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64)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62)화(64/207)
“이브엔나.”
아인츠베른은 잠든 이브엔나의 뺨에 손을 올렸다. 아기의 보들보들한 피부가 손바닥에 닿았다.
아이는 예민한 성정이라 이렇게 손을 대면 금방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잘 떠지지 않는 눈을 깜빡이다 아인츠베른을 발견하곤 부스스 웃으며 그의 손을 맞잡아 왔었다. 하지만 지금은 미동조차 없다.
“언제부터 이랬지?”
“어제저녁입니다. 전하께서 연회로 출발한 직후 취침에 드셔서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고 계십니다.”
“어제저녁이라…….”
어제부터 아이가 이상해졌다면, 짚이는 데가 있었다. 마녀들이 들이닥쳐 화려하게 망쳐놓은 연회의 날이었으니까.
하지만 속단할 순 없다. 사제들은 마녀들의 마법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그들이 이브엔나에게 무슨 수작을 걸었는지 아닌지 판별할 방도가 없었다. 심증만으로 움직이기에는 걸리는 게 많았다.
게다가…… 아주 잠깐이었지만, 아인츠베른이 연회의 밤에 만난 마녀의 모습은 소문만큼 그렇게 악랄해 보이지 않았다.
아인츠베른은 이브엔나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신관을 향해 물었다.
“신관의 생각은 어떻지?”
“지금 신전에 도움을 요청해 비슷한 사례를 조사하는 중입니다. 역사에서 성녀가 신성을 잃어버린 사건은 90년 전에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게 병일 수도 있단 말인가?”
“저희의 능력이 부족하여 아직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신관이 깊게 고개를 숙이자, 아인츠베른이 한숨을 쉬었다. 신관들을 독촉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마음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았다.
어린아이였다. 아직 보지 못한 것, 먹지 못한 것, 누리지 못한 것이 많은.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부모도 없는 아이인데.
부모를 대신하여 아이의 옆에서 아이가 자라는 것을 지켜봐 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브엔나가 영영 이렇게 누워서 깨어나지 않는다면…….
치미는 불안한 생각을 억누르고, 그는 애써 입을 열었다.
“그래, 지금은 좀 더 상황을 지켜보지.”
이브엔나를 비추는 아인츠베른의 눈이 어둡게 침잠했다. 상앗빛 뺨을 만지는 손이 작게 떨렸다. 유리구슬을 쓰다듬듯, 조심스러운 손짓.
그 모습을 지켜보는 식솔들의 눈에도 안타까운 눈물이 서렸다.
펑!
그 순간, 이브엔나의 몸에서 연기가 솟아났다. 갑작스러운 기현상에 당황했던 식솔들의 얼굴에 서서히 경악이 번졌다.
“저, 저건…….”
하얀 연기가 사그라들자, 이브엔나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브엔나가 누워 있던 곳에는 아이를 대신하여 토끼 인형이 누워 있었다. 아인츠베른이 안타까운 손짓으로 쓰다듬고 있던 건 토끼 인형의 뺨이었다.
당황한 아인츠베른이 황급히 손을 떼어냈다.
“이, 이게 뭐지?”
“토순이…….”
나지막한 목소리에, 아인츠베른이 휙하고 하인을 돌아봤다. 갑자기 황자의 시선을 받게 된 하인이 당황해서 대답했다.
“아기님의 애착 인형입니다. 어제부터 안 보여서 찾고 있었는데…….”
“애착 인형?”
토끼 인형을 내려다보는 아인츠베른의 청회색 눈이 차갑게 빛났다.
“마녀들의 소행이로군.”
아인츠베른의 말에 잠깐 당황해 있던 식솔들의 눈에도 분노가 서렸다.
방금까지는 심증밖에 없었으나 이젠 모든 게 명백해졌다.
마녀들이 이브엔나를 유괴했다.
그들이 성녀를 유괴한 이유는 명백했다.
지하 감옥에 새긴 그 경고문.
<우리는 모든 자매를 보호할 수 없지만, 우리의 자매를 건드리면 너희의 형제들도 아작내버릴 것이다!>
경고문에서 말한 대로, 그들은 지하 감옥에 갇혀 있는 마녀 이델리를 구하는 대신 제국의 소중한 성녀를 데려가기로 한 것이다.
‘동료의 구조보다는 복수를!’
태양궁의 식솔들은 이를 갈았다. 과연, 마녀들의 악명에 걸맞은 잔혹한 결정이었다.
“안 돼, 우리 아기님이…….”
“린다님!”
린다 유모가 휘청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녀를 부축하는 하인들의 눈에도 눈물이 떨어졌다.
성녀님의 애착 인형을 성녀님의 모습으로 바꾸어놓은 저 간악한 술수, 명백히 황실을 향한 조롱이었다.
악랄한 마녀들이 제국의 보물인 성녀님을 어떻게 대할지…… 그 순한 성녀님이 당할 수모를 생각하면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통일 기념 연회를 틈타 황실에 침입해 성녀를 납치해 간 것은, 신성연합국을 향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아인츠베른은 시종장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 일을 신전에 알리고 기사단을 소집해라. 나샤의 접경지인 세 나라에 협조를 요청해. 마녀의 본거지를 찾겠다.”
“마녀의 본거지라면…….”
식솔들이 숨을 삼켰다. 마녀들의 본거지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대륙 북부 끝의 섬 안에 있다고도 하고, 마계의 문이 열렸던 녹스산 정상에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모두 인간의 손이 닿을 수 없는 험지였다. 이제껏 많은 대사제와 성기사들이 마녀들의 본거지를 소탕하기 위해 나섰으나, 누구도 성공하지 못하고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찾아낼 것이다.”
그러나 아인츠베른의 대답은 단호했다.
성기사들은 가슴에 주먹을 갖다 댔다. 교황이자 성자인 그의 안전이 걱정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안위는 신경 쓰지 않고 성녀를 구하기 위해 돌진하는 그의 강직한 결심에는 기사의 심장이 떨렸다.
‘이 남자가 우리의 수장이다.’
성기사들은 지체 없이 답했다.
“존명!”
그들은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 급히 밖으로 나섰다.
아인츠베른은 방을 나서기 전, 침대 위에 덩그러니 남은 토끼 인형을 돌아봤다.
‘이브엔나, 너는 지금 어떤 상태일까.’
분명 무섭고 힘들겠지. 그렇지 않아도 겁이 많은 아이인데.
아인츠베른은 토순이의 새까만 눈동자를 보며 맹세했다.
얼마가 걸리든,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구하러 갈 테니까.
‘그때까지 부디 무사해라, 이브엔나.’
***
“대마녀니!”
내 외침에 침대에 엎어져 있던 엄마가 부스스 고개를 들었다.
“나 이제 알 거 가타요!”
“으음… 잠은 안 자니, 아가?”
엄마가 반쯤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버거운 듯 팔로 눈을 가리고 나를 올려다봤다.
우리는 아직 의무실에 있었는데, 의무실 침대는 아주 커서 나와 엄마가 같이 누울 수 있었다. 엄마는 내가 또 멋대로 의무실을 나가지 않도록 감시역으로 남아 있었다. 아까는 반디가 감시역이었는데, 잠깐 조는 사이 나를 놓쳐버려서 엄마가 스스로 맡겠다고 나섰다.
그때, 나는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하고 엄마에게 물어봤었다.
‘근데, 알비스는 어디 이써요?’
혼자 알비스를 찾으러 나섰다가 일을 전부 망쳐버렸기 때문에, 이번에는 도움을 받기로 했다. 나를 납치한 당사자에게 탈출을 위한 도움을 받는다는 게 굉장히 이상하긴 하지만.
엄마는 내 질문을 듣고 잠깐 얼이 나간 표정을 짓더니 한숨을 쉬며 답했다.
‘……정말로 회의실에 귀를 설치한 게 너였구나.’
엄마는 고작 그 한마디로 내가 어쩌다 S급 시험장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어떤 목적으로 알비스를 찾는지 전부 눈치챈 것 같았다.
나쁜 아이라고 엄마에게 미움받게 될까 겁났지만, 엄마 아빠가 나 때문에 서로를 미워하게 되는 것보다는 나았다.
하지만 엄마는 나를 질책하지 않으셨다.
다만 몹시 놀란 것 같았다.
‘마법은 어디서 배웠니?’
‘전에 대마녀님이 책, 보여주써서…….’
‘그 잠깐 사이에 그걸 외웠다고?’
이번에는 이야기를 듣던 모든 마법사가 경악했다. 본의 아니게 천재 행세를 하게 되어서 양심이 쿡쿡 찔렸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엄마에게 특질에 대해 물어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엄마는 쉽게 알려주지 않았다.
‘알비스를 찾는다고 곧장 특질을 쓸 수 있게 되는 건 아니야.’
시무룩해진 내게 엄마는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말했다.
‘우선 이 테스트를 통과해봐. 그럼 알려주지.’
“알비스는 이쪽 옆옆방에 있어. 그렇죠?”
나는 눈을 빛내며 물었다.
엄마가 낸 첫 번째 테스트는 마력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마법사를 찾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해를 못 했는데, 화분에서 자라는 거미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
마치 거미가 먹이를 찾듯, 마력을 거미줄처럼 얇게 퍼뜨려 그 속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거였다.
마력이 바닥까지 떨어져서 큰일이었는데. 이 ‘의무실’을 둘러싼 농도 높은 마석으로 적은 마력이나마 회복할 수 있었던 덕택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눈을 뜨지 않았다.
“대마녀니, 자는 거예요? 내 말이 맞쪄, 네?”
“좀…….”
엄마가 불쑥 손을 뻗더니 나를 침대 안으로 끌어당겼다.
별안간 침대 위에서 엄마의 품에 안기게 된 나는 당황해서 허우적거렸다.
시트는 부드럽고 엄마의 품은 따뜻했다.
안 돼, 이러면 졸린데.
“다음 시험은 10시간 동안 자는 거야…….”
‘다음 시험도 있었어?’
놀라서 고개를 들자 엄마는 내 턱 끝까지 이불을 끌어 올렸다.
“코 자자…….”
토닥토닥, 일정한 간격으로 배를 두드리는 손길이 서서히 느려지다가 이내 뚝 끊겼다.
나는 엄마의 품에 꼼짝없이 갇힌 채 눈을 깜빡였다.
엄마는 10시간 동안 자야 특질을 가르쳐 준다고 말했지만.
‘이러면, 이러면 잘 수가 있을까?’
누군가 잠결에 움직이면 다른 한 사람이 깨버릴 텐데…….
나 때문에 엄마가 깰까 봐 긴장돼서 잠이 안 왔다.
나는 슬쩍 눈을 굴려 엄마의 얼굴을 살폈다.
엄마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잠들어 있었다. 긴 속눈썹이 곱게 감겨 있고, 결 좋은 머리칼이 하얀 뺨 위에 엉망으로 흐트러져 있었다. 내 오른쪽 귀에 대고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문득 마탑에 처음 왔을 때 들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아니, 내 애 아니야.’
‘거짓말, 똑 닮았는데.’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엄마의 얼굴을 만졌다.
‘으음…… 닮았나?’
모르겠어. 엄마는 나보다 훨씬 예쁜데.
닮았나? 이렇게 보니까 입매가 닮은 것 같기도…….
“우으…….”
‘헉.’
그때 엄마가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들어 올렸다.
난 흠칫 놀라 몸을 움츠렸다.
그런데 엄마의 손이 부드럽게 내 뺨을 쓰다듬었다.
“자자…….”
“…….”
잠결이었는지, 엄마는 내 뺨에 손을 올린 채 다시 잠들어 버렸다.
나는 도르륵 눈을 굴리다가 엄마의 손등 위에 슬쩍 손을 겹쳤다. 뺨을 덮은 엄마의 손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행복해.’
방에 갇힌 채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엄마의 손이라고 상상하던 때가 떠올랐다.
‘진짜는 이렇구나.’
그때도 버틸 만큼은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날아갈 수도 있을 것 같아.
미래를 생각하면 황성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사실 엄마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모든 일을 해결하고 나면, 엄마 아빠와 같이 살 수 있을까?
계속 같이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 역시…… 버텨내길 잘했어…….’
나는 마지막까지 엄마의 옆얼굴을 눈에 담다가 느릿느릿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