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83)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81)화(83/207)
“…….”
아빠는 대답 대신 돌연 포크를 집더니 블루베리 케이크를 작게 잘라 입에 넣었다. 나는 흠칫 놀랐다.
‘우리 아빠는 단 거 싫어하는데?’
많이 당황하신 게 틀림없다. 그걸 보고 있자 어쩐지 머릿속이 환해지는 기분이었다.
‘이건 설마…… 호재인가?’
나는 똑똑히 기억했다. 아빠가 죽은 엄마를 안고 울고 계시던 모습을.
물론 우리 아빠는 무척 다정하신 분이라 어떤 죽음 앞에서도 슬퍼하실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빠가 떠올린 최악의 악몽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어쩌면…… 우리 엄마 아빠의 망한 로맨스, 아직 회생 가능성이 있을지도!?’
비록 서로의 멱살을 잡고 모욕을 주고받으셨지만, 마음속으로는 서로를 사랑하고 계신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하니까 갑자기 희망이 없어 보이네. 멱살을 잡으면서 서로를 사랑한다는 게 과연 말이 되는 일일까?
설령 아빠가 악몽을 꾸고 계실 때까지는 엄마를 사랑했대도 혈투를 벌이는 동안 마음이 다 식었을 것 같았다.
내가 희망과 좌절 사이에 갈팡질팡하는 동안, 엄마는 대답해줄 기색이 없는 아빠를 앞에 두고 혼자 추론에 나섰다.
“흐응, 대체 무슨 꿈을 꿨을까. 보통 악몽 하면 귀신이나 살인마 같은 것들이 떠오르지만…….”
“…….”
“전쟁터를 몇 번이나 나가신 몸이니 웬만큼 무서운 것에는 눈 하나 깜짝 안 할 테고.”
엄마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동안, 아빠는 말없이 블루베리 케이크를 퍼먹었다. 나는 두 사람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그때, 엄마가 “앗.” 하고 입을 열었다.
“설마 아가가 잘못되는 꿈인가? 그럼 너무 미안한데…….”
“그런 걸 알아내서 뭐에 쓰려고?”
아빠가 포크를 탕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역시 케이크를 먹는 사이 그의 기분은 아까보다 훨씬 더 저조해져 있었다. 아빠와 엄마 사이에 감도는 공기가 서늘하게 진동했다. 가만히 노려보는 것만으로도 웬만한 마수는 죄다 무릎 꿇고 말 것 같은 기운이 아빠에게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엄마는 모든 기사의 경외를 받는 성 에퀴테스의 그러한 분노까지 흥미 요소에 불과하다는 듯 가볍게 말했다.
“그렇게 예민하게 구니까 더 궁금한데.”
“하.”
아빠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쳤다. 그는 내 쪽을 한 번 보더니 크게 숨을 내쉬었다. 마치 내 존재를 상기하며 화를 누그러뜨리려는 듯이.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다시는 내 머릿속에 들어오지 마.”
“무섭기도 해라.”
“한 번 더 그딴 수작을 부리면, 그땐 나도 가만있지 않을 거야.”
“가만있지 않을 거면 뭐. 죽이게?”
엄마의 도발 같은 반문에 아빠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나는 아빠가 어떤 장면을 떠올리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니.”
아빠가 대답했다. 언제나처럼 단호한 말투였지만 나는 그 속에 어린 씁쓸함을 읽을 수 있었다.
“어떻게 그토록 가볍게 말하는 거지? ……하긴, 네겐 모든 게 장난이겠지.”
아빠가 체념한 듯 중얼거리며 테이블에 있던 냉수를 들이켰다. 내 어릴 적 기억이 그의 얼굴 위로 겹쳐졌다.
지금보다 좀 더 나이가 많고, 좀 더 마르고, 작은 바람 앞에도 위태로워 보였던 미래의 아빠. 많이 아팠을 텐데도 내게 엄마와의 첫 만남 이야기를 들려줄 때는, 소년처럼 맑게 웃던 아빠의 목소리가.
순간적으로 울컥 감정이 북받쳤다.
“대마녀니.”
얌전히 타르트만 축내던 내가 불쑥 끼어들 줄 몰랐는지 두 분이 멈칫했다.
나는 아빠의 팔을 감싸 안으며 엄마를 향해 강경히 말했다.
“우리 성아 갖구 놀지 마세여.”
“푸흡!”
물을 마시다 사레가 들리신 걸까. 아빠가 돌연 콜록거리며 기침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자 병약했던 아빠의 모습이 떠올라서 더 마음이 찡했다.
“아, 아가, 나는 너희 성하를, 크흡, 가, 갖고 놀지 않았단다.”
“그래, 이브! 갖고 놀아지지도 않았어!”
어쩐지 두 분 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 입을 모아 말했다.
엄마는 테이블에 양팔을 괴고 손으로 얼굴을 묻은 채 작게 떨며 말했다.
“흐읍, 네가 쓸데없이 진지하게 구니까 애가 오해하잖아.”
“내 탓이라고?”
엄마의 웃음기 서린 말에 아빠의 얼굴색이 바뀌었다.
“네 경박한 태도가 아이까지 혼란스럽게 만든 거겠지.”
“내가 뭘,”
“또 싸우는 거예요?”
내가 눈물을 글썽이며 묻자, 두 분이 곧장 고개를 저었다.
“싸우다니, 아니다.”
“맞아, 장난! 그냥 장난한 거야, 아가.”
다급히 말을 맞추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자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나는 신뢰라곤 없는 눈으로 부모님을 흘겨보며 말했다.
“아까두, 잔난이라구 해노코…… 타뜨 가지고 오니까 싸우고 이써따.”
“…….”
“……미안.”
엄마는 진심으로 미안했던지 나를 안아 들어 자신의 무릎 위에 앉히고 꼭 안아주었다. 따뜻한 포옹에 불만이 눈 녹듯 사라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엄마의 품에 안겨 아빠를 돌아보고 말했다.
“성아, 그래두 대마녀니 조은 분이세요.”
“그래?”
“녜…… 이부를 지켜주려구 해써.”
내가 딸인 걸 모르실 텐데도.
엄마에게 나는 고작 만난 지 며칠 된 고아일 뿐일 텐데. 만난 후 지금까지 귀찮아하는 기색 하나 없이 모든 응석을 받아주었다.
생각해 보니 지금 이렇게 황성에 계신 것도 내가 황성에서 괴롭힘을 받을까 걱정돼서 따라오신 것 같고. 아빠와 적대한 것도 그저 아빠가 어린애를 괴롭히는 못된 사람이라고 오해해서였는걸.
고마운 마음에 난 엄마의 손에 뺨을 비볐다. 그제야 엄마가 안심한 얼굴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빠의 시선이 그녀의 손에 닿았다.
“……적어도 아이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은 것 같군.”
“당연하지, 난 너와 다르니까.”
“대마녀니!”
아직 오해가 다 풀리지 않은 걸까?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엄마의 손을 붙잡았다. 엄마가 주춤하며 내 손을 내려봤다.
“으음, 미안.”
엄마는 한풀 꺾인 얼굴로 재차 사과했다.
내가 신성을 쓸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후에도 엄마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다정하고 온화했다.
고작 세 살짜리 혼혈 꼬마에겐 이렇게 약하면서, 왜 제국 제일의 성기사인 아빠에겐 그토록 날을 세우시는 걸까?
‘나 때문이겠지.’
내가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이자, 엄마는 당황한 기색으로 이것저것 집어서 내 입에 넣어줬다. 나는 참새 새끼처럼 엄마가 주는 족족 받아먹으면서도 기운을 내진 못했다. 내 눈치를 본 엄마 아빠가 더는 싸우지 않고 평화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 안 싸우게 하려면 계속 풀 죽어 있어야겠다.’
그건 부부싸움을 멈추는 데 효과적이었지만, 한 가지 부작용이 있었다. 입을 다물고 기운 없이 처져 있자 졸음이 몰려왔던 것이다.
내가 잠들면 또 싸우실 텐데. 나는 몰아치는 수마를 버티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성아, 대마녀니…….”
“응, 아가야.”
“졸린 건가.”
사랑하는 부모님이 동시에 내 부름에 답해주자 졸린 와중에도 마음이 포근해졌다.
두 분 다 너무 멋지고…… 다정하고…… 이렇게 잘 어울리는데…… 싸우지만 않으면 진짜 좋을 텐데…….
“이부 잔다구…… 싸우면 안 대…….”
결국 나는 그 말만을 유언처럼 남긴 채 까무룩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
분홍 머리의 아기가 린제나의 다리를 베고 천사처럼 얌전히 잠들어 있었다. 린제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아이의 흐트러진 앞머리를 부드럽게 쓸어올려 주었다. 이브는 얼핏 눈을 뜨나 싶더니 곧바로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린제나는 잠에 취한 아이가 사랑스럽다는 듯 작게 미소 지었다.
“아이들을 좋아하나 보군.”
반대편에서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던 아인츠베른이 문득 말했다. 그러자 린제나가 헛웃음을 쳤다.
“누가, 내가?”
“아닌가?”
“사비나가 들으면 비웃음이나 살걸.”
“사비나?”
아인츠베른이 의아하게 린제나의 말을 되새겼다. 린제나는 말을 아끼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지만, 그 덕에 아인은 사비나가 마녀의 이름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얼마나 더 있는 거지, 너 같은 마녀가.”
“탐색하려 들지 마.”
“이 정도 질문도 대답 못 하는 건가.”
“아깐 아가의 앞이라 어쩔 수 없이 넘어갔지만, 난 너 안 믿어.”
“하.”
아인츠베른이 반복되는 말다툼이 지겹다는 듯 짧게 탄식했다.
“아직도 그 말도 안 되는 오해를 못 버린 건가. 난 이브엔나의 보호자야. 무엇보다, 교황인 내가 성녀를 괴롭힐 이유가 뭐가 있겠어.”
“내 귀로 아가의 울음소리를 똑똑히 들었거든.”
“울음소리?”
“그래. 오늘 낮에, 집무실 안에서. 잘못했다고 우는 소리와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어.”
“오늘 낮이라면…….”
아인츠베른은 바로 떠올려냈다. 집무실에서 그런 소리를 들었다면, 이브엔나가 포도 주스를 엎은 일밖에 없었다.
‘으아아아아앙! 잘못, 잘못했어요!’
“아, 그건가.”
아인츠베른은 작게 실소했다. 밖에서 들었다면 확실히 오해할 만한 소동이었다.
“왜 웃는 거야?”
“내가 다 설명하지.”
그는 오늘 집무실에서 일어났던 일을 설명해줬다.
이브엔나가 린드벨 공작에게 안겨서 포도 주스를 마시다가 엎었고, 그러다 컵이 깨져 울음을 터뜨린 사건을.
워낙 이브엔나가 소심한 성격이라 놀랐을 뿐이지, 사건이랄 것도 없었다. 세 사람이 열심히 달래서 아이의 기분도 잘 풀어주었다.
하지만 아인츠베른에게 내막을 듣고 나서도 린제나는 의구심이 가시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잖아.”
린제나는 얌전히 잠든 아이의 얼굴을 흘긋 내려다보곤 말했다.
“아가의 성격이.”
“……아.”
“모두에게 사랑받는 성녀라면, 아가의 성격이 왜 그렇게 됐지?”
“그건.”
아인츠베른은 당황한 듯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벙긋거렸다.
그조차도 이브엔나의 지나치게 소심한 성격 때문에 애꿎은 식솔들을 쥐잡듯 잡은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유 없이 아이가 그렇게 행동할 리 없다. 그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아인츠베른은 이마를 짚으며 복잡한 심경으로 입을 열었다.
“……천성이다.”
“뭐?”
“이브의 성격 말이야. 그냥 천성이라고.”
린제나가 황당하다는 듯 아인츠베른을 노려봤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타고난 성격만으로 저렇게 되는 아기가 어디 있어?”
이브엔나는 사람과 시선을 못 마주치고, 얼굴과 눈을 자꾸 가렸고, 쉴 새 없이 사람들의 분위기와 눈치를 살피고, 사람들의 적대감에 예리하게 반응하며 몸을 덜덜 떨고,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어떤 세 살짜리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짧은 생애 동안 대체 어떤 일을 겪었기에 세 살밖에 안 된 아이에게 그런 습관들이 생겼을까. 하나하나 추론하다 보면 아이를 저렇게 만든 황실과 둘째 황자에 대한 분노로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그러나 당사자인 아인츠베른은 몹시 억울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이다. 이브엔나는 생후 6개월쯤 황실에서 발견된 후로 단 한 번도 모진 일을 당하지 않았고 부족함 하나 없이 대접받으며 자랐어. 그런데 그런 성격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