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est on Top RAW novel - chapter (291)
막내온탑-291화(291/299)
“아빠…….”
“그래.”
“아빠 여깄다.”
“아빠를 알아보겠니?”
한꺼번에 대답이 들려왔다.
세 남자는 멈칫하더니 서로를 바라보았다.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막 돌아온 막내 앞에서 못난 꼴을 보일 생각이냐?”
대신관님이 근엄하게 세 사람을 꾸짖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말씀하셨다.
“할찌다.”
“…….”
저기요.
“난 삼촌이야!”
세르주 삼촌이 질 수 없다는 듯 끼어들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역시 삼촌보다는 아빠가 좋을 거 같은데. 사과야, 이제 슬슬 나를 아빠라고 불러—.”
세르주 삼촌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아빠들이 세르주 삼촌을 끌고 갔기 때문이다.
세르주 삼촌의 모습은 아빠들 사이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음, 신경 꺼야지.’
나는 산뜻하게 결론을 내렸다.
그때, 데미안이 내게 툭 말했다.
“걱정했어.”
간단한 한마디지만 많은 것이 배어 있는 목소리였다.
미카엘이 장난스레 데미안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그냥 걱정이 아니지. 이 재미없는 형님이 요 이틀간 엄청 재밌게 굴었다고.”
데미안이 차갑게 미카엘의 팔을 떨쳐냈다.
슬쩍 옆에 있는 바렌샤를 보자 핼쑥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자긴 아닌 척 말하고 있지만 미카엘도 엄청 난리 쳤나 보네.’
기웃거리던 우리 애들이 염려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꿀빵,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천사들은 하늘이 열렸다고 하고 천계로 돌아가버렸어.”
“막내 기운이 느껴지는 곳에 갔더니 엄청난 탁기가 남아 있질 않나.”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맞아. 진짜 놀랐지. 심지어…….”
재잘재잘 떠들던 애들이 갑자기 머뭇거렸다.
무슨 일이지?
‘설마 미사 놈이 우리 애들 상대로 무슨 짓이라도 했나?!’
하지만 아이들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내 생각과 전혀 달랐다.
“……황태자 뇜이 계셨고.”
“……?”
애들 얼굴이 이상했다.
슈리가 있었던 걸 저렇게 꺼림칙한 얼굴로 말할 일인가?
‘설마 슈리한테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
자연히 마지막으로 본 슈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 방어막을 깨며 슈리에게 엄습하던 미사 놈의 탁기!
“슈— 황태자 전하께서 왜? 무슨 문제라도 있었어?!”
“멀쩡히……는 아니었지.”
“……유리관…… 아니, 방어막에 갇혀 있었으니까.”
“옷이 찢겨진 채.”
“약간 변태가 관상용으로 꾸며놓은 것처럼…….”
애들이 한마디, 한마디씩 보탰다.
그럴 때마다 나를 보는 눈빛에 불신이 차올랐다.
‘……아니, 왜 나를 그렇게 보는데?!’
“나, 나는 그냥 마왕으로부터 황태자 전하를 보호하려고 했을 뿐이야!”
“누가 뭐래?”
“왜 말을 더듬어?”
“찔리는 거라도 있어?”
억울했다.
하지만.
‘그래서 슈리는 무사하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그게 더 신경 쓰였다.
나는 보따리를 꾹 쥐었다.
가족들에게 줄 것이 많이 들어 있었다.
하고 싶은 말도 많았다.
‘그 전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슈리를 보고 싶었다.
그 애를 구하고 싶었다.
“나, 잠깐 나갔다 올게!”
“막내야?”
“꿀빵!”
“사에야!”
등 뒤에서 놀란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 * *
카이슈리트의 궁.
카이슈리트의 수하들은 깝깝한 표정으로 주인의 곁을 맴돌았다.
“아직도 그러고 계십니까?”
“그런다고 해서 사람이 천계로 올라갈 방법이 나오겠습니까?”
그렇다.
카이슈리트는 이틀째 잠도 안 자고 천계로 쳐들어 가는 법을 연구 중이었다.
“일단 식사라도 하시죠.”
“마물 사냥이라도 가시겠습니까? 그러면 좀 기분이 나아질지도…….”
그때였다.
카이슈리트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 날카로운 기세에 사내들은 혼비백산해서 말했다.
“사, 사냥은 아니었습니다. 취소입니다!”
“식사도 취소입니다! 제가 실언을……!”
“하, 하던 거 계속하시죠! 분명 천계에 침략하는…… 아니, 가는 방법이 나올 겁니다!”
그러나 카이슈리트는 그들의 반응 따위 신경도 쓰지 않았다.
재킷을 벗은 카이슈리트가 침실로 들어갔다.
그러더니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리며 침대에 누웠다.
‘뭐지? 왜 저러시지?’
사내들은 당황했다.
하지만 더 당황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툭, 투두둑—!
갑자기 카이슈리트가 셔츠를 잡아당겨 단추를 뜯어버리는 것 아닌가!
제 기능을 잃은 셔츠는 탄탄한 가슴팍을 여과 없이 내보였다.
카이슈리트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완벽하게 갈라진 복근이 틈 사이로 언뜻언뜻 드러났다.
갑작스러운 유혹!
‘음……. 저 모습을 보니 오히려 침착해지는군.’
‘그래, 처음 보는 광경도 아니고.’
‘성녀님이 오실 때면 몇 번 저러셨으니— 잠깐.’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사내들의 예민한 기감에 무언가가 걸리기 시작했다.
맑고 청아하고 신성한 기운.
“이 기운은…… 성녀님?!”
“다시 땅에 돌아오신 건가!”
“주인님, 성녀님이—.”
사내들은 말을 멈췄다.
저 멀리 있던 화병이 두둥실 날아 침대 맡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카이슈리트는 꽃과 함께 누워 있는 모습이 되었다.
“…….”
“…….”
“……나가자.”
“……그래.”
사내들이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평소 카이슈리트의 모습을 잘 아는 만큼 더 내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눈을 찌르고 싶었다.
절대 익숙해지지 않았다.
“……근데 주인님은 리카 녀석을 좋아하지 않았어?”
“그러게. 왜 자꾸 성녀님을 꼬시려는 거지?”
“설마 둘이 동일 인물 아냐?”
“푸하하하하! 말도 안 돼! 리카 녀석 같은 말썽꾸러기가 어떻게 성녀님 같은…… 어라?”
사내들이 멈칫했다.
“……성녀님도 은근히 말썽 많이 피우지 않았어?”
“그러고 보니 둘이 묘하게 비슷한 느낌인데…….”
“…….”
잠시 침묵하던 사내들의 얼굴에 깨달음이 스쳤다.
“주인님은 리카 녀석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동시에 성녀님까지 좋아하는 거였어!”
취향만 맞으면 다 좋은 거였다니!
사내들이 충격받은 얼굴로 한탄했다.
“우리 주인님이 바람둥이라니……!”
완전 실망이다!
* * *
“성녀님, 힘내시오!”
“절대 유혹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저는 주인님을 따르는 몸이지만, 그렇지만— 그래도 성녀님 편입니다!”
“……?”
왜 저래.
슈리의 수하들이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며 나를 응원했다.
하지만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황태자 전하께서는 어디 계셔?”
“……침실에 계시오.”
“침실? 어디 아파?”
사내들은 할 말 많은 얼굴로 그윽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이내 고개를 돌리더니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게 아닌가.
“……하아.”
엄청나게 많은 감정이 담겨 있는 한숨이었다.
‘뭐지? 진짜 많이 아픈가?’
나는 사내들을 지나쳐 서둘러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
자극적인 광경에 숨을 삼켰다.
슈리가, 슈리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새하얀 시트 위에 헝클어진 검은 머리카락.
흠결 하나 없는 매끄러운 피부.
단단하게 여문 턱선을 따라 이어진 목.
쇄골 아래 단단한 가슴팍이 완전히 드러나 있었다.
“……녀님?”
그가 몸을 뒤틀자, 셔츠 틈 사이로 복근이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가 사라졌다.
꼴깍.
나도 모르게 침이 넘어갔다.
‘아까 그 각도가 잘 보였는데, 조금만 허리를 더 틀어주지.’
멍하니 생각하고 있을 때.
“성녀님?”
귓가에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슈리의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오묘한 빛의 황금빛 눈동자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 저, 전하.”
나는 반사적으로 답했다.
‘뭐, 뭐지? 난 여기까지 걸어온 기억이 없는데?!’
마지막 기억은 침실 문을 연 것뿐이었다.
그냥 문간에서 슈리를 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슈리의 미모에 홀려 나도 모르는 사이 여기까지 다가오다니.
‘위, 위험해!’
슈리는 참으로 요망하고 위험한 남자였다.
하지만 더 위험한 건 나였다.
‘슈리가 안 불렀으면 내가 무슨 짓을 했을지 몰라.’
정신 차리자.
내가 여기에 온 이유가 뭔가.
슈리가 무사한지 확인하고 저주를 완벽히 풀기 위해서다.
순수한 마음으로 왔는데 불순한 짓을 저지를 순 없다!
나는 정신을 단단히 가다듬고 슈리에게 물었다.
“몸은 괜찮아요? 어디 아픈 거예요?”
“음, 약간 머리가 아프긴 한데.”
“머리가요?”
나는 슈리의 이마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촤르르—!
베드 테이블에 있던 화병이 쓰러졌다.
‘어? 내가 화병을 건드렸나?’
몸에 닿는 느낌은 없었는데.
하지만 내가 건드리지 않았으면 멀쩡히 잘 있던 화병이 왜 쓰러지겠는가.
아무래도 치맛자락이 건드린 모양이다.
‘대체 누가 화병을 이런 데 놔둔 거야?!’
화병에서 쏟아진 꽃송이가 침대에 어지럽게 흩어졌다.
슈리의 얼굴 옆뿐만 아니라 가슴팍 위에까지도.
심지어 화병에 담겨 있던 물 때문에 슈리가 흠뻑 젖었다.
새하얀 셔츠가 투명해지며 탄탄한 근육에 달라붙었다.
‘……고맙게.’
슈리의 입술이 느릿하게 열렸다.
“아, 그러고 보니.”
긴 손가락이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에게서 꽃향기가 물씬 풍겼다.
붉고 푸른 황금빛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아주아주 오래 전과 똑같이.
“성녀님이 아니라 리카라고 불러야 하나.”
두근—.
심장 소리가 튀어 올랐다.
전생에서 슈리는 나를 그 이름으로 알고 있었다.
단 한 번도 그렇게 부른 적이 없고, 마지막에 진짜 이름을 알려주고서야 나를 불렀지만.
혹시, 어쩌면.
‘슈리도 전생을—.’
기억하는 걸까.
“리카르도.”
“……아.”
슈리의 입술에서 나온 이름에 훅 부풀었던 마음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나도 참.’
뭘 기대한 거지.
문득 슈리가 얼마나 강한지 깨달았다.
‘내 기억을 봉인하고 혼자만 기억하는 것을 선택하다니.’
나는 나 혼자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쓸쓸한 기분이 드는데.
“이제는 부정도 하지 않네.”
“……미사 놈이 다 까발려 버린 거나 다름 없으니까.”
“까발리지 않았다면 계속 나를 속였을 건가?”
“그건…….”
슈리가 몸을 일으켰다.
훅 가까워지는 거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물리려는 순간.
그가 내 허리를 잡아챘다.
파삭, 꽃이 뭉그러졌다.
“나 가지고 노니까 재밌어?”
낮은 속삭임.
숨을 잘게 내뱉자 그가 내 손을 잡았다.
“그럼 좀 더 놀아.”
슈리가 내 손을 제 가슴팍에 가져다 댔다.
“네 손에 놀아나는 건 다 괜찮으니까.”
“……내가 뭘 해도?”
“그래.”
‘대체 이 남자는.’
어디까지 스스로를 내어주는 걸까.
지난 생에도, 이번 생에도 나 때문에 무슨 일을 겪었는데.
내 손이 슈리의 목을 타고 올라 그의 뺨을 쥐었다.
“허락해줬으니까 내 마음대로 할 거야.”
“기꺼이.”
슈리가 미소 지었다.
나는 견디지 못하고 그 입술에 입을 맞췄다.
파아아아앗!
맑디맑은 빛이 터져 나왔다.
해주법도, 진을 구성하는 법도, 신성력을 배치하는 법도 머릿속에 없었다.
그냥 슈리를 느꼈다.
그를 옭아매고 있는 저주도.
그 저주에 깃들어 있는 내 힘도.
그리고.
“나는 꼭 네 저주를 풀어줄 거야.”
저주 너머로 언제나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슈리의 영혼까지도.
콰직!
균열음과 함께 저주의 사슬이 부서져 내렸다.
파훼된 저주가 나를 붙들려는 순간 슈리의 손길이 느껴졌다.
“한 번 더.”
그가 말하는 것과 동시에 입술이 닿았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숨결을 전부 빼앗길 때까지.
“……잠깐.”
“한 번만 더.”
“……읏, 잠—.”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슈리를 바라보자 그가 웃었다.
“저주 풀어준다면서.”
“그게 이거랑 무슨 상관인데…….”
“몰랐어?”
다시금 입술이 닿았다.
“원래 저주는 용사님의 키스로 푸는 거야.”
파고드는 감각에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머릿속이 녹아내릴 것 같다.
나는 슈리의 목을 꽉 끌어안다가 멈칫했다.
‘……용사님?’
방금, 슈리가 나를 용사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나?
그건 사람들이 나를 부르던 말이었다.
슈리의 전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