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70)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68)화(70/207)
9. 이브엔나가 돌아왔다.
예하드 제국 황실의 기사들은 차근차근 출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납치당한 아이를 되찾기 위해 당장 출발하고 싶었으나 목적지가 마녀들의 본거지이다 보니 여러 과정이 필요했다.
신성연합국은 8개 나라가 돌아가며 한 분기에 한 번씩 토벌전에 나섰는데, 6개월 뒤가 예하드의 차례라는 게 가장 문제였다.
지금은 전쟁을 준비하며 6개월 동안 신성을 쓰지 않는 금제기간이었다. 심지어 연합국의 주축인 제국의 교황이 자리를 비우는 일이다. 일단 모든 연합국에 상황을 알리고 제국을 대신해 출전해줄 대타를 구하는 게 급선무였다.
다행히 제국의 교황인 아인츠베른에겐 달아둔 빚이 많았다. 그는 16세부터 전장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타국이 흉년이나 재해같이 적절한 이유를 들어 출전을 미뤄달라고 부탁하면 거절하지 않고 타국을 대신해 전장에 나섰다.
그러니 제국에게 은혜를 입은 소국 중 하나쯤은 나서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전하, 시즐란드에 갔던 전령이 돌아왔습니다.”
“그래, 뭐라고 답했지?”
“그것이…….”
시종장의 어두운 얼굴만 봐도 이어질 답을 알 수 있었다.
각 나라는 아인츠베른의 눈치를 봐서 부탁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하나 같이 자국의 상황이 좋지 않으니 조금만 말미를 달라고 했다.
“누구 하나가 먼저 나서줄 때까지 눈치 싸움을 하려는 건가.”
하긴, 왕이나 대사제를 사지로 내몰아야 하는 일이다. 어떤 나라도 달가워할 리가 없었다. 이해는 되지만, 아인츠베른은 그들을 기다려줄 시간이 없었다.
납치 사건은 빠른 대처가 관건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브엔나는 두려움에 떨고 있을 텐데…….”
“전하…….”
시종장과 시녀들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이브엔나는 조금 큰소리만 나도 곧잘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분위기도 잘 읽고 원체 겁이 많았다. 그래서 특히 지난 생일 이후로 누구나 아기님 앞에서는 각별히 말을 조심하고 있었다.
그렇게 여린 풀꽃을 대하듯, 귀하게 모셔오고 있었는데.
“아아, 불쌍한 우리 아기님…….”
시녀들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이브엔나가 사라진 후로, 황실은 완전히 초상집 분위기였다.
따뜻한 황실에서 살벌한 마탑으로 떨어진 이브엔나가 얼마나 고통받고 있을지. 걱정과 시름으로 밥이 넘어가질 않았다.
“안 되겠군.”
아인츠베른이 검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하?”
“황실 기사들 몇만 데리고서라도 출발하겠다.”
“하지만 아직 답이…….”
“답을 기다릴 시간이 없어. 추기경과 정예 기사들은 두고 가지. 혼자만이라도 가겠어.”
“저, 전하! 잠시만 고정하시고…….”
시종장이 몹시 당황해서 아인츠베른을 붙잡았다.
제국의 가장 강한 전력은 아인츠베른이었지만, 그와 함께 전장에 나서기로 되어 있던 정예 기사들도 실력이 좋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제국의 기사단은 연합국의 군대 중에서 가장 작은 규모로 토벌전에 나서서 가장 빠르게 돌아왔다. 아인츠베른이 선봉을 맡은 이후, 첫 출전을 제외하곤 아군의 사망 숫자가 매번 0명을 기록할 정도니까.
하지만 그 정예 기사들조차 두고 가겠다니. 머릿수보단 개개인의 실력으로 승부하는 제국 기사단의 특성상, 일반 황실 기사들을 데리고 가는 건 의미가 없었다. 거의 아인츠베른 혼자서 나샤의 끝으로 향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는 소리다.
“맨몸으로 격전지에 나서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일단 기사단을 정비해서…….”
“아인 전하!”
시종장이 간곡히 아인츠베른을 뜯어말리고 있을 때 기사 한 명이 들이닥쳤다. 이 다급한 상황에 대화를 방해받은 시종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돌아보는데, 기사가 외쳤다.
“성녀님을 찾았습니다!”
***
나는 비교적 인적이 드문 뒤뜰에서 발견되었다.
공간 이동 마법 같은 게 있다는 걸 알면, 그렇지 않아도 마녀들을 두려워하는 제국민들의 경계가 더욱 심해질 게 틀림없으니까.
뒤뜰에 물을 주러 왔다가 나를 발견한 정원 관리인은 눈이 튀어나오게 놀랐다.
그는 일단 지나가는 기사에게 말해 사실을 알렸다. 조금 기다리자 하인들이 담요를 덮어주고 따뜻한 코코아를 안겨주었다.
‘왜 태양궁에 가지 않고 여기서……?’
약간 혼란스러워하며 코코아를 마시고 있자, 곧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브엔나!”
‘아빠!’
나는 고개를 번쩍 들어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았다.
태양을 떼어낸 듯 반짝이는 백금발, 기사들 사이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훤칠한 몸이 단박에 눈에 들어왔다. 늘 호수처럼 잔잔하던 얼굴이 여러 감정으로 흐트러져 있는 것만이 평소와 달랐다.
“이브엔나.”
당장이라도 나를 품에 안을 것처럼 빠른 걸음으로 다가온 아빠는 내 앞에서 멈춰서 한쪽 다리를 굽히고 나를 잠깐 살폈다. 뺨을 쓸어보고 몸을 돌려본다.
“……성아?”
나는 약간 쑥스러운 기분으로 아빠를 불렀다. 내 팔다리가 제대로 붙어 있는 걸 확인했는지, 아빠가 아주 조심스럽게 나를 끌어안았다.
“무사히 돌아와 줘서 고맙다.”
“아…….”
아빠의 목소리에 나는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많이 걱정하셨구나.
엄마에게는 아빠 이야기를 잔뜩 해놓고, 정작 나는 부모님 관계가 악화될 것을 걱정하느라 아빠가 날 걱정하리란 생각은 못 했다.
“아픈 데는.”
“어, 업써요.”
내 몸을 다 살펴 놓고서도 아빠는 내게 한 번 더 상태를 확인받았다.
가까이서 본 아빠의 눈 밑이 평소보다 그늘져 있었다.
하루 이틀 잠을 못 잤다고 다크서클이 생기시는 분이 아닌데…….
난 정말 철이 없는지, 미안한 마음과 동시에 기쁘단 생각이 들었다.
나를 걱정해주는 부모님이 있다는 건 이렇게 든든하고 가슴이 따뜻한 일이구나. 정작 아빠는 내가 딸이란 걸 모르시지만…….
“저, 성녀님, 잠시만 실례를…….”
그때 아빠를 쫓아 온 신관이 우물쭈물 말을 걸었다. 그의 손에는 마른 아우리오 꽃이 들려 있었다.
나는 그제야 정원 관리인과 하인들이 나를 태양궁으로 데려다주지 않고 굳이 아빠가 올 때까지 기다린 이유를 깨달았다.
‘마녀가 내 모습으로 변신해서 왔을까 봐 경계한 거구나.’
“녜, 이부 주떼요.”
“가, 감사합니다.”
아빠의 싸늘한 눈초리를 받은 신관이 쩔쩔매기 시작하자, 나는 먼저 손을 뻗어 꽃을 건네받았다. 황실을 지켜야 하는 이들의 입장에선 당연한 절차다.
아우리오 꽃을 손에 쥐고 신성을 불어넣자, 신성을 먹고 살아가는 꽃이 하얀빛으로 피어났다.
그제야 기뻐하면서도 약간은 불안해 보이던 하인과 기사들의 얼굴에 완연한 안도가 서렸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성녀님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테헤라 신이시여.”
“마녀들이 성녀님을 강제로 데려가서, 해코지를 하진 않았나요?”
사람들이 연민 어린 얼굴로 물어왔다. 그들은 내가 무사히 돌아온 게 무척 기쁘면서도 믿기 힘들어 보였다.
나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고, 사라졌을 때와 똑같이 건강하고 밝은 모습이었으니까.
내가 사라진 것을 보고 황실 식구들은 마녀들이 나를 데려가서 모진 고문이나 생체 실험이라도 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사라진 지 닷새 동안 대가를 요구하지도 않았으니까. 나를 괴롭히기 위해 데려갔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제국에서 생각하는 마녀의 이미지는 그 정도였다.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던지리라는 건 예상한 일이었다.
나는 미리 준비해둔 답을 던졌다.
“마녀님드리 이부 데려간 고 아닌데?”
“네?”
“이부가 몰래 따라가떠요!”
하인들뿐만 아니라 아빠까지 놀란 눈으로 나를 돌아봤다.
“네가 마녀들을 따라갔다고?”
“녜, 재미써 보여서 이부가…….”
난 그렇게 대답하고 아빠의 눈치를 살짝 보며 덧붙였다.
“미안함미다.”
“…….”
“마, 마녀님들은 이부를 따땃하게 대해줘써요.”
하인들과 아빠는 얼이 나간 얼굴로 나를 내려다봤다. 이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듯한 표정이다. 나는 몰래 꿀꺽 침을 삼켰다.
‘넘어가 줄까?’
지난 3년간, 나는 말썽이라곤 저지르지 않는 순한 성녀였다. 타고난 성격은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소피아처럼 밝고 귀염성 있는 성녀는 되지 못했지만, 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했다.
황실 여기저기에 설치한 귀들을 이용해 식솔들의 사정을 파악하여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적당한 선물을 주고 그들을 도와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신전에 꾸준히 다니며 사제들에게 세례를 내리는 법을 전수하기도 했다.
무구한 아기를 마냥 좋아해주던 어른들에겐 미안하지만 내 선행에는 시커먼 속내가 있었다.
그간 내가 혀짤배기소리를 내가면서 열심히 사람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애쓴 건 미래를 위해서였다. 나름대로 인망을 쌓아 내 말에 힘을 싣기 위해서. 그래서 언젠가 부모님을 도와드릴 수 있도록.
“그게 무슨…….”
“마녀들을 따라갔다고요?”
아니나 다를까 내 발언에 하인들은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그들의 술렁임에 과거의 기억이 겹쳐졌다.
‘왜 자꾸 마녀들을 옹호하는 거지? 정말 그 소문이 사실이기라도 한가?’
또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면 어떡하지. 불안감에 심장이 조여왔지만, 나는 용기를 내서 대답했다.
“녜, 이부가 따라가떠.”
다시 마녀로 몰려 죽는대도 나는 엄마의 편을 들 것이다. 그간 쌓아 올린 호감도는 이럴 때 쓰기 위해 모아둔 거니까.
“……이야기는 나중에 듣고, 일단 돌아가자.”
아빠는 내 말을 믿는 건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얼굴로 내게 손을 뻗었다. 아빠가 내 몸을 들어 올리는 순간, 담요에 깔려 있던 무언가가 풀썩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야옹!”
“어?”
나는 아빠의 손에 들린 채 당황한 눈으로 아래를 돌아봤다.
새파란 잔디 위, 부스럭거리며 고개를 드는 새까만 털 뭉치가 보였다.
작고 보들보들한 몸, 쫑긋한 귀, 긴 꼬리. 나를 올려다보는 까만 자갈 같은 눈동자.
녀석을 알아본 내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나는 마탑에서 떠나기 전날 사비나에게서 들은 녀석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