇게 아빠를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데.
딸자식 좀 못 알아본대도 건강하게만 계셔주시면 그걸로 족했다.
아빠는 나의 온화한 미소를 보며 어색하게 마주 웃었다.
“기분 탓인가? 이브엔나의 얼굴이…… 자애로워 보이는군.”
“에이, 아무리 성녀님이시라도 아직 아기인데 무슨 말씀이세요. 전하도 참, 저보다 더하시다니까.”
때아닌 찬사에 뿌듯해진 유모가 꺄르륵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