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est on Top RAW novel - chapter (83)
막내온탑 83화(83/299)
다이애나가 활짝 웃으며 대답을 기다렸다.
란델이 난처한 듯 웃자, 다이애나가 손 내밀었다.
란델이 다이애나의 손 앞쪽으로 자신의 손을 내밀자, 다이애나가 그 위로 톡, 초콜릿을 떨어트렸다.
“자, 내뭉(뇌물)!”
금색 동전 모양의 초콜릿이었다.
“내뭉은요. 자 보이러구 주눈 고래요.”
“하하…….”
“다애나, 란데니 딸 하 꺼에요.”
란델은 허리를 숙여 다이애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을 골라 대답했다.
“성녀님의 대부가 되는 건 참 영광스러운 일이겠지만. 아직 다른 신관들에 대해서 잘 모르니 한 번 고민해보는 게 어떻겠니?”
“랑데니……. 다애나가 랑데니 딸 하는 고 시러요?”
“그건 아니지만……. 결정은 많은 것을 생각해본 후에 내리는 게 좋으니까.”
“웅! 아라써요! 랑데니, 다애나 생각해줘서 고마워요!”
다이애나가 란델과 계속 있을 거 같아서 나는 자리를 피해 주기로 했다.
“사에.”
“따에 기도할 시간이에요!”
란델이 걱정할까 봐 일부러 씩씩하게 말했다.
타박타박, 방으로 가는 내 발걸음은 언제나처럼 씩씩했다.
* * *
내 방으로 돌아온 나는 열심히 크레푼디아를 만들었다.
제럴드가 구해다 준 재료도 최고급이었고, 이제 내가 열심히 만드는 것만 남았다.
카이저를 위한 마지막 뇌물.
크레푼디아.
‘이걸 주면서 아빠가 되어 달라고 해야지.’
그러니까 온 마음을 다 쏟아서 만들 거다.
지금껏 힘든 일이 있을 때도 열심히 해서 해결됐으니까, 이번에도 그럴 거다.
벌컥!
그때, 노크도 없이 문이 열렸다.
깜짝 놀라 뒤를 돌자, 화가 난 다이애나가 있었다.
‘란델과 계속 있을 거 같더니 여긴 왜 왔지?’
그리고 왜 남의 방을 노크도 없이 함부로 들어온단 말인가.
여긴 내 방인데.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내 공간인데.
뭐라고 하려는데 다이애나가 성큼성큼 걸어와 큰 키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또 네가 그런 거지.”
“모가?”
“성녀의 파파가 되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야! 그런데 란델은 거절했어.”
“아빠가 되눈 건 란데니가 겨쩡하눈 고야.”
“네가 꾸민 짓이잖아! 란델한테 불쌍한 척을 해서! 나한테서 란델을 뺏어가려고!”
“란데니는 뺏눈 게 아니라—.”
“닥쳐! 원래 성녀인 내가 받았을 사랑을 훔쳐 간 주제에! 이 도둑!”
씩씩거리던 다이애나는 내 방을 둘러보며 발작하듯 화를 냈다.
“거기다 이 방 안에 가득한 것들은 뭐야? 고아라면서! 거지라면서! 이렇게 비싸고 예쁜 것들이 한가득이라니!”
다이애나의 말대로 나는 고아에다가 가진 게 없었기 때문에 이 물건들은 모두 선물 받은 것들이었다.
대신관과 장로, 신관님들에게.
물론 대부분은 에켈란 제독과 제럴드가 선물해준 것들이었지만.
새 선물을 받는다고 해서 이전에 받은 선물들이 가치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소중히 간직했다.
“너, 진짜 거짓말쟁이 사기꾼이구나? 이 선물들 다 네가 나 대신 성녀인 척하면서 받아먹은 거지?”
“아니야, 나눈 구런 적—.”
“도둑! 사기꾼. 네가 가진 것들은 원래 다 다애나 꺼야!”
다이애나는 방을 돌아다니며 막무가내로 내 물건들을 집어서 품에 안았다.
와장창!
세차게 움직이는 팔 때문에 예쁜 도자기가 바닥으로 떨어져 깨졌다.
다이애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방을 마치 쇼핑하듯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다이애나의 눈이 한 곳으로 향했다.
옷걸이에 걸려 있는 값비싼 드레스였다.
“이거 나 줘!”
어차피 나는 잘 입지 않는 거라서 상관없었다.
나는 성녀에게 모든 것을 해줄 수 있고, 그럴 준비가 된 사람이니까.
“그티만 다애나하테 안 맞을 텐데.”
다이애나는 나보다 키가 훌쩍 크니 몸집도 크다.
어쩔 수 없다.
이 나이대는 몸이 쑥쑥 자라서, 체격 차이가 조금만 나도 옷의 치수가 크게 달라지니까.
그런데 그 말에 다이애나 눈에 불이 번쩍 튀었다.
“웃기지 마. 나한테 맞거든?”
다이애나는 품에 든 것들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옷걸이에서 드레스를 빼냈다.
그리고 몸을 욱여넣기 시작했다.
아이의 드레스다 보니 코르셋도 없고 넉넉하게 만들어졌지만, 다이애나의 허벅지에 걸려서 더 올라가지 않았다.
“익! 이이익!”
다이애나는 잔뜩 힘을 줘서 잡아당겼고, 결국.
부우욱!
드레스가 찢어졌다.
“드레스가 왜 이렇게 작은 거야. 다른 건 없어?”
신경질을 낸 다이애나가 갑자기 옷장을 열고 미친 듯이 뒤지기 시작했다.
휙휙, 마음에 들지 않는 옷은 뒤로 던져서, 다이애나의 뒤로 옷이 산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이거 입어볼래. 어디 맞나 안 맞나 보게.”
다이애나가 든 드레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건 란델이 내게 처음으로 사준 옷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저것만큼은 망가트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다급하게 다이애나에게로 달려갔다.
“그건 앙대!”
“도둑년 주제에 안 돼?”
피식 웃은 디아애나가 내 이마를 확 뒤로 밀었다.
“아야!”
“어디서 건방지게.”
다이애나는 행거에 걸려 있는 토끼 모자를 집었다.
내 머리가 불에 탄 후, 모건이 떠주었던 토끼 모자였다.
“그거뚜…!”
“안 되는 게 뭐 이리 많아? 내 머리에 잘 어울리는데?”
다이애나는 토끼 모자를 쓰고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았다.
“봐봐. 나는 토끼처럼 눈이 빨개서 이 모자를 꼭 가져야 한다고. 그리고… 이 오르골도!”
“앙대!”
다이애나가 가리킨 오르골은, 대신관이 선물해준 것이었다.
다이애나는 오르골 옆에 놓인 토끼 인형까지 집어서 품에 쏙 안았다.
어떻게 저렇게 내게 의미 있는 물건들만 쏙쏙 골라가는 걸까.
‘이대로… 줘야 하나?’
눈물이 핑 돌 것 같았다.
스스로가 한심했다.
성녀에게 뭐든 다 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 결심은 이것밖에 되지 않는 걸까?
그때.
“뭐 하는 짓이지?”
카이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하!”
카이저는 온통 난장판이 된 내 방을 둘러보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울먹거리며 방을 보았다.
물건이 많은 만큼 깔끔하게 정리해두곤 했는데, 지금은 쓰레기장이 따로 없었다.
깨진 화병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있고 옷장 문이란 문은 활짝 열려 있었으며 옷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찢어진 드레스까지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이를 확인한 카이저가 다이애나를 노려보았다.
“뭐 하냐고 물었는데.”
“흐흑!”
다이애나는 일단 울음부터 터트렸다.
“카자밈. 다애나는 아무것두 엄써요.”
도도도, 내 토끼 인형만 품에 안은 채로 다이애나가 카이저에게 달려가 허리를 끌어안았다.
“따에 언니는 다 가졌자나요. 이 많은 옷들도, 인형도, 오르골까지도. 다애나는 하나두 엄써.”
달라고 말했으면 줬을 거야.
그렇지만, 그게 아니었잖아.
“다애나 주제넘게 굴지 않아요. 보석 가득 박힌 곰도리 앙 골라써. 그냥 이 토끼 인형이면 조아요.”
울먹이는 다이애나가 카이저를 올려 보았다.
카이저와 다이애나.
두 사람의 모습을 본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 둘이 있으니까 너무…….’
닮았다.
꼭 아빠와 딸처럼.
“이부러 보석 달린 모자가 아니라 털실 모자 골라써. 따에 언니가 시러하까바. 다애나하테는 이것두 사치에요?’
카이저가 반응하지 않자 다이애나는 엉엉 울기 시작했다.
“흐에에! 다들 따에 언니만 조아해. 따에 언니만 아껴. 따에 언니만 차자.”
그렇지만 너는 모르잖아.
나라고 처음부터 환영받았던 건 아닌데.
“다애나가 무슨 말을 해두 따에 언니 이야기로 넘어가요. 흑! 다들 그래. 다애나를 보지 않고 따에 언니를 봐요. 흐아앙!”
카이저는 다이애나를 내치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는 다이애나를 안아주거나 달래지도 않았다.
“카자밈두, 다애나보다 따에 언니가 좋은 거지요? 흐윽, 흑……. 콜록, 콜록!”
다이애나가 울다가 피를 토하며 잠들 듯 혼절했다.
카이저는 쓰러진 다이애나를 들쳐 메듯 안아 들고 내게 말했다.
“쉬거라.”
“다애나는…….”
“자기가 울다 쓰러진 거다. 신경 쓰지 마라.”
카이저가 다이애나를 안고 방 밖을 나간 뒤.
신관들과 만났는지 복도에서 소란이 일었다.
“다이애나!”
한참을 울다 쓰러진 다이애나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신관들이 카이저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카이저!”
“네 녀석이 앞뒤 안 가리고 행동하는 건 알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성녀를 쓰러트려?”
“성녀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네가 책임질 거냐!”
신관들의 아우성에도 카이저는 태연하게 답했다.
“글쎄.”
하도 카이저에게 거절을 많이 당해서인지, 지금 카이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눈 앞에 그려질 것 같았다.
한쪽 입매를 비뚜름히 올린, 성격 나빠 보이는 표정.
“그건 이 아이가 진짜 성녀일 때의 이야기겠지.”
“…뭐?”
카이저는 신관들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걸었다.
뚜벅, 뚜벅.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그 소리가 어쩐지 놀란 가슴을 안정시켜주는 것 같았다.
* * *
깨어난 다이애나가 뭐라고 말한 것일까.
나는 신관들에게 불려가서 조심스러운 잔소리를 들었다.
신관들의 태도는 아주 조심스러웠다.
내가 지금껏 신전에 기여한 것이 많으니 그럴 만도 했다.
“사에, 네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는 건 안다. 하지만 다이애나를 자극하지 않을 순 없겠니?”
“네가 잘못했다는 게 아니라……. 성녀가 이 시기에 까딱 잘못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않느냐.”
각성한 지 얼마 안 된 성녀가 위험한 이유는 바로, 신성력 폭주 때문이다.
어린 몸으로 감당하기 힘든 힘을 각성했는데 폭주까지 일어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가까스로 찾아낸 성녀다.
작은 실수로 영영 잃을 수는 없다.
그리고 실제로 다이애나는 위험군에 있었다.
성녀로 각성하면서 몸이 힘을 받아들이지 못해 혼절하는 경우는 흔하다.
그러나 다이애나처럼 이렇게까지 자주 각혈하는 건 드물다.
너무 어린 나이에 성녀로 각성해서 그 후유증이 큰 것 같았다.
“조심해줄 수 있지?”
“사에, 너는 어른스럽잖니. 신전을 위하는 게 뭔지도 알고.”
“녜.”
“그래, 고맙다.”
“다이애나도 몸이 나아지면 괜찮아질 거야.”
“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신관들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렇게 다이애나가 자리에서 일어난 후.
아르테미아는 이제 다이애나의 신전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원래도 다이애나가 나타난 순간부터 그 애를 중심으로 신전이 돌아갔다.
3대 만에 나타난 성녀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모두 다이애나의 비위를 상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수준이 되었다.
“두뜨리! 요기 요기! 다애나하테 무릎베개 해조!”
“이레, 다애나하테 책 일거죠.”
“에디, 오디가? 다애나 머리 땋아주세요. 공주님 머리로.”
다이애나가 나를 거슬려 하는 건 분명했으므로 나는 최대한 그 애를 자극하지 않고 조용히 지냈다.
그나마 다이애나가 로아나를 무시해서 다행이지, 로아나마저 없었다면 정말 외로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카이저는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한 거지?’
“그건 이 아이가 진짜 성녀일 때의 이야기겠지.”
다시 말하자면 다이애나가 가짜일 수 있다고 의심하는 것 아닌가.
카이저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가 없었다.
내가 수련 사제관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다이애나가 귀신같이 카이저에게 달라붙었기 때문이다.
“카자밈!”
다이애나는 언제나 나보다 한발 빨랐다.
“저번 날에 따에 언니만 편 들어주고 다애나 편 아녔지만.”
저 멀리에서 다이애나가 방긋 웃으며 카이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다애나가 용서해주께! 다애나 대잉배니까! 성녀밈은 자애로워야 한다구 해써요.”
히히, 웃은 다이애나는 자신의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배배 꼬며 말했다.
“있지요. 다들 그래써요. 카자밈이랑 다애나랑 파파랑 딸 같다구.”
‘…맞아.’
안 그래도 아빠와 딸처럼 보였다.
군청색 머리칼에 붉은 눈.
두 사람의 머리칼과 눈 색이 똑같아서 그저 같이 서 있는 것만으로도 가족처럼 보인다.
‘나랑 전혀 달라. 내가… 딸이 되어도 저렇게 보이진 않겠지.’
물론 나는 진짜 가족이 되는 게 목적이 아니니까 진짜 가족처럼 보일 필요는 없지만!
“카자 파파랑 다애나랑 머리카락두 똑같구요. 눈도 똑같아요. 그래서 그런가 바요.”
다이애나의 말에 성기사들이 웃었다.
“그러고 보니 꼭 닮았습니다.”
“카이저 님께 딸이 있으면 꼭 이렇게 생겼을 것 같군요.”
“카자 파파, 다애나 안나두떼욤!”
카이저는 가만히 다이애나를 바라보다가 안아주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몸을 돌렸다.
내가 끼어들어 봤자 다이애나를 화내게 할 뿐이니까.
또 다이애나가 각혈하는 건 곤란하니까.
그렇지만 그 뒤로도 다이애나는 볼 때마다 카이저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몇 차례 그런 걸 보고 나자 나는 카이저에게 가지 않게 되었다.
‘카이저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사람이 아니니까.’
신관들이 성녀에게 잘해주라고 아무리 강요와 설득을 해도 그 말대로 행동할 사람이 아니다.
좋고 싫음이 분명한 사람이다.
그래서 성기사들이 아무리 내 편을 들어줘도 나를 밖에 세워둔 채 문을 열어주지 않기도 했었다.
게다가 다이애나가 진짜 성녀가 아니라고 의심하는 말까지 했었는데 저런다면.
‘카이저도 다이애나를 받아들인 모양이야.’
다이애나 역시 그 사실을 알았는지 수련 사제관에 돌아오면 나 들으란 듯이 말했다.
“카자 파파가 오늘두 다애나 이쁘다, 이쁘다 해조써! 오늘은 말이야~.”
하긴, 그 애는 성녀니까.
어쩔 수 없지.
“사에.”
부름에 고개를 들자, 일레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축 처져 있어. 답지 않게.”
“따에 안 처져써.”
“거짓말.”
일레이가 내게 민트초코를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