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56)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55)화(56/207)
그때, 영원히 멈춰 있을 것 같던 엄마가 불현듯 고개를 돌렸다.
어슴푸레한 달빛 아래에서 우리의 시선이 딱하고 마주쳤다.
모든 상을 무감하게 반추하던 분홍색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그녀의 입술에 걸려 있던 담뱃대가 툭 하고 아래로 떨어졌다.
“앗뜨뜨!”
엄마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나는 화들짝 놀라 엄마에게 달려갔다.
“괘, 괜차느세여?!”
내 외침에 엄마는 다급히 창밖으로 담뱃재를 털어 불을 끈 후 등 뒤로 파이프를 숨겼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온 나를 휙 돌아보곤 생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그럼, 무슨 일 있었니?”
“제, 제송해여. 놀라게 해드렸,”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의연한 목소리에 나는 눈을 깜빡거리며 엄마의 등 뒤를 흘끔 돌아봤다. 그러자 엄마는 살짝 몸을 비틀어 내 시야에서 담뱃대를 숨겼다. 다음 순간, 나는 그녀의 등 뒤에서 일렁이는 마력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엄마가 결백을 증명하듯 양손을 펼쳐 들었을 때, 그녀의 손은 비어 있었다.
‘마법.’
곧바로 눈치챈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굳이?’
“크흠, 무슨 할 말이라도 있니?”
엄마가 멋쩍은 얼굴로 허리를 숙여 나와 눈높이를 맞췄다. 나는 마법으로 불러일으킨 바람이 창밖으로 연기를 몰아내는 모습을 흘끔 바라보다가 엄마의 부름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니까, 어떻게 말해야 하지.
“아잉 성하랑 싸웠어요?”
내 말에 엄마의 눈이 커졌다. 이런 질문을 받을지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다. 그녀의 분홍색 속눈썹이 나비처럼 팔랑거렸다.
“으음, 거기에는 복잡한 사정이…….”
“마타쭈님은 성아 시러해요?”
나는 약간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성아 조아하는데…….”
“그, 그렇구나.”
엄마는 약간 당황하신 것 같았지만 다행히 불쾌해 보이지는 않았다. 상대가 어린애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아빠의 칭찬만 들어도 화가 날 정도로 적대적이진 않으신 것 같다고 내 멋대로 해석했다.
“네, 성아는요. 다정하시구, 강하시구, 세쌍에서 쩨 멋지시구, 이부 위해서 열시미 일하시구요. 또…….”
나는 쫑알쫑알 아빠의 장점을 어필하면서 엄마의 표정을 살폈다.
만찬장에서, 엄마는 아빠와 싸운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말해주었다. 맹독으로 아빠의 몸을 마비시키고 교전하며 효과적으로 발목을 잡았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나는 엄마가 마법사들에게 해주지 않은 이야기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왜냐면 어릴 적 아빠에게 들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게 전부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도 있지만…… 그래도 3년 뒤에 두 분이 결혼한 걸 보면, 작은 마음의 교류라도 있었을 확률이 높았다.
신전이 마탑에 적대적인 만큼 마탑도 신전에 적대적이었다. 마탑의 수장인 엄마가 마법사들의 눈치를 봐서 진실을 숨기고 있을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했다. 그러니까 반대로 엄마가 아빠를 좋게 말할 수밖에 없게끔 판을 깔아주면, 엄마의 진심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뭔가 있을 거라고. 분명히! 3년 뒤에 내가 태어나는데, 첫 만남에 진짜 전투만 했다는 게 말이 돼?’
나는 눈에 불을 켜고 엄마의 얼굴에서 무언의 시그널을 찾아 헤맸다. 엄마의 표정과 말에서 조금이라도 호의적인 반응이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몰래 엄마의 표정을 흘끔거리던 나는 흠칫 놀랐다.
불시에 눈이 마주친 순간, 그녀의 폭신하던 분홍색 눈동자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미안해, 이브.”
엄마는 갑작스러운 사과를 뱉으며 내 머리 위로 손을 뻗었다.
“쉽지는 않겠지만, 나도 노력할게. 네게 좋은…… 가족이 되어줄 수 있게.”
“……?”
이, 이게 아닌데.
엄마의 눈에는 내가 불안해하는 고아처럼 보인 걸까?
내가 끌어내려던 말은 이런 게 아니었다.
하지만 좋은 가족이 되어줄 수 있게 노력하겠단 말에는 심장이 뛰었다.
가족이라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엄마가 해주는 말이었다. 머리를 쓰다듬는 부드러운 손길에서부터 간질간질한 감각이 퍼져나갔다. 내 의지를 벗어난 몸이 제멋대로 피부를 새빨갛게 물들여서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고, 고맙슴미다…….”
나는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뱉었다가 핫하고 정신을 차렸다.
지금 감상에나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방금 그건, 그러니까 말 돌린 거잖아.
엄마는 교황에게 우호적인 3살짜리 어린애한테도 자신의 진짜 마음을 털어놓을 생각이 없는 거다.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설마, 진짜로 두 분이 첫 만남에 싸움만 하신 걸까?
‘아빠가 해준 이야기가 전부 다 새빨간 거짓말…….’
살짝 배신감을 느끼려던 나는 흠칫 놀라 고개를 저었다. 아파서 병석에 계시던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 어린 딸에게 풀어놓은 이야기다. 딸에게 좋은 추억만 남겨주고 싶은 마음으로 꾸며내신 하얀 거짓말을 어떻게 비난할까.
‘아빠, 저는 다 이해해요…….’
나는 황실에 계신 아빠께 이해의 뜻을 전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아무래도 두 분의 상황을 파악하고 이어주겠다는 계획은 순탄치 않을 것 같았다. 물론 내가 개입하지 않아도 3년 뒤에는 결혼하시게 되겠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장기적으로는 타임리프 마법이라는 변수가 있었다. 난 아직 이 마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내 역할을 마치고 싶었다.
단기적으로는 현재 황실 상황이 걱정된다는 게 문제였다. 이틀 동안 자고 있으니 슬슬 누군가가 내 이상을 눈치챌 때가 됐다. 지금도 변신 마법을 유지하느라 마력이 줄줄 빠져나가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걸 물어보려고 온 거야?”
“아니요.”
엄마의 부드러운 물음에 내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의아한 얼굴의 엄마와 눈을 마주치며, 나는 잠깐 고민했다.
두 분을 이어주고 내 존재를 납득시키려는 계획이 틀어졌다면, 남은 수는 하나밖에 없다.
순서를 거꾸로 하는 거다.
내 존재를 납득시킨 다음, 미래를 알려서 두 분을 이어드리는 거지.
그리고 이 방법은 엄마에게만 쓸 수 있었다.
‘엄마는 타임리프 마법을 알고 있으니까.’
엄마가 이 마법을 만든 당사자니까 말이다.
내게 미래의 마법서가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없어도 상관없다. 나는 지난 3년 동안 마법서의 내용을 통째로 머릿속에 옮겨 놓았다. 그게 곧 증거가 될 것이다.
드디어 내 이야기를 하게 되는구나.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 입을 열었다.
“만약, 나중에 마타쭈님이 아기를 낳았는데요…….”
그 아이가 죽음의 고비를 넘겨서 과거로 돌아왔다면 어떨 거 같냐고 물어보려고 했다. 그러니까 서두였다. 그런데 엄마는 서두를 다 꺼내기도 전에 내 말을 싹둑 잘라버렸다.
“난 아기 안 낳을 건데.”
“……네헤?”
내 목소리가 삐끗했다. 순간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도 잊고 버벅거리며 반문했다.
“아, 아기를 안 나?”
“절대로.”
단호한 대답에 내 눈동자가 당황으로 흔들렸다.
당연했다. 아기를 절대 낳지 않겠다는 선언은, 과거로 시간 여행을 온 자식이 엄마의 입에서 들을 수 있는 말 중 가장 당황스러운 말이었으니까.
절대로 아기를 안 낳겠다니.
‘그럼 나는? 내 미래는…….’
오늘 낮에 봤던 마법서의 최후가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순간 뒷덜미가 싸늘해졌다.
“그, 그럼 안 되는데.”
“안 된다고?”
엄마는 나를 엉뚱한 아이를 보듯 하며 실소했다. 그건 마치 내가 어제 마녀들의 특징이 알던 것과 다르다며 하나하나 질문할 때의 반응과 비슷했다.
어쩐지 불길하다.
엄마는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활짝 웃으면서 경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이브가 있으니까. 이 마탑의 모두가 가족이나 다름없어.”
분명 내 오른쪽 눈과 같은 색인데도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아름다운 분홍색 눈이 곱게 휘었다. 엄마는 몹시 사랑스러운 것을 바라보는 눈으로 나를 보면서 물었다.
“내 옆에 있어 줄 거지, 아가야?”
네, 라고 즉답할 뻔한 걸 애써 억눌렀다. 그럴 때가 아니었다. 이런 흐름은 정말 좋지 않은데…….
“마타쭈니 아가도 기여울 거예요.”
“정말 다정하구나, 하지만 그럴 리 없어. 날 닮았으면 성격도 별로일걸. 좋은 엄마가 될 자신도 없고.”
퉁명스럽게 말하던 엄마가 나를 의식한 듯 재차 부드럽게 웃었다.
“게다가 이브처럼 귀여운 아이는 세상에 없거든.”
‘정말 좋지 않아.’
나는 엄마의 품에 안긴 채 눈을 질끈 감았다. 얼핏 들으면 내 칭찬 같지만, 뒷말은 그냥 나를 달래려고 덧붙인 것뿐이다. 본심은 그 이전의 말.
엄마는 세 살짜리의 물음에 빈말로도 수긍해줄 수 없을 만큼 아이가 싫은 거다.
문득 첫날 나와 함께 다니겠다는 엄마의 말에 사비나가 놀라서 말리던 게 떠올랐다. 그때 사비나는 그렇게 말했다.
‘왜 안 하던 짓을 해, 너 이런 거 싫어하잖아?’
난 그때 엄마가 마탑을 안내해주는 일을 싫어하나보다 했다. 확실히 귀찮은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보니 ‘이런 거’라는 건 나를 말하는 거였다.
이런, 아기.
‘이거 내가 엄마 딸이라고 말했다가 아빠를 더 피하시는 거 아니야……?’
엄마는 그간 나를 특별히 예뻐해 주고 있었다. 내가 엄마를 처음 만났을 때 감정을 주체 못 하고 오열한 게 흥미를 산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엄마가 내게 절대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그건 엄마가 아이를 안 낳겠단 생각이 그 정도로 확고하단 뜻이었다.
미래의 엄마가 지금 생각과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는 걸 알면 오히려 반감을 불러일으켜서 본인의 행동을 교정하려 들 수도 있었다.
설마하니 남편인 아빠에 이어 친자식인 나조차 현재의 엄마에겐 기피 대상이라니.
이렇게 되면 내 정체를 말한 후 엄마와 아빠를 이어준다는 계획도 위태롭게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혼란으로 범벅된 눈으로 엄마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