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55)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54)화(55/207)
“둘이 여기서 뭐 해?”
그때 팽팽히 당겨진 긴장감을 단숨에 끊어버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어리둥절하게 문을 밀고 들어오는 엄마가 보였다. 엄마를 마주하자 반사적으로 얼굴 근육이 풀어졌다.
“대마녀니……!”
종종걸음으로 다가가자, 엄마는 어김없이 밝고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이브, 잘 잤어?”
“녜!”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야. 에코, 네가 문 땄어?”
그 말에 나는 반사적으로 에코를 돌아봤다가 눈이 마주쳐서 흠칫 놀랐다. 내가 스르르 시선을 피하자, 에코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글쎄, 어떻게 들어왔을까…….]나는 흠칫 몸을 굳혔다. 누가 봐도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뭐야, 장난치지 마.”
[어차피 보스도 우리 방에 막 들어오잖아?]“흐음, 그건 그렇지.”
엄마는 간단히 납득하고는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밥 먹으러 가자, 이브. 사비나가 널 한참 찾았어.”
나는 엄마에게 안겨 방을 나서면서 어깨 너머로 에코를 흘긋 확인했다. 그녀는 기지개를 쭉 켜고는 어슬렁거리며 우리 뒤를 쫓아왔다.
방금까지 나와 그런 대화를 나누었으면서 돌연 한가해진 저 태도라니. 의뭉스럽기 짝이 없었다.
***
만찬장에 도착하자 이미 많은 마법사가 자리해 있었다.
적어도 마탑 총인원의 반은 모여 있는 것 같았다.
“어서 오세요, 마탑주님!”
“저것 봐, 우리 백 번째 신입이다.”
“세상에, 듣던 대로 귀엽네, 이브!”
마법사들은 우리를 보자 수선스럽게 일어나거나 손을 흔들며 알은척을 했다. 대다수가 엄마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나를 귀엽다고 말하는 순이었다.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호의 어린 시선들이 고맙고 부담스러웠다.
엄마가 나를 상석에 앉히고 그 옆에 앉았다. 그리고 내 손에 아기 물컵을 쥐여주더니 높이 들어 올리게 했다.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엄마의 뜻대로 하자, 그녀가 내게 속삭였다.
“인사해야지, 이브?”
인사? 나는 당황해서 입을 열었다.
“아, 안눙하세요.”
그러자 마법사들이 미리 채워져 있던 잔을 들어 올렸다.
“안녕하세요!”
나는 만찬장의 모든 인원이 동시에 외치는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마법사들은 마치 내 미숙한 인사말을 건배사라도 되는 것처럼 따라 하고는 잔을 들이켰다. 성인들은 술을 마시고, 아직 어린아이들은 각기 다른 음료를 마시는 것 같았다. 테이블에 컵을 내리치는 소리, 왁자지껄한 목소리로 순식간에 만찬장이 소란스러워졌다.
마탑의 마법사들은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것 같으면서도 또 이상할 정도로 허물없었다. 식탁에 놓인 묘하게 다양한 음식들이나 각기 다른 음료, 식기. 심지어 나이프 잡는 방법까지도 각기 달랐다. 예의범절도 분명 다양할 텐데, 아무도 예의를 지키지 않아서 괜찮은 듯한 해이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심지어 식탁 위에는 새까만 고양이도 돌아다녔다.
난 한눈에 사비나가 데리고 다니는 녀석이라는 걸 알아봤다. 녀석은 도도하게 턱을 치켜들고 식탁을 돌아다니며 마법사들이 건네주는 생선 조각 같은 걸 받아먹었다. 똑똑하고 사교적인 성격과 몸속에 감도는 마력으로 보아 일반적인 고양이가 아닌 마수의 잡종 같았다.
마수들이 대륙에 대거 쏟아지며, 인간계 생물과 유사한 하급 마수와 동식물들 사이에 나온 종 간 잡종들.
마수 변종도 마수로 정의되기 때문에, 교리에 따르면 발견 즉시 살처분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마수라기엔 너무 귀엽게 생겼다.
시선을 느꼈는지, 마침 녀석이 나를 돌아봤다. 까만 입을 열자 빨간 혀가 보였다.
“삐용.”
‘마수를 가까이해서는 안 돼’와 ‘귀여워’가 머릿속에서 맹렬히 부딪히다 이내 ‘귀여워!’가 승리한 순간이었다.
눈을 반짝이며 던져줄 고기를 고르고 있는데, 누군가가 엄마를 향해 외쳤다.
“탑주님, 교황과 싸운 이야기 해주세요!”
고기를 잡던 내 손이 삐끗했다.
각개로 떠들던 소음이 일순 가라앉으며 이쪽으로 시선이 몰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목을 움츠리면서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교황과 싸운 이야기……?’
“맞아, 언니가 위층 테라스로 나간 후엔 우리도 못 봤어.”
“그 독은 썼어요? 파메라 원액?”
‘잠깐만, 독?’
혼란 속에서 엄마가 여상하게 대답했다.
“그래, 폭탄과 독을 이용했어.”
‘폭탄?!’
“교황을 테라스로 어떻게 끌어낸 거예요? 듣자 하니 완전히 목석이라던데.”
“완벽한 미모와 화술에 매혹 마법을 고명처럼 얹어주었지.”
엄마의 말에 마법사들이 꺄르륵 웃음을 터뜨렸다.
그 가운데에서 나만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얼어 있었다.
“예하드의 교황은 아직 어리더군.”
마법사들의 추궁에 엄마는 즐거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난 첫눈에 알 수 있었어. 이 정도면 해볼 만하겠다.”
‘우리는 첫눈에 서로를 알아봤단다. 서로가 특별한 사람이 될 거라는 걸.’
엄마의 무용담에 아빠의 사랑 이야기가 겹쳐져 혼란이 가중되었다.
내 기분과 상관없이, 마녀들은 흥분해서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나 엄마에게 몰려들었다.
“그것뿐이었어요? 듣기로는 엄청 잘생겼다던데!”
“맞아! 실제로 보면 어때요?”
“으응, 뭐… 잘생기긴 했지……. 신도들은 교황 얼굴로 다 모은 것 같더라.”
엄마가 신중한 목소리로 말하자 마법사들이 치를 떨었다.
“허! 역시 신전 녀석들, 영악하다.”
“교황은 대신전 가면 볼 수 있나?”
“왜, 예배하러 가게?”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할 기분이 되었다. 고달픈 내 마음과 달리 마녀들은 무척 들떠 보였다.
“더 자세히 말해주세요!”
“맞아, 어떻게 싸웠는데요?”
“그러니까.”
즐겁게 입을 열려던 엄마의 시선이 문득 내게 닿았다.
“탑주님?”
누군가의 부름에, 엄마가 어색하게 답했다.
“지금 말고 나중에 얘기해줄게.”
“에이, 왜요? 지금 말해주세요.”
“이왕 다 모여 있는데, 이런 데서 사기 진작을 시켜주셔야죠.”
“으음, 그렇긴 한데…….”
엄마가 난처한 미소를 지었지만 마탑 바깥소식에 굶주린 마녀들은 강경했다. 엄마는 그들의 등쌀에 못 이겨 연회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내가 못 알아듣길 바란 건지 나샤의 언어를 섞어가며 최대한 빙빙 돌려서 묘사했다. 확실히 3살짜리라면 전혀 이해할 수 없을 만한 이야기였지만, 나는 진짜 아기도 아닌 데다 나샤의 말도 얼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순진한 교황을 뛰어난 화술로 현혹해 테라스로 끌어내고, 엄마가 폭발하는 칼로 아빠의 뒤통수를 노린 이야기를.
아빠가 화상을 입었다는 대목에선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법사들은 흥미 가득한 얼굴로 이야기에 몰입해서는 간간이 휘파람과 욕설로 추임새를 넣어댔다.
‘이게 다 무슨 일이지…….’
내 정신이 먼지처럼 흩날리고 있을 때,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오른쪽.]그 말에 반사적으로 오른쪽을 돌아봤다가 흠칫 놀랐다.
내 오른편 두 번째 자리에 앉아 있던 에코가 손을 들어 보였다.
언제부터 저기에 있었지? 정신이 없어서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꼬맹아, 보스의 방에 몰래 숨어들어서 뭘 한 거야?]“…….”
[나한테만 털어놔 봐. 지금 말하면 아무한테도 말 안 하고 숨겨줄게.]에코가 사근사근한 어투로 말했다.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으나 덫을 놓고 토끼풀을 흔드는 사냥꾼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게다가…….
‘엄마가 아빠랑 싸운 게 사실이라면, 아직 내 정체를 밝힐 수 없어…….’
내가 두 분의 딸이라는 진실은 두 분의 마음이 통할 때만 설득력을 얻는다.
생전에 아빠가 해주신 이야기 때문에, 두 분이 만나기만 하면 사랑에 빠지리라 의심치 않았는데.
‘낭패다.’
신전과 마탑이 반목하는 와중에 엄마 아빠까지 적대 관계라면, 내 정체를 밝혀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긴 힘들 것이다. 잘 봐줘도 아이의 과대망상 취급이겠지.
‘일단은, 숨겨야 해.’
거짓말로 둘러대면 좋겠지만 내겐 언변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렇게 당황했을 때는 괜히 실언만 하게 될 것이다.
차라리 침묵으로 일관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물컵을 꼭 쥐고 몸을 움츠렸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잔뜩 몸을 움츠리고 있었기에 별로 변한 것은 없었다.
내 일관적인 모르쇠에 에코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어쭈, 무시하네. 내가 네 행동을 보스에게 보고해도 좋아?]“…….”
[흐흠, 그래. 언제까지 무시할 수 있는지 보자.]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꾼 에코가 음산한 경고를 뱉었다. 나는 불길한 예감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시끌벅적한 만찬장에서 에코의 주변은 그녀의 정갈한 머리칼만큼이나 깨끗했다. 그녀는 천천히 손을 들어 마스크를 벗었다. 곧 내 눈이 살짝 커졌다. 마스크 아래에 가려져 있던 에코의 입 주변은, 화상 자국과 흉터로 가득했다.
에코는 나를 돌아보더니 보란 듯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에코의 얼굴이 어떻든 간에, 눈이 마주친 것에 놀라 나는 반사적으로 시선을 내렸다.
머릿속에서 낮은 한숨이 들려왔다.
[나도 겁주고 싶진 않지만, 신입이 사고 치는 일이 한두 번이야 말이지.]“별로…….”
[응?]왁자지껄한 말소리 속에서 작게 입 속으로 중얼거렸을 뿐인데도, 에코는 들은 것 같았다.
“에코 별로 안 무서워, 밥이나 먹어요. 계속 안 먹고 있자나.”
나는 다다다 쏘아주고는 걱정이 돼서 에코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가, 눈이 마주쳐서 흠칫 시선을 돌렸다.
흘끔 본 에코의 얼굴은 뒤통수라도 얻어맞은 사람 같았다.
나는 에코의 식기를 눈짓했다. 그녀는 그릇 위에 올려둔 스테이크가 식을 때까지 포크에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아픈 것 같지도 않은데 계속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뭔가 숨기고 싶은 게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다.
그녀가 마스크를 벗은 후에도 다른 이들은 놀란 기색 하나 없는 걸 보면, 원래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녔던 거다.
아마 내가 놀랄까 봐 배려해준 게 아닐까.
그런 정황을 알고 있는데, 고작 흉터를 봤다고 놀랄 리가 없었다.
그렇게 흉측하지도 않은데.
안 어울리게 섬세한 구석이 있다. 난 마녀들이 눈이 세 개여도 받아들일 각오로 왔는걸.
미래의 리벨 삼촌이나 사제들이 보내던 악의나 살의에 비하면, 고작 겉모습으로 날 겁주려는 에코의 시도는 갸륵해 보이기까지 했다.
[……겁이 많은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네.]뭘 모르겠다고?
내가 의아하게 시선을 들자, 에코는 미궁에 빠진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뭐 때문인지, 이후로 에코는 내게 따로 말을 걸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식사를 했다.
만찬이 파하기 전에 샤샤가 다가와서 아침에 말한 대로 엄마에게 마석을 보여주자고 했다. 나는 당황해서 마석을 잃어버렸다고 답했다. 변명하면서도 에코가 끼어들지 않을까 불안했지만, 그녀는 어째서인지 침묵을 지켰다.
‘숨겨주기로 한 건가?’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혼란 속에서 만찬이 끝났다.
***
무슨 변덕인지는 몰라도 에코가 내 일을 일단 함구해주기로 한 것 같았다. 하긴, 그녀도 자신이 본 게 무엇인지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보다 더 문제인 건 엄마와 아빠의 관계였다.
두 분은 서로를 사랑했다. 내 존재가 그 증거였다. 하지만, 하지만 왜인진 몰라도 첫눈에 사랑에 빠지진 않았던 것 같다.
‘아빠는 왜 거짓말을…….’
아니, 물론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닌데. 고작 6살 난 딸에게 두 분의 우여곡절을 미주알고주알 말해줄 수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걸 철석같이 믿고 사실 확인을 안 한 게 웃겼다. 분명 불안감을 느꼈는데, 난 무슨 신앙을 시험당하는 사제처럼 스스로를 타이르기만 했었다.
“하아…….”
만찬이 끝나고 바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사비나가 꼭 양치질을 해야 한대서 붙들려 있느라 시간이 지체됐다.
나는 어디까지나 조력자로서, 부모님에게 미래를 알려주고 두 분을 보조할 일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첫 번째 관문부터 이렇게 난관에 부닥치게 될 줄은 몰랐다. 나와 함께 타임리프를 한 마법서가 허무하게 사라지는 모습을 봤더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렇게 된 이상, 왜 두 분의 사이가 좋지 않은지 알아내서 얼른 관계를 회복시키고 내 정체를 밝혀야겠다.
나는 마음을 다지며 엄마의 방 앞에 섰다.
혹시나 해서 방문을 당기자 문은 딸 것도 없이 스르르 열렸다. 조심스럽게 방에 들어선 내 눈이 약간 커졌다.
엄마는 거실 끝의 커다란 반원형 창문틀에 등을 기댄 채 담뱃대를 태우고 있었다.
마법사의 일과는 제멋대로라서, 우리는 방금 점심을 먹었는데 창밖은 새까만 밤이 내려와 있었다. 창백한 초승달이 파이프 끝으로 피어나는 연기 속에서 명멸했다.
그 아스라한 빛이 이상하게도 엄마와 한 쌍처럼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시끌벅적한 만찬장에서의 호기는 온데간데없이, 적요한 쓸쓸함만이 흰 뺨 위를 감돌고 있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여기에 왔는지도 잊고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