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 cowardly winter RAW novel - Chapter 7
외전. 너의 겨울은
너는 처음부터 나를 그런 눈으로 봤었다. 말하는 구더기를 본 것처럼,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반장이라는 명칭에 걸맞은, 몹시 단정하던 얼굴이었다. 그게 사정없이 구겨졌다. 그 어긋나는 기분에 너와 눈을 마주쳤다. 희미하게 웃어주지만 적대감이 서렸다. 그다음은 연필을 쥐고 있는 네 흰 손을 보았다. 상처 없이 깨끗했다.
그리고 네 앞자리에 앉았다. 내 신발에 흙이라도 묻었나 싶었다. 나도 모르게 발끝을 확인했다. 깨끗한 신발을 보고 의아했었다. 나는 고루고루 미움을 받은 적은 있지만, 첫 만남부터 미움을 살 정도로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 잠시 고민했지만 금세 그쳤다. 그냥 내가 마음에 안 드는 아이인가 했다.
그 뒤로도 종종 네 이름은 들려왔다.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은 네 이름을 부르면서 다가와 답을 구하고, 상담을 하고, 물건을 빌려갔다. 나는 엎드려 자면서 너의 목소리를 귀에 담았다. 나쁘지 않았지만 특별하지 않았다. 이름도 마찬가지였다. 담임이 네 이름을 내게 두세 번 알려주기는 했어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기억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나는 엄마, 아빠. 그 흔한 말을 세 살 때까지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 머리가 잘못된 줄 알았다고 했다. 엄마, 아빠, 보다 싫어, 라는 말을 더 빨리 한 죄일까. 그때부터 엄마 손에 이끌려 병원을 갔던 것 같다. 그 후로도. 나는 중학교 때까지 책 한 권을 다 못 읽었다. 내용은 읽어도 머리에 남지 않았다. 뒤돌아서면 제목도 까먹었다.
한글도 늦게 뗐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국어책을 읽지 못한 건 나뿐이었다. 엄마가 울면서 가르친 덕분에 배우긴 배웠지만, 나는 평생을 공부와 담쌓은 사람이었다.
가끔 티브이에 무언가를 이루어낸 사람들을 보면, 나와 다른 세상에 사는 이들 같았다. 노력 자체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제발 저런 사람이 되라고 했지만. 나는 불가능하리라고 봤다. 남들이 열 가지를 가지고 태어날 때, 나는 한 가지도 가지지 못한 채로 태어났다. 열정을 가짓수로 나누자면 말이다.
유일하게 오래 하는 것은 게임이었다. 축구든, 수영이든, 퍼즐이든, 총으로 쏴서 맞히는 게임이든, 종류가 무엇이든 개의치 않았다. 내가 그나마 집중력을 발휘하는 것이 있자, 아버지는 눈에 띄게 안심한 얼굴이었다.
두 분이 내 동생을 만들려다가 실패한 이후로는 나를 혼내지 않았다. 자연히 외딴 길을 걷는 인생이었다. 전학도 자주 다녔다. 시비가 붙었다는데 나는 그게 시비인 줄도 모르는 게 대다수였다. 아버지는 잡음이 생기면 곧장 나를 뽑아다가 다른 학교에 심었다. 네가 있는 학교는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나를 심어둔 곳이었다.
애초에 뿌리가 없는 나는 학교를 유영하는 괴생물체 취급을 받았다. 너는 잘 적응한 듯 보였다. 뿌리가 튼튼하고, 열매까지 나게 될 나무였다. 같은 줄에 앉아 있어도 우리는 같은 줄이 아니었다. 종의 부류부터 달랐다.
너에 대한 기억도 잊어갈 때쯤이었다. 게임을 하다가 버스를 세 번 정도 놓친 적이 있었다. 배터리가 0을 찍고 나서야 핸드폰이 꺼졌다. 나는 그제야 버스를 많이 보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게 지루할 차였다. 익숙한 너의 얼굴이 정류장을 지나쳤다.
그 도도한 걸음걸이가 정류장 옆에 있는 분식집에서 멈췄다. 걷다가, 멈추다가. 걷다가, 멈추다가. 네가 춤이라도 추는 줄 알았을 때, 네가 결심한 듯 분식집 앞에 섰다.
“아주머니. 삼인분 같은 떡볶이 천 원어치랑 제일 통통한 순대 일인분이랑 어묵 국물은 제가 퍼다 먹을게요.”
그 분식집 사장님은 너를 잘 아는 듯 말했다.
“오려면 그냥 오지. 매번 저기서 왔다가 갔다가.”
그 버스 정류장과 분식집은 학교에서 떨어진 골목길에 있었다. 학생들이 잘 지나다니지 않는 골목이었다. 너는 자주 와본 것처럼 떡볶이를 시켜 맛있게 먹었다. 삼인분 같은 떡볶이 천 원어치. 입김을 불어가며 오물거렸다. 너는 종종 배가 고프지 않다며, 급식을 먹지 않을 때가 있었다. 내가 매점에서 빵을 사와서 먹고 있을 때, 뒤에서 네가 엎드려 있던 경우도 있었다. 내 눈앞에 너는 딴사람 같았다.
그때부터 내 뒤에서 들리는 이름을 외웠다. 항상 같은 톤으로 말하는 네가 유일하게 목소리를 올릴 때는 성적을 채점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몇 점인지도 모르는 그것을, 너는 하나하나 중얼거리며 점수를 더해갔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오면 돌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런 네가 웃긴다고 생각했다.
* * *
고등학교 삼학년. 무슨 과목인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수능에 들어가지 않는 과목이고, 그 과목을 가르치는 선생조차 마흔 명 중에 서른아홉 명이 자도 개의치 않는 사람이었다. 나도 그 수업에는 편히 잠을 잤다.
숙제였을 것이다. 어떤 집을 짓고 싶은지, 어느 나라에서 살고 싶은지, 어떤 배우자와 살고 싶은지 등을 발표해야만 했다. 애들은 대충 PPT를 만들어와 웅얼거리고 떠나거나, 그마저도 만들지 않는 게 태반이었다. 나는 가만히 서서 너만 보다가 내려왔다. 너는 나를 해괴한 인간을 보듯 보았다. 그게 재밌었다. 너도 만만치 않게 이상하면서.
처음으로 수업 시간에 깨어 있었다. 나만큼 이상한 너의 발표가 궁금했다. 졸린 눈으로 반쯤 엎드려 있었다. 큰 화면에 PPT를 띄운 너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너는 사계절 내내 겨울인 곳의 사진을 가져왔다. 핀란드의 어디라고 했던 것 같다. 그나마 사진을 가져온 아이들이 화려한 저택, 성, 우주선……. 그런 것에 비하면 보잘것없이 작은 데다가, 혼자 처량하게 있는 이층집이었다. 선생님도 궁금한지 이유를 물었다.
“겨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저렇게 흰 눈이 많이 내리는 곳에 혼자서 가만히 있으면, 생각보다 겨울이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요.”
다소 엉뚱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었다. 모두가 장난인 줄 안 그것이 내 눈에는 진심으로 보였다. 평상시 네 단조로운 목소리, 생기 없는 미소가 아니었다. 진실로 바라는 미소였다. 그때부터였던가. 나는 네 얼굴을 구분할 수 있었다. 저게 진심인지, 아닌지.
어떤 짓궂은 남자아이가 곰에게 잡아먹히는 것이 네 인생의 끝이라고 했다. 곰에게 진수성찬을 차려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다들 웃고 있을 때, 나는 네가 살고 싶다던 집을 보았다.
네가 화면에 떠 있는 집을 바라볼 때의 시선이 좋았다. 정말 그 집에 있는 것같이 평안한 눈. 정말로 저곳에 가고 싶은 열망. 네 단정한 이목구비에 맞지 않은 열정이 탐났다. 나는 없는 것이었다.
“이제 곧 수능이잖아요.”
네가 한 말에 아이들 몇몇이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작문한 글을 소개하는 차례였다. 시도 좋았고, 편지도 좋았고, 짧은 글도 좋았다.
“그래서 제목은 시험이 끝난 뒤에, 입니다.”
너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도 그 글을 좋아한다. 예전처럼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나, 도저히 하고 싶은 기력이 나지 않을 때, 그때의 너를 떠올리며, 너의 목소리를 덧대 입힌 글을 기억하곤 한다. 하양 바탕에 까만 글씨.
“제가 힘들 때마다 외우는 기도가 있습니다. 라빈드리나트 타고르, 라는 사람의 기도인데요.”
너는 귀엽게 목을 가다듬었다.
“두려움 속에서 구원을 열망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유를 찾을 인내심을 달라 기도하게 하고, 나의 성공에서만 신의 자비를 느끼기보다 나의 실패에서도 신의 손길을 느끼게 해달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 기도를 쓴 작가가 노벨상을 탈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었다는 것은 나중에 안 사실이었다. 그 기도문을 나지막이 읊는 너의 모습, 열어둔 창문 틈으로 은근슬쩍 끼어든 바람, 그 바람에 휘날리는 네 머리칼, 결연한 눈빛. 그 모든 박자가 맞아서 내 삶을 밝혔다. 손가락이 움찔했다. 허리를 펴게 했다. 까닥거리던 발끝이 멈추고 네 청명한 갈색 눈이 나를 알게 했다.
“제 꿈은 우선 이번 수능을 잘 본 다음,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을 다니다가,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노년은 저 핀란드에서 보내는 건데요.”
반 아이들이 웃었다. 아까 네가 보여준 핀란드의 오두막이 떠오른 것 같았다.
“혹시 제가 그 과정에서 실수를 하거나 넘어지더라도 신께서 손길을 내밀어주길.”
그리고 너는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이번 수능에서부터 제발.”
재치 있는 너의 마무리에 반 아이들이 즐거워했다. 너는 성적도 좋고, 단 한 번의 결석도 없었으며, 모든 이가 너를 좋아했다. 마치 나와 대척점에 있는 사람 같았다. 그렇게 담담한 눈빛으로, 그렇게 멋있게 살아가고 싶다는, 나도 열심히 좀 살아가 보고 싶다는, 나로서는 낯선 열망이 일었다. 일종의 동경이었을 거다. 첫 시작은 분명히 그랬다.
* * *
집에 가서 책장에 꽂혀 있는 문제집을 한 장 펴봤다. 같은 곳을 수십 번 읽어도 이해하지 못해 덮고 말았다. 그래도 몇 개는 표시해 뒀다. 매일 학교에 가져갔다. 좀처럼 혼자 있지 않았던 너에게 정말 딱 한 번 물어보려고 했다.
“어떻게 풀어.”
“응?”
부드러운 눈빛으로 나를 본다. 네가 나를 부끄럽게 했다. 이윽고 들려온 네 말에 더 부끄러워졌다. 기본도 모르냐는 말을 애써 돌려 말해준 네 얼굴에는, 그때 보았던 그 진실한 표정이 없었다.
오기가 생겨서 네가 적어준 강의를 보았다. 들리는 대로 다 적은 다음, 자기 직전까지 들여다봤다. 다음 날 다시 네게 물었다. 네 눈에 당황한 빛이 떠올라왔다. 그러나 너는 성심껏 답변했다. 역시 내가 원하던 진실한 표정은 없었다.
반복했다. 강의를 듣고, 외우고, 네게 묻는다. 성과는 애먼 곳에서 나타났다. 내가 달달달 외우는 모습을 엄마가 봤다. 아빠를 불렀다. 그날 우리 집 상다리가 부러졌다는 걸 네가 안다면 웃어주지 않을까.
너는 당황한 빛이 사라지고, 나는 너에 대한 동경이 옅어졌다. 너는 동경의 빛을 지우고 여자가 되어갔다. 샤프를 굴리는 네 손, 가느다란 목선, 깜빡거리는 속눈썹, 앞니에 짓눌리는 입술, 햇볕 아래서 엷은 갈색의 머리칼까지. 나는 너를 훔쳐보고, 너는 나를 가르쳤다. 나는 너에게 문제 하나를 던져 놓고, 샤프를 굴리는 너를 핥듯이 보았다.
학교에 오래 있고 싶지 않아 매번 먼저 학교를 나섰다. 원래는 습관이었지만, 이제는 강의 때문에 빠르게 가야 했다. 너는 마지막까지 학교에 남아서 공부를 했다. 우리의 만남은 짧았고, 그 때문에 나는 너를 더 알고 싶었다.
“나 학교에서 반장인데. 고삼이거든. 응. 그래서 반장이면 샌드위치 같은 거라도 사줘야 한다고 해서……. 내가 빵집 사장님한테 말해볼 테니까. 다음 달 생활비에서 오만 원이라도 먼저 주면 안 돼요?”
그래서 네가 다른 날보다 학교를 빨리 나온 게 신기했다. 그런 너를 쫓아가다가 들은 비밀이 내게 행운이었는지, 불행이었는지. 그것만큼은 모르겠다. 나는 너를 알게 됨으로써 기뻤고.
“애들…… 나 엄마아빠 없는 거 몰라.”
너를 알게 됨으로써 껍데기를 썼다. 네가 골목길에 주저앉아 흘린 눈물은, 그 기도는, 모두 모여 네 견고한 가면을 만들었을 터다. 내가 깨부수면 진실을 보이겠지만, 나를 두 번 다시 네 앞에 두지 않을 테지. 그런 예감이 들었다.
네가 내 손에 펜을 쥐게 했듯, 나도 네 손에 행운을 쥐여 주고 싶었다. 졸업 때까지 우리는 이 사이를 유지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겨울이 오고, 너의 가면이 더욱 두터워졌을 때. 그래도 너는 단 한 번도 성가시다는 티를 내지 않았다. 비록 그게 가짜여도, 나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 오만이 깨진 것은 모의고사 성적표가 나왔을 때였다. 처음으로 3등급이라는 성적을 받았다. 나도 모르게 그걸 너의 책상 앞에서 보고 있었다. 네가 얼마큼 올랐느냐고 물었고,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너는 눈부터 커진다. 입술은 그다음이고, 손은 손뼉을 친다. 그러고는 귀여운 목소리로 깔깔 웃는다. 그건 진실한 네 얼굴이었다.
“진짜 많이 올랐다. 가르쳐 준 보람이 있네.”
그리고 내 어깨를 살짝 밀었다. 나는 명백한 네 잘못이라고 해두고 싶다. 너를 포기하려고 했다. 짝사랑에 불과한 내가 포기니 무엇이니 말하는 것조차 우습겠지만, 나 같은 새끼의 관심 같은 것은 일찍이 끊어내는 게 좋았을 테니.
하지만 나는 이미 너의 손길을 느꼈고, 너의 미소를 받았고, 그 모든 걸 담았는데. 욕심을 내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짝사랑으로 끝내자는 마음과 한번 말로나마 전하자는 마음이 싸웠다. 싸우다가 수능이 끝났다. 너와의 끝까지 와버렸다. 그때 즈음에는 짝사랑으로 끝내자는 의견이 우세했다. 나는 너에게 차일 것이 분명하므로.
두려움 속에서 구원을 기다리기보다는 자유를 찾을 인내심을 달라 기도하게 해달라고 했던가.
계단을 내려가고, 언덕을 내려가고, 버스 정류장 앞에 왔을 때. 네가 서서 먹던 분식집을 봤을 때. 그 구절이 내 머릿속을 메웠을 때. 나는 여기서 버스를 타면, 너를 떠나면, 영영 자유를 잃을 것임을 직감했다. 나는 너를 만나기 전까지 자유로웠다. 그것을 돌려받고 싶었다.
뛰었다. 당장 차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뛰어가, 나의 자유를 찾아야 했다. 땀이 흠뻑 젖었는지, 내 옷에 스며든 눈이 녹은 것인지 모르겠다. 그해 첫눈을 온몸에 묻히고 너에게 다가갔을 때. 너는 울고 있었다.
“사귈래.”
너는 드디어 얻은 자유로움에 만끽해 울었고, 나는 너에게서 내 자유를 돌려받고자 왔었다.
나를 처음 봤을 때 찌푸려졌던 너의 눈이 동그랗게 변하고, 입술은 살짝 미소를 짓고, 너는 흰 눈이 휘날리는 창가 앞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자유로움은 그날 이후로 손발이 묶였다. 네 앞에 가져다 바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해우야. 그러하니 너를 사랑할 수밖에.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