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77)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75)화(77/207)
이브엔나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방을 떠나간 후, 남겨진 두 사람 사이에는 냉랭한 적막만이 맴돌았다.
린제나와 아인츠베른은 소파에 앉은 채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으나 각자의 머릿속은 온갖 물음들로 시끄럽게 술렁거렸다.
“와직이…….”
먼저 입을 연 건 아인츠베른이었다.
“평범한 고양이가 아닐 수도 있단 생각은 했지만, 당신일 줄은 몰랐군.”
“추리력이 부족하네.”
“왜 이브엔나를 노리는 거지?”
“…….”
린제나는 대답 대신 시큰둥한 얼굴로 손톱을 내려다보고, 소파에 몸을 파묻으며 꼬고 있던 다리의 방향을 바꿨다.
태어나서 한 번도 무시를 당해본 적이 없었던 아인츠베른은 잠깐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몇 번 “이봐?”라고 불러본 뒤에야 그녀가 의도적으로 대답하지 않고 있다는 걸 파악했다.
불쾌해진 아인츠베른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묻는 말에 대답해, 황성에 숨어든 이유가 뭐야.”
“…….”
“지금은 왜 또 엘리자베스 양의 모습을 하고 있지?”
“…….”
“……그날, 네가 이브엔나를 데려간 건가?”
린드벨 공작은 마탑에서 이브엔나를 납치한 강경파와 그에 반발한 온건파가 충돌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린제나는 어느 쪽인가?
아인츠베른은 그것이 알고 싶었다. 린제나가 이브엔나를 납치한 사람인지, 아니면 아이를 황성으로 돌려보내 준 사람인지.
아인츠베른은 린제나가 온건파이길 바랐다.
적어도 이브엔나를 그에게서 빼앗아간 납치 주동자는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뭐가 중요해?”
하지만 린제나는 그런 기대를 비웃듯이 반문했다.
“어느 쪽이든 나는 어차피 너희의 법률상 처형 대상 아닌가?”
“…….”
일리 있는 말이었다.
할스테리어를 비롯한 나샤 접경국에서는 마녀를 마수로 간주했다. 제국법은 그중 가장 유한 편이긴 했다. 마법 혹은 마도구를 이용하여 즉각적이고 치명적인 폭력을 가하려 한 경우에만 마녀를 마수로 간주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린제나는 이미 아인츠베른의 목에 칼을 들이댄 전적이 있었다. 독과 폭탄을 이용한 그녀의 공격은 아인츠베른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남겼었다. 그런 데다 지금은 모습을 바꾸고 몰래 성녀의 방에 숨어들기까지 했다.
황실 불법 침입에 황족 시해 죄까지. 제국법 기준으로도 린제나는 여지없이 처형일 것이었다.
하지만 아인츠베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건 내가 판단해.”
그랬다. 유일한 사건의 목격자이자 피해자인 아인츠베른이 ‘별로 치명적이지 않았다’라고 주장한다면 어영부영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다.
퍽 자비롭게 들리는 대답에 린제나는 헛웃음을 쳤다.
요령 없어 보이는 얼굴로 참 사람을 잘 다룬다 싶었다.
위험을 감수하고 황궁에 숨어든 건 잘한 일이었다.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저 반반한 남자의 실체를 절대 알지 못했겠지.
그리고 이브에게 어떤 상처가 있는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리라.
‘으아아아아앙! 잘못, 잘못했어요!’
아가의 처참한 울음소리가 잊히지 않았다.
역시 위원회의 추론이 맞았던 것이다. 3살밖에 안 된 아이가 아무 이유 없이 그렇게 사람을 무서워하게 됐을 리가 없다.
진실을 알고 나자 이브엔나가 보여준 모든 표정과 행동들이 새삼스레 마음에 사무쳤다. 아가가 혼자서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을까.
그렇게 작고 순한 아이에게 어떻게 폭력을 행사할 수가 있지.
아가의 울음을 들었을 때, 린제나는 그 자리에서 집무실 문을 부수고 아가를 구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녀라도 혼자서 교황과 고위 사제 두 명을 한 번에 상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그녀는 제발 일을 크게 키우지 말라는 마탑 식구들의 당부를 떠올리며 간신히 참았다.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지만, 만약 그때 집무실 앞에 가지 않았다면 아인의 그럴듯한 겉모습에 홀랑 넘어가 버렸겠지.
가증스러운 쓰레기 자식. 린제나는 이를 갈았다.
“그렇다고 하면 어떡할 거지?”
“뭐?”
아인츠베른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녀가 이브엔나를 납치해 간 사람만은 아니길 바랐는데.
린제나는 그의 마지막 희망을 깨뜨리는 데 거침이 없었다.
“연회 날, 아가를 데려간 건 나야.”
“……그럼 이 황성에 숨어든 건.”
“다시 데려가려고.”
아인츠베른은 이를 악물었다. 역시, 린드벨의 추론이 맞았다.
이브엔나는 마녀들과 재밌게 놀다가 왔을 뿐이라고 주장했고, 황실 식구들은 마녀들이 아이에게 감화되어서 돌려보내 주었다고 추론했다.
하지만 굳이 황실로 돌려보내 주었다가 다시 데려가려고 온 걸 보면, 마탑에 내부 충돌이 있었다는 게 맞는 듯했다.
아인츠베른의 눈동자가 사납게 빛났다.
“이유가 뭐야, 복수인가?”
마녀들이 이브엔나를 납치한 이유로 나온 추론은 복수, 협박, 전쟁의 선전 포고 등이 있었다. 마녀들이 동료의 구조보다는 복수를 택하여 제국의 보물인 성녀를 데려갔다는 건 개중 가장 나쁜 추론이었다.
하지만 린제나의 대답은 그보다 더 나빴다.
“고작 이브를 데려가는 게 복수라고?”
아인츠베른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황실의 소중한 성녀를 납치해가는 게 그리 잔인한 일도 아니라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우리의 메시지는 받았겠지, ‘우리의 자매를 건드리면 너희의 형제도 아작내버리겠다’고.”
린제나는 짓씹듯이 말했다.
“잘 봐, 우리는 약속을 지키니까. 당한 만큼 갚아줄게.”
그녀는 더 이상 황자가 왜 아기 마법사를 거둬 키우며 괴롭히기로 마음먹었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이브엔나를 마법사로 키워내 마탑을 일망타진할 계획이었든, 혹은 성녀로 키워내서 신전 정치를 장악하고 싶었든. 그의 야심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다.
아인츠베른은 그녀가 아기를 납치해 제 계획을 어그러뜨린 것만으로도 복수를 당했다고 생각하는 듯했지만, 그건 구조지 복수가 아니었다.
원래는 조용히 사라지려고 했으나 아인츠베른의 뻔뻔한 작태에 마음이 바뀌었다.
이브엔나가 당한 것의 8배로 갚아줄 것이다.
“이해할 수가 없군.”
아인츠베른이 중얼거렸다.
“그렇게까지 화를 내면서, 왜 이델리를 데려가지 않은 거지?”
“…….”
린제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놀리는 건가?
이델리는 신전이 멋대로 마녀라고 판단한 범죄자의 이름이었다. 그런데 저따위 말을 하다니. 명백한 조롱이었다.
서로를 노려보는 두 사람의 시선 사이로 전극이 튀었다.
‘겉모습만 그럴싸한 뻔뻔한 아동 학대범.’
‘사람 마음을 가지고 노는 교활한 납치범.’
린제나는 상대를 도발하고도 팔짱을 낀 채 무방비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하지만 아인츠베른은 그녀가 보내는 강렬한 살기를 느꼈다.
연회장 테라스에서의 경험으로 그는 린제나가 성기사와의 싸움에 능숙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아인츠베른은 린제나의 방만한 모습을 보면서도 방심하지 않고 먼저 검에 손을 옮겼다.
“……?”
그리고 아인츠베른은 이상을 느꼈다. 손바닥에 닿는 감촉이 얼음을 만진 듯 미끄럽고 차가웠다. 시선을 내려보니 검과 검집이 깡깡 얼어 있었다. 검이 검집에서 빠져나오지 않아 아인츠베른은 잠깐 주춤했다.
그 짧은 틈 사이, 린제나는 허공에 마법진을 그리고 있었다.
사제나 일반인은 눈치챌 수 없는, 마녀들의 눈에만 보이는 검은 마법진이 린제나와 아인츠베른의 머리 위, 다리, 그리고 등 뒤에 연쇄적으로 그려졌다.
“무슨 냄새지……?”
아인츠베른이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는 문득 메스꺼운 황산 냄새 같은 것이 머리 위와 발밑에서 피어오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의아한 얼굴의 아인츠베른을 보며, 린제나의 눈이 반짝 빛났다.
‘벌써 4가연성에테르의 냄새를 맡은 건가? 개 같은 후각이군.’
린제나의 눈에는 마법진에 잔뜩 둘러싸인 아인츠베른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전기 마법을 발동시켰다.
마법에는 마수의 마석에서 따온 ‘저주’와 마계의 광물에서 따온 ‘순수 마법’이 있었다. 공격 마법은 대부분 저주에 속했으나 마법사들은 대체로 저주를 운용하지 못했다. 세간의 인식과 달리, 마법사들이 쓰는 마법은 대체로 무해했다.
그래서 린제나는 원소 마법을 창시했다. 마수들이 쏟아져 나오는 녹스산 위에서 불을 지피고 온갖 화학 물질을 부어가며 원하는 마석을 발굴할 때까지 문자 그대로 삽질을 했다. 이것이 그렇게 얻어낸…….
“폭발.”
파지직, 퍼펑!
능률 좋은 연료인 4가연성에테르에 라이트닝 볼트로 부지깽이 역할을 할 전기 스파크를 일으켜주자 검은 연기와 함께 연속적인 폭발을 일으켰다. 그 반향으로 린제나가 앉아 있던 소파가 그녀와 함께 뒤로 넘어갔다.
쿵!
“윽…….”
린제나는 작게 신음하며 고개를 들었다. 미리 쳐둔 여러 겹의 보호 마법이 검은 폭발의 반향으로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린제나는 황급히 보호 마법을 다시 두르며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일으킨 폭발 탓에 어린 이브엔나의 아기자기한 방은 온통 하얀 연기로 가득했다.
“죽었나?”
린제나가 기대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순간,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녀가 채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그것이 머리 위를 내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