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38)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38)화(38/207)
6. 마녀와 망가진 연회
내일이면 엄마가 황성에 온다.
동이 트기 전 새벽, 나는 잠옷 바람으로 비밀통로에 숨어들었다. 아늑한 아지트에 도착한 나는 세탁방에서 몰래 빼돌린 쿠션 위에 기대앉아 휴게실에서 훔쳐 온 달력을 펼쳤다. 내 생일이 표기되어 있는 1월의 달력부터 팔랑팔랑 넘겨서 멈춘 곳은 7월.
882년 7월 10일, 황성에서 제국 통일을 기념하는 연회가 열리는 날.
그리고 마녀들이 마녀 이델리를 구출하기 위해 황성에 들이닥치는 날이기도 했다.
‘드디어 엄마를 만난다…….’
언제나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던 일이 현실로 성큼 다가와 버렸다.
엄마를 만나게 되면 무작정 기쁘기만 할 줄 알았는데, 막상 그날이 다가오니 현실감이 없고 얼떨떨했다. 기대보다는 긴장이 앞섰다.
“부족한 거 업게찌?”
나름대로 준비는 끝냈다.
며칠 동안 통로를 오가며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지하 감옥에 접근했다. 미래에는 갇혀본 적도 있는 곳이기에 지리를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어젯밤, 마녀 이델리가 갇힌 지하 감옥 입구에 귀를 설치하는 데 성공했다. 감옥 안쪽까지 들어가진 못했지만, 간수들의 대화를 엿들어서 이델리가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나는 쌓여 있는 책더미 옆에서 엄마의 마법서를 잡아끌었다.
과거로 온 이후, 나는 이 책을 닳도록 봤다. 이게 특수한 재질로 만들어진 마법서만 아니었더라면 모서리가 닳아서 너덜거렸을 거다. 몇 번이나 읽으며 내용을 통째로 달달 외웠다. 마법들은 물론이고 마도구들의 잡학지식까지 완벽히 습득했다.
그러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이 마법서 가운데 박힌 에메랄드는 에메랄드가 아니었다.
지이잉!
에메랄드에 손을 얹고 마력을 붓자, 그것이 마력을 흡수하며 녹색으로 빛났다. 마법서를 에워싸듯 번지던 녹색 빛이 사그라들었을 땐, 책의 모습이 사라지고 에메랄드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조아.”
이 에메랄드는 사실 마력을 불어넣으면 책의 모습을 감춰주는 마석이었다.
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책 가운데에 홀로 남은 마석을 움켜잡았다. 엄지손톱만 한 크기로 줄어든 그것을 6개월 전 생일에 파리엘에게서 받은 목걸이의 로켓 안에 넣었다.
혹시 엄마에게 미래에서 왔다는 사실을 털어놓게 된다면, 이 마법서가 증거가 되어줄 것이다.
비밀통로에서 나온 후에는 동이 틀 때까지 잠깐 휴식을 취했다. 심장이 쿵쾅거려서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정신은 고양되고 몸은 지친 상태로, 오후까지 비실거리다가 유모의 걱정을 샀다.
“이브님, 일어났어요?”
“연무장 가자!”
점심 식사를 막 끝냈을 때 방에 아실과 파리엘이 들이닥쳤다. 비슷한 나이의 그 어린이들은 내 생일 파티를 기점으로 부쩍 함께 출몰했다. 다 같이 파티 준비를 하다가 친해진 것 같다.
유모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내 얼굴을 살피더니 아이들에게 말했다.
“오늘 아기님은…….”
“안니야. 가께.”
“괜찮으시겠어요?”
“웅.”
어차피 방에 혼자 있어도 괜히 긴장만 되니까 말이지.
기분 전환이나 할 겸, 나는 파리엘과 아실의 손을 잡고 태양궁을 나섰다.
얼마 전부터 우리의 산책 코스는 연무장이 되었다. 성기사가 꿈인 두 어린이가 황실 기사단의 훈련 구경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냥 기사단의 훈련이 아니야. 교황 성하와 함께 나샤로 나갈 최정예 기사들이라고!”
연무장으로 가는 동안, 파리엘은 들뜬 어조로 말했다. 아실이 내 오른편에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파병이라.’
신성연합국의 8개국은 분기마다 돌아가면서 나샤로 토벌을 나간다. 저번은 시즐란드였고 이번엔 우리였다. 보통 교황은 대신전을 지키고 황제가 전장에 나서지만, 지금은 할아버지가 몸이 안 좋으니 아빠가 나가겠지.
이 시기에 아빠가 다치는 일이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딸로서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기억 속 우리 아빠는 많이 아팠었는데…….
“헉, 저것 봐. 마수다.”
‘마수?’
파리엘의 말에 흠칫 고개를 돌리자, 연무장에서 한창 검술 훈련을 준비 중인 기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5열 종대를 만들고 있었고, 맨 앞에는 통나무가 세워져 있었다. 통나무 가운데에 철사로 묶여서 바둥거리는 검은 식물이 보였다.
“……머야, 저게?”
“하급마수, 야테베오예요.”
캬악, 가래 끊는 소리를 내며 쉴 새 없이 줄기를 흔드는 모습이 괴기했다. 꽃부리 안에는 암술과 수술 대신 뾰족한 이빨이 딱딱거렸다. 하지만 성기사들은 놀라는 기색 없이 질서 있는 동작으로 앞으로 나섰다. 흰 제복을 입은 성기사들과 흉측한 모양의 검은 꽃이 미묘한 대비를 이루었다. 성기사들은 통나무 앞에 서서, 검무를 추듯 유려한 동작으로 가로 베기와 세로 베기를 연달아 선보였다. 하지만 칼날은 통나무를 스치지도 않았고, 꽃도 고함을 지를 뿐 멀쩡한 모습이었다.
“안 주것는데.”
“죽이면 안 돼, 이브.”
내 허무한 목소리에 파리엘이 못 말린다는 듯 웃었다.
“만전의 상태로 전쟁에 나가기 위해서, 앞으로 6개월은 신성을 쓰는 게 금기야. 그래서 대련 전에 저런 준비 운동을 해. 성기사들의 신성은 마수에게 아주 치명적이라서, 조금이라도 쓰면 바로 티가 나거든.”
“아.”
상급 사제의 신성력이 가득 차는 데에 평균 반년이 걸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저런 의식을 치르는구나. 신성력이 낭비되기도 하고, 전쟁에 나서야 하는데 대련 중에 누군가 다쳐도 문제가 될 것이다.
그때 한 기사가 유독 뻣뻣한 동작으로 통나무 앞에 나왔다. 눈에 띄게 긴장한 모습이 남 같지 않아서 시선이 갔다.
하지만 그의 가로 베기와 세로 베기 동작은 다른 기사들과 다르지 않았다. 검날은 통나무에서 한참 떨어져 있었다. 단지 검선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났을 뿐이다.
“키에에에!”
그런데 꽃의 씨방 부분이 갑자기 번쩍 빛나더니, 마수가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새하얀 빛과 함께 마수의 꽃잎과 줄기가 갈기갈기 찢어지더니 이내 먼지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헉.”
성기사는 놀라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긴장한 나머지 실수로 검에 신성을 실어버린 것이다.
기사단장이 기사의 이름을 외치며 엄격한 얼굴로 다가왔고, 기사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꾸짖음을 들었다. 전 기사단의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우, 우와.”
하지만 건물 그늘에 서 있던 두 어린이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멋있다……!”
“저게 진짜 성기사의 권능이군요.”
그러곤 어쩐지 으스대는 느낌으로 나를 돌아봤다.
“치유 신관들도 멋있지만, 성기사도 멋있지?”
“으, 응.”
녀석들은 파괴의 권능을 갖고 있어서인지 성기사에게 무척 동질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들의 생각과 달리, 난 치유 신관조차 아니었지만.
“예하드의 황실 기사단에는 이런 구호가 있대요.”
아실이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어둠에 부딪힐 때, 빛은 가장 강력하다.’”
“아실, 멋있는데?”
파리엘이 즐거워하며 아실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긴, 실제로 상급 성기사 한 명이 상급 마수 다섯을 상대한다잖아? 단순 계산 만으로 5배 차이인데, 상대가 안 되지.”
간단한 연습이 끝나자, 본격적인 대련이 시작됐다. 신성을 쓰는 게 금지되었음에도 최정예 기사단의 대련은 수준 높고 화려했다. 대련을 구경하는 두 어린이의 눈이 꿈과 동경으로 반짝거렸다.
“어둠에 부딪힐 때, 빛은 가장 강력하다…….”
나는 혼자 황실 기사단의 구호를 조용히 중얼거렸다.
할스테리어에서는 이미 이델리의 이송을 요청한 상태였다. 그들의 소중한 대사제를 죽이려 한 범인이니 이가 갈리겠지. 상호존중법칙으로 묶인 이상 제국이 그 요청을 거절할 명분은 없다. 그러니 예정대로라면 연회가 끝난 후 이델리는 할스테리어로 이송되어 사형 선고를 받을 것이다.
엄마와 마녀들이 왜 그녀를 구하려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들은 성공한다는 것이다. 마수보다 다섯 배 강하다는 성기사들의 방어를 뚫고.
***
연회의 아침이 밝았다.
본격적인 연회의 시작은 저녁인데도, 이른 낮부터 황성 앞에 각 가문의 문양이 새겨진 마차들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냈다.
연합국의 통일을 기념하여 황성에서 개최되는 연회인 만큼, 초대객들의 출신도 가지각색이었다. 가장 많은 것은 수도의 귀족들이었지만, 검은 피부에 은빛 머리칼을 자랑하는 남부의 귀족들과 제국의 따뜻한 날씨에도 겉옷을 벗지 않으며 버티다가 현기증을 일으키는 북부의 귀족들도 드문드문 보였다. 접객원들은 바쁘게 뛰어다니며 귀빈들에게 길을 안내하고 손님들의 명단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발길을 멈추게 하는 사람들은 있었다.
황성의 길이 복잡해서 큰일이었다며 오자마자 화를 내는 사람,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들어오는 사람, 접객원에게 썰렁한 농담을 던지는 사람…….
그리고 딱히 유별난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등장만으로 눈길을 끄는 사람.
유리로 만든 듯 위태로운 구두가 마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사람들은 저마다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돌렸다. 누군가는 저도 모르게 탄식을 흘려보냈다.
“세상에…….”
굽이치는 분홍색 머리칼, 희소한 보석처럼 반짝이는 두 눈동자, 흠 없이 매끈한 우윳빛 피부. 그리고 그와 더없이 잘 어울리는 풍성한 페티코트, 프릴이 잔뜩 달린 머리 장식, 눈 색에 맞춘 큼직한 핑크 다이아몬드 귀걸이, 목걸이.
신전의 법도에 맞지 않게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몇몇 귀족들 가운데서도, 그녀는 유독 눈에 띄었다. 그러나 단지 값비싼 장신구 때문은 아니었다. 어떤 보석도 빛을 잃게 만드는 아름다운 외모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분위기. 그녀의 분위기가.
분명 앳된 외모에 화사한 차림인데, 어쩐지 함부로 말을 붙이기 힘들 정도로 위험한 느낌이 있었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마다 귀족들의 숙덕거림이 따라붙었다.
“어느 가문의 아가씨일까요?”
“옷차림을 보면, 북부에서 오신 분 같은데.”
“그러고 보니 북쪽 지역 할스테리어에서 유명하신 분이 하나 있죠.”
한 귀부인의 말에, 사람들이 작게 감탄했다.
“하지만 그 아가씨는 몸이 아주 약해서, 이런 곳 까지 못 오실 텐데…….”
북부에서 온 것은 맞는지, 그녀는 예하드의 더운 날씨가 적응이 안 된다는 듯 이마를 짚으며 살짝 비틀거렸다. 작고 마른 레이디의 위태로운 모습에 신사들은 초조하게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녀가 호위 기사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어떻게든 접객원에게 도착하자, 일순 주위가 조용해졌다.
그녀가 붉은 입술을 열어 새의 지저귐처럼 고운 목소리로 말했다.
“엘리자베스 위터, 할스테리어에서 왔어요.”
그녀의 발치를 따라, 인간들은 보지 못하는 마녀의 검은 힘이 훅하고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