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95)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93)화(95/207)
12. 강해지는 순간
“성녀님이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셨다고요?”
아실이 맑은 회색 눈을 커다랗게 깜빡였다. 그러곤 검지 끝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게다가 그게 저라고요?”
아인츠베른과 파리엘은 섣불리 동의하지 못했다. 자신들이 그렇게 추궁하긴 했지만, 아직 사실이라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복잡한 심경으로 되물었다.
“아닌가?”
“아, 아니에요, 설마요!”
아실은 물론 예하드의 귀여운 아기 성녀님을 사랑해 마지않았으나 그의 감정은 어디까지나 공경과 충심이었다.
이브엔나의 나이는 고작 3살이지 않나. 아실과의 나이 차이는 무려 6살이었다. 6살은 이브엔나의 평생을 합친 것의 두 배나 되는 어마어마한 차이였다.
아실이 펄쩍 뛰며 이브엔나의 사랑을 부인하자, 두 황자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파리엘이 주머니에 손을 끼우며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뭐야, 아실. 지금 그 태도는. 감히 이브가 널 좋아하는 게 싫다는 거야?”
“아, 아니요, 그야 당연히 좋지만.”
“뭐? 지금 이브가 널 좋아하는 게 좋다고 시인한 거야?”
‘어쩌라는 건데요……!’
아실은 울고 싶은 기분으로 고개를 저었다.
“애당초 왜 저를 의심하시는 거예요. 전 그냥 수습 기사일 뿐인데요.”
“허, 잡아떼지 못하게 내가 근거를 말해주지.”
파리엘의 녹색 눈동자가 예리하게 빛났다. 그는 범인을 몰아붙이는 경비대원처럼 양손을 허리에 올리며 말했다.
“일단, 너는 황족도 아니면서 황궁에 침입해 이브 주변을 지나치게 많이 맴돌았어.”
“왜 그렇게 수상쩍게 묘사하시는 건데요. 그냥 성녀님의 유모가 제 고모라서 그런 거잖아요.”
“흥, 가소로운 핑계로군. 근래에는 유모가 아니라 이브를 보려고 온다는 걸 내 훤히 알고 있다. 요즘은 우리 셋이서 연무장을 맨날 같이 놀러 다녔잖아!”
“음해하지 말아 주세요. 저는 어른이 되면 성녀님의 호위 기사가 되겠다고 기사의 맹세를 했다고요. 저랑 성녀님은 충심과 기대로 맺어진 순수한 관계에요!”
“…….”
아인츠베른은 두 꼬맹이가 알고 있는 어려운 말을 죄 끌어다 쓰며 투닥거리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봤다. 그는 조용히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려 노력하고 있었다.
이브가 누굴 좋아할 수도 있지. 아직 3살이니, 결혼이나 약혼을 하겠다고 나서지만 않으면 다른 것은 관대하게 다 수용해줄 수 있었다.
교황의 인자한 시선 속에서, 금색 머리 꼬마와 회색 머리 꼬마가 서로 목청을 올리며 외쳤다.
“하지만 이브랑 친한 남자애는 너뿐이잖아?”
“아니에요. 전하가 성녀님이 황궁에 계신 모습만 봐서 그렇지. 신전에 가면 성녀님과 저만큼 친한 애는 주변에 널렸거든요!”
먼저 말문이 막힌 건 금발 꼬마 쪽이었다. 파리엘은 허를 찔렸다는 듯 입을 벙긋거렸다. 파리엘을 대신하여, 내내 대놓고 따지진 못하고 초연하려 애쓰던 아인의 입에서 반문이 튀어나왔다.
“……주변에 널렸다고?”
아실은 담담히 답했다.
“네.”
사실 그렇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 의심을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놔뒀다간, 아기 성녀님에게 미친 저 두 형제를 포함하여, 라인하르트 황실 일원들에게 어떤 취급을 받게 될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팠다.
황궁을 발칵 뒤집어놓은 납치 사건이 있은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껏 예민해져 있는 황실의 주적이 되어 눈총받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되면 지금은 따뜻하게 자신을 안아주는 린다 고모조차 그의 편을 들어주지 않겠지…….
아직 어리지만 향후 황제의 호위 기사가 될 가능성이 충분한 아실은 빠르게 상황 판단을 끝내고 지능적인 전략을 짰다.
“생각해보세요. 제가 가족 여행으로 일주일간 황실에 오지 않을 때, 성녀님은 절 별로 찾지도 않으셨잖아요?”
그렇게 말하면서 아실은 약간의 내상을 입었다.
근래에 이브엔나는 엄마 아빠 일에 완전히 정신이 팔려서 다른 이들에게 관심을 주지 못했다. 매주 마탑을 오고 가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아실은 내심 섭섭했다.
아실이 스스로 상처를 입어가며 반박한 효과는 컸다. 두 황자의 눈이 정처 없이 흔들렸다.
“허…… 그건 그렇군…….”
아실은 그들의 수긍에 또다시 약간 상처받았다. 성녀님…….
아실과 상관없이 두 형제는 미궁에 빠졌다.
“그럼 이브가 좋아하는 애는 대체 누구지?”
“아실, 네 의견을 말해 보아라. 혹 짐작 가는 상대가 있나?”
“으음, 글쎄요…….”
둘째 황자의 질문에 아실이 턱을 매만지며 고민했다.
나도 아니라면, 대체 사랑스러운 아기 성녀님의 연정을 받는 놈은 누굴까. 용의 선상에서 벗어나 여유를 되찾고 나자 뒤늦게 화가 올라왔다.
‘누구냐. 우리 이브님의 마음을 훔친 도둑놈이.’
아실의 머릿속에, 자신과 황족들을 제외하고 이브와 친하게 지내는 인물들의 얼굴이 차르르 지나갔다. 개중 이브와 가장 나이가 비슷하고, 가장 친밀하며, 여자애가 좋아할 만한 외모를 가진 인물이 딱 하나 남았다.
“아, 걔다.”
“누구?”
두 황자가 눈을 번쩍 뜨며 동시에 물었다.
10분 전에 이브의 첫사랑을 관대하게 지켜보겠다고 다짐했던 아인츠베른이 가장 적극적으로 아실을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 아실이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요한이요.”
***
아인츠베른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녁을 먹고 다시 침실로 돌아온 이후에도 낮의 일이 머리에 남아 있었다.
‘요한이요.’
다른 아이라면 심문이라도 해보겠는데…….
그는 병석에 누운 전임 교황의 곁을 홀로 지키고 있던 요한의 모습을 떠올리다 고개를 저었다.
요한은 셀라디온 전임 교황의 하나뿐인 손주였다.
손주, 라고 편의상 부르고 있었으나 사실 전임 교황에게는 자식이 없었으니 친손주는 아니다. 5년 전, 그의 애제자 중 하나였던 아시스가 마지막 전장에서 구해낸 아이.
원칙대로라면 다른 나샤 출신 아이들과 함께 할스테리어의 난민 수용소에서 자라야 했을 것이나…….
‘아시스의 목숨과 뒤바꾸어 살려낸 아이이니, 아시스라고 생각하며 키우겠다.’
당시에는 교황이었던 셀라디온이 그런 선언과 함께 순식간에 입양 절차까지 해치우는 바람에, 탄닌 공작가가 완전히 뒤집혔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전임 교황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에 별문제가 없었다.
‘5년 사이 이렇게 건강이 악화되실 줄이야.’
세간에는 대사제가 오래 살지 못한다는 낭설이 돈다.
테헤라 정교에서는 성흔이 발현되면 나이나 신분 등의 고하를 막론하고 사제로 받아들인다. 권능을 단련하여 실력을 쌓으면 성기사나 치유 신관의 지위를 주지만, 어떤 권능을 가졌든 간에 최고위 사제가 되면 대사제로 불린다. 추기경과 교황을 포함하여, 주교급 이상의 사제들은 모두 대사제였다.
그러나 전임 교황은 벌써 90세를 훌쩍 넘겼다. 그런 낭설과 관계없이 건강이 나빠질 나이였다. 단지, 홀로 남을 손주가 마음에 걸려 쉽게 세상을 떠나지 못하고 계신듯했다.
“하아…….”
그래, 안 그래도 힘들어하고 있을 요한에게 이런 걸 따져 묻는 건 좀 그렇지. 그저 보호자로서 어른스럽게 지켜봐 주어야…….
그가 씁쓸하게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허공에서 문득 검은 균열이 생겨났다.
“아.”
아인츠베른이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얼굴에 반가운 미소가 떠올랐다.
저 균열이 그의 침실에 처음 나타났을 때는, 불길한 술수처럼 보여서 놀라고 긴장했었다. 그러나 매주 마탑으로 이브를 배웅하고 마중할 때마다 봤더니 이제는 저것을 봐도 반갑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저 균열이 나타나면, 곧 이브가 나올 테고…….
“성아!”
“잘 다녀왔느냐, 이브.”
“짜 다녀와씀미다!”
“안녕, 아인.”
아이가 오면, 그녀도 온다.
“……린지.”
아인츠베른은 무심코 중얼거렸다가 움찔 놀라며 정정했다.
“린제나.”
“좋을 대로 불러도 상관없는데.”
린제나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이브 엄마라고 불러도 돼.”
“……별소릴 다 하는군. 네가 왜 내 아이의.”
“이브가 날 엄마라고 불렀다니까. 그렇지, 아가?”
“녜!”
마탑에서 즐거운 일이라도 있었던 건지, 유독 들뜬 이브엔나가 평생 들은 것 중 가장 명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밝은 미소와 달리 눈은 울기라도 한 듯 빨갛게 부어 보이는 것 같기도 한데….
이브는 은근히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한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이부는 유모 보러 가께요.”
“응, 갑자기?”
“녜, 조은 시간 되세요!”
그러고는 후다닥 뛰어 방을 나가버렸다.
쿵, 커다란 소리를 내며 닫히는 방문을 보며 두 사람은 동시에 생각했다.
‘좋은 시간 되라는 게 무슨 뜻이야……?’
이브엔나는 그들에게 무척 소중한 아이였다. 하지만 그 사랑스러운 아이는 요즘 들어 기회만 있다 하면 저렇게 이상한 소리를 하면서 방을 나가버리곤 했다.
“…….”
“…….”
어색한 적막이 방 안을 감돌았다.
한 박자 늦게, 린제나는 이상함을 깨달았다.
‘농담처럼 웃어넘기면 됐는데, 난 왜 또 저 숙맥이랑 같이 어색해하고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