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44)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44)화(44/207)
린제나의 갖은 방해에도 불구하고 아인츠베른은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
사실 린제나 또한 큰 저항은 하지 못했다. 아인츠베른의 반응이 너무 예상을 뛰어넘어서 맥이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여기서 떨어지면 다치기야 하겠지만, 마녀의 특성상 부상을 입어도 바로 치유됐다. 마녀들이 튼튼하고 회복력이 비상식적으로 높다는 사실을 교황이나 되는 인간이 모르지도 않을 텐데.
사람이 어이가 없으면 반사 신경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결국, 린제나는 도주 시도 3초 만에 붙잡혀 테라스 위로 복귀하고 말았다.
그녀는 아직도 제 왼손을 꼭 붙들고 있는 아인츠베른의 손을 발견하곤 흠칫 놀랐다.
‘아뿔싸.’
신전에서 악마의 하수인으로 여겨지는 마녀가, 신전의 수장에게 붙잡혀 버렸다.
‘이거 좀 위험한 거 아닌가?’
린제나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아인츠베른을 올려다봤다.
“저기, 혹시 나 신전에 넘길 거야?”
“그건…….”
아인츠베른도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린제나를 내려봤다.
바람에 흩날리는 검은 머리칼, 치렁치렁한 로브는 누가 봐도 마녀의 모습이었다. 거기에는 연회의 귀족들을 뒤흔들었던 아름다운 미모도, 밝고 기품있던 태도도 없었다. 그 모든 게 마법으로 꾸며낸 속임수였던 것 같다.
하지만 애원하듯 빛나는 분홍색 눈동자가 이상하게 마음을 끌었다. 묘하게 익숙한 눈빛이다. 아인츠베른은 자신을 빤히 올려다보는 린제나와 눈을 맞추다가, 그녀의 얼굴 위로 겹쳐지는 누군가의 얼굴에 흠칫 놀랐다.
‘왜 이브엔나의 모습이…….’
아인츠베른의 눈이 흔들리는 것을 린제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자유로운 한 손을 아인츠베른의 어깨 위로 올렸다. 천천히 어깨를 쓸어내리면서 부드럽게 눈을 휘었다.
“난 네가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녀가 작게 속삭이며 고개를 가까이했다. 다가오는 입술에, 아인츠베른은 흠칫 놀랐다.
아까는 정체를 몰라서 그랬대도, 마녀라는 걸 알고서도 입술을 맞춰서는 교황의 도리가 아니지 않나.
마녀에게 마음이 흔들렸다는 죄책감과 굳건한 신앙심이 부딪혀 강렬한 반발을 일으켰다. 아인츠베른은 순결을 지키려는 것처럼 급히 몸을 물렸다. 그와 함께, 붙들고 있던 린제나의 손도 놓아버렸다.
“순진하기는.”
비웃는 목소리가 묘하게 멀게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아인츠베른이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반대편에는 아무도 없었다.
방금까지 분명 바로 앞에 있었던 린제나의 모습이 돌연 사라져버렸다.
그녀가 있던 자리에는 작은 유리병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반투명하게 빛나는 하트 모양의 병 위에는 ‘해독제’라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
‘움직이는 기척은 없었는데?’
그는 다급히 난간 아래를 확인했다. 하지만 그 아래에도 아무런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테라스에 혼자 남은 아인츠베른이 멍하니 입술을 열었다.
“……어떻게?”
아연한 물음만이 새까만 어둠 사이로 흩어져 내렸다.
***
엄마를 만날 수 있다니, 타임리프 마법은 기적적으로 나를 구원했다.
음, 이렇게 말하니 내 삶이 암흑 그 자체였던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았다.
타임리프 후가 너무 행복해서 그렇지, 이전까지의 삶도 견딜 만은 했다. 늘 암울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고, 아주 가끔은 웃는 날도 있었으니까.
예를 들어 창문 틈으로 한 줄기 햇살이 흘러들어올 때.
바닥에 힘없이 늘어져 있다가, 천천히 기어 온 노란 햇살이 뺨을 덮으면 꼭 누군가의 손바닥 같았다. 그러면 나는 실눈을 뜬 채 볕이 만들어낸 실루엣을 보며 상상하곤 했다.
‘엄마.’
그래, 엄마가 좋겠다. 책에서 봤는데 엄마는 자식을 조건 없이 사랑해준대. 가끔 주위의 가족들을 보면 정말 그런 것 같았어.
아빠를 떠올리면 마음이 아팠지만, 엄마를 떠올리는 건 너무 막연해서 슬프지도 않았다. 엄마를 상상한 이유는 그 두 가지가 전부였다.
나는 분홍색 머리에 분홍색 눈을 가진, 친절하고 따뜻한 엄마를 허공에 그렸다. 햇살을 눈에 담으며 최대한 어른스럽고 상냥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우리 아기.”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엄마는 이브를 사랑해.”
나는 눈을 감고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반복해서 속삭였다. 사랑해, 사랑한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선 좀처럼 들을 수 없어진 말.
햇볕이 잘 드는 날이면, 난 종종 그렇게 엄마를 만났다. 볕을 체온 삼아, 햇빛을 인영 삼아.
상상 속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때면 깨닫곤 했다.
‘아, 이게 행복이라는 거구나.’
손쉽게 행복해지는 법이 있다는 걸 알고 나서는, 어떻게든 하루하루를 견딜 수 있게 됐다.
그게 내가 차디찬 황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밀이다.
나는 그렇게 나름의 방식으로 엄마와 유대를 형성했었다.
***
여러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통로의 끝에 도착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통로 입구로 다가가 귀를 바짝 댔다. 하지만 바깥쪽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여기에 도착하기까지, 나는 많은 시간과 힘을 소모했다. 돌아가는 사태가 궁금해서 염탐 마법도 종종 발동했다. 여기저기에 설치된 귀들은 내게 간접적이나마 상황을 알려주었다.
-꺄아악!
-마녀가 나타났다!
우선, 즐거운 웃음이 가득하던 연회장은 어느 순간 아수라장이 되었다. 물건이 부딪히고 깨지는 소리, 사람들의 비명이 끊이질 않았다.
제국력 882년, 7월 10일. 마녀들의 건국 연회 습격.
마치 능력을 과시하듯, 마녀들은 신성제국의 황성에 숨어들어 연회장을 테러하고 마녀 이델리를 데려가 버렸다.
우리 엄마 아빠에겐 기념비적인 첫 만남의 날이었지만, 연회의 참석객들에게 오늘은 오랫동안 ‘최악의 건국일’로 회자될 것이다. 자존심에 금이 가버린 신전과 제국민들도 무척 분노했지.
하지만 의외로 사상자가 없어서 큰 사건으로 번지지는 않고 흐지부지 넘어갈 예정이다.
-으윽……!
그리고 문제의 마녀 이델리가 갇힌 지하 감옥에서는, 이따금 단말마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얼핏 잠잠해 보이지만 엄청난 일이 발생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종종 들리던 간수들의 말소리도 어느 순간 뚝 끊겨 버렸으니까. 나는 직감했다.
‘엄마가 왔다.’
나는 입구를 스르르 밀어서 고개를 쏙 내밀었다. 그러자 바닥에 쓰러져 있는 간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난 통로에서 나와 조심스럽게 쓰러진 간수에게 다가갔다.
‘마력의 흔적.’
그때, 나는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황실 기사단의 통제가 필요한 악질적 범죄자와 정치범만 가둔다는 황성의 지하 감옥. 저 어두컴컴한 안쪽에서, 마력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기대와 불안 속에서, 천천히 걸음을 뗐다.
‘엄마는 어떻게 생겼을까?’
그건 내게 영원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것이었다. 엄마는 생전에 초상화 한 장 남기지 않았으니까.
아니, 사실 엄마의 그림을 본 적은 꽤 있었다.
소피아와 그 시녀들이 준 동화책에서.
‘이브, 이거 너희 엄마 이야기 아니야?’
리벨 삼촌의 총애를 받으며 자주 황실에 들락거렸던 어린 소피아는 무구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제목은 흐릿하지만 내용은 똑똑히 기억한다.
아름다운 미인으로 변장해 주교를 유혹한 마녀를 물리치는 이야기.
주인공인 소년 사제가 성물을 던지니, 마녀는 비명을 지르며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동화책 마지막 장은 울부짖는 마녀의 삽화였다.
고름이 뒤덮인 피부는 초록색. 눈은 세 개, 손가락은 네 개. 머리카락은 없고, 뚱뚱한 몸에 키는 함께 그려진 소년 사제의 반만 했다.
그 그림을 보고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분노와 치욕에 휩싸인 채, 난 마녀를 다룬 책들을 모조리 뒤졌다. 개중에는 신전에서 직접 배포한 것도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모아 깡그리 없애버리려고 했다. 신전에 찾아가서 발매를 멈추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마 그때쯤이었을 것이다. 암암리에나 퍼지던 내 혈통 문제가 본격적으로 도마 위에 오른 게.
덜컹!
그때, 감옥 안쪽에서 쇳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이델리를 만난 걸까? 나는 잠깐 멈칫했다가, 다시 용기 내서 발을 내디뎠다.
어쩌면 난 엄마를 원망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더라면 인생이 한결 쉬워졌으리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녀의 피가 섞였다는 사실이 티 나지 않게, 더 나서서 마녀를 배척하고.
교묘하게 엄마를 욕보이던 자들과 대립하는 대신 손을 잡았더라면.
나를 이렇게 낳아놓았다는 증오를 양분 삼아 그들에게 동조해 주었더라면, 그 지경까지 가지는 않았을 거라고.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초록색 피부에, 눈은 세 개, 손가락은 네 개인 엄마라도 좋으니까.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 싶다고…….
안겨본 적도 없는 엄마의 품을 그리워했다.
비록 가짜라도, 엄마는 날 사랑한다고 말해줬으니까.
나는 그 혼자만의 유대를 져버릴 수가 없었다.
언젠가 엄마를 만나면 말하고 싶었다. 당신이 오랫동안 나를 지탱해준 주춧돌이었다는 걸. 죽어서도 내게 위로가 되어줬다는 걸.
나도 나만의 방식으로 엄마를 사랑했다고.
“어쩔 수 없었어. 우리 예상보다 너무 강했다고. 에킬라를 뒤집어쓰고도 신검을 소환해냈다니까?”
지하 감옥의 마지막 칸에 도착하자, 조그맣게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헐떡이며 고개를 들었다.
이델리의 감옥 앞에 서 있는 건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까만 여자였다. 마녀의 상징인 검은 모자에, 치렁거리는 로브…… 그리고 허리까지 오는 검은 머리칼.
‘엄마가…… 아닌가?’
당황하는 순간, 그녀의 머리끝에서부터 검은 마력이 물결치듯 흔들렸다. 나는 그것이 변신 마법이 해제될 때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걸 눈치챘다.
“그래, 완전 괴물이었어. 덕분에 계획에 없던 공간 이동을 쓰느라 마력을 죄 털려버렸지 뭐야. 그러니까 이번엔 네가.”
때마침 그녀가 등을 돌렸다. 빛나는 분홍색 눈동자가 나를 발견했다.
“어머, 너는…….”
구불거리는 분홍색 머리칼, 우중충한 감옥에서도 홀로 반짝이는 새하얀 피부, 보석 같은 눈동자. 그리고 장소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드레스, 장신구들.
“길을 잃었니, 꼬마야?”
그야말로 동화 속 공주님 같은 모습에 잠깐 굳어버렸다.
분홍색 머리는, 맞는데…….
난 반쯤 넋이 나간 채 입술을 열었다.
“린제나 그레인저님?”
내 물음에 그녀의 어깨가 움찔했다.
“나를 어떻게 알았을까?”
약간 당황한 듯한 반응이 확신을 주었다.
엄마다.
파문은 느리게 일어나 나의 내면을 뒤집어놓았다.
‘내가 거짓말이라고 했잖아.’
거봐, 내 말이 맞잖아. 신전도 거짓말을 한다고. 그것들은 마녀를 괴물처럼 그려놓았었어.
하지만 진짜 우리 엄마는 눈은 두 개, 손가락은 다섯 개에…….
피부는 눈처럼 고왔다.
그 아름다운 얼굴에 서서히 당황이 번졌다.
“너, 우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