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89)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87)화(89/207)
엄마는 자신의 말을 지켰다.
정말 매주 불의 날마다 마탑으로 나를 초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왜 엄마가 나를 이렇게까지 챙겨주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내가 얻은 건 말 그대로 마법 같은 나날이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아기님.”
“조은 아침, 유모!”
어김없이 밝아오는 불의 날 아침.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태양궁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햇빛이 찬란하게 들어오는 새하얀 태양궁. 성신 테헤라를 상징하는 차분하고 우아한 눈송이 문양의 장식들. 그에 걸맞게 신성력 넘치는 사람들이 가득한 복도를 지나서 아빠의 방에 도달하면, 마탑에서 보낸 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잘 다녀오거라, 이브.”
“다녀오겠슴미다.”
허공에 떠오른 균열을 뚫고 지나가면, 펼쳐지는 별세계.
천장까지 쌓여 있는 정체 모를 기계 더미, 부들부들한 종이와 잉크 냄새, 바닥에 난장판으로 펼쳐진 알 수 없는 수식들, 제멋대로 가구 위를 헤치고 다니는 검은 고양이, 그리고…….
“어서 와, 아가야.”
“오늘은 파란 원피스네? 귀여워라.”
[밥은 먹고 왔어?]늘 다른 장소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한결같이 다정한 사람들.
난 나를 반겨주는 마법사들과 엄마를 마주하고 무심코 목이 멨다. 그러나 이내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웅, 이부 와써요.”
신비롭고 자유로운 마법사들이 가득한 이곳은, 마탑이었다.
“오느른 다들 머해요?”
“으응, 언니들은 지금 업무 중.”
반디가 책상에 앉아 있는 엄마와 사비나를 눈짓하며 말했다. 나는 바닥에 깔린 양피지를 조심스럽게 피해서 마법사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오늘 도착한 곳은 예전에 구경한 적이 있던 마탑 최상층의 중앙 도서관이었다. 에코와 반디는 함께 바닥에 양피지를 잔뜩 깔고 뭔가를 풀고 있는 중이었다.
엄마에게 다가가는데, 사비나와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던 엄마가 내게 양해를 구했다.
“미안, 30분만 기다려줄래?”
“녜에.”
일을 하고 계시다니, 별일이네.
엄마는 왜인지 내가 마탑에만 오면 시간을 빼서 마법을 가르쳐주려고 안달이셨다. 내가 마법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시는 걸까?
물론, 좋아하기는 했다. 특히 엄마가 날 무릎 위에 앉히고 약간 들뜬 어조로 쏟아내는 이야기가 정말 좋았다. 그 목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열의 있는 학생처럼 경청하게 되곤 했다.
난 바빠 보이는 엄마를 두고 반디와 에코 사이로 걸어갔다.
“두 사람은 머하는 거예요?”
“으응, 우리는…….”
[마탑에 내려오는 7대 난제를 푸는 중이야.]7대 난제? 의아한 얼굴로 다가가자 반디와 에코가 붙잡고 있는 마법진이 보였다.
엄마의 마법서를 통째로 외우면서 쌓인 지식이 있어서인지 어느 정도 익숙한 수식들이 눈에 띄었다. 오랜 시간 마탑에서 연구를 지속해온 마법사들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나는 엄마의 업무가 끝날 때까지 시간이나 때울 요량으로 그들 사이에 철퍽 주저앉아 양피지를 들여다봤다.
“이 수식이 옳다고 가정하고 여기에 대입하면 어때?”
[안 돼, 그러면 이쪽 수식이랑 상충이….]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펼쳐진 양피지를 읽어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몰입해 버렸다.
한참 후, 엄마가 점심을 먹자고 할 때야 정신을 차렸다.
“미안, 심심했지?”
“아니, 재미써떠요.”
“그래?”
엄마는 바닥에 지저분하게 깔린 종이 뭉치들을 의아하게 한 번 바라보고는, 나를 식당으로 데려갔다.
정체 모를 이국의 음식들, 시끄럽게 말을 걸어오는 아이들. 식사 도중에도 얌전히 있는 법을 모르는 마법사들이 서로를 향해 장난을 치면서 허공에 얼음을 만들어 던지거나 신기한 정령을 소환해 날려 보냈다. 나는 그들 사이에 섞이려 노력하면서 웃다가도 문득문득 코끝이 찡했다.
‘나 이 시대가 너무 좋아.’
매주 엄마를 볼 수 있는 것도. 미래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엄마의 생활이나 가까운 사람들을 알게 된다는 것도. 이 신기한 마탑과 마법사들까지도 전부 좋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걸 꼽자면, 이 일탈 같은 외출이 아빠의 허락하에 일어난다는 점이었다.
저녁이 되면 엄마가 나를 데리고 함께 황성으로 돌아갔다.
엄마와 함께 균열을 넘자, 소파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던 아빠가 우리를 발견하고 일어나는 게 보였다.
“이브.”
“성아!”
내가 활짝 웃으며 달려가자, 아빠가 미소를 띠며 나를 안아 들었다.
“오늘도 잘 지냈나.”
“녜, 대마녀님이 책 읽어 주셔써요.”
난 번갈아 가면서 엄마 아빠에게 서로의 장점을 알려주려고 언제나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내 말을 들은 아빠가 엄마를 돌아보았다.
“린제나.”
“안녕, 아인.”
“…별일 없었겠지?”
“그야 물론이지, 이브가 날 정말 좋아해. 나를 엄마처럼 따르거든.”
엄마가 묘한 미소를 지으면서 아빠를 바라봤다.
난 아빠에게 안긴 채 두 사람을 훔쳐보며 몰래 눈을 빛냈다. 보는 나까지 다 마음이 설레는 것 같았다.
‘기분 탓이 아닌 것 같지?’
그간 엄마 아빠는 평범하게 잡담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편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내 노력이 효력을 발했던 걸까?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 용기만 내면 금방이라도 연애를 시작할 것 같은 간질간질한 분위기랄까?
‘이대로라면 몇 주 안에…….’
내 정체를 밝힐 날이 오지 않을까?
첫눈에 반했다는 아빠의 말만 믿고 내가 그간 여러 번 헛발질하긴 했지만,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진짜인 것 같았다.
난 그렇게 두근거리는 예감에 휩싸인 나머지, 평소에도 바보같이 헤헤 웃으면서 요즈음을 살아가고 있었다.
처음 이 시대에 왔을 때의 각오나 긴장까지 죄다 녹아내린 채로.
그렇게 엄마와 약속을 시작한 지 세 번째 불의 날.
복도에 서서 엄마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
“황실에 사는 애가 마탑에는 왜 계속 오는 거야?”
복도 끝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황실?’
내 이야기인가? 마탑에 황실에 사는 아이가 나 말고 또 있을 리가 없으니까…….
“좀 이상하긴 해. 왜 그 애만 땅에 내려가도 되는 거지?”
“맞아, 신전 놈들은 마법사를 싫어한다고…… 못살게 군다고 했는데…….”
“진짜 마법사인 건 맞아? 탑주님이 속고 계신 거 아니야?”
“그런데 소문으로는 걔가 S급 시험을 통과했다는데.”
“3살짜리가 어떻게 그런 마법을 써, 권능을 쓴 거 아니야?”
“하긴 걔가 마법을 쓰는 걸 본 사람이 없기는 해…….”
처음 듣는 말들.
평생 마녀라는 비난과 의심 속에 살아온 나는, 그 대화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목소리에 이끌리듯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차갑게 식은 손으로 벽을 짚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빼서 목소리의 주인공들을 확인한 순간, 흠칫 놀랐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건 세 명의 아이들이었다. 셋 다 나이는 가지각색으로 보였지만, 대충 12살에서 14살 정도 될 것 같은 외모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제일 열변을 토하고 있던 여자애였다.
양 갈래로 묶은 반짝이는 은발, 검은 눈동자.
‘……소피아?’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순간, 불만을 이어가던 그 아이가 문득 멈칫했다. 그러고는 홱 하고 내 쪽을 돌아봤다.
“……!”
나는 황급히 입을 막고 벽 뒤에 몸을 숨겼다.
‘도, 도망, 가야…….’
어느새 덜덜 떨리기 시작한 손으로 벽을 짚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방금까지 평화롭던 복도가 갑자기 일제히 술렁거리며 흔들리는 듯했다. 빨리 가려고 노력할수록 발이 느리게 느껴진다.
그 찰나에, 눈이 마주쳤을까.
등 뒤에서 나를 쫓아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뚜벅뚜벅 걷는 세 쌍의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어쩔 줄 모르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의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아가?”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자 순간적으로 훅하고 마음이 놓였다.
“대, 대마녀니.”
“얼굴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엄마가 나를 달랑 들어 품에 안았다. 그리고 내 뒤를 향해 물었다.
“너희가 얘 괴롭혔니?”
난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엄마의 품에 안긴 내 눈에 세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아니요.”
“저희 그냥 지나가고 있었는데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물끄러미 보는 아이, 은발에 검은 눈동자.
‘소피아가, 소피아가 아니야…….’
전혀 다르게 생겼어. 그냥 머리 색과 눈 색이 비슷할 뿐이야.
나는 술렁거리던 마음을 겨우겨우 진정시켰다. 엄마가 나를 향해 물었다.
“저 애들 말이 진짜니, 아가?”
그때, 은발의 아이가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검은 눈이 살갑게 휘어지며 나를 바라봤다.
“우리 말이 맞지, 꼬마야?”
나는 주박에 걸린 것처럼 굳어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아이들과 헤어지고 수련장에 갔을 때, 나는 완전히 기진맥진해 있었다.
‘그냥 닮은 애를 본 것뿐인데, 그렇게 놀라다니.’
여기는 아직 나도 태어나지 않은 시간대고, 소피아는 나보다 4살이 어렸다. 소피아가 태어나려면 아직 7년은 있어야 했다.
그러니 이곳에서 소피아를 마주칠 리가 없는데.
왜 그렇게 긴장한 걸까.
소피아가 나를 여기까지 쫓아오기라도 할 거라고 생각한 걸까?
‘멍청한…… 아니, 이제 나한테 욕 안 하기로 했는데.’
내가 한숨을 쉬고 있자, 엄마가 날 보더니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정말 무슨 일 없었던 거 맞니?”
난 엄마를 마주 보며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무슨 일, 이라면…….’
그 어린아이들이 나에 대한 뒷말을 한 건, 일이라고 할 것도 못 됐다.
다만 내가 오늘 반사적으로 떠올린 소피아에 대한 일이라면, 있었지만…….
그건 이 시간대에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다.
‘엄마를 걱정시켜드리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습관처럼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엄마를 향해 미소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아무 일두, 없었어요.”
사건은 없던 것이 되었고, 그저 여태 과거 하나 뿌리치지 못한 나만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