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39)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39)화(39/207)
“아잉 성하!”
잠옷 바람으로 후다닥 쫓아가자 성문을 나서려던 아빠가 놀란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이브엔나.”
아빠가 손을 뻗자 나는 마음 놓고 몸을 날렸다. 역시나 아빠는 안정적으로 나를 안아 들었다.
연미복을 입은 아빠는 가만히 서 있으면 하나의 예술품처럼 보일 듯한 모습이었다. 평소보다 한층 반짝거리는 얼굴로 내 안색을 살피던 아빠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더 자질 않고.”
“…….”
곧 저녁 먹을 시간인데요.
밤에 잠을 설쳤더니 낮잠을 너무 자버렸다. 아기가 되니 모두가 내 잠 시간에 너그러워진 것 같다. 자고 일어나니 옷도 잠옷으로 갈아 입혀져 있고 말이지.
나는 눈을 도르르 굴리다가 말했다.
“짜, 가따오세여.”
“고맙구나.”
내 말에 아빠가 부드럽게 웃었다. 조형물같이 수려한 얼굴 위로 표정이 생기자 차가운 인상이 흐려져 다정한 성품이 드러났다.
오늘 연회는 교황이 아니라 황자로서 참석하는 것이라 그런지 아빠는 검은 정장을 입으셨는데, 신성한 외모에 미묘하게 세속적인 느낌이 섞여서 평소보다는 조금 다가가기 쉬운 느낌이 들었다. 엄마만이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보일 외견이라 걱정이 컸다. 엄마와 인연을 잘 만들고 오셔야 할 텐데…….
“안녕, 이브.”
한창 걱정에 빠져 있을 때, 아래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삐라!”
유채꽃처럼 샛노란 드레스를 입은 비올라 고모가 생긋 웃으며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팔짱을 끼고 선 풋풋한 파트너는…….
‘고모부다.’
콧잔등에 주근깨가 난, 순진한 얼굴의 소년이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보송보송한 흰 피부와 가는 팔목이 누가 봐도 학자상이다. 미래에 내 고모부가 될, 일랑 페트로였다.
한동안 귀여운 쌍방 짝사랑으로 사람 마음 간지럽히더니 어느새 연회의 파트너가 될 정도로 관계가 진척되었나 보다. 미래에도 과거에도 함께인 두 사람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운명의 상대란 게 정말 있나 봐.’
그렇게 생각하니 엄마가 아닌 사람들이 매력적인 아빠에게 눈독 들일 걸 걱정한 것도 바보같이 느껴졌다. 우리 부모님도 마녀와 성자라는 한계를 넘어서 세기의 사랑을 하신 분들인걸? 아빠가 얼마나 엄마를 사랑했는지는 딸인 내가 제일 잘 알았다. 내가 걱정해야 할 것은 그런 쓸데없는 게 아니라 부모님의 안전과 건강이었다.
아빠는 고작 30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으니까.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
생각을 정리한 나는 결연히 고개를 들었다.
“조시미 가따오시요.”
“그래.”
“약쏘.”
내가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말했다. 아빠는 잠깐 얼떨떨한 표정으로 내 새끼손가락을 내려보더니 이내 손가락을 걸어줬다.
“몸을 소주히 하셔야 해여.”
“…….”
“그게 쩨 주요해.”
딸의 효심 어린 걱정에, 올해로 21살이 되어 완연한 청년의 태가 나는 아빠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별소리를 다 듣는구나.”
그는 내 머리를 쓰다듬은 뒤 유모에게 인사를 하고 등을 돌렸다. 마차에 타러 가는 길에, 한참 쭈뼛거리던 꼬마 일랑 고모부가 비올라 고모에게 팔을 뻗었다. 비올라 고모는 꺄르륵 웃으며 고모부의 팔에 손을 올렸다.
감청색 턱시도를 입은 고모부와 노란 드레스를 입은 고모는 가을 하늘에 걸린 햇님처럼 싱그럽고 사랑스러웠다. 보는 사람까지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어린 커플의 모습 위로, 문득 낭자한 혈흔과 찢어지는 비명이 덧씌워졌다.
‘정신 차려, 이브엔나!’
“이브!”
때마침 고모의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고개를 들자 마차 앞에서 고모가 활짝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다녀올게!”
“으응, 다녀아!”
다급히 손을 흔들며 마주 웃어주자, 두 사람도 아빠를 따라 마차에 올라탔다. 서쪽 하늘에 걸린 오렌지빛 태양을 뒤로하고 본성으로 출발하는 마차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 묘하게 가슴 한쪽이 일렁거렸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넬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세 사람이 목숨을 잃었던 순간에, 나는 무기력하게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는 너무 어려서 죽음을 애도하는 것조차 할 수 없었지.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우모, 나 졸려.”
“우리 아기님, 방금 일어났는데 또 졸려요?”
유모는 못 말린다는 듯 웃고는 나를 안고 방으로 돌아갔다. “오늘 밤에도 잠을 설치셨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잠을 설치진 않는데……. 생일 때 일 때문인가. 내 이미지가 너무 예민하고 신경이 쇠약한 아이로 자리잡혀 버린 것 같다. 소피아의 천진함에서 한참은 멀어져 버린 느낌이지만, 지금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침대에 누워서 자는 척하며 타이밍을 쟀다. 조금씩 옆으로 굴러서 침대 아래쪽으로 내려가다가, 유모가 다른 곳을 보는 걸 확인하고 밑으로 뛰어내렸다.
“음?”
발소리를 듣고 유모가 이쪽을 돌아봤을 땐, 침대 위에는 이미 내가 없었다.
대신 내 모습을 한 토순이가 곤히 자고 있었다. 나는 침대 아래의 사각지대에 쪼그려 앉아 입을 틀어막았다.
“후후, 몸부림을 치셨나.”
유모가 침대를 보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토순이에게 이불 덮어줄 틈도 없어서 그냥 내려왔기 때문인 것 같았다.
잠깐 눈치를 살피던 나는, 최대한 소리 없이 통로 입구가 있는 곳으로 기어갔다. 간신히 주의를 끌지 않고 통로 안으로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
“휴.”
바닥에 주르륵 미끄러져 신성력을 불어넣자, 비밀통로 벽의 성물이 훅하고 통로를 밝혔다. 이제야 현실감이 밀려오는 기분이다.
‘이 통로 끝으로 가면, 엄마를 본다.’
태양궁에서 본성까지는 마차로도 7~8분이 걸리는 거리다. 이 작은 몸으로는 거기까지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오늘을 위해 근 6개월간 열심히 축적해온 신성력과 마력이 있었다.
아빠가 30세의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면, 엄마가 돌아가신 나이는 고작 20대였다.
지금의 나와 큰 차이도 안 나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등져야 했던 엄마. 어리고 가엾었던.
만나본 기억도 없고 초상화 하나 남아 있지 않아서, 상상 속에서도 수십 번 모습을 바꾸었었는데.
‘진짜 엄마를 만나는 거야.’
엄마를 만나서, 인사를 건네야지.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아빠가 반했던 엄마는, 대체 어떤 분이실까?’
오늘이야말로 답 없던 질문의 해답을 보게 되겠지.
나는 즐거운 꿈에 부풀어 엄마에게 향하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
“아인츠베른 데 라인하르트, 신성 예하드 제국의 2황자, 첫 번째 대신전의 교황 성하께서 입장하십니다!”
수식언마저 길고 화려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자 영원히 커지기만 할 것 같던 연회의 말소리도 멎었다.
눈을 빛내며 계단 위를 바라보던 사람들은 저마다 헉하고 숨을 들이켜거나 더운 한숨을 내쉬거나 둘 중 하나였다.
공통점은, 그와 오랫동안 눈을 마주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거였다.
단순히 그를 에워싼 귀족들 앞에서도 거짓 미소 한 번 띄워주지 않는 요령 없는 성정이나 차가운 인상 때문은 아니었다.
‘감히’ 눈을 못 마주치겠다. 세간에선 그렇게 평가하곤 했다. 성자 특유의 타고난 기백과 신성. 그것들이 아인츠베른과 일개 신자들 사이에 선명한 선을 긋고 있었다. 그 감정의 정체가 경외든 숭배든 그를 고립시키고 있다는 것만은 명백했다.
아인츠베른은 익숙한 경계선에 새삼스레 언짢아하기보다는, 최근에 생겨난 예외를 떠올렸다.
이브엔나.
소심한 성격 탓에 다른 사람들과는 눈도 잘 못 마주치는 아이인데 자신에게만은 이상하리만큼 거리낌이 없었다. 단순히 어렸을 때부터 봐서인지, 그 아이 또한 성녀여서 저를 무서워하지 않는지는 모르겠지만. 영역 안에 들어간 사람이 된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그 아이의 경계선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것만으로, 사람들이 제게 긋는 모든 경계선이 괜찮게 느껴질 만큼.
아이들은 특히나 아인츠베른을 무서워했는데. 그래서인지 낯가림 심한 이브엔나가 퍼붓는 애정이 더욱 각별했다. 방금도 연회에 간다고 하자, 자다가 뛰쳐나와서는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한다는 말이…….
‘조시미 가따오시요.’
“흡.”
이런, 이브엔나의 마지막 인사를 떠올렸다가 채신머리없이 웃음을 터뜨릴뻔했다. 아인츠베른은 황급히 손으로 입술을 틀어막고 감정을 추슬렀다.
한편, 수려한 외모의 젊은 교황이 연회에 등장하자마자 얼굴을 가리고 어깨를 떠는 모습을 목격한 손님들은 바짝 긴장했다.
“저, 전하께서 왜 저러실까요?”
“그, 글쎄요. 심기가 불편해지실 만한 부분이라도 있으셨는지.”
“저희가 그새 무슨 율법이라도 어겨버린 건 아니겠죠?”
귀족들 사이로 겁에 질린 수군거림이 퍼졌다. 한 발짝 뒤에 입장한 비올라는 상황을 눈치채고 오라비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좀 웃어, 오빠.”
“…….”
아인츠베른은 억울한 눈으로 비올라를 돌아봤다. 오히려 웃은 거였는데…….
“아인 전하!”
그때, 연회에서 가장 화려한 차림의 남자가 그들을 불렀다. 반 묶음으로 늘어뜨린 붉은 장발을 붉은 코트와 함께 휘날리며 걸어오는 사람. 바람도 불지 않는 실내에서 어떻게 모든 것을 휘날리며 걸을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린드벨.”
친우를 만난 아인츠베른의 얼굴이 미세하게 풀어졌다.
“황녀 전하는 못 본 새 훌쩍 성숙해지셨군요.”
“고마워요, 린드벨 오빠… 어제도 만났지만.”
린드벨 공작은 유려한 동작으로 비올라의 손등에 입을 맞추고, 그녀의 파트너인 일랑 공자와도 인사를 나눈 후 다시 아인을 돌아봤다.
“왜 이제야 왔어? 네가 없는 동안 엄청난 일들이 있었다고.”
“무슨?”
“놀라지 마, 이 연회에 누가 참석한 줄 알아?”
린드벨의 수선스러운 말투에 아인츠베른이 헛웃음을 쳤다.
“왜, 마녀라도 참석했나?”
“그와 양극단에 선 인물이라고 할 수 있지.”
“우리 이브엔나는 태양궁에 있는데.”
“농담 말고, 저쪽을 좀 봐.”
아인츠베른의 눈은 린드벨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돌아갔다.
이상하게 눈에 익은 이들이 많이 몰려 있다고 생각했다. 사교계와 담을 쌓은 그가 봐도 알 정도로 저명하고 유망한 귀족들의 중심에, 당연하다는 듯 그녀가 있었다.
“엘리자베스 위터. 명망 없는 남작가의 여식인데도 불구하고, 단지 소문만으로 유명해진 사람이지.”
유명하다는 말처럼, 한 몸에 주목과 관심을 받는 게 몹시도 익숙해 보이는 여자였다. 묘하게 눈에 익은 분홍색 눈동자가 보석처럼 반짝였다. 사람들이 모두 긴장한 와중에도 생글생글 웃으며 일행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모든 게 흥미로운 듯한 표정으로, 사실은 별달리 눈에 담는 것도 없이.
그때, 문득 그녀가 아인츠베른을 돌아봤다.
정면으로 보자 매우 유약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허리까지 오는 분홍색 봄꽃 같은 머리칼은 장식적이었고 새하얀 피부는 한 번도 햇볕에 그을린 적 없어 보였다. 드레스 위로 드러난 어깨선만으로도 가는 뼈대가 드러났다. 그래서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에 아인츠베른은, 그녀가 곧 눈을 피할 것이라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랬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10초, 20초, 30초, 1분. 초침이 몇 바퀴를 돌았는지도 몰랐다. 사람들이 소란스럽게 움직이며 이야기를 나누는 연회의 한가운데, 몇 미터는 떨어진 거리에서, 그들은 한참 동안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그때 문득, 엘리자베스가 입 모양만으로 말했다.
‘이리로, 올래요?’
살짝 벌어진 분홍색 입술이 질문을 마치고 미소를 짓는 순간, 아인츠베른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에야 깨달았다.
이번에는 자신이 먼저 시선을 피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