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87)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85)화(87/207)
“자.”
나는 엄마의 연구실로 초대되었다. 엄마는 내 손에 따뜻한 코코아를 쥐여주고는 반대편에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엄마의 방은, 예전에 왔을 때는 포근한 공간으로 느껴졌는데 지금은 코코아가 얼어붙을 듯 싸늘했다. 나는 슬쩍 눈을 굴려 엄마의 표정을 살폈다. 엄마는 어김없이 아리따웠고 입가에는 따뜻한 미소까지 띠고 계셨다. 하지만 나는 그게 만들어낸 미소라는 걸 눈치챘다.
‘화, 나셨을까?’
그렇겠지. 내가 엄마를 속였으니까.
내가 속인 바람에, 엄마가 아빠랑 싸웠었고……. 두 분이 마음이 넓어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신전과 마탑의 전쟁으로 번질 수도 있었을 일이었다.
‘그래놓고 태평하게 엄마가 놀러 오시기를 바라다니.’
뻔뻔하기도 하지.
이미 구제 불능의 거짓말쟁이였는데 거기에 이간질까지. 엄마의 안에서 내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졌대도 할 말이 없었다.
그때, 엄마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떻게 신성과 마력을 동시에 쓸 수 있는 거니?”
‘윽.’
후퇴라곤 모르는 엄마답게 처음부터 직구였다.
처음 엄마에게 권능을 쓸 때부터 이런 질문을 받을 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나는 코코아를 방패처럼 쥐고 움츠러든 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모르게떠요…….”
“짚이는 데는 없니?”
“녜에.”
나는 고개를 붕붕 저으며 무조건 모르쇠로 일관했다.
부모님이 나에 대한 책임감으로 결혼하지 않도록, 나는 두 분이 연애하기 전까지 나는 내 정체를 무조건 함구하기로 했다.
엄마의 날카로운 눈초리가 따갑게 쏟아지고 있지만…….
‘괘, 괜찮아. 지금 나는 세 살인걸. 세 살은 모르는 게 많은 나이니까.’
“흐음, 권능은 언제부터 쓸 수 있었니?”
“……터, 처음부터.”
“처음부터?”
“아기 때…….”
“아가는 지금도 아가인데.”
엄마는 픽 웃으면서 소파에 등을 기댔다.
“성녀란 건 태어날 때부터 성흔을 가진 존재들이라고 했지. 신전이 너를 성녀로 떠받드는 걸 보면, 세례를 받은 기록이 없는데 권능을 썼던 거구나.”
“…….”
“그렇다면 진짜 성녀인가?”
엄마의 입가에 음산한 미소가 서렸다.
“재밌군. 신전이 마수라고 지정한 마녀가 성녀라니. 이걸 알면 제국이 다 뒤집히겠는데.”
그 말에 난 지레 움찔했다.
‘그,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확실히, 제국민들의 성녀에 대한 공경심은 엄청나긴 했다. 하긴 내가 대놓고 마녀를 칭찬해도 다들 좋게 해석해줄 정도니까. 나를 잘 이용하면 마녀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들을 어느 정도는 깰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난 진짜 성녀가 아닌데…….’
아직은 어려서 티가 안 나지만, 본격적으로 능력을 써야 하는 나이가 되면 다 들통날 게 뻔했다. 진짜 성녀인 소피아는 죽은 사람도 되살렸으니까……. 나 같은 무속성은 아무리 노력한들 죽을 때까지 그녀의 발끝만큼도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엄마는 흥미로운 눈으로 나를 살피며 말했다.
“아인…… 교황은 이 사실을 모르는 거고?”
“녜…….”
“나 말고 또 아는 사람은 있니?”
“아, 안니요…….”
아름답지만 예리한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일부러 숨긴 거야?”
그 목소리에 솜털이 쭈뼛 섰다.
엄마가 자신을 우롱한 거냐고 화를 내셔도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죄인처럼 고개를 떨궜다.
그런데 문득 내 머리 위로 엄마의 손이 닿았다.
“잘했어.”
“……?”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나는 어리둥절하게 눈을 깜빡였다.
“그렇지, 요즘 같은 세상에선 아무리 친절해 보여도 함부로 남을 믿으면 안 돼. 특히 우리 같은 사람들은 말이지. 힘들었을 텐데. 숨기느라 고생했겠네, 똑똑한 녀석.”
“어…….”
머뭇머뭇 고개를 들자, 다정하게 미소 짓는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진심으로 나를 기특해하는 기색이었다.
‘엄마를 속이고 칭찬받았다.’
“이건 마탑에서도 비밀로 하는 게 좋겠다.”
“지, 지끔은 아무도 몰라요?”
“당연하지, 네 비밀인걸?”
나를 마중 나온 마법사들이 미묘한 미소를 짓고 있어서 다들 사정을 알게 된 줄 알았는데.
“아, 마법사들에겐 적당히 둘러댔어.”
“머라구 하셔써요?”
“……흠, 새 교황이 마법사들에게 열린 마음을 가졌다고.”
엄마가 겸연쩍은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엄마가 마법사들에게 우리 아빠를 좋게 말해줬다니?
물론 아빠가 마법사들에게 열린 마음을 가진 건 무척 사실이었다. 마법사랑 결혼해서 마법사 아기도 낳을 예정이니까.
“덕분에 설득하는 데 무척 애를 먹었지만…….”
엄마가 떠올리기만 해도 피곤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일주일이나 걸렸구나.’
확실히, 신전과 마탑의 관계를 생각하면 교황에게 맡겨둔 마법사가 마탑을 들락거리는 게 위험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것도 교황이 열린 마음을 가졌으니 교류가 가능하다는 말로 설득해야 했다면 굉장히 힘들었을 것이다.
‘명망 높은 마탑주인 엄마 정도나 가능한 일 아닐까…….’
“음,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네, 그냥…….”
추궁은 벌써 끝인 건지, 엄마는 일상적인 대화를 걸어왔다.
하지만 한 주 동안 엄마를 기다리느라 한 일이 별로 없어서 할 말이 많지 않았다. 내가 꾸물거리면서 그렇게 털어놓자 엄마가 약간 놀란 얼굴을 했다.
“이런, 내가 아가의 일상을 망쳐버렸구나.”
그러곤 진심으로 걱정스럽다는 듯 덧붙였다.
“그냥 마탑에서 눌러사는 건 어떠니?”
“녜에? 그, 그거는…….”
내가 곤혹스러워하자 엄마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아인 성하 때문에 안 되겠지?”
그 물음엔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조금 시무룩한 기분이었다. 엄마와 아빠 중 한 사람과만 살 수 있다니. 두 분을 사랑하는 내 마음의 저울은 완벽히 수평을 이루고 있어서 어느 한쪽을 고를 수가 없었다.
나를 낳았던 미래의 부모님은 대체 언제 연애를 시작하셨던 걸까?
언제쯤 엄마 아빠를 모두 보고 살 수 있는 건지 답답해지려는 차에 엄마가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네, 앞으론 매주 불의 날에 데리러 갈게. 어때?”
“……?”
나는 잠깐 멍하니 내가 들은 것을 되새겼다.
그리고 뒤늦게 벌떡 일어나서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야, 약쏙한 거예요?”
“어…….”
엄마는 상기된 내 얼굴과 당차게 내민 손을 차례로 내려봤다. 그러곤 큭큭거리면서 내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었다.
“내가 신과 한 약속은 어겨도, 아가와의 약속은 어기지 않지.”
“……!”
뱃속에 따뜻한 감정이 차올랐다.
‘이제 엄마를 매주 볼 수 있어……!’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서 다시 털썩 소파에 앉았다.
행복해하는 내 모습을 보며 엄마가 낮게 웃었다.
“그렇게 좋아?”
“녜!”
“궁금하네. 아가는 대체 내가 왜 좋은 거야?”
“어…….”
딸이 엄마를 좋아하는데 이유랄 게…….
나는 당황해서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자 엄마가 비스듬히 턱을 괴며 눈을 마주쳐왔다. 어떤 보석보다 아름다운 분홍색 눈동자가 흥미를 담고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뻘뻘거리며 대답을 못 하자, 엄마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맞아.”
장미잎처럼 부드러운 입술이 휘어지며 고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아름다워서라고 했지.”
“네.”
나는 무심코 대답했다.
생각해 보니 굳이 딸이 아니었어도 엄마를 사랑하게 되었을 것 같다. 이렇게 아름답고 멋지고 다정하고 완벽하신걸. 아마 세상 사람 모두가 엄마를 보면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마땅히 그래야 했다.
나는 자신의 모든 원칙을 깨고 엄마와 결혼한 아빠를 마음 깊이 이해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엄마가 재밌다는 듯 낄낄거리고 웃었다.
“보는 눈이 좋아서 큰일이네, 이리 온.”
엄마의 부름에 나는 쪼르르 달려갔다. 엄마는 나를 무릎 위에 앉히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이것저것 물었다. 밥은 잘 먹었는지, 나쁜 일은 없었는지…….
‘이러니까 완전 모녀 사이 같다.’
진짜 모녀 사이 맞지만, 나는 바보처럼 웃으면서 하나하나 답해주었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했던 것이 떠올랐다.
“마따, 대마녀니 그거 드러써요?”
“뭘?”
“성아, 꿈…….”
“아아, 그거.”
엄마가 어쩐지 인상을 찌푸렸다.
“못 들었어.”
“녜?”
어, 그 흐름대로라면 당연히 들었을 줄 알았는데.
‘아빠가 어려운 질문을 할 것 같진 않았는데.’
엄마는 아쉬운지 한숨까지 내쉬었다. 진심으로 아빠가 꾼 꿈이 궁금해 보이는 눈치였다.
그때 문득, 사랑에 대한 아빠의 조언이 떠올랐다.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보통은 내게 호의를 보여주는 상대에게 호감이 가기 쉽지 않을까.’
호의를 보여주는 상대에게 호감이 가기 쉽다. 그 말인즉슨, 엄마도 아빠가 무슨 악몽을 봤는지만 알면…….
‘두 분이 더 빨리 연애를 시작하실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상태로 봐선 아빠는 엄마에게 호감이 어느 정도 있으신 것 같으니까. 엄마가 아빠에게 호감을 쌓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슬쩍 엄마의 팔을 붙잡았다.
“혹시…… 이부가 말해주까요?”
그러자 엄마가 그 말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활짝 웃었다.
“그럴래?”
***
순백의 태양궁에도 밤의 어둠은 내려왔다.
벌레 우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한밤. 깊은 잠에 빠진 성 에퀴테스의 침소에 감히 발을 들인 무뢰한이 있었다.
검은 인영이 천천히 침실 안쪽으로 움직였다. 그때, 잠잠하던 아인츠베른의 손가락이 움찔 떨렸다. 음험한 손길이 고요히 잠든 아인의 수려한 얼굴을 향해 뻗어오는 순간, 그가 번쩍 눈을 떴다. 성 에퀴테스의 뛰어난 순발력이 순식간에 정체 모를 침입자를 제압했다.
“누구냐!”
“윽!”
반사적으로 침입자를 침대로 밀어붙인 아인츠베른은, 제 아래에 깔린 여자의 얼굴을 확인하고 당황했다.
달빛 아래로 창백하게 빛나는 새하얀 피부, 그의 침대 위로 흐트러진 분홍색 머리칼. 아름다운 얼굴에 맞지 않게 잔뜩 성이 나 보이는 얼굴.
“린제나?”
“인사 한번 과격하네!”
린제나가 켁켁거리며 목을 누르는 단단한 손을 주먹으로 퍽퍽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