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97)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95)화(97/207)
후다닥 침실에 돌아온 나는 침대에 풀썩 누워서 이불을 끌어당겼다. 널찍한 침대와 부드러운 시트, 폭신한 이불이 달을 휘감는 구름처럼 나를 감싸 안았다. 심장이 기분 좋게 두근거리고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히히힛.”
빨리 자야 하는데, 자꾸 잇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좋은 꿈 꿔, 이브.’
‘잘 자거라.’
‘안녕히 주무떼요, 엄마 아빠.’
조금 전의 대화가 귓가를 윙윙 떠돌았다.
‘엄마 아빠한테 밤 인사했다.’
그 순간은 마치, 마치… 우리가 평범한 가족 같았다.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눈을 꼭 감았다. 베일리가 만들어준 과일 케이크를 종류별로 먹은 것처럼 배 속이 포근했다. 아마 앞으로 한 달 정도는 밥 안 먹어도 살 수 있지 않을까?
‘비록 이 기분은 나만 느꼈겠지만.’
엄마 아빠 몰래 우리 가족이 완성된 기분을 만끽하고 있다니, 생각해보니 좀 이상하긴 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엄마 아빠도 곧 알게 될 테니까.
‘뭐라고 하실지 궁금한걸.’
짜잔, 사실은 우리가 진짜 가족이었답니다! …라고, 마치 언젠가 아빠와 태양궁 식구들이 내게 해주었던 깜짝 생일 파티처럼 밝힌다면…….
시야를 덮은 눈꺼풀 위로 엄마 아빠를 향해 뿌듯하게 검지를 흔드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제가 엄마 아빠라고 부른 건 다 이것을 밝히기 위한 전초전이었죠.’
‘와아아, 그랬구나. 어쩐지~’
‘그럼 이제 린지가 아니라 여보라고 불러야 하는 건가?’
‘여보!’
하하하, 호호호…….
즐겁게 울려 퍼지는 상상 속 부모님의 웃음소리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후, 물론 현실은 이 정도로 장밋빛은 아니겠지만…….’
마탑과 신전의 기조라는 게 있고, 두 분 다 자신의 집단에 깊게 몸담으신 분들이니 최소한의 충격은 어쩔 수 없겠지.
하지만 미래에서 결국은 결혼까지 했던 분들이다. 천천히 마음이 통해가고 있으니, 타이밍만 잘 잡는다면 정말 내 기대만큼 온건한 반응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 주 불의 날에도 열심히 엄마 아빠에게 서로의 장점을 어필해봐야지.’
매주 엄마를 볼 수 있다는 거, 역시 너무 좋다……. 나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잠에 빠져들었다.
***
[이브!]고요 속에서 성별을 가늠키 힘든 목소리가 반복해서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비몽사몽 중에 양손으로 귀를 막다가, 뒤늦게 그 소리가 귀가 아니라 머릿속에서 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멈칫했다.
[이브, 불의 날 아침이야! 어디 있어?]“에, 에코…….”
으으, 나는 눈을 감은 채 작게 웅얼거렸다.
벌써 아침이구나. 저번 주부터 그렇게 고대하던 불의 날이었는데……. 난 울고 싶은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나 오느른 마탑에 못 가요…….”
[엑, 어디 아파?]에코의 목소리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에코를 안심시켜주고 싶다는 마음에, 나는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잊고 무심결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장례식에 와써…….”
[장례식에는 왜?]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성아가 돌아가셔써요.”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봤다.
아직 본격적인 장례 절차가 시작되기 전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의 시골 영지였다. 길이 닦이지 않아 말을 타고 와도 하루는 족히 걸리는 거리인데도, 밖은 벌써부터 장례식을 위해 몰려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저 조문객들의 숫자가 생전 고인의 인망을 보여주었다.
‘셀라디온 탄닌 전임 교황 성하.’
비록 오래 보지는 못했으나 무척 따뜻하고 인정이 많으신 분이었다. 세상을 떠나간 후에도 그분의 발자취는 분명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에 남겠지.
[저런, 그랬구나. 그럼 이번 주에는 빠져나오기 힘들겠네……. 보스에게는 일단 그렇게 전해둘게. 기운 내, 이브.]“응, 고마어요…….”
에코와의 연결이 끊기고 나자, 곧 유모가 방문을 두드렸다.
나는 유모를 따라가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경사에는 금사로 수놓은 하얀 정복을, 조사에는 하늘색 실로 수놓은 하얀 정복을 입는 게 신성 제국의 관례였다. 둘 다 빛과 겨울의 신인 테헤라를 상징하는 색이었다.
장례식은 전임 교황께서 바라신 것처럼, 그분의 고향인 탄닌 공작가의 영지에서 이뤄졌다.
우리는 그저께 새벽에 마차를 타고 출발해서 오늘 아침에 도착한 참이었다. 언젠가 수도 밖으로 나갈 일이 생길 거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그게 전임 교황님의 영지가 될 줄은 몰랐다. 그를 만난 순간부터 3년 뒤의 죽음을 예견했으면서, 왜일까. 어쩌면 그를 알수록 다가올 죽음에 대해서 회피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황실의 마차는 매우 널찍하고 편한 편인데도 길이 울퉁불퉁해서 짧지 않은 여정이 무척 고되었다. 우리가 이 정도라면 다른 사람들은 더했으리라. 우리와 함께 수도에서 온 사제들의 얼굴은 슬픔과 피로로 거무죽죽했다.
“그렇게 셀라디온 탄닌 전임 교황께서는, 성신께서 주신 힘으로 많은 이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입관식에서는 전임 교황의 조카가 그분의 일대기를 읊으며 기도를 했다. 원래는 가장 가까운 직계가 기도를 드리는 게 원칙이지만, 교황의 손주인 요한이 너무 어렸던 탓에 두 번째로 가까운 방계혈족인 조카가 그의 대리인으로 나섰다.
입관식을 하는 동안 사람들은 비탄에 차서 통곡하기보다는 조용히 앉아 이따금 눈물을 닦거나 수의를 입은 시신 앞에서 고인을 위한 성례를 올렸다. 하지만 현 교황인 아빠가 전임 교황을 위한 축도를 올릴 때는 조문객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 향했다.
수도에서 우리와 함께 올라온 사제들에게는 그래도 익숙한 얼굴이었지만, 이곳에는 탄닌 가문의 사람들이나 영지민들도 많이 몰려와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빠가 나설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의 얼굴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성하.”
“덕분에 많은 위안이 되었어요.”
모든 예식이 끝나고 운구가 이루어질 때는, 탄닌 공작가의 방계 혈족들이 아빠에게 와서 몇 번이나 감사 인사를 했다. 전임 교황과 가까웠던 사제나, 그에게 은혜를 입은 신도들도. 아빠는 그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인사를 받고, 위로를 전하거나 축성을 내려주었다.
그리고 와중에 나까지 돌보았다.
“피곤하지는 않으냐.”
조심스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던 아빠의 얼굴이 점차 걱정스럽게 변했다.
“떨고 있구나, 여기가 무서운 건가.”
그의 시선이 묘비를 향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몸이 안 좋으신 와중에도 나와 요한을 보면 반갑게 맞아주시던 분이다. 돌아가셨다고 해서 갑자기 그분이 무서워질 리가 없었다. 애초에 다들 내게 황성에서 쉬고 있으라고 말리는 걸, 따라오겠다고 부득불 우긴 게 나니까.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내가 처음으로 장례식에 참석했던 것은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였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으니, 나는 다른 핑계를 주워섬겼다.
“그냥, 추, 추어서…….”
“그래?”
아빠는 나를 안아서 품에 안더니, 뒤따라온 사제에게 담요를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곤 문득 한쪽 손을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이런, 비가 오겠군.”
그때, 우리의 옆으로 작은 인영이 다가왔다.
유모의 손을 잡고 온 꼬마의 까만 정수리가 낯설지 않았다.
‘요한…….’
요한은 부모가 없었다고 하니, 셀라디온 전임 교황이 유일한 보호자였을 것이다. 그 애는 얼마 전에 6번째 생일을 맞고 6살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내가 아빠를 잃고 고아가 된 것과 같은 나이다.
‘괜찮을까.’
죽음이 무엇인지, 요한은 알고 있을까. 똑똑한 아이니까 자신이 어떤 처지인지는 느끼고 있을 텐데.
나는 아빠의 팔 너머로 고개를 숙여서 요한의 얼굴을 살피려고 했다.
확인하고 싶었다. 요한이 괜찮은지, 아이치고는 유난히 감정의 고조가 적어 늘 표정이 없던 새하얀 눈가가 눈물로 빨개져 있지는 않은지.
하지만 역시 이 위치에서는 요한의 정수리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문득 깨닫게 되었다.
‘참 작았구나.’
어른의 눈높이에서는 이렇게나 작구나, 아이라는 건.
눈을 맞추려면 한없이 자세를 낮춰야 할 정도로.
묘비 앞에 선 요한은, 가만히 있어도 위태로워 보였다. 축 처진 어깨와 작은 팔다리가 너무나 무르고 약해 보인다. 어른들이 실수로 밟거나 부딪혀 어딘가 다치게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나도 저랬을까.’
요한은 묘비 앞에서 한참을 가만히 서 있었다.
비가 쏟아져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어질 때까지, 나는 아빠의 품에서 요한을 지켜보았다. 정확히는 그 아이의 위로 겹쳐지는, 부모를 모두 잃고 혼자 남았던 6살의 이브엔나를.
‘폐하.’
그리고 그때의 내게 따스하게 말을 걸어주었던 또 한 사람.
‘리벨 삼촌?’
‘이젠 삼촌이 아니라, 큰아빠랍니다. 대관식 이후에는 폐하의 사람이니, 편한 대로 부르셔도 됩니다만.’
지금으로부터 9년 후의 리벨리우스를.
‘…아빠?’
그는 세상에 홀로 남은 듯 덩그러니 서 있던 내게 와 흙바닥 위에 한쪽 다리를 꿇고 눈을 맞춰주었다. 그리고 부드럽게 웃으며 속삭였다.
‘그게 편하면, 아빠라고 불러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