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est on Top RAW novel - chapter (293)
막내온탑-293화(293/299)
아빠들의 눈꼬리가 하늘로 확 치켜 올라갔다.
아빠들뿐만이 아니었다.
신전 가족들과 친가족들 모두 당장이라도 황태자궁에 암살하러 갈 기세였다.
그들이 서로 눈짓을 주고 받으며 피의 맹세를 나누려는 찰나.
“아, 맞다.”
사엘리카가 가족들의 옷자락을 끌어당겼다.
“빨리 돌아가요. 선물 가져왔어요.”
선물?
“아, 아빠를 위해서……?”
“응, 빨리 가요.”
사엘리카의 손짓 한 번에 다들 온순한 맹수가 되었다.
언제 피의 맹세를 부르짖었냐는 듯이 사엘리카의 뒤를 졸졸졸 따랐다.
“…….”
일레이는 어이가 없었다.
다들 날카로운 능력에 내로라하는 권력까지 갖춘 높으신 분들인데.
‘고위 신관하고 고위 귀족 맞아?’
솔직히 그냥 바보들 같았다.
딸바보.
* * *
“흑흑, 뽀짝이가 저 머나먼 곳에 가서도 이 할찌를 위해 바리바리 챙겨오다니…….”
“우리 아가 호랑이가 앞발도장을 꿍꿍 찍으며 이런 걸 벌어왔을 생각을 하니, 크흡!”
“분명 토끼 귀를 쫑긋거리며 열심히 뒷발차기를 했겠지요. 아가 토끼한테 노동을 시키다니……!”
“…….”
사엘리카는 황당했다.
‘아니, 나를 대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지.’
가족들의 팔불출 짓이야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어째 날이 가면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원래 어렸을 때 제일 심했다가 점점 콩깍지를 벗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나 가족들의 눈에 씌인 사에깍지는 해마다 두꺼워지기만 했다.
‘앞발도장이라…….’
사엘리카는 제 주먹을 내려다 보았다.
‘어떤 의미로는 아주 틀린 말도 아니긴 해.’
파르마나스의 얼굴에 주먹 도장을 쾅 박아준 게 떠올랐다.
그뿐인가?
‘뒷발차기…… 보물 창고 부술 때 했던 것 같기도…….’
같은 게 아니라 진짜 했다.
그리고 그 노동의 대가(?)로 손에 넣은 보물이긴 했다.
‘왜 정확하지?’
귀엽게 포장해주고 있지만 폭력적인 알맹이는 이보다 더 정확할 수 없다!
알고 보면 누구보다 자신에 대해 객관화를 잘하고 있는 거 아닌가?
사엘리카는 조금 찜찜한 얼굴로 신관들을 바라보았다.
“꿀빵! 꿀빵! 이거 진짜로 내 거야?!”
드미트리가 밝은 얼굴로 대검을 붕붕 휘둘렀다.
엄청 신나 보였다.
사엘리카는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역시 잘 다루네.”
“아싸! 이걸로 다 패버려야지!”
“근데 그거 파르마나스 애들이 지네들 거라고 우길 수 있거든?”
“응? 왜? 이거 꿀빵이 준 내 건데!”
드미트리가 당황한 얼굴로 대검을 꼬옥 끌어안았다.
“걔네들이 재수 없어서 그렇지. 어차피 파르마나스 신전은 와해되어서 별 문제 없을 거 같지만. 혹시라도 잔당들이 시비 털면—.”
“알았어! 족칠게!”
“좋아.”
사엘리카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레이는 그 모습을 보고 간단히 결론 내렸다.
‘훔친 거군.’
저거 분명 파르마나스한테서 훔쳤다.
눈이 마주치자 사엘리카가 다가왔다.
“일레이, 자.”
자그마한 귀걸이였다.
“난 귀걸이 안 하는데?”
“알아. 하지만 효과가 일레이랑 상성이 좋을 거야.”
“……?”
“좀 음험한 효과라.”
“야.”
사엘리카가 킥킥 웃었다.
“일레이랑 잘 어울릴걸?”
사엘리카가 귀걸이를 들어 일레이의 귓가에 대었다.
“응, 역시 잘 어울려.”
일레이는 사엘리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몇 번, 그의 입술이 달싹였다.
“……효과가 정확히 뭔데.”
“과연. 일레이라면 음험한 효과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어.”
사엘리카가 웃었다.
일레이는 한숨을 삼켰다.
‘이 바보.’
하지만 설명을 들으니 확실히 대단한 물건이었다.
“엄청 귀한 거잖아?”
“그럼. 내가 고만고만한 걸 골라주겠어? 일레이 건데.”
“훔친 거면서 말은 잘하지.”
“에이, 훔쳤다니. 주인 없는 폐가에서 골동품을 주웠을 뿐이야.”
“…….”
일레이의 시선에 사엘리카가 눈을 도르륵 도르륵 굴렸다.
“으음, 손해배상을 알아서 챙겼다고 해야 하나……?”
“……하여간. 잘 챙겼어.”
일레이는 결국 픽 웃었다.
마주 웃은 사엘리카가 보따리에서 또 다른 것을 꺼냈다.
“그리고 이거는 신의 꿀. 테오한테도 주자. 몸에 엄청 좋아.”
뛰어난 신관들은 충만한 양질의 신성력 덕분에 잘 늙지도 않고 건강했다.
노이슈라헬 대공이나 에켈란 제독 역시 오러의 극에 달한 자라 마찬가지였다.
반면 테오도르는 선천적으로 병약한 미소년이었다.
“프레이트샤의 꿀은 맛있기로도 유명해. 나중에 버터에 섞어서—.”
“잠깐. 프레이트샤? 파르마나스가 아니라?”
“응, 프레이트샤는 좋은 꿀을 가지고 있거든. 그리고 이 열매는 하루아누스 건데, 엄청 맛있어.”
“…….”
일레이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사엘리카를 바라보았다.
사엘리카는 무려 창조주의 딸이라고 했다.
타고난 본래의 힘 역시 되찾았다고 했고.
‘그러고 보니 사에는 원래 좀 성녀보단 깡패에 가까웠지.’
강력한 권력과 힘까지 지닌 깡패.
‘……설마, 천계를 휘젓고 다니며 상납 받았던 거냐!’
뭐, 상납은 아니었다.
그냥 훔쳤을 뿐.
물론 뒤늦게 도둑 맞은 사실을 눈치챈 천사들과 신들이 아무 말도 못하긴 했다.
법도, 주먹도 모두 사엘리카의 편이었으니까.
* * *
며칠 후, 황궁.
사엘리카의 마차가 멈춰 서자마자 순식간에 그 앞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귀빈을 맞을 때면 항상 이런 환대가 있었기에 그것만 보면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어머나, 사에?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참으로 우연이구나.”
“사에라니? 세상을 구한 위대한 대성녀이자 신의 딸이신 사엘리카 님께 예의 없이 구는 것 아닌가요?”
궁인들이 아니라 황비들이라는 게 문제였다.
황비들이 본궁 입구까지 직접 와서 발을 동동 굴리며 사엘리카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하? 우리 사에와 나 사이는 그런 격식을 차릴 필요 없을 정도로 친밀해서요. 그렇지, 사에?”
“이렇게 사엘리카 님을 존중하지 않는 무례한 자는 무시하세요. 마침 정원에서 티타임을 가질 생각이었는데, 사엘리카 님이 좋아하는 케이크가 잔뜩 있답니다.”
“흥, 그런 디저트보다 함께 하는 사람이 더 중요한 법. 저번에 우리 사에가 맛있다고 한 과일차를 준비해놨는데—.”
“그러는 너도 디저트로 꼬시고 있잖아!”
결국 언성이 높아졌다.
막시나 황비와 아델린 황비는 사엘리카의 팔을 한쪽씩 꿰찬 채 씩씩거렸다.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사엘리카의 마차가 황궁 정문을 통과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왔다.
‘저번에는 바로 황태자궁으로 가서 만나지도 못했단 말이야!’
카이슈리트의 궁까지 찾아가기엔 솔직히 무서웠다.
그러니 오늘 이 기회에 어떻게 해서든 사엘리카를 꼬셔내리라!
황비들이 콧김을 팡팡 뿜었다.
“크흠흠.”
그때, 황제의 시종이 헛기침을 했다.
“대성녀님, 황제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엘리카에게는 구세주의 등장이었다.
사엘리카가 반색하며 시종을 따라가려는 순간.
꽈아아악!
“폐하께서는 좀 기다리시라고 하도록!”
“정무로 바빠서 맨날 혼자 자는 양반이 우리 사에랑 무슨 담소를 나눈다고.”
“맞아, 맞아!”
두 황비가 사엘리카의 팔을 잡고 안 놓아주었다.
‘아니, 황비들 예전에는 그래도 황제한테 잘 보이려고 하지 않았나?’
황궁이란 참으로 복마전이다.
서로 싸우던 황비들이 황제를 욕하기 위해 한순간에 편을 먹다니.
황비들의 정치술(?)에 감탄하던 사엘리카는 곧 정신을 차렸다.
빠져나갈 기회는 지금이다.
“죄송해요, 황비 전하. 오늘은 폐하와 선약이 있어서…….”
“아, 그럼 다음에 나와 같이—.”
“아니, 나부터—.”
사엘리카는 황비들을 무시하고 시종에게 물었다.
“폐하께서는 어디 계시지?”
“갤러리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
절대 사엘리카를 놓아주지 않을 것 같았던 황비들이 멈칫했다.
그 사이 사엘리카는 자연스럽게 두 황비의 품에서 벗어났다.
뒤늦게 황비들은 솜사탕을 씻은 너구리처럼 빈 팔을 바라보았다.
‘사엘리카, 역시 쉽지 않아.’
막시나와 아델린 둘 다 사교계의 중심에 있는 권력자들이었다.
두 사람이 만남을 청하는데도 이렇게 기약조차 주지 않는 사람은 사엘리카가 유일무이했다.
‘이리도 나를 애태우다니. 당돌하군!’
‘한데도 밉지 않은 마음이 드니 왜일까?’
황비들은 고심했다.
어찌하면 사엘리카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역시 뇌물이군!’
‘뇌물이야!’
고개를 끄덕이던 황비들은 서로 눈이 마주치자 멈칫했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무조건 쟤보다 좋은 뇌물을 줘야 해!’
역시 사엘리카.
예전에도 그러더니 지금도 제 몸값을 올리는 법을 잘 알고 있다!
‘그나저나 갤러리라면 설마 ‘그곳’인가.’
‘폐하께서 아무도 들이지 않는 곳인데…….’
두 황비의 시선이 사엘리카가 사라진 방향을 향했다.
* * *
시종이 공손하게 문을 열었다.
“들어가시지요.”
들어가자 곧바로 문이 닫혔다.
‘……? 시종은 안 들어오나?’
시종은 황제의 손과 발.
독대한다고 해도 언제나 함께 있었다.
사엘리카는 의문을 뒤로 하고 안으로 향했다.
넓은 갤러리 안에는 엄청난 크기의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황제는 그 중 한 작품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난 사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가까이 다가가자 황제가 입을 열었다.
시선은 여전히 그림을 향한 채였다.
“하지만 열한 살 이후로 단 한 번도 붓을 잡아본 적이 없지.”
“…….”
“그 흔한 낙서 한 번 해본 적 없어. 마칸도르 공작은 국무회의 때마다 서류 귀퉁이에 낙서를 하는데.”
“…….”
황제가 고개를 돌려 사엘리카를 바라보았다.
“그림뿐만이 아니다.”
사엘리카는 황제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았다.
제국을 통치한다는 건 그런 것이다.
만인지상의 자리에 있지만, 결국 정말 좋아하는 것은 모두 내려놓고 포기해야 한다.
“나는 아비이기 전에 황제다.”
그 말 한마디에 황제가 그림보다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담겨 있었다.
“……폐하께서는 저를 예뻐하셨죠. 하지만 그 안에는 정치적 계산이 들어가 있었던 걸 알아요.”
“…….”
“파르마나스처럼 점점 비대해지는 신전 권력을 대항할 만한 신진 세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셨죠. 그래서 저를 그토록 아끼셨던 거예요. 그렇죠?”
“……참으로 총명하구나. 그래, 네 말이 맞다. 하지만—.”
황제의 눈이 사엘리카를 담았다.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그래도 정치적 판단이 없었다면 절 아끼는 마음을 절대 드러내지 않으셨겠죠.”
자신의 자식들에게 그러하듯 내색 없이 숨겼을 것이다.
황제는 침묵으로 긍정했다.
“그것이 바로 폐하의 정치죠. 그리고 성군으로 칭송 받으실 정도로 좋은 치세를 펼치셨고요.”
사실 파르마나스 신전의 농탕질만 아니면, 제국은 부흥기 그 자체였다.
계속해서 사람들의 생활 수준은 올라가고, 천재지변을 겪어도 빠르게 회복했다.
황제가 스스로를 전부 내려놓고 오로지 황제로서 살아온 결과였다.
“폐하께서 최선을 다하셨다는 것을 알아요. 하지만.”
사엘리카의 눈에 날이 섰다.
“슈리는 그렇게 살지 않을 거예요. 제가 그렇게 살게 두지 않겠어요.”
‘아.’
그 새파란 눈동자와 마주하는 순간.
황제는 깨달았다.
‘나는 이 말이 듣고 싶었구나.’
자식조차 정치 도구로 이용했다.
저주 받았다고 불리는 자식을 보듬지도 못하고 오히려 황태자로 책봉해 방패막이 삼았다.
아들을 괴물이라고 부른 자들과도 손을 잡아야 했다.
그들이 가진 곡식으로 가뭄에 굶는 백성을 먹이고, 그들이 가진 천으로 추위에 떠는 백성을 입혔다.
갑자기 입을 다물어버린 아들마저도 약점이 되기 전에 제 손으로 내쳤다.
그 과정에 상처 입은 딸아이가 저를 불신하며 원망하는 것을 보면서도 모르는 척 그 마음까지 이용했다.
똑똑한 딸아이는 정치사교계에서 두각을 드러냈으니까.
모두 나라를 안정시킨다는 명목하에 저지른 짓이었다.
성군으로 칭송받을 때마다 황제는 그런 스스로가 혐오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아비이기 전에 황제.
그러나 가끔은 그냥, 아비가 되고 싶었다.
“괜찮아요. 슈리는 폐하보다 더 똑똑하니까요. 더 잘할 거예요.”
“……그래. 내 아들이지만, 나보다 훨씬 잘났지.”
“그럼요. 똑똑하기만 해요? 더 잘생겼고, 몸도 더 좋고, 키도 더 크고 비교조차 할 수 없이 잘난…….”
“크흐흐흠!”
황제가 성대하게 헛기침을 터트렸다.
사엘리카가 누굴 닮았나 했더니 팔불출 짓이 노이슈라헬 대공과 똑 닮았다.
아, 아르테미아 신관들도 그러던가.
황제는 눈을 감았다.
은은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떠올랐다.
“……네가 그리도 탐났던 건 정치 상황이나 네가 가진 재주 때문이 아닐지도 모르겠구나.”
황제는 진작부터 사엘리카를 며늘아기로 점찍어놓았었다.
어쩌면 그 이유가, 그저—.
“너라면 내 아들을 행복하게 해줄 거라는 걸 알아서였어.”
황제가 사엘리카의 손을 쥐었다.
그 수많은 일을 해냈다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손이었다.
그러나 그 어떤 손보다도 강인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로이난드를 구해줘서 고맙다.”
사엘리카는 미소 지었다.
로이난드가 갑작스럽게 등장해서 황제의 치부나 다름없는 사실을 밝혔을 때.
황제는 모든 것을 감수하고 로이난드의 손을 잡아주었다.
황제는 비록 완벽한 부모는 아니었지만, 그때만큼은 확실히 로이난드의 아빠였다.
“슈리 그 녀석을 잘 부탁한다.”
그리고 지금은 카이슈리트의 아빠.
사엘리카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근데 그 녀석이 널 속상하게 하면 나한테 말하고.”
황제가 진지하게 당부했다.
“난 그놈의 아비이기 전에 아가의 시아빠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