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98)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96)화(98/207)
갑작스럽게 내리기 시작한 비 때문에 장례식은 일시 중지되었다.
탄닌 가문의 영지는 제국의 서쪽 끝에 위치해 있었다. 영지의 한 면은 바다를 끼고 있다는 뜻이었다. 제국을 보호해 주는 성물과도 멀리 떨어져 있어, 마물의 침략에도 취약한 편이다.
이곳의 영지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첫 번째가 수해였고, 두 번째가 바다와 함께 범람하는 마수였다.
덕분에 조문객들은 갑작스럽게 때려 붓는 비를 두려워하며 오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탄닌의 영지민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비교적 가까운 도시에서 온 사제들도 이미 해가 떨어지기 전에 빗길을 뚫고 사라진 지 오래였다.
결국, 마지막까지 영지에 남은 것은 다른 소국에서 온 몇몇 사제들과 면면이 눈에 익은 수도 출신들이었다.
“하늘이 셀라디온님의 죽음을 추도하는 것 같군요.”
연갈색 머리에 전임 교황처럼 새파란 눈을 가진 남자가 커튼을 걷으며 말했다. 어린 가주 요한을 대신하여 내내 장례식을 주관했던 전임 교황의 조카, 드미트리 탄닌이었다.
그의 말대로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구멍이라도 뚫린 듯 비를 쏟아붓고 있었다. 이 정도면 억지로 밖으로 나가려 해도 앞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탄닌 공작가에 몰린 조문객들은 꼼짝없이 발이 묶이게 되었다.
공작가에서는 먼 곳에서 온 교황과 여러 고위 사제들을 위해서 가문의 별관들을 모조리 비워주었다. 그러고도 손님들을 다 수용하지 못해 몇몇은 본성에서 신세를 지게 생겼지만.
탄닌가에서는 만찬장을 열고 이어진 휴게실 문을 개방하여 식사를 끝낸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대화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전임 교황의 장례식이다 보니 모여든 사람들도 쟁쟁했다. 타국의 대사제들, 대도시의 주교들, 이미 얼굴을 익힌 수도의 추기경들도 있었다. 모두 한가락씩 하는 고위 귀족이자 고위 사제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의 사이에서도 유독 경외에 찬 시선을 받는 한 사람이 있었다.
“교황 성하.”
나는 무심코 사람들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창밖의 하늘은 예고 없이 불어치는 폭풍우로 빛 한 줄기 없이 우중충한데, 방 안에만 금빛 해가 떠오른 듯 시야가 환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은지, 아빠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다들 시선을 내리깔기 바빴다. 그런데도 누구 한 사람이 다가서면 질 수 없다는 듯 따라붙어 순식간에 아빠의 주변을 에워쌌다.
“아까는 인사를 못 드렸지요.”
“정말 훌륭한 축도였습니다.”
“이 먼 곳까지 귀한 발걸음 주시고.”
“성하께서 이렇게 장성하신 덕에 셀라디온님께서도 편안히 테헤라님의 품에…….”
나는 낌새를 눈치채고 먼저 발 빠르게 자리를 뜬 덕에, 아빠와 함께 사람들 틈바귀에 끼이는 불상사는 피할 수 있었다.
“휴.”
짧게 한숨을 내쉰 후 고개를 드니, 저 소란과 상관없이 여유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벤 추기경과 린드벨 공작을 포함하여, 하나같이 낯익은 것을 보니 수도의 사제들이다. 매일 대신전에서 아빠의 얼굴을 보는 수도 출신들은 역시나 꽤 침착했다. 그를 에워싼 사람들은 대부분 타 도시의 사람인 듯했다.
나는 뒷걸음질을 치며 그들에게서 슬슬 멀어졌다. 다행히 내 얼굴은 다른 지역까지 알려지지 않아서, 사람들은 나를 신경 쓰지 않고 멀어지게 놔두었다. 난 널찍한 휴게실을 가로지르며 창밖을 흘긋거렸다.
‘이 장례식에, 마수가 나타난단 말이지.’
내가 어른들이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억지로 전임 교황님의 장례식까지 따라온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물론, 전임 교황 성하와 정이 많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뿐이라면 아빠의 집무실에 드러누우면서 떼를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래에, 전임 교황의 장례식을 치르는 날 마수가 나타나 영주성에 온 사람 중 하나가 죽었다는 기록을 본 적이 있었다. 더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었다. 피해자가 하나 밖에 안 나온 작은 사건이라 짤막한 기록으로 한 줄 본 게 다였으니까.
‘그때는 그냥 넘어갔지만…….’
전임 교황께서 승하하셨다는 말을 듣자마자, 그 기록이 퍼뜩 떠올랐다.
당시에는 각국의 왕가나 고위 사제들의 행적을 외우기에 바빠서 대충 읽고 넘긴 부분이었는데. 막상 일이 닥치자 심장이 덜컹했다. 기록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당하는 것 사이에는 일만 광년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엄숙해야 할 전임 교황 성하의 장례식에 마수로 인한 사망자가 나와선 안 된다. 게다가 마수에게 피해를 입는 게 혹시 우리 식구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도저히 가만히 쉬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거나 아빠에게 경고도 해줄 겸 이곳까지 부득불 따라 나온 거였다.
‘요한은 잘 들어갔을까?’
나는 유모의 시야 내에서 사람들이 적은 곳으로 움직이며 아까부터 보이지 않는 아이의 모습을 찾았다.
전임 교황의 묘비 앞에서 위태롭게 서 있던 요한의 작은 등이 자꾸 떠올랐다. 그런 모습을 봐서일까, 잊고 있던 유년의 기억들이 하나둘 머리를 스쳤다.
‘요한은, 괜찮았으면 좋겠는데.’
모르겠다. 내가 걱정하는 게 요한인지, 그 시절의 나인지도.
“요한, 그 아이에게….”
그때 내 귀에 익숙한 이름이 들려 왔다.
한참 요한의 생각에 빠져 있었던 탓에, 나는 웅성거리는 말소리 사이에서 들리는 작은 이름을 잡아냈다. 의아하게 고개를 돌리자 한쪽 구석에 자기들끼리 모여 있는 공작가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심각한 얼굴로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주변이 시끄러워서 잘 들리지 않았다. 난 나도 모르게 그들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어차피 영지와 가문의 관리는 드미트리님이 다 해야 할 텐데, 가주가 그 아이면 제대로 손대기 힘들 것 아니에요?”
“정말, 외숙께서는 무슨 생각이셨는지. 근본도 모를 아이를 갑자기 데려와서는…….”
“그렇게 말하지 마, 리사. 외숙께선 불쌍한 전쟁고아를 거둬준 것뿐인데.”
근본도 모를 아이, 전쟁고아?
‘지금 말하는 게… 설마 요한 이야기야?’
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순간 심장이 덜컹했다.
기록에 따르면 셀라디온 탄닌 교황은 ‘핏줄을 남기지 않았다’라고 했다.
핏줄을 남기지 않았다는 말은 보통 자식을 본 적이 없다는 뜻으로 쓰이니까, 손주가 있는 게 이상하다곤 생각했는데.
‘친손주가 아니었구나.’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요한이 전임 교황의 제자가 마지막으로 참전한 전쟁에서 구해낸 나샤 출신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자 요한이 세례를 받고 성흔이 발현했을 때, 뛸 듯이 기뻐하던 전임 교황의 환한 웃음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면 교황의 손주라면 성흔이 발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렇게 기뻐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던 거다.
‘탄닌 가문의 방계혈족들에겐 굴러온 돌 같겠네.’
가주가 90줄이 되도록 자식이 없어서 당연히 자신 중 하나가 다음 가주가 될 줄 알았을 텐데, 갑자기 입양아라니.
하지만 나는 요한 다음으로 전임 교황과 가까운 핏줄인 드미트리 탄닌의 모습을 떠올렸다. 입관식에서 목에 핏대를 세우고 전임 교황 성하의 업적을 읊던 그의 신실한 모습을.
그때 보여줬던 것만큼 성하께 존경심을 갖고 있다면 그분의 뜻을 충분히 존중해주겠지…….
그렇게 낙관하려는 순간, 드미트리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괜찮다, 요한이 내게 권리양도각서를 써주기로 했으니까.”
등을 돌리려던 내 발이 멈칫했다.
‘권리양도각서?’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폐하께서 성인이 되시기 전까진, 제가 폐하의 대리인이 되겠습니다.’
‘황실 부지의 소유권을 양도한다는 서류입니다.’
‘자, 여기에 서명만 해주시면 됩니다.’
머릿속에 리벨 삼촌의 목소리가 웅웅 울렸다. 거기에 대답하던 내 목소리도.
‘네, 아빠.’
나는 휙하고 그들을 올려다봤다. 내가 조그만 아이여서인지, 꽤 가까이 왔는데도 그들은 내게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있었다.
어쩐지 속이 끓었다.
어린아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러는 거겠지. 힘없고 무지하고, 제대로 보호해 줄 부모도 없는 고아 소년.
얼마나 손쉬운 먹잇감으로 보일까.
“아기님!”
그때 린다 유모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사람들이 많으니까, 너무 멀리 떨어지시면 안 돼요.”
“아…….”
유모의 목소리에, 그제야 탄닌 가문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유모를 따라 아빠가 있는 방향으로 갔다.
“이브엔나.”
아빠가 나를 부르자, 그들의 주위를 에워싸고 있던 고위 사제들의 시선도 나를 향했다.
“이브엔나라면…….”
“헉, 설마 이분이.”
“성녀님?”
사람들은 곧장 나를 마주하고 공손히 인사하기 시작했다. 만나서 영광이라는 둥, 어린데도 후광이 보인다는 둥. 한꺼번에 쏟아지는 찬사 섞인 인사에 내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난 도움을 청하는 마음으로 아빠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빠.”
하지만 그게 역효과였다.
“오오, 성녀님과 성자님이 부녀로 이어지다니. 이렇게 멋질 데가.”
“이리 귀하신 분들이 한 시대에 두 분이나 나셨다는 건 성신께서 제국을 각별히 사랑하신다는 거겠죠.”
“너무 보기 좋으세요. 성녀님께서 성하를 무척 좋아하시나 봐요.”
‘아차.’
지난 불의 날 밤, 나는 엄마 아빠와 밤 인사를 나눴다. 그 이후 아빠는 새 호칭이 몹시도 마음에 들었는지 은근히 내게 아빠라고 부르기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나 역시도 아빠를 아빠라고 부를 수 있어 무척 기뻤다. 그래서 자꾸 부르다 보니 입에 붙어서 무의식중에도 섞여 나온 듯했다.
사람들의 쏟아지는 말소리에 내가 당황하고 있는데, 아빠가 어쩐지 으스대는 목소리로 말했다.
“딸이 아빠를 좋아하는 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어머.”
무뚝뚝한 아빠의 풀어진 목소리에, 사람들은 놀란 얼굴로 즐겁게 웃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나도 진땀을 흘리며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하긴, 딸에겐 아빠가 최고죠.”
“맞아요. 우리 딸은 커서 아빠와 결혼하겠다고 난리에요.”
“어머, 너무 귀여우시겠어요.”
“어릴 때야 다 그렇죠. 성녀님도 누구랑 결혼할지 물으면 분명 아빠랑 결혼하겠다고 대답하실걸요?”
아빠의 품에 안긴 채 쏟아지는 사람들의 말소리를 반쯤 흘려 넘기면서, 나는 방금 들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고아라서 지켜줄 뒷배가 없는 요한이 어른들에게 이용당하게 되리라는 생각이 떠나가질 않았다.
아빠의 묘비 앞에 서 있던 6살의 나. 그리고 그런 내게 다가와 무릎을 꿇던 삼촌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난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도와줄 일이 없을까…….
“성녀님!”
“헉.”
나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사람들은 어쩐지 기대에 찬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아빠를 돌아보았으나, 아빠까지 묘하게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뭐지?
“성녀님, 성녀님이 나중에 결혼을 한다면, 누구랑 하시겠어요?”
“어…….”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눈을 깜빡였다. 내가 딴생각하는 사이에 이런 주제가 나왔던 걸까.
나는 어리둥절하게 사람들을 마주 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뒷배가 없어서 문제가 되는 거라면…….
‘뒷배를 만들어주면 되잖아?’
난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이곳에 모여든 저 많은 고위 사제들. 그들의 경외를 한 몸에 받는 하늘 같은 교황 성하. 그리고 그의 품에 안겨 있는 신의 아이인, 나.
나는 고민을 마치고 입을 열었다.
“우웅, 이부는 요한이랑 결혼하꺼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