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34)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34)화(34/207)
예쁘게 꾸며진 방 안의 전경을 찬찬히 훑던 내 시선이 아빠의 얼굴에서 멈췄다. 우리는 얼어붙은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다.
“…….”
“…….”
방 안의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성 에퀴테스로서 거친 전장을 숱하게 거쳐온 우리 아빠조차도.
나는 습관처럼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눈을 감았다 떠도 펼쳐진 전경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브엔나.”
역시나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신체만큼 정신력도 강한 우리 아빠였다.
그는 옆에 서 있던 린드벨 공작에게 들고 있던 케이크를 넘겼다. 어떻게 손으로 들고 있는지 궁금한 크기의 3단 케이크는 화려한 황궁 모양이었는데, 눈송이 모양의 초 위에 촛불까지 붙여져 있어서 하나의 예술품처럼 아름다웠다. 뛰어난 성기사인 린드벨 공작은 그것을 받아 들며 살짝 비틀거렸다.
공작에게 방해물을 떠넘긴 아빠는 긴 다리로 내게 성큼성큼 걸어왔다. 나는 주춤거리며 뒷걸음쳤으나, 문에 등이 턱하고 부딪혔다. 아빠는 순식간에 내 앞으로 와 한쪽 무릎을 꿇어서 눈높이를 맞춘 후 물었다.
“방금 뭐라고 했지?”
“녜, 녜에헤?”
나는 말꼬리를 올리며 반문했다. 아빠가 잘못 들은 거라고 잡아뗄 속셈이었다. 그러나 임기응변 능력이 떨어져서 삑사리를 내는 참변을 일으키고 말았다.
‘당황한 거 다 티 나겠어……!’
“아, 아무꺼도 아냐요.”
나는 필사적으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멍청한 이브엔나야, 머리란 걸 좀 써봐. 변명, 그럴듯한 변명을 생각해내!
난 활짝 웃는 표정을 만들어 냈다.
“뜻 없는, 말뻐릇이예여!”
순간 차가운 물을 끼얹은 듯 방 안의 분위기가 한층 더 싸늘해졌다.
나는 뒤늦게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닫고 아차 했다.
“그게 말버릇이라고……?”
‘히이이이익.’
언제나 따스하게 나를 비추던 아빠의 청회색 눈동자가 북부의 밤바다처럼 어둡게 가라앉았다. 서릿발처럼 냉랭한 분위기에, 나는 사태를 직감했다.
‘망했다.’
후회해봤자 이미 말은 입을 떠나간 후였다. 아빠는 나를 내려보며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나가 죽어, 그리고.”
“…….”
“멍청아?”
늘 감미롭던 낮은 목소리가 음산하게 내리깔렸다.
나는 시선을 오른쪽 아래로 처박은 채 땀만 삐질삐질 흘렸다. 위대한 신성제국의 교황이자 성 에퀴테스인 아빠가, 그 성스러운 얼굴로 상스러운 말들을 주워섬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내 입에서 나온 것이라니.
여기서 사라지고 싶다.
비밀통로 속의 아늑한 보금자리로 숨어버리고 싶어.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웠지?”
“우그, 읍…….”
아빠의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혀가 꼬여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머리가 백지장처럼 하얗게 번져서 어떤 변명을 해야 좋을지도 생각이 안 났다.
‘세 살짜리 아기 성녀가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잖아.’
눈치챘을까. 그간 보였던 아이다운 모습들이 다 연기라는 거. 사실 난 신탁의 아이 같은 게 아니라 정체를 숨기는 마녀에 불과하다는 것도.
관자놀이 위로 비지땀이 줄줄 흘렀다. 나는 문에 바싹 붙은 채 아빠의 그림자 속에서 와들와들 떨었다. 제국의 태양이신 아빠는 나를 코너에 몰고 다시 한번 입술을 열었다.
“누가 감히, 내 보호하의 아이에게 그런 말을 했느냐고.”
“서, 성하!”
그때 유모가 다급히 끼어들었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 안색을 흘긋 살피더니 작게 속삭였다.
“오늘 이브님 생일이잖아요.”
“……하지만.”
“이따가 물으세요. 지금 너무 놀라셨어요.”
그 말에 내 얼굴 위로 아빠의 시선이 닿았다. 그의 얼굴에 낭패감과도 비슷한 감정이 스쳤다. 아빠는 이마를 쓸어올리며 내게서 몸을 돌렸다. 그가 비켜나간 곳으로 유모가 다가왔다.
“괜찮아요, 우리 아기님. 괜찮아.”
유모는 굳은 나를 번쩍 안아 들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일렀다. 쭈뼛거리며 고개를 들자, 그녀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생일 축하해요.”
“…….”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내 시야에 닿은 사람들이 다급히 미소를 짓는 게 보였다. 마치 아무것도 듣고 보지 못한 것처럼.
내 기분을 생각해주는 걸까. 그, 그래, 방금 일로 당장 마녀라고 확정하진 않을 테니까.
유모의 조언을 따라, 일단 긴장을 풀고 다시 추궁하려는 듯했다. 그땐 뭐라고 대답하지. 그냥 ‘모르겠어요.’하고 잡아뗄까. 그러려면 이렇게 굳어 있는 것보단 빨리 기운을 차려서 고맙다고 말하는 게 그나마 순진해 보일 것 같았다. 나는 잘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열었다.
“감사, 함미다…….”
그런데 내 입에서 튀어나온 건 염소 울음처럼 흔들리는 목소리였다.
혀를 깨물고 싶어졌다. 누가 들었으면 우는 줄 알았을 것 같다. 겨우 밝아지려던 분위기가 재차 우중충하게 가라앉았다. 모르쇠로 면피하려던 내 계획 또한, 시작과 동시에 풍랑을 맞았다.
“케, 케이크! 촛불 불까요?”
유모가 애써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하릴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소원을 빌고 촛불을 끄는 거예요.”
“녜에.”
케이크가 커서 린드벨 공작이 나를 테이블 위로 들어줬다. 내가 바람을 잘 불지 못하자 아빠가 와서 함께 촛불을 꺼줬다. 케이크 커팅식을 한 후에는 선물을 받는 시간이었다.
“다들 이브님을 위해서 선물을 잔뜩 준비해왔어요. 같이 뜯어볼까요?”
“녜에.”
그쯤에서 사람들은 약간 긴장이 풀어진 듯 웃기도 하고 떠들기도 했다. 요리사 베일리는 선물을 건네면서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만들어 보였고, 비올라 고모는 나를 꼭 끌어안아 줬다. 나는 사람들의 말에 반응해 주면서 내가 저지른 멍청한 실수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행히도 파티는 빨리 끝났다. 구석에 있던 이상한 모양의 풍선들이나 인형 탈들은 왜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그것들도 모두 수습해서 가지고 나갔다.
“이브엔나.”
초청객들이 거의 다 빠져나갔을 때, 아빠가 나를 불렀다.
‘올 것이 왔군.’
나는 긴장한 채 아빠를 올려다봤다. 눈에 익은 밝은 백금발과 성물이 걸린 목걸이, 흰 정복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내게 다가와, 천천히 손을 뻗었다. 나는 무심코 몸을 움츠렸다.
“아.”
나는 곧바로 내가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개를 들자 아빠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내려보고 있었다. 난 뒤늦게 그가 단지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허공에서 멈칫한 손은, 곧 다시 거두어졌다.
“……잘 자거라.”
아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가 그 말을 이해하기도 전에, 그가 몸을 일으켰다. 아빠가 방을 나서고 문이 닫히자 어느새 방 안에 남은 건 나와 유모뿐이었다. 방금까지의 파티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내 방은 평소의 모습대로 돌아와 있었다.
유모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빨리 씻고 잘까요?”
갑자기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나는 얼떨떨하게 닫힌 방문을 돌아봤다.
‘뭐지…… 이게 다야?’
***
태양궁의 신입 하인, 겐틀리는 가슴을 치며 후회하고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며칠 전, 정원에서 이뤄졌던 사소한 회의였다. 성녀님의 유모부터 부요리장 베일리까지, 온갖 사람이 모인 질서 없는 회의니만큼 주제도 사소했다.
<이브엔나의 세 번째 생일을 어떻게 축하하면 좋을까?>
태양궁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아기 성녀님의 생일 회의. 그곳에서 겐틀리가 열심히 의견을 개진한 건 신입으로서 좋은 인상을 얻고 싶단 속셈밖에 없었다.
성녀님이 낯을 가리신다니, 큰 파티는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너무 작게 하자니 아쉽다. 그래서 생각한 게 깜짝 파티였다.
장소는 성녀님이 가장 편하게 느낄 성녀님의 방. 초청객은 딱 10명, 성녀님이 좋아하는 사람들 위주로. 하인들끼리 깜찍한 인형극과 쇼도 준비해서 즐겁게 해드릴 생각이었다.
제가 생각했지만, 깜짝 파티는 정말 기발한 발상이었다. 아인 전하께서도 그 정도면 이브엔나에게도 좋은 추억으로 남겠다며 칭찬했다. 겐틀리는 주군께 눈도장 찍었단 뿌듯함에 잔뜩 들떠 있었다.
파티 준비를 끝내고 주인공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던 때까지만 해도 무척 즐거웠다. 마침내 방에 들어온 성녀님은 어쩐지 바닥만 보고 계셨다. 손으로 입을 막고 웃음을 참으며 언제 우리를 눈치채 주려나 두근두근하고 있었다.
“나가 죽어, 멍청아.”
파티의 주인공이신 아기 성녀님의 입에서 그런 말이 튀어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허억.”
방 안에 숨어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경악하며 숨을 들이켰다. 의아하게 뒤를 돌아본 성녀님 또한 그들을 발견하고 무척 놀란 눈치였다. 순간 겐틀리는 직감했다.
‘일 났다.’
이렇게 쌍방 깜짝 파티가 될 줄이야.
확실히 깜짝 파티라는 의미에서는 대성공이었다.
파티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깜짝 놀라고야 말았으니까.
태양궁의 주인이신 아인 전하는 이브님을 몹시 아꼈다. 교황이 되신 몸으로도 대사제들의 요청을 뿌리치고 황실에서 출퇴근하길 고집할 정도니까. 그런데 그 소중한 이브님이 행복한 생일날에 그런 말을 한 것이다.
아인 전하가 화가 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파티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이브님의 기분을 살피느라 분노를 억누르시는 듯 보였다. 그러나 파티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그는 수족들을 불러모았다.
‘이브엔나와 접촉한 사람들을 모두 조사해라. 아이에게 험한 말을 하거나 함부로 대할 만한 사람이 있는지.’
전하의 명령과 함께, 기사들은 부리나케 성문을 나섰고 보좌관은 성내 하인들을 털기 시작했다.
태양궁에 돌풍이 불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