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74)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72)화(74/207)
“안눙하세여…….”
오후가 되어 아빠의 집무실에 놀러 가자, 린드벨 공작과 벤 추기경이 있었다.
벤 추기경은 다정한 분이지만, 린드벨 공작이 함께 있으면 긴장됐다. 미래에는 8명의 추기경 중 하나로 삼촌의 최측근이 되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린드벨은 어쩐지 내게 친한 척을 했다.
“안녕, 이브엔나. 린드벨 삼촌이다.”
‘왜 삼촌이라는 거지? 당신은 우리 아빠의 형제가 아닌데…….’
나는 낯선 눈으로 린드벨을 흘끔거리며 도움을 요청하듯 아빠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그가 머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왜지, 저번에는 안 이랬는데.”
‘……!’
난 그제야 저 삼촌 소리가 내 입에서 시작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삼쭈!’
‘삼촌… 나를 말한 건가?’
‘우! 아나, 아나져여.’
린드벨이 공의회 안건을 가져가지 못하게 하려고, 양손을 뻗으며 한껏 칭얼거렸었지.
잊고 싶은 기억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윽…… 태도가 돌변하면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어쩔 수 없군……. 나는 눈물을 머금고 린드벨을 향해 양손을 뻗었다.
“삼쭈.”
“그래, 삼촌이다. 이제야 알아보네.”
린드벨이 껄껄 웃으며 나를 안아 들었다. 어쩐지 벤 추기경이 부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부, 불편해.’
어울리지 않게 아기를 잘 다루는 린드벨은 나를 편한 자세로 안아주었다. 하지만 나는 몸이 아니라 마음이 불편했다. 미래에서 본 추기경들의 차가운 눈이 생각나 몸이 경직됐다.
리벨 삼촌은 훗날 추기경으로 임명되었다. 명목상 교황인 내가 앉힌 자리였지만, 나는 그의 꼭두각시였으니 자력으로 올라간 것이나 다름없지. 섭정공인데다 추기경인 리벨 삼촌은 같은 추기경들과 고위 신관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그래서 나는 삼촌과 추기경들을 한데 묶어 같은 카테고리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린드벨의 품에 안겨 있다니… 리벨 삼촌의 품에 안겨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공포와 긴장으로 손발이 차갑게 식었다.
내 마음과 달리 린드벨은 흡족한 목소리로 물었다.
“주스 마실래, 이브?”
“녜, 녜에…….”
얼이 나간 채 대답하자, 린드벨이 내게 포도 주스를 쥐여 줬다. 나는 발발 떨리는 손으로 포도 주스가 든 컵을 사약처럼 받아 들었다.
찰나의 순간, 힘이 풀린 손에서 컵이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퍽! 쨍그랑!
“으꺙!”
나는 하얗게 질린 채 비명을 질렀다. 린드벨 공작이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이, 이브님이 다치……!”
벤 추기경이 덩달아 놀라서 내게 다가오다가, 옷자락을 잘못 밟아 바닥에 넘어졌다.
나는 달콤한 포도 주스로 붉게 물들어버린 소파와 공작의 값비싼 구두를 겁에 질려 바라보다가, 벤 추기경이 바닥에 엎어진 것을 목격하곤 완전히 정신이 바스러지고 말았다.
“으아아아아앙! 잘못, 잘못했어요!”
“괘, 괜찮아, 진정…….”
“죄, 죄송해요, 어헝……!”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이렇게 한심한 실수를 하다니. 멍청한, 멍청한 이브엔나.
나는 눈앞이 새하얗게 변해서 용서를 빌며 울음을 터뜨렸다.
울고 싶지 않은데. 제대로 사과해야 하는데. 감정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어린 몸뚱이는 벌벌 떨면서 눈물을 줄줄 쏟아냈다.
결국 아빠가 나서서 영원히 사과를 반복하는 나를 린드벨의 품에서 회수해갔다.
“괜찮다, 이브엔나. 아무 일도 아니야.”
‘위로받을 때가 아닌데.’
실수를 저질러놓고 울다니. 최악이다.
등을 토닥이는 아빠의 손길에 나는 울음을 그치려고 애썼다. 하지만 어른들의 예리한 눈을 속이기는 역부족이었다. 억지로 울음을 삼키려 끅끅대는 소리가 새어 나오자 아빠는 안절부절못하며 나를 꼭 껴안았다.
내가 흘린 눈물이 아빠의 새하얀 셔츠를 적시자, 나는 당황해서 손을 내저었다.
“개, 갠찬아여, 이부가 더, 더럽…….”
“하나도 더럽지 않아. 왜 그런 걸 신경 쓰지?”
사과했는데 아빠의 얼굴이 도리어 어두워졌다. 그러자 벤 추기경이 급히 몸을 추스르고 다가왔다.
“이, 이것 보십시오, 이브님!”
벤 추기경이 평소보다 몇 톤은 높아진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는 치렁거리는 사제복을 걷어서 내 눈앞에 무릎을 보였다.
“새하얗죠? 전혀 다치지 않았답니다. 그러니 걱정할 것 없어요.”
“흑, 흐끕.”
나는 동그래진 눈으로 그의 무릎을 바라봤다. 언제나 몇 겹의 정복으로 가리고 있기에, 추기경의 맨 무릎을 본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그의 말대로 정말 자국 하나 없이 새하얗고 만질만질했다.
린드벨이 옆에서 그의 다리를 품평하듯 훑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운동 좀 해야겠군, 벤 경.”
“큼, 저는 치유 신관입니다. 기사인 당신 기준으로 판단하지 마세요.”
“신관 기준으로 말한 건데?”
린드벨의 딴지에 벤 추기경이 황급히 옷을 내렸다. 실실 웃던 린드벨이 문득 나와 눈이 마주쳤다.
“흐끕, 끕.”
나는 놀라서 시선을 내렸다. 그러자 자연히 내 시야에 젖은 린드벨의 구두와 옷자락이 들어왔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손만 허우적거리는데, 린드벨이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하, 하하! 괜찮아, 이브. 내 구두도 마침 포도 주스를 먹고 싶었다네?”
“구, 구두가여……?”
“그럼그럼, 구두가 고맙다고 전해달래.”
린드벨이 연신 잘했다고 칭찬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실수를 했는데 칭찬을 듣게 된 나는 당황해서 눈만 깜빡였다.
그때 옆에서 린드벨을 지켜보고 있던 벤 추기경이 차갑게 중얼거렸다.
“아무리 어리다 해도 영특한 성녀님이 그런 말을 믿겠습니까? 말이 되는 위로를 해야지…….”
“……크흠.”
내가 그들의 모습을 보며 눈을 깜빡이고 있자, 아빠가 내 뺨을 손가락으로 톡 눌렀다.
“이제 안 우는군.”
“아…….”
고개를 들자, 벤 추기경과 린드벨이 고된 일을 끝낸 노동자처럼 만족스럽게 이마를 쓸어올리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코를 훌쩍이며 미래의 단편만 보고 사람을 판단한 내 편협함을 후회했다.
‘두 분 다 좋은 분 같아……. 린드벨 공작님도…….’
이후로 하인들이 들어와 집무실을 정리했다.
세 사람이 혼내기는커녕 나를 따뜻한 위로해 주어서, 나는 실수를 하고도 전혀 주눅 들지 않은 채 집무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방에 돌아가는 길에, 베일리와 맞닥뜨렸다.
“저녁 간식 시간에 뭐 드시고 싶으신 것 있으신가요?”
“으음, 모가 이쓰까?”
“아기님이 원하시는 건 뭐든지요.”
“우웅…….”
간식이라는 말에 나는 몹시 심각해졌다.
베일리가 만들어주는 음식은 뭐든 맛있지만, 그중에서도 디저트류는 지상 최고로 맛있으니까.
“쫌 걸으면서 생각해봐도 대?”
내 신중한 대답에 베일리가 얼마든지 그러라며 웃었다. 나는 베일리와 정원을 걸으며 과일 타르트와 딸기 케이크 중에서 치열하게 고민했다. 베일리는 둘 다 만들어준다고 했지만 그러면 분명 남기게 될 텐데,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하나라도 남긴다니 안 될 일이다.
“가일 따트!”
난 결론을 내고 대답했다. 베일리가 수더분하게 웃었다.
“네, 그러면 한 시간 뒤 방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웅, 거마어.”
나는 개운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방으로 총총 돌아갔다.
***
주인이 자리를 비운 성녀의 방. 창으로 드리운 노을이 하얀 카펫 위를 불길한 핏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그때, 문밖으로 폭풍전야의 고요를 깨는 구둣발 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짐승은 고개를 들었다. 빛 한 점 들지 않은 새까만 눈이 스르르 열리는 방문을 반추했다.
백금발에 청회색 눈, 크고 다부진 몸. 겉으로 보기엔 호리호리해 보이지만 와직은 그것이 전쟁으로 다져진 몸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보았다. 마수의 검은 피를 흠뻑 적신 채로도 청아한 빛깔을 유지하는 눈동자가 주인이 없는 방 안을 훑었다.
와직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구한 아기의 우유 냄새만으로 가득하던 방에 피비린내가 드리우는 느낌이었다.
의미 없이 방을 더럽히던 남자의 시선이 한 점에 멈춰 섰다.
“와직…….”
남자의 붉은 입술이 짐승의 이름을 읊조렸다. 기민한 짐승은, 그 목소리에 담긴 적의와 의심을 읽을 수 있었다.
아인츠베른은 한참 짐승의 눈을 들여다보다 등을 돌렸다. 아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려는 듯, 그의 발길이 소파를 향했다.
짐승의 검은 눈에 분노가 들끓었다.
문 너머에서 들리던 아이의 비참한 울음소리가 아직도 생생했다. 자신은 고결하다는 듯 온몸에 하얀 장식물을 두른 남자는, 아기가 돌아오면 폭력적인 본성을 드러낼 것이다. 저 반반한 얼굴로 아가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분노로 손이 떨렸다.
아이를 향하는 폭력적인 본성이라면, 짐승에게도 본성이 있었다. 그건 그와 같은 남자만 보면 불이 붙고 마는 강렬한 충동이었다.
짐승이 입을 열었다.
“아인.”
소파로 향하던 아인츠베른의 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이 방에 사람은 나밖에 없었을 텐데?
그가 의아하게 고개를 돌리는 순간.
퍼억!
아인츠베른의 얼굴로 분노에 찬 주먹이 날아왔다.
늘 무감하던 청회색 눈동자가 충격으로 커졌다.
휘날리는 분홍색 머리칼, 한 번 보면 잊기 힘든 아름다운 얼굴. 린제나 그레인저가 어쩐지 잔뜩 성이 난 채 그에게 주먹질을 하고 있었다.
한계까지 단련된 아인츠베른의 신체는, 정신적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털썩 무너졌다.
“……대마녀니?”
그때, 문가에서 들린 앳된 목소리에 두 사람은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맛있는 간식을 먹을 기대에 부풀어 경쾌한 발걸음으로 돌아온 이브엔나가 입을 틀어막고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