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91)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89)화(91/207)
‘아차, 귀중한 연구자료를 함부로.’
내가 관찰한 마법사들은 모두 자신의 연구를 목숨같이 여기는 것 같았다. 겉으로 보기엔 마구 어질러져 있는 것 같지만 나름 정리된 순서가 있을 텐데. 멋모르는 어린애가 함부로 만지면 기분 나쁠 것이다.
난 황급히 손을 떼고 사과했다.
“제, 제송해요.”
“아니야, 계속해.”
“녜?”
에코가 나를 향해 턱짓까지 해 보인다.
난 약간 당황해서 마법진을 돌아봤다.
마법진은 네 장의 양피지에 나눠 그려져 있었는데, 동쪽과 서쪽 양피지의 자리를 바꾸고 다시 보자 얼핏 익숙한 모양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무심코 마법진의 글씨를 손으로 쓸었다.
그 순간, 글씨가 내 손을 따라 꺄르륵 소리를 내며 우르르 움직였다.
“헉.”
나는 놀라서 다시 글씨를 쓸었다. 그러자 이번에도 글씨들이 우르르 움직였다. 마치 양치기 개에게 몰려지는 양처럼.
‘펴, 평범한 양피지인 줄 알았는데.’
어쩐지 종이에 마력이 둥둥 떠다닌다 싶더니, 여기에도 어떤 마법적 장치가 되어 있었나 보다.
‘어, 어떡해. 다시, 원래대로 돌려놔야…….’
나는 에코와 반디의 눈치를 살피며 다급히 손으로 양피지를 쓸었다. 내 움직임에 따라, 글씨들이 제각기 자리를 바꿔댔다.
‘원래대로 돌려놔야 해. 그런데 원래가 어땠더라?’
나는 어질러진 양피지를 빤히 바라보다가, 문득 눈을 깜빡였다.
‘아, 이건 혹시…….’
나는 천천히 손을 움직여 흩어져 있는 수식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게 여기로 가고. 저게 여기로 가면…….
내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그것이 천천히 원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언젠가 보았던, 완벽한 수식을 갖춘 마법진의 모습으로.
<상급 마법 : 유희>
‘엄마의 마법서에서 본 마법.’
역시 괜히 기시감이 든 게 아니었다.
비록 마법서의 형체는 타임 패러독스 속에 가루가 되어버렸지만, 그 안의 지식만은 하나도 사라지지 않고 세상에 남아 있었다. 내 머릿속의 기억이라는 형태로.
“이건…….”
그때, 등 뒤에서 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흠칫 놀라 뒤를 돌아봤다.
어느새 세 마법사는 눈을 빛내며 내가 쓴 수식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완벽해.]“그러게, 진짜 풀었어. 마탑의 7대 난제를, 세 살짜리 꼬마가…….”
“이게…… 이렇게 되는 거였군. 여기에 이 공식을 대입할 생각을 하다니. 정말 기발하고…… 천재적인데.”
마법서의 주인인 엄마가 놀란 목소리로 자화자찬했다.
[꼬맹아, 너 진짜 천재구나.]에코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늘 눈처럼 새하얗던 얼굴이 흥분으로 달아올라 있었다. 그녀는 날 칭찬하면서 내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엄마는 물론이고 반디조차 홀린 눈으로 마법진을 보고 있었다.
세 마법사의 찬사에 나는 몸 둘 바를 모르게 되었다.
이건, 내가 푼 게 아니라 엄마의 마법서에 있던 걸 무심코 재현해버린 것뿐이다. 그러니까 내가 아니라 엄마의 마법인데.
난 사실을 정정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이, 이거는, 이부가 아니라 대마녀니가…….”
“그래, 그래.”
엄마는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다 알겠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너의 영민함이 다 내 가르침 덕이란 뜻이지? 스승을 공치사할 줄도 알고. 기특한 녀석.”
“그, 그게 아니라…….”
[날고 긴다 하는 마법사들도 풀지 못했던 걸, 꼬맹이가 풀어버렸네.]“우, 우리가 거의 다 풀어놔서지. 꼬마는 그냥 수식의 자리를 바꾼 것뿐이잖아.”
[그 자리를 못 바꿔서 이제 포기해야겠다고 말한 사람이 누구더라.]“으윽.”
“아가, 그보다, 이 마법을 한번 써보렴.”
투닥대는 에코와 반디를 뒤로하고, 엄마가 즐거운 얼굴로 말했다.
“아가가 푼 수식이니까. 직접 시연해봐야지.”
난 엄마에게 등이 떠밀려서 양피지 앞으로 다가갔다.
‘다음에 꼭 엄마가 푼 거라고 알려드리자…….’
그렇게 결심하고 마법진에 마력을 덧씌웠다.
S급 마법사들은 마법 잉크 세피아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직접 마력을 움직여 마법진의 모양을 만들어야 했다.
마법진이 약간 복잡해서 평소보단 어려웠다. 하지만 마력 운용력이 뛰어난 것을 특질로 가진 마법사답게, 나는 곧 완벽한 마법진을 만들어냈다.
완성된 마법진에서 나온 검은 빛이 내 시야를 잠깐 잡아먹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맹한 얼굴의 꼬마를 볼 수 있었다.
왼쪽은 청회색, 오른쪽은 분홍색. 특이한 색의 눈을 멍하니 깜빡이는 분홍 머리 여자애.
그건 바로 나였다.
“흡.”
“우아아…….”
내가 놀라서 숨을 들이켜자, 또 다른 나도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게 7대 난제의 마법이구나…….’
등 뒤에서 세 마법사가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기록이랑 똑같아. 정말 소실된 마법을 복원시키다니.]“꼬마가 두 명이 됐네…….”
“두 배로 귀여워, 우리 아기.”
[그런데 왜 이름이 ‘유희’지? 분열이나 분신술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세 마법사는 내 마법의 성공에 신난 것 같았다. 나는 덩달아 들뜬 기분으로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달려오는 어린이 군단과 눈이 마주쳤다.
“너희는…….”
“우와아아!”
커다란 환호성에 나는 흠칫 놀라 뒷걸음질 쳤다.
저 애들은, 마탑에서 매일 나를 쫓아다니는 하급 마법사 꼬마들이다.
언제부터 여기 있었지?
집중력이 흐트러지자, 나와 함께 당황하고 있던 ‘이브엔나2’가 연기처럼 흩어졌다. 아직 익숙지 않은 마법이라 유지가 힘든 느낌이다.
그러자, 신나게 달려오던 어린이 군단이 충격받은 얼굴을 했다. 하지만 금세 기운을 차리고 내게 얼굴을 들이밀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거, 그거 맞지? 7대 난제!”
“그래! 분명 이름이… 있었는데, 뭐였지?”
[유희.]“맞아, 유희!”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즐거워하다가, 뒤늦게 엄마와 두 수뇌부를 발견하고 헉하며 물러났다.
“안녕하세요, 탑주님!”
“에코님, 반디님두요.”
“그래, 그래.”
엄마가 성의 없이 인사를 받아주었다.
예의 차리기를 끝낸 꼬마 마법사들은 내 주위를 우르르 둘러쌌다.
“그거, 7대 난제의 마법 맞지?”
“어떻게 한 거야? 이제는 못 쓰는 마법이라고 하던데!”
“수식이 엄청 어려웠어. 선생님이 문제로 내서 우리도 풀어봤는데 전혀 모르겠던데!”
“마법 쓰는 거 다시 보여주면 안 돼?”
“맞아, 다시 시연해줘!”
한꺼번에 쏟아지는 질문과 요구에 눈이 뱅뱅 돌았다.
‘부, 부담스러워.’
아무리 아이들이라고 해도, 이렇게 많은 사람 사이에 끼이자 정신력이 깎였다.
“진정해, 꼬마들. 아가가 무서워하잖아.”
엄마가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아이들 사이에서 쏙 빼내 준 덕에 간신히 벗어났다.
하지만 아이들이 수련장 문을 열어놨는지, 지나가던 사람들까지 소란을 듣고 이쪽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급기야 그들은 복도를 향해 동료들을 부르기까지 했다.
아무리 어려도 마법사라는 걸까. 다들 눈을 빛내면서 다시 마법을 보여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쟤가 7대 난제를 풀었다고?”
그 소란 속에서, 유독 날카로운 목소리가 내 귀에 들어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자, 반짝이는 은발이 눈에 띄었다.
‘소피아와 같은 은색 머리 아이와…… 그 애의 친구들이다.’
웅성거리는 아이들의 틈바귀에서 인상을 찌푸리는 그 아이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린다.
“저 애가 정말 그 마법을 쓸 수 있단 거야?”
어, 혹시…….
이건, 기회인가?
내가 잠깐 정신이 팔린 사이, 내 안색을 살핀 엄마가 아이들을 중재시켰다.
“자자, 그만하고 다시 들어가. 시연은 나중에…….”
엄마가 아이들을 돌려보내려고 하자, 나는 황급히 입을 열었다.
“하께요.”
내 조그만 목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단번에 내게 쏠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목을 움츠렸다.
‘숨고 싶다.’
당장 좁고 어둡고 적막한 곳으로 숨어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진짜 마법사인 건 맞아? 탑주님이 속고 계신 거 아니야?’
그 아이들은 황실에 대한 분노를 나를 향해 퍼붓고 있었다.
즉, 나는 그 아이들에게 황실의 대표나 마찬가지다.
그 와중에 내가 7대 난제의 마법을 발동해서 그들의 동료임을 증명한다면, 아이들의 의심도 잠재우고 황실에 대한 악감정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이건 나와 황실의 이미지를 쇄신할 기회였다.
나는 엄마의 품에 안겨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마주했다.
‘시선이…….’
사람들의 앞에 서는 건 여전히 무섭다.
늘 적대적인 시선만을 받아왔기에, 이럴 때마다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들곤 했다. 하지만….
‘이브엔나, 언제까지 이럴 거야?’
무서우면 한 걸음 나아가기로 했잖아. 예전에 조금 힘들었다고, 언제까지 이렇게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을 걱정시킬 거야?
‘맞아. 이제 그만 떨치고 나아가, 나아가야만 해.’
난 용기를 내서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보, 보여주께요, 마법…….”
***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강단 위에 섰다.
관객석을 바라보자, 수십 개의 눈동자가 내 얼굴을 향했다.
난 반사적으로 시선을 땅에 비스듬히 박았다.
‘왜,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인 거지.’
그 잠깐 사이에 더 소문이 났는지, 수련장에 모인 사람만 족히 20명은 넘어 보였다.
사제들 사이에서 세례를 내릴 때도 이렇게 많은 시선을 받지는 않았는데.
내 뒤에는 커다란 보드가 준비되어 있었다. 내 키에 맞춰서, 보드의 높이도 아주 낮았다.
아마 원래는 선생님이 여기에 서서 학생들을 앞에 두고 수업을 하는 거겠지.
수련장에 이런 공간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어쩌다 내가 여기에…….
머리가 아득해지는 기분에, 나는 꾸벅 인사부터 했다.
“아, 안녀하떼요, 이부예요…….”
“와아아아!”
그러자 맨 앞줄에 앉은 꼬마 무리가 꺄르륵 웃으며 박수를 쳤다.
저 꼬마들에게는 이 순간이 그야말로 재밌는 유희처럼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엄마와 반디, 에코도 의자를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나를 보는 엄마의 얼굴에는 기대보단 걱정이 가득했다.
사람을 무서워하는 내가 왜 갑자기 나서는지 이해가 안 되시는 듯했다. 하지만 다정하게도 내 결정을 존중해주시고, 나를 응원해주고 계셨다.
참석객을 향해 어색하게 웃던 내 시선이, 문득 맨 구석에 불퉁하게 앉아 있는 세 아이에게 닿았다.
사실, 저 아이들 외에도 내게 의구심을 가진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반디처럼…….
‘아직 내 정체도 안 밝혔는데. 지금 잘해서 호감을 쌓아놓아야 해. 지금 내가 잘하면, 황실에 대한 편견도 조금은 깨질지도 몰라.’
어쩐지 마음을 다질수록 속이 매슥거렸다.
“그, 그니까, 이게 어떠케 되는 거냐면요…….”
나는 황급히 사람들에게서 등을 돌려 보드를 바라봤다.
나는 말주변이 없으니까, 말로 설명하는 것보단 글과 수식으로 보여주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엄마의 마법서에 있는 모든 마법은 내 머릿속에 완벽히 남아 있었으니까.
나는 펜을 들고 보드에 마법진을 그렸다. 기계처럼 딱딱하게 굳은 채 수식을 써내려 가는데, 어쩐지 자꾸 글씨가 흔들리고 뭉개졌다.
마법 운용력이 뛰어난 게 내 특질이라고 했는데…….
내 몸을 지탱한 다리가 너무 덜덜 떨려서 시야가 흔들릴 정도였다.
펜을 쥔 손에 땀이 가득 차서 펜대가 미끈거렸다. 손에 힘을 주고 펜촉으로 보드를 찍는 순간, 펜이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지며 튕겨 나갔다.
“헉, 제, 제송함미다…….”
나는 당황해서 바닥에 손을 뻗었다.
슬프지도 않은데 자꾸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 꼴을 보고 엄마가 시연을 중단시킬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관객석을 향해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으나, 도로 보드를 돌아보자마자 급히 후회했다.
‘더 이상해 보였을 것 같아…….’
어느 때보다 최선을 다해 손을 움직이고 있는데, 평소보다 마법진이 그려지는 속도가 다섯 배는 느리게 느껴졌다.
대체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궁금했다.
사람들이 조용하게 나만 바라보고 있는데.
집중하고 있는 걸까, 지루해하고 있는 걸까.
마법진을 보고 있을까, 아니면 한심하게 떨고 있는 나를 보고 있을까?
시야가 자꾸 흐려져서, 나는 소매 끝으로 땀과 눈물을 닦으면서 마법진을 완성해냈다.
“다, 다 해써요.”
모두가 마법진을 볼 수 있도록 나는 몸을 옆으로 비켜섰다.
그러자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내가 완성한 마법진을 바라보았다.
“헉.”
“저 수식이 저런 식으로 전개되는 거구나.”
구경꾼들 역시 마법진을 보며 연신 감탄했다.
그들이 시선이 나를 비껴가자 조금 정신이 돌아오는 느낌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이내 기대에 찬 눈동자들이 나를 돌아봤다.
“아, 그, 그니까…….”
나는 흠칫 놀라 뒷걸음쳤다. 내 등이 보드에 퍽하고 부딪혔지만,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쪽에서 엄마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아가, 괜찮니?”
“괘차나, 괘차나요.”
난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작게 심호흡했다.
“해, 해보께요.”
나는 마법진을 바라보며 마력을 움직였다.
마력을 마법진 모양대로 만들어서, 마법을 발동하면 되는데.
……되는, 데…….
“…….”
주위가 잠잠했다.
보드를 바라보던 내 눈이 정처 없이 흔들렸다.
‘왜, 왜 안 되지?’
마력이, 마력이 어떻게 움직이는 거더라. 평소엔 의식하지 않아도 잘됐는데. 분명, 잘됐는…….
“키킥.”
그때, 등 뒤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순간 숨을 멈췄다.
“그럼 그렇지.”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는 작은 목소리.
그런데도 그 소리가 마치 소리치는 것처럼 귓가에 쩌렁쩌렁 울렸다.
마치 먼 과거의 어느 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