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78)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76)화(78/207)
“윽!”
쩡! 커다란 소리와 함께 보호 마법이 깨졌다. 간신히 직접적인 타격은 피했으나 보호 마법이 모조리 깨지며 생긴 충격이 머리에 전이되었다. 정신이 어질해지는 느낌에 린제나는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그러나 쓰러지는 와중에도 몸에 방어 마법을 거는 것을 잊지 않았다. 눈앞이 새까맣게 점멸해도 신경 쓰지 않고 손으로 바닥을 짚어 몸을 뒤집었다.
그리고 반격했다.
<상급 마법 : 프리징>
아인의 검을 얼어붙게 만들었던 마법이 이번에는 그의 몸을 일시적으로 마비시켰다.
간신히 연속 공격만은 차단했다. 시야가 제대로 돌아오자 린제나는 아인츠베른을 보며 눈을 깜빡이다가 흠칫 굳었다.
그녀의 입에서 낮은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근사한 모습인데?”
“…….”
폭발의 순간, 아인츠베른은 권능을 몸에 둘러 방어했다. 이전의 기억을 되살려, 물리적 방어와 화학적 방어를 각각 반씩 대비했다. 그 덕에, 육체적 타격은 크게 입지 않았다. 대신…….
린제나처럼 공기막 같은 방어 마법을 친 게 아니라서, 폭발과 함께 흘러나온 화학 물질을 그대로 덮어쓰게 됐다.
새하얀 정복과 반짝이던 백금발, 단정한 얼굴 위로 검댕이 마구 묻었다. 마치 굴뚝 청소부처럼.
하지만 당연하게도, 아인츠베른은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내 모습이 어떻다는 거지?”
“으하하하! 그 얼굴로 진지하게 말하니까…… 너 진짜…….”
아인은 언짢은 눈초리로 바닥에 주저앉아 끅끅거리는 린제나의 모습을 내려보았다.
전투에서 낮은 위치가 대체로 불리하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린제나는 바닥에 쓰러져서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자세도 허점투성이. 불세출의 성기사인 아인츠베른의 눈에는 그녀의 모든 것이 연약한 민간인으로만 보였다.
하지만 아인츠베른은 알고 있었다. 그녀의 겉모습에 속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방금의 폭발도 놀랐지만, 더 이상한 건 이 폭발음을 듣고도 아무도 방으로 달려오는 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인츠베른은 나샤 접경국인 세 나라가 왜 그렇게 마녀를 두려워하는지 이해했다. 공격은 막으면 되지만 이렇게 이상한 능력은 대비할 수가 없었다.
‘방심해선 안 되겠군.’
아인츠베른은 검집 그대로 검을 들어 신성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린제나를 향해 쿵 하고 찍었다.
“……뭐야?”
린제나는 분홍색 눈을 굴려 자신의 왼편을 돌아봤다. 신성에 둘러싸여 하얗게 빛나는 검이 검집째로 바닥에 박혀 있었다. 검 주변으로 날아간 돌 조각이 보였다.
린제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폭발 때문에 얼음도 다 녹았을 텐데, 왜 아직도 검집째로 쓰는 거지.”
“마지막 경고다.”
아인츠베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린제나는 그가 재밌어 죽겠다는 듯 큭큭거렸다.
“내 머리를 쳐서 기절이라도 시켰어야지. 알량한 기사도 때문인가? 아니면…….”
린제나가 왼쪽 손을 들어 검집을 톡 하고 건드렸다. 린제나의 가지런한 손톱이 하얀 검집 위를 긁어내린다. 검집에 휘감긴 반짝이는 신성이 린제나의 마력에 부딪히며 파직거리는 소리를 냈다.
“성자는 신탁을 받는다지? 정말 멋진 이야기야. 아인, 나도 예언 하나 할게. 네가 오늘 패배한 이유는, 나를 얕봐서일 거야.”
아인츠베른은 굳은 눈으로 붉은 입술이 속삭거리는 모습을 내려보았다. 그녀는 가시가 잔뜩 박힌 장미처럼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눈을 마주쳐왔다.
“방금 그게 나를 죽일 마지막 기회였거든.”
“……뭐?”
펑!
반문하는 순간, 린제나의 몸에서 연기가 솟아났다.
연기가 린제나의 모습을 감추자 아인츠베른의 곧장 칼을 집어 들었다. 시야를 차단하고 급습하려는 전략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린제나는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짧은 시야 정도는 확보될 정도로 연기가 걷혔다. 마침내 드러난 광경에 아인츠베른의 눈이 가늘어졌다.
린제나가 있던 곳에는 그녀를 대신해 낯익은 인형이 누워 있었다. 보드라운 분홍색 털을 가진 작은 토끼 인형.
“……토순이?”
언제부터 가짜였던 거지?
아인츠베른은 곧장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욱이 깔린 연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살필 수 없지만, 소리나 기척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아직 방을 나가지 않았다는 걸.
쐐액!
그때 등 뒤에서 무언가가 날아왔다. 아인츠베른은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그것을 잡았다.
“아.”
눈에 익은 초록색 단도를 발견하자마자 그것을 다른 방향으로 던졌으나, 멀리 날아가지도 못하고 폭발했다. 아인츠베른은 또다시 권능을 둘러 공격을 막았다. 그러자 눈과 코로 붉은 가루가 훅하고 들어왔다.
“콜록, 콜록……!”
매워, 뭐야…….
린제나가 물리적 공격과 화학적 공격을 동시에 해서, 아인츠베른은 그에 맞춰 방어 비율을 반반으로 맞췄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한쪽으로 공격해오고 있었다.
아인츠베른은 손등으로 붉게 변한 눈가를 쓸었다.
“후…….”
그의 입에서 분노를 삭이는 듯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기척을 숨기는 능력만큼은 뛰어난지, 또다시 연기 속으로 완벽하게 몸을 숨긴 후였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으니, 그리 넓지도 않은 방이 안개가 자욱이 깔린 수풀처럼 막연하게 느껴졌다.
흐릿한 시야에, 어렴풋한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아인츠베른은 검집을 손으로 쥐었다.
‘네가 오늘 패배한 이유는, 나를 얕봐서일 거야.’
린제나의 말은 옳았다. 그에게나 그녀가 위협적이지 않지, 이브엔나 같은 어린아이나 전투형 사제가 아닌 하인들, 시녀들에게는 충분히 해를 끼칠 수 있었다. 한계를 알 수 없는 기괴한 술법들 하며…….
‘기절만 시킨다면…….’
대화로도 안 되고 위협으로 안 된다면 포박해야겠지.
아인츠베른은 검을 쥔 손에 힘을 주고, 인영을 급습했다.
퍽!
“아, 안 돼…….”
외마디 비명과 함께 분홍색 머리가 바닥으로 풀썩 쓰러졌다.
아인츠베른은 살짝 당황했다. 아까 전처럼 보호 마법을 걸었을 줄 알고 그때보다 좀 더 강한 세기로 공격했는데, 그대로 몸에 맞는 듯한 감촉이 들었다.
“린지?!”
아인츠베른은 다급히 곁에 다가가 쓰러진 린제나의 머리를 들어 올렸다. 그런데 그녀가 스르르 녹아내리더니 손아귀 사이로 빠져나갔다.
아인은 곧장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일어났다.
“어디야.”
쐐액!
질문하기 무섭게 단도가 날아왔다. 아인츠베른은 재빨리 검집으로 공격을 쳐내고, 단도가 날아온 방향으로 달려갔다.
이브엔나의 침실 방향이었다. 거기 숨어 있었던가.
“꺄아악!”
퍽!
검집으로 비명을 지르는 린제나를 치자, 그녀가 풀썩 뒤로 넘어갔다. 그리고 바닥에 스며들어 사라졌다.
아인츠베른은 놀라지 않았다. 소리를 듣자마자 가짜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 오만한 여자가 저런 식으로 비명을 지를 리 없으니까.
아인츠베른은 아예 두 눈을 감아버렸다.
괜히 정신을 흐리게 만드는 시야를 차단하고 소리와 감각에 의지해 공격을 쳐내고, 린제나의 분신을 찾아내 공격했다.
죄다 꺅꺅 소리를 내며 연약하게 풀썩 쓰러져버린다. 반복되는 린제나의 마지막 모습이 보기 싫어서 중간부터는 아예 확인하지도 않았다.
이브엔나를 납치하고 그를 죽이려 한 주제에.
“언제까지 깔짝거리기만 할 거지?”
그는 분노가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인츠베른은 검집을 붙잡고 엄지손가락으로 손잡이를 탁, 탁 밀어 올리길 반복했다. 서슬 퍼런 날이 잠깐 모습을 보였다가, 다시 검집 속으로 감춰졌다.
“나와!”
린제나의 공격은, 솔직히 말해서 그에게 타격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자질구레하게 신경을 깎아 먹어서 기분을 바닥 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아니, 사실은 그녀와 대화를 나눌 때부터 그랬다.
‘왜 이브엔나를 납치한 게 너냐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거야?’
린제나 그레인저는 첫 만남에 스스로를 대마법사라고 소개했었지. 대마법사라는 게 상대를 열 받게 하는 걸 기준으로 뽑는다면 인정할 만했다.
“린제나 그레인저.”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인츠베른은 아차 했다.
설마, 도망쳤나?
계속해서 자욱이 깔리는 안개 때문에 린제나가 여기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설마 이것 때문에 그녀를 놓쳤다면 큰 낭패였다.
‘금제기간에 신성을 쓰는 게 꺼려지긴 하지만…… 이젠 어쩔 수 없군.’
“이제부터 벽을 무너뜨릴 테니, 방에 남아 있다면 피해라.”
아인츠베른은 검집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신성력을 쏟아붓자 검신이 웅웅거리며 하얗게 빛났다. 아인츠베른은 칼을 세로로 베어, 벽을 향해 오러를 날렸다.
콰콰콰쾅!
벽이 흔들리는 소리, 쩡쩡거리며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아인츠베른은 그것을 몇 번 반복해 한쪽 벽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그제야 방 안을 메운 연기가 빠져나가며 난장판이 된 방이 눈에 들어왔다.
군데군데 그을린 자국이 있는 바닥, 뒤로 넘어간 소파, 터져 나온 솜들, 무너진 선반, 깨진 거울. 부서지고 망가진 아기 용품들. 그리고…….
“……린제나?”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는 린제나의 모습이었다.
아인츠베른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번에도 그를 현혹하려는 거짓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흐윽…….”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당황했다.
쇠 비린내 같은 피 냄새가 훅하고 끼쳐왔다. 린제나가 잘게 몸을 떨며 자신의 배를 내려다봤다. 그 낭패감 어린 얼굴을 보자 뒤늦게 깨달았다.
그게 진짜 린제나라는 걸.
“린지?”
“아, 안 돼…….”
아인츠베른이 린제나의 어깨를 받쳤다. 그러자 그녀가 잘게 떨면서 입을 열었다.
“아, 안 돼, 난 아, 아직, 할 일이, 있는데…….”
“진짜 너야? 왜, 왜 피하지 않…….”
아인츠베른의 청회색 눈동자에 린제나의 얼굴이 비쳤다.
꽃잎 같은 분홍색 머리칼, 이브엔나와 묘하게 닮은 얼굴. 오만한 표정을 짓거나 빈정거릴 때는 전혀 비슷해 보이지 않았지만, 눈꼬리를 내리고 밭은 숨을 내쉬자 몹시도 닮아 보였다.
마치, 이브엔나가 크면 이렇게 자랄 것 같이.
“아인.”
린제나가 떨리는 손을 올려 아인츠베른의 뺨을 만졌다. 마르고 가냘픈 손, 보드라운 손바닥. 그 감촉을 느끼며, 그는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아인츠베른을 올려다보는 린제나의 눈은 더 이상 화가 나 보이지도 아파 보이지도 않았다. 다만 짙은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네게 못다 한, 말이…….”
말을 채 끝내지도 못하고 입술이 다물렸다. 그의 뺨을 더듬던 손이 아래로 스르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