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Two Will Give Birth To Me In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99)
두 분은 훗날, 저를 낳습니다 (97)화(99/207)
나는 침대 헤드에 기대서 눈을 깜빡거렸다.
여정이 힘들고 새벽부터 일어나서 금방 졸릴 줄 알았는데, 잠이 안 왔다. 저녁에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한 이상한 선언 때문이었다.
‘우웅, 이부는 요한이랑 결혼하꺼예요!’
그때는 그냥 요한을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에 냅다 뱉었는데.
‘……하필이면 그때 요한이 왔을 게 뭐람.’
자기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겠다는 듯 빨간 눈을 깜빡이던 무구한 얼굴을 생각하니 양 뺨이 뜨끈해졌다.
‘아이의 의사도 묻지 않고…….’
장례식을 힘들게 마치고 쉬러 오자마자 대뜸 자신의 결혼 소식을 통보받은 요한은 대체 무슨 죄일까.
잠깐 말없이 당황하던 사람들은 곧 아무것도 모르는 요한을 에워싸고 축하한다는 둥 하면서 박수나 치고. 그렇지 않아도 말주변이 없던 요한은 갑작스러운 깜짝 결혼 발표에 당황했는지 반박도 못 하고 멍하니 서서 나만 바라보았다…….
신전 정원을 뛰어다니거나 꽃반지를 만들어주며 실없이 함께 놀던 아이인데 이 일로 어색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냥 친한 친구라고 할 걸 그랬나? 음, 하지만 그건 별 효과가 없었을 거야.’
성녀와의 친분만으로 권력이 생기는 건 우리 둘 다 성인이었을 때나 가능했다. 아직 둘 다 멋모르는 꼬맹이여서야, 친구라는 건 이야깃거리도 안 됐을 거다.
하지만 결혼은 다르지.
아직 어려서 미미한 가능성이긴 하지만, 미래에 황가의 일원, 그것도 성녀의 남편이 될 수도 있는 아이라면. 등쳐먹으려 하다가도 생각을 한두 번 더 해볼 것이다.
‘그래그래. 잘한 거야, 이브엔나.’
나는 애써 스스로를 토닥여 보았지만 자꾸 그 당시가 생생히 기억나서 이불을 계속 발로 차게 됐다. 특히나 날 안은 채 그대로 얼어버린 아빠의 딱딱한 품이 생생했다. 그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던 넋 나간 목소리도.
‘역시 우리의 예상이 맞았군…….’
그것을 떠올리자 난 잠깐 의문스러워졌다.
‘예상이 맞았다는 게 대체 무슨 소리지?’
어제까지만 해도 요한과의 결혼 같은 거, 입에 올리긴커녕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난 정말 알 수 없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음, 골 아파…….”
나는 침대 옆에 붙은 창문에 이마를 댔다.
창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지만, 그래도 저녁 만찬장에서 봤을 때보다는 훨씬 잦아든 모습이었다. 아까는 정말 폭풍우라도 불어올 것 같았는데. 이 정도라면 내일이나 모레 정도는 수도로 출발할 수 있겠다.
‘괜찮겠지…….’
나는 휴게실에서 보았던 사람들의 얼굴을 찬찬히 떠올려봤다.
이 영주성에 있는 사람 중 하나는, 오늘 밤에 죽기로 되어있다.
그건 오늘만 잘 버텨내면 된다는 소리다. 나는 아빠에게 미리 오늘 밤 심상찮은 일이 있을 거라고 말해놓았다.
‘아빠! 오느른 밖에 아무도 못 나가게 해야 해요. 밤에 마수가 나오찌도 몰라.’
‘그게 무슨… 설마, 신탁을 받은 건가?’
나는 대답 대신 옅은 미소를 지어주었다.
뜬금없는 나의 결혼 계획에 한참 당황하시던 아빠는 기분이 조금 풀리셨는지, 이내 경이로운 생물을 보듯 내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어주었다. 나는 헤헤 웃으며 아빠의 손에 뺨을 비볐지만, 신탁을 받은 게 맞다고는 안 했다. 어쨌든 거짓말은 하지 않았으니 양심은 지킨 거지.
아빠는 곧장 탄닌 가문의 가주 대행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가주 대행의 지시에 따라 성은 수비 태세에 들어갔다. 공교롭게도 이곳에 모인 고위 사제들이 무척 많아서 경비가 부족할 일은 없었다.
미친 듯이 비가 쏟아지고 마수가 올 것이라고 철저히 경고까지 해둔 마당이었다. 정신 나간 마수 애호가가 머리 풀고 몰래 성에서 빠져나가지 않는 한, 오늘 밤 사망자가 나올 일은 없을 것이다.
“휴.”
나는 뿌듯함을 느끼면서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로써 영주성의 정체 모를 누군가가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내가 간만에 도움 되는 일을 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때, 내 시야에 이상한 게 들어왔다.
“어, 저거는…….”
영주성 옆쪽, 바다와 이어지는 산책로. 바람에 흔들리는 가로수들 사이, 어둠을 밝혀주는 발광석 아래로 조그맣게 움직이는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저게, 내 눈이 잘못됐나?’
창문에 맺힌 물방울을 잘못 본 건가 싶어, 나는 비가 들어오는 것을 감수하고 창문을 열어젖혔다.
쏴아아아아아!
아까보다는 많이 잦아들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다. 차가운 비바람이 열린 창 사이로 쏟아져 들어와 내 얼굴을 때리고 옷을 적셨다.
“후으.”
나는 창밖으로 목을 빼고 인상을 찌푸리면서 인영을 발견했던 산책로를 훑었다.
그리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건 사람이 맞았다. 이상하게 너무 작다 싶었는데, 서둘러 움직이는 인영의 까만 정수리를 보니 알겠다.
진짜 있었다. 정신 나간 마수 애호가가.
게다가 그게…….
“요한?”
대체… 대체 뭐 하는 거야, 저 녀석!
나는 너무 당황해서 허공에 대고 손을 휘저으며 입만 벙긋거렸다. 그 와중에도 눈은 빗길을 달리는 꼬마의 까만 정수리에 꽂혀 있었다.
‘저거 왜 저렇게 빨라!’
나는 잠깐 복도로 나가서 사람들에게 알릴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순간 요한이 산책로와 이어진 산길로 사라져버렸다. 이제 요한은 점처럼 작게 보였다.
“헉, 어, 어떡해.”
안 돼. 사람들에게 알리고 출동 준비를 하면 너무 늦어. 게다가 이미 어둠이 내리깔린 바깥으로 여러 사람이 나갔다간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 위험하게 될지도 몰랐다.
그냥 내가 가는 게 제일 빠르겠다.
나는 몸에 방어 마법을 건 다음, 마력의 도움을 받아 창틀을 붙잡고 창문 틈으로 몸을 던졌다.
빠르게 상승하는 주위의 전경, 나는 아래로 떨어지면서 차가운 공기와 빗물이 나를 비껴가는 것을 느꼈다.
바닥에 부딪히기 직전에 마력으로 몸을 허공에 띄웠다.
“푸우.”
나는 작게 숨을 내쉬고 그대로 달려 나가려다가, 아차 하고 내가 있던 3층 창문을 올려봤다. 손가락을 휙휙 젓자 활짝 열려 있던 창문이 예쁘게 닫혔다.
“어디지.”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저 옆으로 희미하게 발광석이 반짝이는 것을 발견했다. 출발하기 전에, 마력으로 몸에 마법진을 그렸다.
어쩐지 처음 마탑에 가서 알비스를 찾아다니다가 S급 시험장에 떨어졌을 때가 떠올랐다.
<필드의 모든 마수를 처리하세요!>
그 시험은 끔찍했지만 내게 많은 걸 가르쳐줬다.
상급 마법을 쓰는 게, 마력을 원형으로 사용하는 것보다 마력 소모가 덜하다든가.
달려오는 버펄로 무리에서 도망 다니기 위해서는 내가 그들보다 빠른 것으로 변신해야 한다는 사실 같은 것.
그리고 단시간에 거리를 벌리려 할 때, 가장 기동성이 좋은 동물은 치타라는 것도.
내 몸을 뒤덮은 마법진의 검은빛이 사그라들자, 난 시야가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새 인간 아이의 하얗고 무른 팔다리를 새끼 치타의 효율적인 근육과 매끄러운 팔다리가 대체하고 있었다.
나는 기분 좋게 포효했다.
“삐약!”
능력의 한계로 아직 성체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준비를 끝낸 나는 빗길 사이를 달리기 시작했다.
발광석이 빛나는 산책로를 따라 달렸다. 지면을 발로 찰 때마다 치타의 폭발적인 근육이 팽창하는 게 느껴졌다. 방에서 확인한 요한이 서 있던 지점까지 도달하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오른쪽 산길이었어.’
나는 요한이 향했던 산길을 달렸다. 기분 나쁜 비가 털을 적시지 않게 방어 마법이 막아주고 있었다. 산길을 가로지르자 또다시 갈림길이 나왔다. 킁킁거리며 바닥을 살피자 아직 비에 뭉개지지 않은 발자국이 보였다.
‘위쪽!’
나는 커다란 바위를 딛고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요한의 발자취를 쫓으면서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들을 떨칠 수 없었다.
마수가 나타난다는 것을 그렇게 경고해 주었는데, 이 폭우를 뚫고 요한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그리고 내가 이렇게 빠르게 추격하고 있는데, 대체 요한은 어떻게 아직도 잡히지 않은 걸까?
‘고작 6살이면서.’
6살 치고 빗길에 이 정도의 속도를 낼 수 있는 걸 보면, 요한도 신체 능력이 보통은 아니었다.
하지만 역시 치타가 더 빠르다.
커다란 바위 동굴 사이로 보이는 까만 정수리에, 나는 속도를 조금 늦췄다.
치타는 은밀한 사냥꾼이다. 그렇기에 치타의 말랑한 발바닥은 딱딱한 돌바닥을 디뎌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체취도 거의 없었다.
“어.”
하지만 요한은 무척 예민한 오감을 가진 듯했다.
녀석이 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 나는 빠르게 마법을 해지했다.
“잡아따.”
내가 요한의 옷깃을 잡고 방긋 웃었다.
요한의 새빨간 눈이 토끼처럼 커다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