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47)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46)화(47/207)
“괜찮아,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 낳은 건데 뭐 어때?”
어깨 위에 고양이를 얹은 사람이 검지와 중지로 입에 문 흰 막대를 뽑아내며 말했다. 외모와 분위기 때문에 연초를 피우고 있는 줄 알았는데, 빼고 보니 그냥 막대 사탕이었다. 이 탑에선 딸기 맛이 유행인 걸까.
“맞아요. 탑주님이 사제의 목이라도 들고 올까 봐 마음 졸였는데, 아기를 들고 오다니! 예상보다 훨씬 발전적이네요.”
마녀들이 저마다 꺄르륵거리며 호응했다. 엄마는 그들의 이런 반응이 아주 지겹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그래, 마음대로 생각해.”
“미안, 진지하게 들을게. 진짜 누구 아이인데?”
이제까지는 진지하지 않았단 뜻일까? 농담이라면 약간 도를 넘은 것 같아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엄마는 시답잖은 일처럼 흘려넘겼다.
“나도 몰라, 황실 감옥에서 우연히 마주쳤어.”
“황실 감옥에서, 마법사 꼬마를, 우연히?”
“정확히는 꼬마가 나를 찾아왔지.”
엄마가 나를 향해 미소를 보내며 말했다.
“내 이름도 알고 있던데.”
그 말에 난 흠칫 놀라 고개를 숙였다. 역시, 아무리 아기 모습이라도 모든 걸 우연이었다 넘기긴 힘들겠지…….
“네 이름을, 어떻게?”
“글쎄. 그건 이 아이가 가진 특질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그냥 언니의 소문을 들은 거 아니야?”
눈가에 별이 그려진 여자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딱히 숨긴 적도 없잖아. 매번 싸움 날 때마다 ‘이 몸은 린제나 그레인저다.’라고 당당히 소개하면서?”
“음…….”
그럴듯한 의견이라 생각했는지 엄마가 턱을 매만졌다.
“뭐, 특질 같은 거야 차차 알아가면 되지. 안녕, 아가야. 내 이름은 사비나야.”
어깨 위에 검은 고양이를 매단 마녀가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개중 드물게도 세간에 알려진 마녀의 모습과 같이 검은 머리였지만, 그다지 마녀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검은 머리보다 그녀의 어깨 위에 놓인 고양이와 반대쪽 어깨에 걸친 짐승의 털로 만든 듯한 망토가 너무 시선을 끌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홍채가 긴 노란색 눈과 구릿빛 피부가 마녀보다는 야수에 가까워 보였다.
내가 어색하게 사비나의 손을 맞잡자, 다른 사람도 끼어들었다.
“흐음, 난 반디야.”
눈 밑에 반짝이는 분홍색 별을 단 마녀가 말했다. 그녀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내 얼굴을 빤히 살피다가 물었다.
“그런데 아기 얼굴이 왜 이래, 탑주님이 울렸어요?”
그 말에 나는 아직 맹맹한 코를 훌쩍였다. 울었던 티가 나나?
몇몇 사람이 궁금한지 반디의 옆으로 얼굴을 디밀었다.
“어머, 정말. 눈물 자국이 있네.”
“탑주님, 아기 왜 울었어요?”
마녀들의 술렁임 속에서 엄마가 머리칼을 손등으로 쳐올리며 고개를 들었다. 윤기 흐르는 분홍색 머리칼이 아름다운 머릿결을 뽐내며 잠시간 허공에 흩날렸다. 그 간단한 동작으로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한 엄마는 근엄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내가 아름답대.”
“네?”
“날 처음 보는 순간 너무 아름답다고 말하면서 오열을 하더군.”
“…….”
사실 그대로의 설명에 난 조금 부끄러워져서 엄마의 팔에 얼굴을 묻었다. 당시에는 감정이 북받쳐서 느끼지 못했지만 돌이켜보니 좀 이상한 애 같다.
엄마의 말을 들은 마녀들은 찰나 멍하니 눈을 깜빡이다가 곧 왁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가끔 진짜 터무니없는 농담을 한다니까.”
“우리 탑주님이 정말 아름다우시긴 하지만요.”
“농담 아니야.”
엄마는 반박하면서 내게 슬쩍 눈길을 주었다.
“그렇지?”
“네, 녜에.”
내가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자, 마녀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반디가 신기한 눈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제국에선 애들 사회생활 교육을 어떻게 하는 거예요?”
엄마는 어깨를 으쓱하며 다음에 가면 물어보겠다고 말했다. ……또 황성에 쳐들어가시겠다는 말씀인 걸까?
엄마는 나를 안아 들고 하나씩 설명해줬다. 휠체어를 탄 흰 머리 여자는 알비스, 알비스와 똑같이 생긴 마스크를 쓴 사람은 에코, 저 안경 쓴 아이는 샤샤, 저 남자들은 빅터, 로져, 등등등.
마녀들의 본거지의 남자들은 왜 있냐고 묻고 싶었는데, 그보다 먼저 샤샤가 물었다.
“새로운 분은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이부에나.”
살짝 머뭇거리며 답하자, 엄마가 움찔했다.
“이브엔나?”
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마를 올려다봤다. 파리엘도 내 이름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는데 엄마는 어떻게 한 번에 알아들었지 하고 생각하다가, 이 이름을 지어준 사람이 엄마란 사실에 생각이 닿았다.
그때, 샤샤가 살짝 놀란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이브엔나…… 이브엔나 라인하르트?”
라인하르트라는 성에 반디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새 예하드 대신전의 교황이 된 둘째 황자가 3년 전에 신탁을 듣고 입양했다던 성녀, 그 아이의 이름이 분명 이브엔나였어요.”
“뭐? 하지만 이 애는…….”
샤샤의 설명에 마녀들이 당황한 듯 나를 돌아봤다. 내가 마녀들의 마력을 느끼는 것처럼 그들도 내가 지닌 마력이 똑똑히 보일 텐데, 성녀라고 하니 이상할 것이다.
나 또한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아빠와 대신전은 내 존재를 제대로 선포하지 않고 비밀리에 두고 있었다. 이름은 물론 나이나 배경까지. 황성 식구들과 고위 사제들이나 아는 정보였다. 제국민에게는 두루뭉술하게 ‘제국에 치유의 성녀가 태어났다.’ 정도의 소문만 풀어둔 상태였다. 하물며 제국에 거주하지도 못하는 마녀들이 어떻게…….
“마법사가 성녀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예하드의 교황이 실수한 거야?”
“그렇게 큰 실수를? 예하드의 교황은 성 에퀴 어쩌구 하는 성자 태생이라던데?”
“설마, 마법사라는 걸 알면서 입양했다거나…….”
“헉, 무슨 속셈으로?”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추측에, 나는 눈이 뱅뱅 돌아갔다.
‘진짜 이름을 말하지 말았어야 했나?’
어중간하게 거짓말하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아서 솔직히 말했는데……. 이러다간 우리 아빠에 대한 음모론이 나오게 생겼다.
“위험한 거 아니야?”
아니나 다를까, 반디는 약간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예하드 교황의 아이라며. 라인하르트의 성까지 지니고 있는데. 이 아기, 데려와도 되는 거야? 게다가 교황이라면 오늘 언니와…….”
‘우리 아빠와 엄마가 뭐?’
뒷말이 궁금했으나, 그녀는 말을 제대로 끝내지도 않고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 시끄럽던 광장이 차가운 물을 뿌린 듯 조용해졌다.
엄마는 잠깐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샤샤, 여기의 열 번째 규칙이 뭐였지?”
“탑규 제10조. 액면가 9세 미만의 마법사는 발견 즉시 마탑의 일원으로 들인다.”
샤샤가 안경을 추켜올리며 국어책을 읽듯 딱딱한 말투로 답했다. 하지만 기계적인 말투에 비해 그녀가 읊는 규칙은 퍽 대강이었다.
‘액면가 9세는 뭐야?’
대충 9살 아래로 보인다고 우기면 되는 거 아닌가. 그걸 규칙이라고 할 수 있나?
내 그러한 감상과 상관없이, 엄마는 나를 양손으로 달랑 들어 올리며 모두에게 보였다.
“누구 이 젖먹이가 9살 이상으로 보이는 사람?”
별안간 허공에 들려서 중심이 위태로워진 나는 반사적으로 주먹 쥔 손을 파닥거렸다. 의미 없이 허우적거리는 내게로 마녀들의 따가운 시선이 꽂혔다. 졸지에 여러 사람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 나는 헉하고 놀라 몸을 움츠렸다.
“…….”
어쩐지 마녀들 사이로 침묵이 내리깔렸다. 의문을 제기한 반디조차 겸연쩍게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아무도 없군. 좋아, 이제부터 이브엔나는 마탑의 일원이다.”
“와아아!”
주위를 에워싼 사람들이 양손을 들고 함성을 질렀다. 대화하는 동안 소란을 듣고 몰려든 건지 에워싼 사람들이 더 늘어서 함성은 더욱 시끄러웠다. 나는 혼란스럽게 엄마를 올려다봤다.
내가 마탑의 일원이라니? 난 엄마와 대화를 하러 온 거지, 이곳의 일원이 될 생각까진 없었는데…….
‘이, 일단 여기를 벗어나면 대화를 좀 해봐야겠어. 엄마가 아빠랑은 어떻게 되신 거지……?’
그 와중에도 마법으로 만든 듯한 꽃가루가 사람들의 머리 위로 흩날리고 하늘에선 폭죽이 펑펑 터지고 있었다. 몰려든 사람들은 이제 서른 명 정도는 되어 보였는데, 연령대가 대체로 어렸다. 많아 봐야 엄마 또래 정도일까. 가장 수가 많은 건 10대들이고 열 살도 안 되어 보이는 영유아도 꽤 있었다. 여기의 인원은 어떻게 되는 거지?
여러 마녀가 차례차례 내게 다가와서 어딘가에서 들고 온 꽃목걸이를 내 목에 겹겹이 걸어주었다. ……원래는 이걸 이델리에게 걸어줄 생각이었던 걸까?
타임리프를 하기 전 이 시간대에서도 이랬을까. 대사제를 시해하려다 지하 감옥에 갇힌 이델리를 둘러싸고 꽃목걸이를 걸어줬던 건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마지막으로 사비나도 활짝 웃으면서 내게 목걸이를 걸어줬다. 그녀의 것은 특별히 사탕 목걸이였다.
“환영해, 이브! 네가 마탑의 100번째 식구야.”
나는 사비나의 기쁜 표정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내가 100번째…… 마녀들의 수가 100명이라고?
역사서에서 본 마녀들의 엄청난 기록들이 머리를 스쳤다. 그들은 나샤에서 들끓는 마수들 다음으로 제국의 제일가는 근심거리였다. 제국과 7개국이 합쳐져 만들어진 신성연합국의 모두가 마녀들의 침략과 횡포로 크고 작은 타격을 입은 역사가 있었다. 그런데…….
“와아, 세 자리라니, 완전 규모 크잖아!”
‘완전 규모 작잖아!’
나의 경악과 상관없이 마녀들은 손뼉을 치며 그들의 번성을 자축했다. 나는 슬슬 관자놀이가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마녀들의 진짜 모습은 내가 상식이라고 믿었던 부분까지 부수고 있었다.
그때 엄마가 문득 나를 다시 겉옷으로 감싸며 말했다.
“이제 인사도 했으니 다들 해산해.”
“에엑, 축제는? 환영 파티는?!”
“무슨 환영 파티를 주마다 해, 집안 거덜 내려 작정했어? 됐으니까 해산해.”
“린지 말이 맞아. 고생한 파견 팀에게 휴식도 필요하니까, 오늘은 그만 들어가.”
사비나가 엄마의 말에 힘을 실어주며 주변을 정리했다. 마녀들은 시무룩한 얼굴로 뿔뿔이 흩어졌다. 아직도 저 멀리서 뛰어오던 마녀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들과 합류했다.
이제 광장에 남은 건 엄마와 사비나를 포함한 마녀 몇 명이었다. 겨우 귀가 편해져서 한숨을 푹 내쉬자 엄마가 작게 웃었다.
“미안, 피곤하지? 오늘은 이만 들어가서 쉬자.”
그 말에 나는 엄마를 올려다봤다. 내가 피곤해한다는 걸 눈치채고 주변을 정리하신 걸까?
‘우리 엄마는 다정해…….’
나날이 엄마를 그리워하며 메말라가던 아빠의 모습을 보며 품었던 궁금증이 드디어 풀린 기분이다. 아빠가 그토록 사랑했던 엄마는 이렇게 아름답고 다정하신 분이었구나.
혼자 또 감격에 빠져 있다가, 문득 엄마가 덮어준 겉옷에 시선이 갔다. 어라, 어쩐지 눈에 익은데? 이건…….
‘아빠 옷 아닌가?’
“……!”
나는 순간 벼락같이 깨달았다.
‘아빠가 엄마한테 덮어줬나 봐!’
사실을 깨닫는 순간 심장 박동이 급속도로 빨라졌다. 그럼 그렇지, 두 분이 무사히 만나셨구나.
무슨 일이 있었을까, 두 분은 첫눈에 사랑에 빠지셨겠지? 결혼 약속을 하셨을까? 그럼 지금은 비밀 연애 중?
어렸을 적 아빠가 들려주신 이야기에 따르면 분명 그럴 것이다.
‘일이 잘 풀렸다면 정말 다행이야.’
두 분이 사랑에 빠지셨다면, 내 존재를 설명하는 것도 무척 쉬워질 것이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3년 전부터 계획했던 것을 실행에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상황을 봐서 내가 타임리프를 했다는 사실을 털어놔야겠어.’
드디어 엄마 아빠에게 내 정체를 밝힐 기회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