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32)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32)화(32/207)
사제는 긴장한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사제는 정신을 집중하며 심호흡을 했다. 곧 그의 손끝이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난 그 빛을 주시하며 한마디 했다.
“쫌 더.”
사제의 눈썹이 꿈틀하더니, 빛이 한층 커졌다. 나는 옆에서 양손을 꼭 쥐고 그를 응원했다.
“더더더더더.”
작렬하는 빛은 색을 달리했다. 하얀색에서 크림색으로, 그리고 곧 아름다운 황금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신성력의 밀집도가 최고조에 달했다는 의미였다. 나는 잔뜩 흥분해서 주먹 쥔 손을 휙휙 휘둘렀다.
“하 쑤 이따, 하 쑤 이따요!”내 응원에 사제는 이를 악물었다. 황금색 빛이 점점 뭉치는 순간!
탁, 하고 빛이 사그라들었다.
“헉, 헉……!”
사제가 바닥에 털썩 쓰러져서 가슴을 움켜쥐고 헐떡였다. 정말 아쉬웠지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자 안타까운 마음이 더 들었다. 사제에게 다가가자, 그는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불민한 모습을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성녀님…….”
나는 대답 대신 사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사제가 천천히 고개를 들자, 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 사제에게서 등을 돌려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이와 그의 엄마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가,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부가 바도……?”
내가 해봐도 되냐는 질문에, 아이의 어머니는 잠깐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 뒤늦게 내 말을 해석해내곤 아이를 내 앞으로 밀었다.
아이는 다섯 살은 됐는지 나보다 키가 컸다. 내가 짧은 팔을 뻗으며 낑낑거리자 어머니가 다급히 다가와 아이의 무릎을 꿇렸다.
나는 내 앞에 무릎을 꿇은 아이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손끝에 신성력을 모았다.
하얀색으로 시작된 빛이, 황금색으로 변하더니 이내 아이의 이마 위로 문양을 만들어냈다. 나는 파리엘에게 세례를 내려줬을 때처럼, 신성력을 모조리 모아서 퍼부었다. 그러자 빛나는 신성진이 점점 뚜렷해지며 아이의 이마로 스미기 시작했다.
“와…….”
누군가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모두가 숨을 멈추고 이곳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이윽고 빛이 사그라들자, 아이가 비틀거리며 제 이마를 짚었다. 아이의 어머니가 황급히 달려와서 아이를 받아 안았다.
“정말, 정말로…….”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른 사제가 아이의 앞에 다가가 흰 천에 싸인 마른 꽃을 내밀었다.
아이는 엄마를 한번 돌아보고는, 그것을 손에 쥐었다. 그러자 메마른 꽃이 흰빛을 내며 활짝 피어났다. 신성력을 먹고 사는 꽃, 아우리오가 살아났단 것은 아이가 사제가 되었다는 증거였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아이의 엄마는 감격에 겨워서 아이를 와락 껴안았다. 사이 좋은 모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붉어진 눈시울을 문지르는데, 그녀가 문득 나를 돌아보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성녀님.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아, 아니.”
나는 당황해서 손을 내저었다.
“이부도 조은걸.”
이 말은 사실이었다. 두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지만, 나도 얻는 게 있었다.
‘난 무속성이라서 제대로 된 권능을 못 쓰니까…….’
치유 속성을 타고난 성녀 소피아의 흉내를 내고 있지만, 사실 나는 무속성이라 기껏해야 작은 생채기를 낫게 하는 정도의 능력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신성력을 세례에 몽땅 부어버리니까 아무도 내게 권능을 써보라고 권하지 않았다. 세례는 보다시피 고위 사제도 힘들어할 정도로 많은 힘을 쏟아붓는 일이기에, 한 번 할 때마다 모든 신성력을 쭉쭉 뽑아 쓰기 때문이다.
“아아, 성녀님…….”
“성흔이 없는 신도들을 구제해주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하시다니, 자애롭기도 하시지.”
그런 내 생각을 알 리 없는 아이의 어머니와 사제들, 심지어 유모와 아실까지 모두 감동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앞에 둔 것이 마녀인 줄도 모르고 쏟아지는 존경의 눈빛에 양심이 욱신거렸다.
그래도…… 신전은 사제를 얻고 아이는 성흔을 얻고 나는 치명적인 약점을 숨길 수 있으니, 모두가 행복한 윈윈전략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하하…….
“제 실수를 만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녀님.”
세례에 실패했던 사제가 몸을 추스르고 내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방법을 완벽히 숙지하고 근 한 달 동안은 일절 권능을 쓰지 않고 만전의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제게는 무리였나 봅니다. 성녀님보다 훨씬 많은 세월을 수련했을 텐데도…… 성녀님의 신성운용력은 그야말로 경이 그 자체입니다.”
“아, 아니야.”
“아니요, 정말입니다. 그러니…… 혹시 비법이 있다면 가르침을 주실 수 없겠습니까.”
사제가 깍듯이 부탁했다. 아무리 성녀라도 아기에게 비법을 가르쳐달라는 말을 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할 수 있을 텐데,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성실하고 멋진 태도였다.
하지만 나의 운용력은 황실 비밀통로에 들어갈 때마다 신성으로 된 문양을 그리고, 마력을 마구 쓰면서 만들어진 거였다. 누구한테 가르쳐 줄 수 있는 게 못 된다.
“어어…….”
내가 곤란해하고 있자, 옆에 있던 다른 사제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이봐, 진정해. 이브님은 신의 아이잖아. 타고나신 걸 요령을 가르쳐달라고 하면 어떡하나?”
사제의 목소리가 내 양심을 푹 찌르고 지나갔다.
“그런가……. 죄송합니다, 성녀님.”
“안니야…….”
우리는 그렇게 세례식을 끝내고 자리를 정리했다. 그리고 지상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는 길에 한 사제와 딱 마주쳤다.
“이런, 끝났나 보군요.”
사제의 품에는 신전에서 보기 드문 까만 머리의 꼬마가 안겨 있었다. 그가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성녀님. 저는 추기경인 벤입니다. 요한이 세례식을 보고 싶어 해서 내려왔는데…….”
“안녕아세요, 이부에요. 요하두 안녀!”
내가 손을 붕붕 흔들자 요한이 추기경의 팔을 툭툭 쳐서 아래로 내려왔다.
이 빨간 눈에 까만 머리를 가진 아이는 말은 별로 없지만 내가 대신전에 오면 꼭 마중을 나왔다. 나는 늘 아빠와 함께 돌아가기 위해 늦은 밤까지 신전에 머물렀는데, 그때마다 늘 마지막까지 나를 졸졸 쫓아다니며 곁을 지켜줬다. 나는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요한의 멍한 얼굴을 바라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날 싫어하진 않는 거겠지?’
“가치 놀쟈.”
내가 최대한 발랄한 목소리로 말하자 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안 싫어해!’
나는 활짝 웃으며 요한과 아실의 손을 잡았다. 유모와 추기경이 우리를 천천히 뒤따라왔다. 나는 세 살, 요한은 다섯 살, 아실은 아홉 살. 세 꼬마가 대신전을 휘젓고 다니는 동안, 우연히 눈을 마주친 신도들은 전부 미소를 지어줬다. 나는 그때마다 흠칫거리며 고개를 돌렸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이 시대 사람들은 다들 내게 친절해.’
성녀라는 건 좋구나. 마녀의 삶과 완전히 달라.
“이브, 어디가?”
요한의 말에 멈칫해서 주위를 둘러보자, 나는 벽을 향해 걷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는 바람에 혼자 무리에서 떨어진 것도 몰랐다.
“미, 미안, 딴생각하느라.”
나는 당황해서 다시 요한에게 달려갔다. 요한은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툭 내뱉었다.
“이브는 우리랑만 있으면 말 잘하면서, 어른들이랑 있으면 아기처럼 말해.”
그 말에 나는 흠칫 놀랐다. 요한을 돌아보고 다급히 혀짤배기소리를 냈다.
“내, 내가 언제에?”
“봐, 어른들이랑 있으면 이부는, 이부는 그러면서.”
“……!”
“우리랑만 있으면 ‘내가’ 그래.”
나는 진땀을 흘리며 시선을 피했다.
‘어린애들은 이상함을 못 느낄 줄 알았어.’
치아가 아직 덜 나고 혀가 짧아서 발음이 어눌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원래 어른이었던 나는, 이 몸에 적응하자 요령껏 신체를 다룰 수 있게 됐다. 아무래도 인간으로 산 경력이 좀 있으니까 말이지. 어른 경력이 있는 아기랄까? 완벽하진 않아도, 노력을 들이면 꽤 또박또박 발음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 롤모델인 성녀 소피아는 예닐곱 살까지 ‘소피는, 소피는요.’거렸단 말이다. 성녀 소피아가 모두에게 사랑받는 기적의 성녀로 추대받은 것을 보면, 그녀의 사례를 모방하는 게 안전했다. 죽은 사람도 살려내는 활약을 하면서도 혀짧은 소리로 자신을 삼인칭으로 부르는 무해한 깜찍함까지 갖추는 거지.
그래서 어휘나 발음을 더 아기처럼 보이려고 신경 쓰고 있었다. 어렵지는 않았다. 혀에 힘을 빼고 내키는 대로 아무렇게나 발음하면 되니까 말이지. 하지만 순진한 아이들 속에 있을 때는, 자존심 때문일까? 나도 모르게 입에 힘이 들어갔다.
그 차이를 요한이 눈치챌 줄이야.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입만 벙긋거리고 있는데, 아실이 내 앞으로 나섰다.
“그러는 너도 어른들이랑 있으면 한마디도 안 하지 않아?”
나는 놀라서 아실을 돌아봤다. 앳된 옆얼굴이 오늘따라 듬직하게 보였다.
‘역시 내 기사……!’
“성녀님이랑 있을 땐 잘만 말하면서.”
“그건…….”
“나도 알아, 어른들 앞에선 말이 잘 안 나오니까.”
“마쟈, 마쟈.”
나는 아실의 든든한 등 뒤에 숨어서 요한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너랑 같은 거야.”
“헤에…… 그래?”
그렇게 대꾸하는 요한의 말투는 어쩐지 비웃는 것 같았다. 늘 멍하던 붉은 눈동자가 묘한 이채로 반짝인다. 나는 급히 시선을 피했다.
아실이나 파리엘 같은 나이면 그래도 말이 좀 통하는데. 요한처럼 어린애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서 대하기 어렵다.
겨우 화제를 넘기고 복도를 걷는데, 요한이 갑자기 내 손을 덥석 잡았다.
“나가는 길은 저쪽이야.”
“응?”
“나가고 싶은 거, 아니었어?”
요한이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 내가 아까 벽 쪽으로 걸어간 게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구나.’
내 기분을 신경 써 주다니.
‘천사인가 봐.’
감동이 물결처럼 밀려왔다. 나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요한은 착하고 사려 깊어.’
우리는 다 함께 신전 정원으로 나갔다. 성지의 신성을 받고 활짝 피어난 아우리오 꽃밭 가운데서, 아이들에게 유모에게서 배운 꽃반지 만드는 법을 전수해줬다. 요한은 손재주가 없었다. 계속해서 가르쳐주다 정신을 차리니 그 애의 열 손가락이 모두 꽃반지로 채워져 있었다. 요한이 뚱한 얼굴로 꽃반지로 가득한 손을 들어 보이자, 아실이 바닥을 구르면서 웃었다. 유모와 추기경도, 신전을 오가는 사람들도 우리를 보면서 밝은 미소를 보여줬다. 나는 그 속에서 진짜 어린애라도 된 것처럼 꺄르르 웃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성녀로 지내는 이 시대에서만큼은,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을지도 몰라.’
“이브님.”
그때 유모와 벤 추기경이 내게 다가왔다.
“이제 황궁에 돌아가시는 게 좋겠어요.”
“지끔?”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직 노을이 지지도 않은 하늘은 환하기만 했다. 그동안은 내가 밤까지 신전에 있어도 아무도 돌아가라고 하지 않았는데?
“성아는?”
“성하께서 오늘은 바쁘셔서, 먼저 돌아가시라고 전해달라셨습니다.”
“그면 기다려따…….”
내가 웅얼거리자, 벤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하지만 저도 일이 있어서요. 오늘은 빨리 돌아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아.”
아차 하는 기분이 들었다. 벤 추기경도 당연히, 높은 사람이니까 바쁘겠지. 애들 보모 노릇이 좋을 리도 없고. 그런데 상대가 어린애라서 참아주고 있었던 거구나…….
“녜에, 알게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