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35)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35)화(35/207)
겐틀리를 포함하여, 태양궁의 모든 하인이 면담에 끌려갔다. 무려 보좌관과 시종장에 전하까지 대면해야 하는 압박 면담이었다. 질문은 대체로 보좌관과 시종장이 하고, 전하는 거의 듣기만 하는 구도였지만…….
‘존재만으로도 무서웠다고요…….’
파티 준비를 할 때는 그래도 기분이 좋으신 상태라서 괜찮았는데. 화난 전하는 그야말로 맹수가 따로 없었다.
황실 입사 면접을 봤을 때보다 훨씬 긴장해서, 집무실을 나올 때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그렇게 했는데도 여태 의심되는 사람이 나오지 않아, 가장 최근에 들어온 하인부터 솎아낼 거라는 말도 나오고 있댔다.
“황실에서 일한다고 그렇게 떵떵거리고 왔는데…….”
가장 최근에 태양궁에 들어온 겐틀리가 가장 떨고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러다가 쫓겨나는 거 아니야?’
잘린다고 생각하자, 일이 손에 안 잡히고 기분이 우울해졌다. 딱 황실에서 일하게 되어서 느낀 설렘만큼 슬펐다. 슬픔은 곧 분노가 되었다. 겐틀리는 심부름 거리를 들고 코너를 돌며 이를 갈았다.
“누가 성녀님한테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몰라도, 걸리면 확……!”
그 순간, 분홍색 솜사탕 같은 머리통이 시야에 들어왔다.
겐틀리는 놀라서 입을 틀어막았다. 잘못 봤나 싶어 눈을 깜빡여봤지만, 저기 복도 끝에서 아장거리며 걸어오고 있는 것은 아기 성녀님이 맞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겐틀리는 황급히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이브님!”
“……!”
성녀님이 뭐라 옹알거리며 손을 흔들었다. 다행히도 그의 말은 듣지 못한 듯했다.
‘휴우, 하마터면 성녀님 앞에서 험한 말을 쓸 뻔했어.’
진땀을 닦으며 무사히 심부름을 끝낸 겐틀리가 정원에서 쉬고 있자, 동료인 사라가 다가와 알은척을 했다. 벤치에 나란히 앉아 담소를 나누다가 이브의 앞에서 험한 말을 뱉을 뻔한 일을 말했다. 역시나 사라도 깜짝 놀라 마음을 졸였다.
“세상에, 그래도 이브님이 가까이 오기 전에 알아채서 다행이에요.”
“그렇죠, 심장이 철렁했다니까요.”
공감한다는 듯 도닥여주던 사라는 문득 깨달은 듯이 말했다.
“설마 이브엔나님이 ‘그 말’을 배운 것도 그런 식이었을까요?”
“네?”
겐틀리는 그녀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해 반문했다가, 헉하고 숨을 삼켰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그들의 작은 성녀님은 아장거리는 걸음으로 황실 여기저기를 용케도 돌아다녔으니까. 부요리장 베일리와도 친목을 다져놓을 정도니 말 다 했다. 성녀님은 아기라서 눈에 잘 보이지도 않으니까. 그렇게 영재라던 성녀님이 하인들끼리 막말을 뱉는 걸 귀동냥으로 배우셨다면…….
싸악, 하고 피가 식는 느낌이 들었다. 겐틀리와 사라는 파리해진 얼굴로 눈을 마주쳤다.
“……앞으로는 어디서든 말을 조심해야겠어요.”
“네, 아이들 앞에서는 찬물도 못 마신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하아, 그들은 동시에 한숨을 뱉었다. 그 조그만 아기 성녀님이 험한 말을 배운 게, 설마 자신의 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두 사람은 바른 언어 습관을 갖자고 재차 다짐하며 다시 일터로 나섰다.
***
나는 다음 날이 되면 내 혼잣말에 대해 해명할 자리가 만들어질 줄 알았다.
어떤 변명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밤새 잠도 설쳤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평소보다 게으르게 오후에 아침을 맞이하고 말았다.
내 인기척을 느낀 유모가 생긋 웃으며 내게 인사했다.
“편히 주무셨어요?”
“안농, 우모…….”
“우리 아기님 배고프겠다, 얼른 식사를 내오라고 할게요.”
다정하게 나를 챙겨주는 유모의 목소리는 어제와 같았다. 나는 약간 긴가민가하며 아침 식사를 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감자 수프와 큐브형으로 작게 자른 빵, 그리고 싱그러운 청포도와 블루베리들이었다. 유치가 다 자랐기 때문에, 순한 음식이라는 것 외에는 어른들과 큰 차이 없는 식단이다. 나는 바삭한 빵을 수프에 움푹 찍어 먹으면서 유모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 문득 시선을 느낀 유모가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딱하고 마주치자 나는 재빨리 수프에 고개를 처박았다가, 뒤늦게 그릇이 비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유모가 작게 웃는 소리를 냈다. 고개를 들자 그녀가 따뜻한 눈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다 드셨으면 같이 산책을 하러 갈까요?”
“으응.”
평소와 같은 일상, 평소와 같은 산책로, 모든 게 평소와 똑같았다. 나는 산책로를 돌아 식당을 지나치면서, 주방 안쪽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소리치듯 대화를 나누는 요리사들을 보며 생각했다.
‘사람들도 똑같고…….’
저녁 시간 직전의 주방은 전장이나 다름없었다. 쇠로 된 화구가 내는 파열음이나 물소리 따위가 얽혀 정신없이 소란스러웠다. 열기와 소음 속에서 요리사들의 목소리가 올라가는 것도 당연했다.
“헉.”
그때, 젊은 요리사 한 명이 카운터 너머로 나를 발견했다. 그는 깜짝 놀라 제 입을 틀어막더니, 뭔가를 내놓으라고 아우성치던 부요리장 베일리의 어깨를 주먹으로 마구 쳤다.
“……!”
불시에 직장 내 폭행 현장을 맞닥뜨린 나는 깜짝 놀랐다. 베일리는 성가시다는 듯 와락 짜증을 내며 뒤를 돌아봤다가, 나를 발견하고 흠칫 굳었다.
왜 동료가 돌 같은 주먹으로 어깨를 때릴 때보다 나를 발견하고 더 당황하는 건지 모르겠다. 베일리는 허둥거리며 목에 걸고 있던 스카프에 얼굴을 비벼 닦았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크고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대형견이 주인의 웃는 얼굴을 따라 할 때처럼 어색한 미소였다. 베일리의 동료 요리사들도 모두 그와 비슷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내게 인사를 건넸다.
“좋.은.저.녁.입.니.다.”
“주.방.을.구.경.하.러.오.셨.나.요?”
“드.시.고.싶.으.신.게.있.으.세.요?”
그들의 말투는 하나같이 국어책을 읽듯 어색했다. 기계 장치였다면 어딘가 고장 났나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주춤주춤 뒷걸음을 치며 모든 게 평소와 같다는 감상을 철회했다.
‘사, 사람들은 평소와 좀 다른가?’
“끄, 그냥 뻬리한테 선무 고맙다 하려구 왔어요.”
“헉, 그것 때문에요?”
베일리가 놀라서 장갑을 벗으며 내게 걸어왔다. 나는 무심결에 그의 손을 살폈다. 여기저기 굳은살이 박인, 그러나 억세고 튼튼해 보이는 손이었다. 저 손으로 그 섬세한 예술품 같은 황궁 모양 케이크를 만들었겠지.
젊은 나이에 벌써 보석같이 재능이 반짝거리는 저 부요리장은, 훗날 황제궁의 요리장이 된다. 황제가 두 번 바뀌고 동료들이 모두 갈아 치워질 동안에도 자리를 지키며. 섭정공에게도 재능을 인정받아 수석주방장으로 남는다.
손목이 잘려서 쫓겨나기 전까진.
삼촌의 명령으로 시작된 금식기도가 끝나지 않아 방에서 힘없이 누워 있던 내게 몰래 음식을 챙겨주던 미래의 그를 기억했다. 두려움을 숨기며 애써 웃는 표정을 만들던 얼굴, 마른 나의 손을 잡아주던 거칠지만 따뜻하던 손바닥, 미안하다는 내 말에 더 슬프게 일그러지며 당부하던 따뜻한 목소리.
‘여기서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폐하.’
“……이브님?”
“핫.”
베일리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려보자, 나도 모르게 베일리의 양손을 꼭 잡고 있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베일리의 손을 놓았다.
“아, 안니, 고마어서.”
나는 베일리와 주방 식구들을 향해 활짝 웃었다.
“이부 마싯는 거 먹게 해주서 고마씀미다.”
“이브님…….”
궁중 요리사들이 감격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적성에 안 맞게 여러 사람의 시선을 한 번에 받게 된 나는 어쩔 줄 몰라 눈만 굴리다가, 노련한 유모가 대신 상황을 정리해줘서 간신히 식당에서 빠져나왔다.
이후에도 눈에 익은 하인들이 인사를 건네 왔는데, 다들 과할 정도로 상냥한 말투였다.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혈기가 넘치는 하인 겐틀리조차, 저 멀리서부터 허둥거리며 고개를 조아려댔다.
‘오늘따라 사람들이 이상하게 친절하지…… 내가 너무 의식해서 그렇게 보이는 건가?’
저녁 식사를 할 땐 아빠를 만날까 긴장했으나, 아빠는 바쁜지 식사 자리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묘한 하루였다고 생각하며 침대로 올라갔다. 몸집이 제법 커서 아기침대를 졸업한 이후론 낮고 널찍한 데이베드형 침대를 얻었다. 아직 잠을 청하기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어제 일 때문에 더 돌아다닐 용기가 안 났다.
‘빨리 자서 시간을 흘려보내자.’
그런 생각으로 침대에 눕자, 린다 유모가 내 이마에 입술을 맞췄다.
“좋은 꿈 꾸세요, 아기님.”
“짜 자, 우모.”
잠은 안 오겠지만.
억지로 눈을 감으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불을 끄고 있던 유모가 의아한 얼굴로 일어났다. 방문을 열자 복도에서 들어오는 빛이 어두운 방 안에 길게 드리웠다. 유모는 방문객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가 살피는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유모의 뒤로 보이는 익숙한 실루엣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 괘차나.”
그러자 유모가 잠깐 내게 미소를 보내더니, 꾸벅 인사하며 문을 열고 나갔다. 유모를 대신해서 들어온 사람은 키가 훤칠한 남자였다. 성물 같은 백금발이 창 너머로 들어온 달빛을 받으며 하얗게 반짝였다. 그 아래로 언뜻 보이는 얼굴은 어쩐지 수심이 깊어 보였다.
“이브엔나.”
나지막이 속삭이는 내 이름이 낮 내내 들었던 하인들의 과하게 친절한 말투와 비슷하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나는 반사적으로 아빠, 하고 답할 뻔했다. 간신히 오답을 집어삼키고 미소를 지었다.
“녜, 성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