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 Majesty, that sounds like my novel RAW novel - Chapter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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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가면 좋겠어?”
그러면 안 되잖아요 라는 말 대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가 오니까 오늘은 비를 핑계로 훈련은 안 하고 쉴 건데.
혼자서 쉬는 건 의미도 없고 심심한데.
이스마힐은, 안 갈 수도 없을 거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미 나가려고 준비도 다 해 놓고서.
“그럼. 조금만 늦게 시작하자고 얘기를 해 볼까?”
“그래도 돼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런 짓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 같던 이스마힐이 일탈을 꿈꾸고 있었다.
이렇게 바람직할 수가!
“어젯밤에 그렇게 오래 했는데도 아직 만족하지 못한 거야?”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내 뺨을 쓰다듬더니 그가 말했다.
행복해서 죽어버릴 것 같다.
나는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스마힐의 침궁으로 와서 같이 살고 있다.
내 사용인들은 아직 별궁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나는 그들을 배신하고 매일 이스마힐의 몸에 파묻혀서 체향을 맡으면서 타락(?)해 가고 있다.
그래봤자 순간의 일탈일 뿐이겠지만.
지금은 자인리케나 에르마힘이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있어서 (그들은 신도 관리라고 하고 나는 팬 관리라고 부르는 일) 나를 놔두고 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또 그 일에서 흥미를 잃으면 수호신의 책무를 다 해야 한다며 나를 쪼을 게 뻔했다.
마왕이 공격해 올 거라는 사실은 이스마힐도 책을 통해서 확인했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아직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동안은 근미래의 일만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이스마힐은 이 일이 근시일 안에 일어날 일인 건가 해서 걱정이 컸다.
그러나 원래 이스마힐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일이 일어나던 통상적인 시간이 지나도록 그 일이 일어나지 않자, 그 일을 장기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매일, 매순간을 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살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렇게 했다가는 너무 지치게 될 테니까.
하루하루, 한 순간 한 순간에 너무 많은 의미를 담다보면 나중에는 쓰러져버리고 말 테니까.
“가장 하고 싶은 게 뭐야?”
그가 물었다.
“이스마힐이랑 같이 비를 보는 거요.”
그는 그 말이 이해되지 않는지 나를 바라보았다.
“비를 보는 게 왜 좋아?”
“그냥 그렇게 여유있게. 차 한 잔씩 들고서 여유를 같이 즐기고 싶어요. 내가 조용히 쉬고 있는 그때 내 옆에 이스마힐이 같이 있다는 걸 느끼면서.”
그는 아직도 완전히 이해되지는 않은 것 같은 얼굴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이스마힐. 모든 걸 다 잘 하려고 생각하지 마요. 이스마힐은 충분히 애써왔고 충분히 훌륭한 왕이에요.”
그가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때로는 그런 말이 필요한 법이지.
그 말. 무책임한 것 같고 그냥 툭 던진 것처럼 들려도 막상 들으면 마음에 꽤 울림이 생기는 말이다.
특히나 이스마힐처럼 열심히 살아온 사람에게는 특히나 더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전을 짓는 것. 사람들에게 자인리케님과 에르하임님에 대한 얘기를 전하는 것. 신도수를 늘리고 두 분이 신력을 회복하게 하는 것. 그러면서 또 마왕의 침입에 대비하는 것. 이스마힐은 충분히 힘들 거예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힘들면 힘들다고 해야 돼요. 이스마힐 혼자서 전부 다 감당할 수는 없어요.”
그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럴게.”
“어떤 일은 그냥 저절로 굴러가고 저절로 이루어지잖아요. 우리가 이 정도 해 놨으니까 이제는 그 일이 저절로 굴러가기를 바라야 하는 순간이 올 거예요.”
“그 말. 앞으로도 대충대충 하면서 자주 놀아달라는 말인 것 같은데?”
“그 뜻도 되고. 자인리케님이랑 에르하임님 좀 말려달라는 말도 돼요. 그 분들은 내가 사이보근 줄 알아요.”
“사이보그?”
나는 그 말을 설명해 주고 웃었다.
“일일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아젤린이 하는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있으면 좋겠어.”
이스마힐이 말했다.
“저는 알려드리는 거 좋은데요?”
“불공평해. 아젤린은 이 세계의 일들을 거의 다 스스로 알아냈잖아.”
“드보라가 알려주기도 했고. 제가 살던 세계가 미래인 것 같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고. 저하고 경쟁하려고 하지 마세요. 패배감만 들 텐데?”
말을 해 놓고 장난스럽게 웃었더니 이스마힐도 따라 웃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날 정말로 그것을 했다.
나란히 앉아서 아무 것도 안 하고 비내리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걸.
그게 뭐 대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진짜 완전 대수다.
몸이 열 개여도 모자랄 정도로 바쁜 사람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내 옆에 있어준 것이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하려고 그런 것도 아니고 아픈 나를 간호해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날 같이 나란히 앉아서 같은 광경을 봤다는 그 추억에만 의미를 둔 채.
이스마힐은 내가 왜 그것을 바랐을까 하고 오래 생각하는 것 같더니 나중에 나에게 말했다.
“아젤린. 왜 이걸 하고 싶어했는지 알 것 같아. 의미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오늘의 이 순간이 아주 오래까지 기억될 것 같아.”
내가 원했던 것도 그거였기 때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비가 오면 오늘의 이 순간이 생각날 거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고마워요.”
그날 진행됐어야 할 많은 일들이 다음 날로 미뤄졌지만 이스마힐은 조바심을 내지 않았다.
창문을 두들겨대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그 소리에 섞여 들어오는 이스마힐의 신음을 들으면서 나는 그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어했다.
행위가 끝나고 기진맥진한 채 그가 내 옆으로 몸을 굴려 누우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내가 비친 것을 보면서 나는 턱을 괴고 그를 바라보았다.
내 안에서는 그의 정액이 느껴지고 있었고 그의 가슴골에는 나와 나눈 정사 때문에 흐른 땀방울이 고였다.
“우리는 어디에든 함께 있을 운명인 것 같아요.”
“응. 정말로 그래야 돼. 내가 그렇게 되게 할 거야.”
이스마힐의 그 말에 심쿵해서 나는 자꾸만 비죽비죽 떠오르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사랑해. 아젤린. 영원히. 내가 죽더라도. 아니면 아젤린이 죽더라도 아젤린을 사랑할 거야.”
나도.
나도 그럴 거야. 이스마힐.
나는 한 발 늦은 고백 대신 그의 입술에 오래오래 키스를 해 주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