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49)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48)화(49/207)
세 마녀는 나를 데리고 다니며 마탑 구석구석을 구경시켜줬다.
마탑은 지하까지 합쳐 총 높이 천 피트가량의 거대복합단지였다. 하지만 나를 포함해도 100명밖에 안 되는 이 소규모 집단은 넓은 건물을 거의 활용하지 않고 방 안에만 박혀 있다고 한다.
“열심히 만든 복도인데 활용을 잘 못 해. 허구한 날 부수기나 하고.”
엄마는 툴툴거리며 말했다. 마치 엄마가 직접 복도를 만들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기분 탓이겠지?
“오느른 마니 보이는데…….”
우리가 걷고 있는 복도에도 삼삼오오 무리 지은 마녀들이 심심찮게 보였다. 난간 너머로 각종 부유물을 타고 허공을 휙휙 날아다니는 마녀들도. 그들은 엄마를 보면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도 몹시 바쁜 사람들처럼 재빨리 어딘가로 사라져버리곤 했다. 아무래도 파티를 좋아하는 활동적인 사람들 같았다.
엄마는 내가 가리키는 마녀 무리를 흘끔 보고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것들은 너를 보려고 몰려든 거야.”
“예헤?”
당황해서 내 목소리가 살짝 꺾였다. 아니 그럴 리가. 날 살피는 기색은 없었는데, 다들 급한 용건이 있는 듯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과 가끔 눈이 마주치긴 했지만…….
“할 일 없는 놈들이라 그런 거니까 아가는 신경 쓸 거 없어. 이다음엔…… 아, 방 안도 구경해볼래?”
엄마는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더니 불시에 옆에 보이는 문을 벌컥 열었다. 방 안에 사람이 있어서 나는 흠칫 놀랐다.
‘남의 방문을 이렇게 막 열어도 되나?’
그러나 방 안에 있던 남자는 등만 보인 채로 우리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는 몹시 더러운 연구용 가운 같은 것을 입고 있었는데, 언뜻 보인 옆얼굴엔 수염이 손가락만큼 길게 자라 있었다. 책상 가운데는 절대 인간의 것이 아닌 듯한 검고 거대한 발톱이 자리해 있었고, 그 주위로 각종 문헌과 정체 모를 플라스크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남자는 책상 위에 놓인 마수의 발톱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사흘 전에는 분명 예키리스톤 시약에 염화은을 반응시키면 붉은 고래나루자가 산화되었는데 왜 이번에는 멀쩡한 거지? 온도와 습도, 기압까지 통일시켰는데…… 아냐, 여기에선 바히마흐 3 법칙이…….”
쾅!
엄마가 열었을 때처럼 다시 호쾌하게 문을 닫을 때까지, 남자는 우리의 존재를 인식하지도 못했다.
엄마는 나를 돌아보며 머쓱하게 웃었다.
“미안, 너무 지저분한 방을 보여줘 버렸네.”
‘정말 지적할 게 지저분했던 것뿐인가요?’
나는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난 제국의 황실에만 박혀 살아서 세상 물정을 잘 모르고, 이런 문화적 충격에도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나샤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세계 전역을 누리셨을 것이다. 자유분방한 어머니와 잘 지내보려면 아무래도 마음을 넓게 가져야겠지.
나는 충격적이었던 마수 발톱을 머리에서 지우고 그나마 만만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근데 남자가 왜 이써요?”
“응?”
“마녀는 다 여자라구 핸는데…….”
나는 어물거리며 덧붙였다.
미래에 마녀와 관련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여자들에게만 금족령이 내려진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마녀는 악마에게 홀린 사특한 여자들이라 정의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리벨 삼촌의 집무실에서 마법으로 장난질을 할 때도, 삼촌은 스스로의 결백을 주장하며 마녀는 모두 여자들이라고 말했으니까.
“후후, 신전에서 그렇게 배웠니?”
“녜.”
“남자가 거의 없긴 하지? 스물여덟 명밖에 안 되니까.”
엄청 많잖아? 전체의 28%나 되는데. 어째서 아무도 몰랐지?
“머리두 안 까매요.”
“확실히 그렇지.”
엄마는 손끝으로 화려한 분홍색 머리를 쓸어내리며 답했다. 난 손가락을 꼽아가며 의문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뾰족 모자두 안 쓰구.”
“예리한걸.”
“못되지도 않았어.”
“어머, 고마워.”
“손가락도 네 개 아니고.”
“흠, 누구나 손가락이 네 개가 될 수 있지. 신전치곤 생각이 짧네.”
“그리구…… 그리구 피부도 안 초록이에요.”
“초록 피부? 그건 뭐야.”
엄마가 작게 실소하더니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이렇게 어린애도 그런 걸 다 알다니. 생각보다 신전이 조기 교육에 힘쓰고 있나 본데.”
“그러게.”
사비나가 떨떠름한 얼굴로 맞장구쳤다.
엄마는 잠깐 말을 고르는 듯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이브, 어른들이 늘 진실만 말하는 건 아니야.”
“녜에…….”
그건 나도 아는 사실이었다. 근 3년간, 난 누구보다 많은 거짓말을 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모든 말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 단순히 잘못 알았거나, 혹은 다른 목적이 있을 수도 있지. 이 경우에는…… 둘 다일까.”
엄마는 나를 안고 느릿느릿 복도를 걸으며 말했다.
“옛날 옛적에 이 탑에 어린 마법사가 살았는데 말이야…….”
엄마의 설명은 이러했다.
약 300년 전, 이 마탑이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나타나는 사고가 있었다. 탑에서 곤히 자고 있던 어린 마법사는 갑작스러운 충돌에 놀라 바깥으로 뛰쳐나왔다. 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어 잠옷 차림 그대로 사람들 앞에 섰는데, 몸에는 검은 나이트가운을 걸치고 머리에는 방울이 달린 나이트캡을 쓰고 있었다.
그 마법사 소년은 당시 열댓 살 정도의 나이었다고 한다. 그는 앳된 얼굴에 붉은 눈, 허리까지 오는 검은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은 멋대로 소년을 여자라고 착각했다.
소년이 마법을 써서 마탑을 고치고 떠난 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목격한 신기한 이야기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특이한 외관의 여자였지, 마수들이나 쓸 것 같은 신기한 힘을 썼어. 어떻게 한 거지? 아마……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판 게 아닐까?
모호한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며 부풀려지고 구체화 되었다. 그것이 기록과 이야기로 남아 사람들에게 전승되고 있다는 거였다.
이야기를 들은 나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마녀의 복장이라는 게 그냥 잠옷이었을 뿐이라고?’
미래의 신관들이 하던 말이 떠올랐다. 마녀는 죄다 악마의 피에 젖었다느니, 밤의 생물이라서 그렇다느니 온갖 추측을 하며 물어뜯었었는데. 사특한 이미지의 결정체로 취급받던 마녀의 모든 이미지가 그저 잠 덜 깬 소년이었을 뿐이라니.
‘심지어 여자도 아니었어…….’
툭하면 여자들에게만 내려지던 금족령, 방에서 처박혀 보내야 했던 허송세월들이 억울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마법사들이 오해를 풀려고 시도해 보기도 했지만, 잘 안 됐지.”
“왜요?”
내 물음에 엄마가 난감한 웃음을 지었다.
“으음, 그건 다음에…….”
“마녀 이야기가 신전의 통치에 힘을 더해줬으니까요.”
엄마가 말을 얼버무리려고 하는데, 뒤에 있던 샤샤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내가 번쩍 고개를 들자, 그녀는 책을 읊듯 무감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더불어 귀찮은 나샤민들을 내칠 명분으로도 적격이고, 정적을 제거할 수단으로도 딱이었던, 우읍.”
“샤샤.”
사비나가 다급히 샤샤의 입을 틀어막았다. 교황의 피후견인이었던 나의 정신적 충격을 배려해준 걸까.
확실히 머리가 어지럽긴 했다. 막판에 처형 선고를 받긴 했지만 그래도 한때 신성 황제의 좌에 앉았던 사람으로서, 나는 연합국과 신전에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애증을 갖고 있었다.
“괜찮아, 이브.”
그때 엄마의 부드러운 손길이 내 뒷머리를 쓸어내렸다. 고개를 들자 엄마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는 모함당하지 않았어. 그들이 믿는 걸 진짜로 만들어줬으니까.”
“딘짜로?”
“응, 오늘처럼 사고를 칠 때는 일부러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머리를 보여줬거든.”
그 말을 듣자, 오늘 지하 감옥에서 엄마를 처음 봤을 때가 떠올랐다. 허리를 덮은 새까만 머리칼 때문에 엄마가 아닌 줄 알았었지.
“그거는 왜에요?”
“이브, 세계 각지에 너처럼 똑똑한 아기 마법사들이 있어.”
엄마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세상을 돌아다니며 그들을 찾아다니고 있어. 신성연합국의 어린 마법사들은 마법을 무서워하고 자기 힘을 통제하지 못해. 마탑의 마법사들보다 훨씬 위태롭지. 하지만 그들이 정체를 들킨 적은 거의 없어. 왜인 줄 알아? 마법사들은 모두 검은 머리라고 알려졌거든.”
나는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연합국에 검은 머리를 가진 사람은 매우 적었다. 세상이 불안에 휩싸여 미쳐 돌아가기 전까지, 마녀들이 스며들기는 쉬웠을 것이다.
“그런 낭설로 아기 마법사들을 보호할 수 있다면 오히려 환영이야. 게다가 마녀들이 모두 여자라는 통설 덕분에, 우린 신성연합국에 파견해둔 남자 마법사들을 보호할 수 있었어. 그게 우리의 목적이고…….”
그 말대로, 내가 이곳으로 오기 직전까지도 신성연합국에서 마녀로 몰려 죽은 남자는 몇 없었다. 그 선입견 덕분에 많은 마법사가 목숨을 보전했으리라 생각하자 기분이 이상했다.
“이브, 누군가가 뭔가를 강력하게 주장할 때에는 나름의 명분이 있을 거야. 그걸 잘 파악해야 해. 명분과 진짜 목적이 정말로 같은지, 그들이 진짜로 필요로 할 만한 건 무엇인지.”
명분과 진짜 목적…… 나는 그 말을 입 속으로 되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