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est on Top RAW novel - chapter (295)
막내온탑-295화(295/299)
* * *
“하아아아…….”
청혼식…… 아니, 대관식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황홀하리만치 낭만적인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대관식 홀은 위엄 있으면서도 화려했고, 커다란 창을 통해 쏟아지는 햇살은 마치 비단 레이스처럼 허공을 수 놓고 있었다.
그리고.
“아, 어쩜.”
그 가운데 있는 남녀의 모습은 환상과도 같았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연출된 오페라의 한 장면도 이보다 더 아름답진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들뜬 숨을 내뱉었다.
대성녀 선발전에 이어 재앙을 막아낸 일까지.
그야말로 새로운 신화를 탄생시킬 장면이 넘쳐났지만, 지금 이 순간 확신했다.
눈앞의 광경이야말로 가장 성스러운 신화라고!
‘황제 폐하 얼굴이 내 성경이고, 대성녀님 얼굴이 내 찬송가다!’
그 중에서도 가장 황홀경에 젖어 있는 건 바로 용인족 공주, 테레제였다.
‘하아, 사에 님 얼굴 봐. 부끄러워하고 수줍어하는 표정도 엄청 귀여워! 처음 보는 표정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니, 살아 있길 잘했어!! 다각도에서 잘 찍어놔야지. 잠깐, 이 마도구 잘 작동되는 거 맞지?’
영상 마도구를 살피던 테레제가 멈칫했다.
각도 상 사엘리카 외에 카이슈리트도 함께 찍혀 있었다.
사엘리카에게만 집중하며 행복해하던 테레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퍽!
그녀가 옆에 있는 오빠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타라시우스는 눈썹을 꿈틀하며 동생을 내려다봤다.
‘몸을 비비 꼬며 난리 치다가 왜 또 갑자기 뿔이 난 거지?’
여동생이 이상하다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지만 진짜 이상했다.
“오빠는 대체 뭐 한 거야?”
“뭐?”
“사에 님을 안 꼬시고 뭐 한 거냐고! 물론 오빠 따위가 사에 님의 눈에 찰 리는 없지만, 그래도 위대한 용인족의 태자잖아! 물론 오빠 따위가 태자라고 해봤자 별거 없긴 하지만!”
테레제는 혈육 특성상 자신의 오빠를 대단히 하찮게 여겼다.
진정한 남매의 소양을 갖췄기 때문이었다.
“아니, 뭔…….”
타라시우스는 황당했다.
꼬시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그런데.
“태자 전하께서 너무하셨습니다.”
“예, 저희는 그래도 태자 전하를 믿었는데.”
항상 테레제를 말리던 다른 용인족들도 원망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보는 게 아닌가!
‘왜 못 꼬셨습니까. 그렇게 매력 없는 남자였습니까’
—라고 말하는 눈빛으로.
‘너희까지 그러기냐!’
타라시우스는 속 터졌다.
그러나 아무리 속이 터져도 그의 옆에 있는 수인족들과 엘프들만 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용인족과 수인족 그리고 엘프들이 대관식에 참석한 이유는 딱 하나였다.
사엘리카.
사엘리카가 대성녀로서 대관식을 주관하지만 않았다면 이 자리에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황제가 누가 되든 그들과는 상관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이런 날치기(?) 같은 일이 벌어지다니!
“말도 안 돼. 겨우 다시 만난 그분께서 어째서 인간과…….”
“재회 후에 아직 제대로 된 이야기도 못 나눠봤는데…….”
“우리 엘프들이 세계수와 함께 사엘리카 님을 모셔야 하거늘!”
언제나 우아하다는 엘프들이 이를 갈았다.
원래도 호전적인 수인족들은 거칠게 외쳤다.
“사엘리카는 강인하고도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존재다!”
“쓸데 없는 법규가 많은 제국에 묶여 있는 건 사엘리카 님의 영혼을 죽이는 일이지!”
“사엘리카 님은 진정한 전사. 전장에 있을 때야말로 영혼의 불꽃이 피어오르는 법입니다.”
사엘리카를 처음 사막에서 보았을 때처럼.
혹은 언덕에서 서로의 힘을 겨뤘을 때처럼.
그때 사엘리카는 제련된 쇠처럼 아름다웠다.
“우리 수인들이야말로 사엘리카와 영혼의 결이 맞는데!”
흥분한 수인들이 금방이라도 튀어 나갈 듯 몸을 들썩거렸다.
하지만 진짜로 튀어 나갈 생각은 없었다.
사엘리카에게 잘못했다는 생각이 있는 만큼, 아무래도 눈치를 보게 되었다(종족 특성상 수인이 눈치를 보는 건 엄청난 일이었다).
그런데.
“이 날강독슈리가!!”
진짜로 달려 나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감히 내 딸을 채가려 하다니!”
“내 딸은 못 내줘!!”
“내 눈에 흙이 들어와도 반대다!!”
아빠들을 비롯한 사엘리카의 가족들이었다.
홀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아니, 그래도 무려 제국 황제 폐하의 즉위인데…….”
저래도 돼?
중얼거리던 사람들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상대가 사엘리카 님이시니까.”
“사엘리카 님이신데 당연하지.”
사엘리카는 영웅이자 구원자이자 신의 딸이었다.
사람들은 껄껄 웃었다.
또 언제 이런 광경을 보겠는가!
.
.
대관식 도중 일어난 대사건에 온 제국민이 웃고 떠들었다.
그러나 제도의 북쪽, 가장 높게 솟은 첨탑은 상황이 달랐다.
“카이슈리트…….”
비아트릭스는 버석 마른 손으로 창살을 잡았다.
오늘은 간수들이 항상 닫혀 있던 덧창을 열어주었다.
왜 그런가 했더니 대관식이 열렸기 때문이었다.
창살 너머로 광장에 설치된 크리스탈 전광판이 보였다.
카이슈리트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저건 분명…….”
신격이다.
‘어떻게……?’
그 의문이 사라지기도 전에 사엘리카의 모습이 비쳤다.
이전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전광판 너머로도 느낄 수 있었다.
사엘리카가 품고 있는 신성…… 아니, 신성 이상의 무언가.
‘저걸 손에 넣었었다면……!’
창살을 잡은 비아트릭스의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동시에 사엘리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거 성공했었어.”
“아니야!”
자신이 성공해놓고서도 이렇게 실패할 리 없다!
그러나 부정할수록 무력감과 절망감이 눈앞을 까맣게 물들였다.
‘애초에 저딴 머저리 같은 게 아니라, 사엘리카가 그분의 힘을 가졌다면……!’
비아트릭스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아멜리아를 노려봤다.
첨탑에 갇힌 후, 한참 발광하던 아멜리아는 어느 순간부터 어떤 것에도 반응하지 않고 멍하니 누워있었다.
벌레가 제 몸 위를 기어 다녀도, 시궁쥐가 발끝을 건드려도 가만히 있었다.
그냥 껍데기처럼.
‘맞아, 그래. 만약 사엘리카가 파르마나스의 성녀였다면.’
모든 것이 달랐을 것이다.
그때, 열린 창을 통해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엘리카 님, 만세!!”
사엘리카를 연호하는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이곳까지 닿은 것이다.
벌떡!
시체처럼 가만히 있던 아멜리아가 갑자기 일어났다.
“닥쳐, 닥쳐, 닥쳐, 닥치라고!!!!!”
아멜리아가 귀를 틀어막으면서 고통스러워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사람들의 목소리가 귓속에 파고들었다.
갇혀 있는 동안 내내 사엘리카를 칭송하는 목소리만 들었다.
이제는 가만히 있어도 그 소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겨우겨우 아무것도 안 느끼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또 시작이다!
위대한 사엘리카!
더러운 아멜리아의 마수로부터 세상을 구한 사엘리카!
자애롭고 상냥하고 강한 사엘리카!
신이 가장 사랑하는 딸 사엘리카!!
“그년이 대체 뭐라고!!”
아멜리아가 소리가 들려오는 창을 부술 듯 몸을 부딪쳤다.
창살 너머로 바깥의 풍경이 보였다.
갇힌 후 처음 보는 바깥이었다.
그러나 아멜리아의 눈에는 크리스탈 전광판에 비친 사엘리카의 모습만 보였다.
행복해 보이는 사엘리카.
그녀를 칭송하며 축복해주는, 온갖 고귀한 사람들.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 황제의 관을 쓴 카이슈리트가 사엘리카에게 무릎을 꿇고 있었다.
사엘리카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자신을 낮출 수 있다는 듯.
그게 기쁨이라는 듯이.
‘저건 원래 내 자리인데……!’
“황제의 대관식에서조차 주인공처럼 굴다니…….”
아멜리아가 이를 빠득 갈았다.
언제 껍데기처럼 굴었냐는 듯 그녀의 눈동자에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대체 얼마나 욕심이 많은 거야!!”
비아트릭스는 그런 아멜리아를 비웃었다.
“욕심이 많은 건 너 아니야?”
“……대모님?”
“그렇잖아. 사엘리카의 반의 반도 못 따라오는 주제에, 마치 사엘리카가 가진 게 네 것이어야 했다는 듯 증오하잖니.”
“지금, 그게 무슨…….”
“너 따위가 아니었으면 난 실패하지 않았을 거야!”
비아트릭스가 우악스럽게 아멜리아의 멱살을 잡았다.
“너 같은 모지리가 아니라 사엘리카가 파르마나스의 성녀였다면 좋았을 텐데!”
“뭐, 라고?”
주제도 모르고 욕심만 부리는 버러지.
노력한답시고 발버둥 칠수록 추하기만 한 쥐새끼.
사엘리카의 발끝도 못 따라오는 주제에 사엘리카 것만 탐내는 도둑년!
한때 사엘리카를 향했던 말들.
그 말이 전부 아멜리아를 향했다.
“너 같은 버러지가 아니라, 사엘리카가 내 대녀였다면, 나는— 커헉!”
흥분해서 외치던 비아트릭스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경악한 눈동자가 아멜리아를 향했다.
아멜리아는 무표정했다.
그녀는 천천히, 머리장식을 쥔 손을 뒤로 물렸다.
어째서인지 간수들은 아멜리아에게서 머리장식을 빼앗지 않았었다.
푸확!
새빨간 피가 분수처럼 튀며 아멜리아의 얼굴을 적셨다.
아주 뜨거웠다.
“킥, 키긱, 킥킥킥…….”
아멜리아의 입술을 타고 실성한 듯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 * *
“안 된다.”
밑도 끝도 없는 말에 사엘리카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요?”
“아직 너무 어려.”
“그래, 성인이 된 지 얼마나 됐다고.”
“심지어 대성녀 선발전을 치르랴, 재앙과 맞서랴 바빴잖니. 아빠랑 제대로 시간을 못 보낼 만큼.”
“맞는 말이다. 연애도 일러! 아직 가족과의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는데, 연애는 무슨!”
“…….”
사엘리카는 흐린 눈으로 신전 가족과 친가족을 바라보았다.
‘평소에도 싸우지 말고 이렇게 의견이 맞으면 참 좋을 텐데.’
“아무튼 저런 놈은 뻥 차버려.”
“아니, 우리 마음 약한 사과가 힘들게 찰 필요도 없단다.”
“그래, 우리가 찰 필요도 없게 만들어줄게.”
“대충 세상에서 사라지면 찰 필요도 없겠지.”
“…….”
당장이라도 카이슈리트의 존재를 세상에서 지워버릴 기세였다.
카이슈리트가 황제라는 것은 가족들의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잠깐. 이거 역모 아닌가?’
사엘리카는 멈칫했다.
그리고 힐끔 카이슈리트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황제 바로 앞에서 반역을 계획하다니…….’
사엘리카의 시선을 받은 카이슈리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와중에도 사엘리카를 위해 먹기 좋게 자른 케이크를 먹여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빠들은 물론, 할찌와 장로들 그리고 오빠들 모두 갑작스러운 혈압 상승을 겪었다.
“저, 저, 저 놈이!”
날카로운 살기가 카이슈리트에게 향하는 순간.
털썩!
카이슈리트가 무릎을 꿇었다.
“장인어른, 따님을 제게 주십시오!”
“……?!”
“……!”
“……!!”
그 어떤 공격보다도 타격이 커다란 한마디였다.
뭐?
누구를 줘?
혈압이 치솟다 못해 눈앞이 까매졌다.
“내가 왜 네 장인이야?!”
“내 딸을 뭐?”
“역시 그냥 없애자.”
들끓는 기세가 날카롭게 슈리를 향했다.
그때였다.
“모두 그만 하세요!”
사엘리카가 카이슈리트를 끌어안으며 막아섰다.
“……!”
아빠들의 얼굴이 충격으로 무너져 내렸다.
귀하디 귀한 딸이 자신이 아니라 저 놈팡이 편을 들다니!
“아까부터 가만히 있는 슈리에게 살기를 쏘아 보내지 않나, 무릎 꿇은 상대를 향해 비겁하게 힘을 끌어올리지 않나!”
“하, 하지만—.”
“약자를 향해 날을 세우다니. 이렇게 잔악무도한 분들이실 줄 몰랐어요!”
사엘리카가 실망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가족들은 카이슈리트를 노려봤다.
‘저거 일부러다!’
‘일부러 우리를 도발하고 무릎 꿇은 거야! 약한 척하려고!’
‘저 요오망한……!’
여우도 저런 여우가 없었다.
사엘리카는 완전히 굳은 가족들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저렇게 충격 받은 모습을 보니 또 마음이 쓰였다.
“아빠, 저는…… 슈리가 좋아요.”
“……!”
“……!”
“……커헉!”
사엘리카로서는 달래려고 한 말이었지만 아빠들은 심장을 부여잡으며 괴로워했다.
하지만.
‘……저 날강독슈리가 사에를 위해 많은 것을 했던 건 사실이다.’
그런 남자는 다시 없을…… 건 아니다.
왜냐하면 아빠들도 사엘리카를 위해서 그렇게 할 거니까.
다만, 아빠들에게는 세월의 연륜이 있었다.
요망하기 짝이 없는 저 날강독슈리가 열심히 순진한 딸을 속이는 동안 아빠들이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다.
딸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로맨스 소설을 연구한 결과 한 가지 결론을 도출해냈다.
‘반대할수록 더 타오른다!’
어째서인지 로맨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주변에서 반대할수록 더 뜨거워졌던 것이다.
노이슈라헬 대공이 딸의 머리에 툭 손을 얹었다.
“네 마음은 알겠다. 하지만 결혼이 이른 건 사실이니 좀 나중에 하렴.”
‘한 십 년 뒤에.’
‘아니, 백 년 뒤에.’
‘아니, 천 년 뒤에.’
‘아니, 만 년 뒤.’
아빠들이 눈빛으로 합의했다.
만 년 뒤가 적당하다!
‘그러다 저 여우 놈에게 질리면 더 좋고.’
사엘리카가 대답하지 않는 사이, 카이슈리트가 앞으로 나섰다.
“장인어른들께서 이리 말씀하시니 결혼은 조금 나중에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
아빠들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카이슈리트를 바라보았다.
‘저 도둑놈이 그래도 경우가 아주 없진 않군!’
아빠들의 머릿속에서 카이슈리트의 위치가 살짝 올라가려는 순간.
“약혼식부터 하자.”
카이슈리트가 싱긋 웃었다.
황제의 약혼은 무를 수 없는 법.
이 기회에 사엘리카와의 결혼을 확실히 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저 여우 놈이!’
‘이걸 노린 거였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