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43)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43)화(43/207)
오후 내내 날씨가 흐리더니, 검은 먹구름이 기어코 가느다란 손톱달마저 집어삼켜 버렸다.
달빛마저 사라진 밤하늘. 테라스를 비추는 것은 자주색 커튼 너머로 들어오는 희미한 불빛이 전부였다. 어슴푸레 보이는 시야마저 매캐한 연기로 희뿌옜다. 아인츠베른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등으로 눈가를 쓸었다. 화상을 입은 손바닥을 따라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큰 소리에 비해서 폭발의 범위는 작았다. 규모를 좁히는 대신 화력을 대폭 강화한 폭탄이었다. 폭발이 일어나는 0.1초 사이, 반사적으로 권능을 발휘해 몸을 보호했음에도 일정 부분의 상처는 막지 못했을 정도니까. 아마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시체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단도로 공격하고 실패하면 폭발하게 한다, 좋은 전략이었다. 하지만 그조차 아인츠베른에게 치명상을 입히진 못했다.
그러나 폭발과 함께, 맹독이 그를 덮쳤다.
귀족 영애를 가장해 경계심을 낮춘 뒤 급습. 단도를 막으면 폭발하고, 권능으로 물리 공격을 빠르게 방어하면 독이 체내에 침투해 온다.
‘세 발짝 앞까지 내다본 건가.’
게다가 신성력에 대한 이해도도 꽤 높았다. 물리적 공격과 화학적 공격의 방어 방식이 다르다는 건 성기사들도 잘 모르는 사실인데.
아인츠베른은 비틀거리며 손으로 난간을 붙잡았다. 시야가 흐릿하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독과 약에는 나름대로 면역이 있었는데, 이 독은 꽤나 지독했다.
“버티지 말고 얌전히 잠이나 자.”
새가 노래하듯 고운 목소리, 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들어보니 꽤 딱딱하고 낮은 목소리다. 온화하던 존댓말도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남은 것은 불한당처럼 거들먹거리는 말투였다.
“A급 대형 마수도 그거 한 방울이면 열흘 동안 못 일어나거든. 넌 원액을 직방으로 맞았으니…… 끽하면 죽을지도? 성자래 봐야, 인간이잖아.”
시야에 걸리는 검은 로브 자락에 고개를 들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까맣게 치장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휘날리는 검은 머리칼, 악마의 상징인 오망성이 그려진 모자, 치렁치렁한 로브까지.
단 하나 색채가 남은 분홍색 눈동자만이 조롱하듯 아인츠베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인츠베른은 흐려지려는 눈을 억지로 부릅떴다.
“……마녀.”
작게 중얼거리자, 장난스러운 휘파람이 돌아왔다.
“맞췄다고 상이라도 줘야 하나?”
“엘리자베스를, 어떻게 했지?”
“이 상황에서 묻고 싶은 게 그거뿐이야?”
그녀는 낮게 조소하며 말했다.
“잘 들어. 네가 오늘 종일 함께 있었던 미인은 대마법사이신 이 몸, 린제나 그레인저다. 위터 남작 영애는, 글쎄. 아마 할스테리어의 자택에서 요양하고 계시겠지.”
그때, 유리문 안쪽에서 무시할 수 없는 소음이 들썩거렸다. 아인츠베른의 시선이 유리문을 향했다.
“무슨 일을… 꾸미는 거지?”
“엘리자베스, 그다음에는 연회장이야? 맹독에 중독된 자기 몸도 좀 걱정해주지 그래. 어차피 다른 곳은 가보지도 못할 텐데.”
린제나가 질린다는 듯 말하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녀의 여유로운 태도에는 이미 승자의 오만이 깔려 있었다.
“왜 확신하는지 모르겠군.”
그래서 아인츠베른이 천천히 발을 내디뎠을 때, 린제나는 기함하고 말았다.
“……어떻게 움직이는 거야?”
그녀는 주머니에서 꺼내려던 약병을 도로 집어넣고 손을 들었다.
한 방울이면 대형 마수도 잠재울 수 있는 독을 정제해서 한가득 부었다. 귀한 독을 아낌없이 쏟은 것은 오늘의 계획에서 교황을 배제하는 게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었다. 지하 감옥에 도달할 때까지, 교황의 발을 묶어둬야 한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건 자신뿐이었으니까.
교황이 중독되어 죽어버릴 위험이 있기에, 잠재우고 나면 쓰려고 해독제까지 챙겨온 참이었다.
그런데 죽기는커녕 쓰러지지도 않을 줄은 몰랐다.
“괴물인가……?”
린제나의 경악 속에서, 아인츠베른이 양손을 기도하듯 포갰다. 천천히 벌어지는 손 사이로 금색 빛이 번쩍거렸다.
린제나는 당황해서 방어 마법을 시전했다. 마력의 움직임에 따라 크고 작은 마법진 다섯 개가 그녀의 몸 사방에서 검게 빛났다.
쿵!
얼굴 옆으로 돌풍이 불었다고 생각했다.
린제나의 잘린 머리칼 몇 가닥이 허공에 흩날렸다.
한순간, 단 한 순간에 다섯 개의 방어 마법이 파괴되어버렸다.
돌아보지 않아도 등 뒤의 모습을 알 수 있었다. 돌이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렸으니까.
그녀의 옆으로 날아간 검기가 벽면에 거대한 늑대가 할퀴고 간 것 같은 흉측한 흠집을 만들어냈다.
린제나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읏…….”
불길한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아인츠베른의 손에 금색으로 빛나는 검이 들려 있었다.
‘신검.’
특별한 과정으로 만들어진 칼에 파괴의 권능을 실어 넣으면 검신이 하얀색으로 빛난다. 사람들은 이를 ‘성검’이라고 부르며 추앙했다.
그러나 개중 소수의 성기사들은 오로지 신성력만을 응집하여 ‘신검’을 만들 수 있었다. 이 신검의 사용자들을, 사람들은 성 에퀴테스라고 불렀다.
살벌한 악명을 소문으로나 들었지,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다. 얼마나 신성력이 넘쳐나면 저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단 말인가. 마주하는 것만으로 등골이 섬찟했다.
스치기만 해도 방어 마법이 죄다 깨질 정도라니, 정통으로 맞았다면 뼈도 못 추렸을 것이다.
“……일부러 빗나가게 한 거야?”
“죽일 마음은 없다.”
잿빛으로 가라앉은 눈이 린제나를 노려봤다.
“순순히 투항해라. 제국법대로 다뤄줄 테니.”
각 나라 중에서 제국의 마녀법이 가장 온화했다. 그러니 아인츠베른에게는 나름의 자비를 발휘한 제안이었으나, 린제나에게는 도발이 되었다.
“죽는 방법은 아는데.”
그녀의 손길에 따라 검은 기운이 일렁거렸다. 뭉친 마력이 또다시 한 번에 몇 개의 마법진을 교차해서 만들어냈다.
“투항하는 방법은 몰라.”
마법진이 발동되며 검은빛이 번쩍했다. 아인츠베른이 고개를 돌리자, 사방에서 검녹색 단검 수십 개가 그를 노리며 쇄도했다.
아인츠베른은 곧바로 신성력을 온몸에 둘렀다. 그와 동시에, 날아오는 수십 개의 단검을 향해 검기를 날렸다.
날아간 검기들이 단검과 충돌했다. 마법과 권능이 부딪히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상반되는 두 개의 힘이 서로를 무효화시키며 연소했다. 그러나 개중 절반은 단검을 통과해서 정원 바깥으로 날아가 버렸다.
아인츠베른의 눈이 가늘어졌다.
‘환상으로 만들어낸 가짜가 대부분이군.’
검기와 부딪힌 단검조차 폭발하는 것은 없었다. 아까와 같이 독을 지닌 폭탄일 것이라고 생각해 권능을 잔뜩 썼는데. 알고 보니 힘을 소모하게 만들려는 비겁한 수작이었다.
6개월 후에 성전에 나가야 하는 아인츠베른에게, 지금은 신성 사용 금지 기간이었다. 금기를 어긴 것도 처음인데, 그조차 무의미하게 되어버렸다는 생각에 울컥 화가 치밀었다.
“잔재주 그만 부리고 정정당당하게 겨뤄라.”
“그 잔재주가 주특기일 거라곤 생각 못 하니?”
린제나 또한 자존심이 상해서 반박했다.
공방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린제나는 유리문을 열고 라일라가 들어오는 환상 같은 것을 만들어내 아인츠베른을 교란했다. 그리고 그의 틈을 노려 독을 바른 무기들로 공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아인츠베른은 환상 마법에 속아 넘어간 상태에서도 권능으로 공격을 방어했다. 설사 맞더라도 곧 털고 일어나 버렸다. 게다가 그나마 먹혀들던 환상 마법조차 패턴을 천천히 파악하고 있었다.
초조해진 린제나는 마지막으로 연기탄을 흩뿌렸다. 독이 아인츠베른을 쓰러뜨리지는 못해도 신체를 부자유스럽게 만드는 역할 정도는 해내고 있었다. 그 점을 이용해서, 린제나는 마지막 수단을 썼다.
연기탄이 시야를 가린 사이 그녀가 난간 아래로 몸을 던진 것이다.
싸늘한 바람이 린제나의 피부를 휘감았다. 그녀는 충격에 대비해 질끈 눈을 감았다.
“윽!”
그러나 예상했던 충격은 없었다.
의아해진 린제나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리고 시야를 채운 것은, 그녀의 손을 붙잡고 있는 아인츠베른이었다.
아인츠베른은 린제나가 처음 그의 목을 노렸을 때보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방금까지 입을 맞추던 파트너에게 칼을 맞을 뻔하고도 냉정을 유지하기에, 어지간히 감정의 고조가 없는 인간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 그는 더 놀라고 있는 걸까.
“무슨, 짓이야?”
아인츠베른이 인상을 쓴 채 소리쳤다.
“너야말로 뭐야.”
린제나가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진짜 징하네.
그녀는 아인츠베른 몰래 자유로운 오른손을 천천히 움직였다. 검은 마력이 뭉쳐, 검녹색 단도를 소환해냈다. 그녀가 단도를 잡고 저를 붙잡고 있는 아인츠베른의 손을 향했다.
“이거, 놔!”
아인츠베른의 왼손을 노리던 칼날의 끝이, 손등 앞에서 우뚝 멈췄다.
린제나의 분홍색 눈동자가 혼란스럽게 흔들렸다.
저를 붙잡고 있는 것은, 아까 그녀가 상처를 냈던 왼손이었다. 과한 무게가 실리며, 화상을 입은 손을 타고 붉은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린제나가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이거 놓으라고! 너 진짜 미쳤어?”
“내가 할 말이다.”
아인츠베른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정신력과 신성력은 건드리지 못했으나 신체 능력을 하락시키는 것에는 성공해서, 그는 평범하게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어려운 상태였다.
아인츠베른은 힘겨운 기색으로 머뭇거리다가 덧붙였다.
“……여기서 떨어지면 죽어.”
린제나는 저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와, 어이가 없네.”
아인츠베른이 천천히 손을 당겼다. 린제나는 제 손등을 타고 떨어지는 핏줄기를 올려보다 고개를 휙 돌렸다.
“마녀는 이까짓 걸로 안 죽어!”
“적어도 타격은 입겠지.”
아인츠베른은 이제 짜증을 내고 있었다. 그의 최측근들조차 몇 번 보지 못했을 희귀한 광경이다.
“몸이 제일, 중요한 거다. 세 살짜리도 아는 걸…… 왜 모르지?”
린제나는 황당한 얼굴로 입만 벙긋거렸다.
‘뭔 소리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