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42)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42)화(42/207)
위층은 상대적으로 사람이 적어 조용했다. 아인츠베른은 테라스로 나가 문을 밀었다. 문은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었으나 상단에 걸린 자주색 커튼이 두 공간을 차단해주었다. 금장 장식이 달린 고풍스러운 테라스 문을 완전히 닫자, 실내의 소음이 훌쩍 멀어졌다.
아인츠베른은 엘리자베스를 내려놓고 한 걸음 물러났다.
“정말 감사합니다…….”
엘리자베스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그러곤 등을 돌려 난간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흐린 밤하늘에는 창백한 초승달만 외롭게 걸려 있었다.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 것 같은 달과 바람에 흐트러지는 엘리자베스의 벚꽃색 머리칼이 그림처럼 잘 어울렸다.
그녀는 분명 생명력이 넘치는 사람이었는데, 왜일까.
잠깐만 눈을 돌려도 미련 없이 난간 아래로 몸을 던져버릴 것 같다는 이상한 불안이 들었다.
“좀 낫습니까?”
아인츠베른이 먼저 침묵을 깬 것은 그 때문이었다.
제가 적막을 버거워하는 부류의 인간은 아니었을 텐데.
“그게…….”
아인츠베른이 한 걸음 다가가자, 엘리자베스가 화들짝 놀라 얼굴을 가렸다.
“보지 마세요. 추해서 놀라실 거예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떻게 확신하세요? 보지도 않았으면서.”
“맹세합니다. 놀라지 않겠다고.”
“…….”
엘리자베스의 어깨가 움찔했다.
아인츠베른이 조용히 기다리자, 그녀가 쭈뼛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머리카락이 바람과 함께 어깨 뒤로 넘어가고 수건 위로 얼굴이 빼꼼히 모습을 보였다. 아인츠베른은 저도 모르게 스르르 미소를 지었다.
“……정말 안 놀라시는 거죠?”
마침내 드러난 그녀의 얼굴에, 그렇게 걱정하던 두드러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다만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물들인 홍조가 있을 뿐이었다.
새하얗던 피부가 지금은 분홍색 머리칼과 눈동자만큼이나 울긋불긋했다.
건장한 기사들을 앞에 두고도 당당히 제 의견을 설파하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엘리자베스가 의아하게 고개를 기울이자, 아인츠베른은 헛기침하며 얼굴에 떠오른 미소를 지워냈다.
“두드러기가 올라왔나요?”
“전혀.”
“거짓말, 저 달래주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
“저는 거짓말 따위 하지 않습니다.”
“……교황 성하께서 하시는 말씀이니 믿을 수밖에 없네요.”
엘리자베스는 긴장이 풀어진 듯 푸스스 웃었다.
“금방 가라앉았나 봐요, 다행이다……. 전하께서 도와주신 덕분이에요.”
“별달리 한 일은 없습니다만.”
아인츠베른은 머쓱하게 이마를 쓸어올리며 말했다.
“고작 그 정도 일로 엘리자베스가 추하게 보이지도 않았을 겁니다.”
“린지.”
아인츠베른이 의아하게 고개를 들자, 엘리자베스가 부드럽게 웃었다.
“린지라고 불러주세요.”
“……린지.”
“좋네요, 전하와 친해진 기분 들고.”
엘리자베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 옆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다, 아인츠베른이 문득 말했다.
“저도 아인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제가 감히, 전하를요?”
“네.”
아인츠베른이 천천히 미소 지었다.
“솔직히 말해서…… 누군가와 이렇게 대화가 잘 통한 건 처음입니다.”
“……그랬나요?”
“네, 사실 당신이 귀족들 사이에서 나샤의 이름을 꺼냈을 때부터 놀랐습니다.”
아인츠베른은 테라스 난간에 팔을 걸치며 중얼거렸다.
“더는 누구도 신성연합국의 목적을 거론하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전하는 그렇지 않으셨군요.”
“심지를 잃은 초는 타오를 수 없는 법입니다.”
엘리자베스는 까만 정원을 돌아보며 느릿느릿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맞추었다.
“하지만 그 땅에 있는 마녀들은 어떻게 하죠? 함부로 나샤민을 들였다간, 무시무시한 마녀들이 제국에 들이닥칠 수도 있잖아요.”
그때 두 사람 사이로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엘리자베스의 반쯤 젖은 머리카락이 앞으로 넘어와 그녀의 얼굴을 가렸다. 키 큰 나무들이 뒤흔들리며 정원에 기이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글쎄, 그 부분도 문제긴 한데…….”
갑자기 거세진 찬바람에, 아인츠베른은 겉옷을 벗어 엘리자베스의 어깨 위에 걸쳐주었다.
“괜찮을 겁니다. 제국에는 강한 기사들이 많이 있으니까.”
아인츠베른은 살짝 허리를 숙여 눈높이를 맞추고 말했다.
겉옷으로 바람을 가리자, 머리칼에 잠깐 가리었던 엘리자베스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여느 때처럼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아인이 가장 강하고 말이죠?”
“……그건.”
“그래도 방심하시면 안 돼요? 그러다 다치시기라도 하면 모두가 슬퍼할 테니까.”
엘리자베스의 진지한 당부에 아인츠베른은 잠깐 말을 잃었다. 잠깐의 침묵 후에,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무슨 걱정을.”
쨍그랑!
그때, 유리문 안쪽에서 작은 소음이 들려왔다.
아인츠베른이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의 뺨을 붙잡는 부드러운 손이 있었다.
한껏 까치발을 든 엘리자베스가 그의 목을 잡아당겼다. 얼마든지 뿌리칠 수 있는 연약한 힘인데도, 아인츠베른은 속절없이 끌려갔다.
입술 위로 말캉한 것이 닿아왔다. 아인츠베른의 청회색 눈동자가 커다랗게 흔들렸다. 그의 시야에,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눈을 꼭 감고 있는 엘리자베스가 보였다.
아인츠베른의 속눈썹이 잘게 떨렸다. 그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곧 그녀를 따라 눈을 감았다.
그리고 엘리자베스가 눈을 떴다.
그녀는 아인츠베른의 목덜미를 감싸고 있던 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러자 허공에서 검은 마력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새까맣게 모인 마력 사이로 검녹색 단도가 나타났다.
엘리자베스가 검지 끝을 둥글게 돌리자, 그에 호응하듯 허공에 뜬 단도가 아인츠베른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 예리하게 빛나는 칼날의 끝이 펄떡이는 동맥을 노렸다.
“읏!”
그때, 아인츠베른의 손이 엘리자베스를 밀쳤다.
갑작스러운 반격에 엘리자베스의 입에서 얕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완전히 첫 키스에 빠진 것 같았던 어린 교황은 어느새 날카로운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제 목에 닿기 직전에 멈춰선 검녹색 단도를 손에 쥔 채.
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게 무슨 짓이지?”
“정말 실망스럽네요, 전하.”
엘리자베스가 조롱하듯 답하며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중지와 엄지를 가볍게 퉁기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내가 방심하지 말라고 했잖아.”
아인츠베른이 아차 하며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의 손에 잡힌 단도가 커다란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나는 얼얼한 귀를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연회장에 설치해 둔 염탐용 귀들은 별 효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1층부터 3층까지 고루고루 몇 개씩이나 설치해 놨었는데.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커다란 소음, 아니 연주 때문에 말소리가 많이 묻혔다.
아까까지는 어떻게든 들어보려고 귀를 기울여 봤지만, 갑자기 사람들이 소리를 마구 질러대는 바람에 고막이 나갈 뻔했다.
소란통에 귀 하나가 밟혀 파괴된 뒤로는 도저히 염탐을 지속할 수가 없어졌다. 나는 아직도 충격에 욱신거리는 귀를 감싸고 통로를 타박타박 걸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히유우…….”
이따금 아빠의 이름은 들렸지만, ‘린제나 그레인저’라는 이름은 누구에게서도 들을 수 없었다.
하긴, 마녀인 엄마가 당당히 연회에 참석할 리는 없겠지.
그럼 아빠는 어떻게 연회에서 엄마를 만난 거지? 정원 같은 데서 우연히 마주친 걸까?
가끔 들린 사람들의 대화로 비춰봤을 때, 아빠는 외간 여자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는 것 같았다.
엄마가 속상할 일이 없어야 할 텐데.
두 분이 제대로 못 만나면 어쩌지…….
나는 잠깐 근심에 빠졌다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냐, 비올라 고모랑 일랑 고모부도 미래에서처럼 만났으니까.’
수줍게 에스코트를 시도하던 고모부와 잔뜩 들떠 있던 고모의 얼굴을 떠올리자 자연스레 웃음이 나왔다.
‘우리 엄마 아빠의 첫 만남도 분명 그랬겠지?’
나는 풋풋하고도 가슴 떨리는 두 분의 첫 만남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설레는, 귀여운 광경이었다. 직접 두 눈으로 보지 못한다는 게 못내 아쉬워질 정도로.
‘나중에 엄마 아빠한테 이야기해달라고 해야지!’
정말 궁금했다. 신분의 차이마저 뛰어넘는 사랑이란, 대체 어떤 걸까.
아빠 말로는 두 분이 첫눈에 운명을 느꼈다고 했다.
첫눈에 반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처음부터 불꽃이 튀었을까? 심장이 세차게 뛰었을까?
분명 다른 어떤 연인들의 만남보다 특별했을 것이다.
만약 일이 잘 풀린다면, 두 분에게 내 정체를 밝힐 수도 있었다.
운명적 사랑을 시작한 부모님께 내가 딸이라는 사실을 말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부푸는 상상에 나는 통로를 가로지르며 혼자 시시덕거렸다.
‘빨리 엄마 아빠를 엄마 아빠라고 부를 수 있게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