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est on Top RAW novel - chapter (138)
막내온탑 (138)화(138/299)
“제독님……!”
사엘리카가 깜짝 놀라 에켈란 제독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우리 사과 얼굴 보는 게 대체 얼마 만이야.”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이렇게 갑자기 들어 올리시면—.”
“보고 싶었어.”
에켈란 제독이 미소 지었다.
그의 보랏빛 눈동자가 다정하게 반짝였다.
결국 사엘리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요.”
“많이 컸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직접 보니 우리 사과는 아직도 애기잖아?”
“애기라니요! 제가 얼마나 컸는데! 키도 자랐고! 이제는 찬장에서 뭐든 혼자 꺼낼 수 있다구요.”
“발 받침이 있어야 하지만.”
“발 받침을 이용할 수 있는 것도 대단한 거예요!”
“그래, 우리 사과 대단하다.”
에켈란 제독이 픽 웃으며 사엘리카의 뺨을 살짝 꼬집었다.
“하지만 과육은 여전히 부드럽고 연한데. 단단해지려면 아직 멀었어.”
“두고 봐요. 곧 볼살도 다 빠질 거예요.”
“그건 정말 큰일인데! 내 사과가 반쪽이 될 거라니!”
“제독님!!”
쿡쿡.
웃음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귀부인들이 웃고 있었다.
“아까 전까진 성녀님께서 나름대로 의젓하게 행동하고 계셨나 보네요. 실제 성격은 이런가 보죠? 귀여워라.”
“다르페타 부인.”
“후후, 여전히 근사하시네요, 제독님.”
“수많은 염문설을 뿌리고 다니시던 분이 한 사람에게 정착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과연 오늘 보니 왜인지 알겠군요.”
귀부인들이 부드럽게 웃으며 농을 쳤다.
“너무하시네. 수많은 염문설이라니. 우리 사과가 듣고 오해하겠습니다.”
“오해 안 해요.”
“그렇지? 사과는 나를 믿지?”
“제독님의 여성 편력은 예전부터 아주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사과야.”
에켈란 제독이 졌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사엘리카의 이마에 이마를 부딪쳤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에켈란 제독님의 저런 모습은 처음이죠? 사교적이어도 선이 분명하신 분이었는데.”
“아르테미아의 성녀가 제독님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는 말이 돌긴 했죠.”
“제독님께서 워낙 신전을 안 좋아하시다 보니 정치적인 의미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닌 것 같은데요? 실제로 보니 예상보다도 더…….”
“그러고 보니 에켈란 제독님께서 이번 원정에서도 또 대승을 거두셨다고 하죠?”
눈짓을 주고받은 사람들이 사엘리카의 곁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 * *
‘무슨…….’
아그네스는 이 모든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카이슈리트 황태자도 모자라서, 에켈란 제독 같은 최고위 귀족이 저런 천것을 싸고 돌다니!’
원래대로라면 저 천것은 고위 귀족들 사이에 제대로 끼지도 못했을 것이다.
모두에게 외면받아 커튼 뒤에 숨어 있을 게 뻔했는데……!
“저 요망한 게 주제도 모르고 감히 황태자 전하와 제독님을 꼬여내?”
“글쎄, 주제도 모르고 나불대는 건 너 같은데.”
“……!”
아그네스는 깜짝 놀라 옆을 바라보았다.
선명한 푸른 눈동자가 그녀를 싸늘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그네스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데, 데미안 대공자님…….”
“입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계속 쓰레기만 뱉어내면 내가 착각할지도 모르겠거든.”
“…….”
“아, 쓰레기네? 보기 흉하니 찢어버려야지, 하고.”
모멸감에 아그네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어떻게 감히 제국의 공녀인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저 천것을 감싸기 위해서!
하지만 북부의 노이슈라헬 대공가는 원래 괴물 같고, 무자비하고, 잔혹한 가문이었다.
노이슈라헬은 협박 따윈 하지 않는다.
모든 말이 진실이니까.
아그네스는 차마 항변하지 못하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데미안은 부들부들 떠는 아그네스를 무감하게 지나치다, 멈춰 섰다.
“그리고 반대야.”
“네?”
“요망한 건 사엘리카가 아니야. 제독님과 황태자 전하다.”
“……네?”
데미안은 다시 걸음을 옮기며 생각에 잠겼다.
‘황태자라고? 대체 황태자는 또 어떻게 알아보고 사엘리카에게 접근한 거지?’
사엘리카가 제도에 올라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잘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은 황태자와 벌써부터 엮이다니.
‘……역시 대관식에 황태자를 부르지 말았어야 했나.’
대관식 때 사엘리카는 정말 귀여웠다.
카이슈리트가 감정이 없는 살육 기계라고 할지라도 그 모습을 잊었을 리 없다.
다시 재회했는데 이렇게 사랑스럽게 자랐으니…….
“사엘리카.”
“데미안 대공자님!”
사엘리카의 두 눈동자에 가득한 건 반가움이었다.
데미안은 만족감을 느꼈다.
“그 반년 사이 또 많이 자랐네.”
“그쵸?”
“아직 애기지만.”
“……대공자님, 제독님이랑 너무 비슷한 거 아니에요?”
“별로 좋게 들리진 않는데.”
그 말에 에켈란 제독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흐음? 사랑하는 조카야, 그게 대체 무슨 의미니?”
“있는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보고 사엘리카는 픽 웃었다.
이번 원정을 함께 떠났더니 한층 더 가까워지고 닮은 것 같다.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데미안은 에켈란 제독에게 은근히 벽을 쳤는데.’
“왜 웃어?”
“아니, 두 사람이 새삼 사이좋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데미안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반면 에켈란 제독은 씨익 웃으며 조카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다 우리 사과 덕분이지.”
“저요?”
“그래, 우리 사과 덕분.”
‘아, 하긴.’
사엘리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마검과 첩자의 정체를 밝혀서 대공자님이 더 이상 잠식 당하지 않게 되었으니—.”
“응? 무슨 소리야?”
“네?”
에켈란 제독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아니, 물론 그것도 크지. 크지만.”
“……?”
“이 녀석이 북부에서 잘 나오지 않다가 나온 것도 전부 사과를 보기 위해서잖아. 덕분에 나랑 지내는 시간도 늘어났고.”
“그런 거 아닙니다.”
데미안이 단번에 부정했다.
“정말 그런 게 아니야? 그럼 이번 원정은 왜 같이 갔던 건데? 분명 사과한테—.”
“그런 거 아니래도요.”
“그래, 그렇겠지.”
에켈란 제독이 빙글빙글 웃었다.
데미안은 불만 가득한 눈으로 에켈란 제독을 바라보다가 멈칫했다.
“춤곡이다.”
때마침 춤곡이 시작되고 있었다.
“사과야.”
“사엘리카.”
두 사람이 동시에 손을 내밀었다.
“이건 양보할 수 없습니다.”
“삼촌에게 존경심을 보여야 하지 않나?”
“소중한 조카라 뭐든 다 지지해주시겠다면서요?”
“이건 안 돼.”
“저도 안 됩니다.”
두 숙질 사이에 불꽃이 튀었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시선이었다.
“사엘리카, 내 손 잡아.”
“사과야, 나랑 춤추자.”
두 남자의 얼굴이 코앞에 들이밀어졌다.
‘아니, 왜 나한테…….’
사엘리카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경험상 이건 누굴 골라도 후폭풍이 엄청나다.
그때였다.
“이렇게 새치기라니. 제독과 대공자가 예법도 못 지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매끄러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황태자 전하.”
“전하를 뵙습니다.”
에켈란 제독과 데미안은 상당히 불손하다고 해석될 수 있는 태도로 인사했다.
카이슈리트는 오히려 더 미소 지었다.
“성녀님의 파트너는 나인데. 첫 춤은 파트너와 함께라는 걸 모르는 건가?”
“파트너를 내버려 두고 자리 비우신 분이 하실 말씀은 아니죠.”
“파트너가 항상 곁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는 법이 있는 줄은 몰랐군.”
카이슈리트가 피식 웃으며 사엘리카의 손을 잡았다.
데미안과 에켈란 제독이 눈을 부릅떴다.
“걱정하지 말게. 대공자의 말대로 앞으로는 절대 파트너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을 테니.”
그 말만 남기고 카이슈리트는 자연스럽게 사엘리카를 댄스 홀로 이끌었다.
사엘리카는 어깨를 으쓱였다.
‘어쨌든 슈리가 내 파트너고, 꽤 도움도 됐으니까.’
이 경우는 슈리의 뜻에 따르는 게 맞았다.
거기다 에켈란 제독이나 데미안 중 한 명을 고르면 더 난리 날 테고.
문제는—.
“너무 못 추는 거 아닙니까?”
네 번째 발을 밟자 슈리가 묘한 웃음을 지으며 놀렸다.
“신사는 레이디의 실수를 감싸준다던데요.”
“나는 신사가 아니라서.”
“춤을 거의 춰본 적이 없어서 그래요.”
“그렇다고 해도 이건 좀 심하지 않나?”
그 사이 발을 또 밟았다.
“일부러 그러는 겁니까?”
“설마요.”
“이렇게 발을 많이 밟는 것도 어떤 의미로는 재능인데.”
“자꾸 그렇게 놀리실 거면 다른 사람들하고 추지 그래요?”
슈리의 손이 사엘리카를 바짝 끌어당겼다.
“싫어.”
붉은빛과 푸른빛, 황금빛이 뒤섞인 오묘한 눈동자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가 미소 지었다.
“나는 춤은 딱 질색이거든.”
‘그럼 왜?’
지금은 춤을 추는 거지?
의문을 입 밖으로 내기도 전에 슈리가 귓가에 속삭였다.
“춤은 전투가 아닙니다, 성녀님.”
“……그 정도는 저도 알거든요.”
“알면 나와 겨루려 하지 말고 내게 몸을 맡겨요.”
슈리가 사엘리카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끌었다.
사엘리카는 반사적으로 몸에 힘을 주었다가 슈리의 시선을 받고 풀었다.
그러자 한결 편해졌다.
“그래, 그렇게요.”
“자꾸 반항하고 싶어지게 말하지 마세요.”
“칭찬이었는데요?”
“칭찬이었어요?”
동그래진 푸른 눈을 보며 슈리가 미소 지었다.
“성녀님은 춤을 정말 못 추니까 다른 사람하고는 절대 추지 말아요.”
* * *
귀족들은 댄스홀에서 춤추는 두 사람을 보고 감탄했다.
“황태자 전하께서 춤을 추시는 건 처음 봐요.”
“그러게요. 다른 사람과 닿는 걸 극도로 꺼리시지 않나요?”
“보기 좋네요.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운 한 쌍이에요.”
“황태자 전하께서도 그렇게 보이는 건 또래 여자아이와 함께 있기 때문일까요?”
소곤거리던 귀족들이 시선을 교환했다.
“황태자 전하에, 에켈란 제독 그리고 노이슈라헬 대공자까지.”
“거기에 단번에 황제 폐하의 신임을 사서 카스톤 교류권까지 일임받았죠.”
“그리젤다 황녀님께서 왜 초대하려 했는지 알 것 같아요.”
귀족들이 잠시 침묵했다.
“……만약에 사엘리카 성녀가 정말 카스톤 교류에 성공한다면.”
“네, 인정해줘도 괜찮은지도 모르겠어요.”
서로를 마주 본 귀족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엘리카 성녀를 아카스텔에 초대해도 될지도.”
“……!”
커튼 뒤에서 그 소식을 들은 아그네스가 주먹을 콱 틀어쥐었다.
‘아카스텔에 저 천것을 초대하겠다니!’
이건 정말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 * *
“진귀한 구경을 했습니다. 주인님께서 춤을 다 추시다니.”
카이슈리트가 테라스 밖으로 나오자마자 목소리가 들렸다.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지만, 슈리의 수하들이었다.
“별것 아닌 일로 호들갑은.”
“호들갑이라니요. 주인님께서 처음으로 춤을 추신 날 아닙니까?”
“그러게요. 무슨 생각으로 꼬마 성녀와 춤을 추신 겁니까?”
“건방지잖아.”
“……예?”
“제멋대로에,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지 않나.”
카이슈리트가 테라스의 난간에 몸을 기댔다.
“처음에는 그래도 예의 있는 척하더니 점점 본성이 드러나는 것 좀 봐.”
“그건…….”
‘주인님께서 먼저 예의 있는 척하다가 점점 본성을 드러내셨기 때문 아닐까요.’
사내들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하긴, 그렇다고 해도 그 꼬마 성녀의 성격도 장난 아니긴 했다.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들이야 잘 모르겠지만, 이들은 사엘리카가 춤추는 동안 무슨 말을 했는지 다 들었다.
그들의 주인에게 그렇게 대할 수 있는 여자애는 또 없을 것이다.
“하여간 수상한 구석이 많으니까 곁에 두는 것뿐이다. 전에도 말하지 않았나?”
“예, 그런데…….”
그런 말을 하면서 왜 그렇게 웃는 겁니까?
그들은 차마 주인에게 묻지 못했다.
슈리의 얼굴에는 드문 미소가 얕게 떠올라 있었다.
* * *
아그네스는 곧바로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공작저로 돌아온 그녀는 당장 통신석을 집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통신석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그네스 공녀님?]“큰일 났어요! 아르테미아의 천것이 제도 사교계를 뒤흔들고 있다고요!”
[황제 폐하가 그것에게 카스톤 교류권을 줬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그것만이 아니니 문제죠!”
아그네스는 소리를 빽 질렀다.
“오늘 그 천것이 누구와 파트너로 왔는지 아세요?!”
[…….]“바로 황태자 전하예요!”
[……카이슈리트 황태자요.]“거기다 에켈란 제독과 데미안 대공자까지 와서 그 더러운 게 사교계의 주인공처럼 굴었다고요!”
[……여러모로 귀찮아졌긴 하네요. 제독과 대공자는 내년에야 귀환할 줄 알았는데.]“거기에 그 천것을 아카스텔에 초대할 수 있다고 해요.”
[……!]통신석 너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아카스텔. 그건 절대 막아야겠군요.]“카스톤 교류를 성공적으로 마치면 초대하겠다는 말을 했어요.”
[다시 말해 카스톤 교류를 실패하면 아카스텔에 초대도 물거품이 되는 거군요.]“황제 폐하 역시 그 천것에게 실망하겠죠.”
그 더럽고 천한 게 모든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있다.
어서 그 더러운 본색이 드러나야 하는데.
[걱정 말아요. 공녀.]통신석 너머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아그네스를 다독였다.
[그 천하고 더러운 피가 카스톤 교류에 성공할 일은 없을 테니.]확고한 단언이었다.
아그네스는 안심했다.
상대의 말은 단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으니까.
저 더러운 천것은 처절하게 망신당해 제도에서 쫓겨날 것이다.
더러운 반쪽짜리 동생이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