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 Majesty, that sounds like my novel RAW novel - Chapter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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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은 남자분이 아니셨습니까?”
“헬리무스가 남자라니. 이렇게 아름다운 남자가 있다면 사랑해주고 싶은 생각도 드는군.”
라벤토가 말했다.
나에 의해 봉인 되었던 기억이, 라벤토의 등장으로 풀리고 있었다.
내가 내 영혼을 나누고 차원 이동의 퍼즐을 만들며 막으려고 했던 제국의 멸망이 지금 다시 눈 앞에 다가와 있었다.
고요하고 깊은 심연 같은 저 푸른 눈에 빠져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헬리무스. 그대에게 영생을 주겠다. 나는 그대의 죽음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어. 나의 신부가 되어라.’
내 위로 쏟아지던, 눈부신 백발에 눈을 감으며 그의 입술을 느끼던 순간, 아스테라 제국 최후의 날이 내 눈앞에 보였다.
마물들의 앞에서 쓰러져가는 검사들과 죽어가는 황제.
유린당하는 황궁과 그곳을 붉게 물들이던 선혈.
‘이스마힐.’
만난 적 없던 그의 얼굴을 그날 처음으로 보았다.
절대로 만날 수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가 태어나기 전에 나는 죽을 터였다.
그는 먼 미래의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왜 그에게 미련이 생겼을까.
어긋난 시간이 왜 그리 원망스러웠을까.
그것은 말도 되지 않는 탐욕이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긋난 운명.
결코 만날 수도 없고 사랑할 수도 없을 그 사람에게 욕심이 났다.
“무슨 생각을 하느냐. 헬리무스.”
“나는 아스테라 제국의 대마법사다.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거라면 내 제국을 멸망시킬 생각 따위는 하지 말아야지.”
“그깟 제국이 뭐라고. 세상을 정화해서 너에게 주지.”
“정화. 네 방식의 정화? 마물과 스켈레톤으로 가득 찬 새 인류인가?”
나는 혼몽에서 깨어났다.
라벤토는 나를 붙잡으려 했지만 그의 손에 남은 것은 내 잔상 뿐이다가 나중에는 그것마저 사라졌다.
나는 내 혼몽을 깨운 이스마힐을 생각했다.
닿을 수 없는 그와의 인연을 억지로 잇기 위해 몇 달 동안이나 마탑에 틀어박혔다.
“죽지마라. 이스마힐. 내가 구할 테니.”
마지막 조각을 완성한 후에 혼자서 중얼거렸다.
내 기억을 봉인하면서 복잡한 설계를 거듭해야 했던 것은 신들과 라벤토의 눈까지 속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먼저 속지 않으면 그들을 속일 수 없었다.
라벤토는 언제 그 사실을 알게 된 거였을까.
역시 내 피 때문이었으려나?
라벤토를 내 앞에서 무릎 꿇게 만들었던 그 피가.
자인리케와 에르하임이 그렇게 집착하던 내 피가 라벤토에게 나를 떠올리게 만들었던 거였을까.
“그 몸도 제법 잘 어울리는군. 마법을 모두 포기하다니. 나도 깜빡 속을 뻔 했어.”
“그냥 속아줘도 됐을 텐데 귀찮게 만드는군.”
“너를 죽이고 싶은 생각은 없다. 헬리무스. 나와 함께 돌아가자.”
“그 제안. 참 안 끌리네. 나는 그동안 꽤 재밌게 살았는데 너는 어땠어?”
나는 마검을 뽑아들었다.
“장난은 이제 그만 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러게. 네가 돌아가면 간단히 해결될 일인데. 나는 여기에서의 생활이 퍽 마음에 들어. 나한테 호감이 있으면 협조를 해 주면 어떨까?”
“나는 즐겁지 않은데 내가 왜 네 행복을 바라겠어?”
나는 고개를 돌려 이스마힐을 바라보았다.
그가 우리가 한 말을 얼마나 이해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군. 저 모습이었겠군. 저 이스마힐을 만나고 싶어서. 그래도 결국 만나고 사랑하고 행복했네. 나쁘지 않았던 거네.’
“아젤린!”
내가 라벤토를 향해 다시 돌아서자 이스마힐이 큰 소리로 외쳤다.
“누나가 지켜준다고 했지. 이스마힐?”
그를 바라보지 않은 채 이스마힐에게 말했다.
마검은 이제 라벤토의 몸 만큼이나 커지고 있었다.
***
필요 이상으로 라벤토를 자극한 것은 잘못이었다.
자인리케와 에르하임이 나와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가만 두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멍청이들을 정말로 사멸을 각오한 것 같았다.
신력을 한계까지 긁어 쓰면서 사람들을 지키려 애썼다.
‘멍청한 것들!’
라벤토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바람이 일며 그것이 무기가 되어 사람들의 몸을 갈랐다.
자인리케와 에르하임이 필사적으로 막아내지 않았다면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전멸을 당하고 말았을 터였다.
“잔챙이들 괴롭히는 게 특긴가? 아프로뒤태의 사주나 받는 놈한테 잘 어울리는 것 같기는 하네.”
아. 내 주둥아리.
누가 제발 좀.
지금 나에게는 헬리무스의 인격이 깨어난 상태였지만 나 정시호는 아젤린의 몸을 순식간에 접수했던 그 실력을 발휘해서 헬리무스를 꼰대취급해서 골방 늙은이처럼 한쪽에 처박아 놓은 후에 다시 주인 노릇을 시작했다.
나는 마검에게 말을 걸었다.
“다음은 없을지도 몰라. 나하고 같이 싸우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그러니까 내가 마음에 들었다면 제대로 싸워줘.”
라벤토는 나를 안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는데 나는 그 눈빛이 마음에 안 들었다.
네가 알고 있는 게 누구건 나는 정시호다.
헬리무스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헬리무스 때문에 내가 이스마힐과 만날 수 있게 된 거라면 정말 고맙기는 하지만 이 순간에 나올 건 또 뭐야.
안 그래도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사람들을 더 얼빠지게 만들어버렸잖아.
마검에 마나를 불어 넣고, 나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다는 생각으로 집중했다.
라벤토는 헬리무스에게 미련이 있었는지, 내가 저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자 크게 충격받은 얼굴을 했다.
사람들을 아무렇지 않게 죽이더니 그런 얼굴을 잘도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적의를 한껏 드러냈다.
마검을 휘두르자 오러 블레이드가 그의 몸을 찢어버릴 기세로 날아갔다.
그러나 마왕은 몸을 훌쩍 날려 도망쳤고 그 뒤에 있던 건물 하나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주저앉았다.
황궁을 복구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가겠네.
그 와중에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제 내 마나도 슬슬 한계에 이를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마검이 스스로 힘을 내 주기 시작했다.
그동안 마검한테 잘못 걸려서 죽을 때까지 싸우던 검사들이 한 둘이 아니라더니 그들에게서 빨아들이 마나가 마검에게 축적되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마검은 그 힘을 내게 불어넣어 주며 내가 계속해서 싸울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이스마힐을 돌아보았다.
그는 지금이라도 나에게 달려와 옆에서 같이 싸우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다.
“검 좀 빌려줘요, 이스마힐.”
내 말에 그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를 바라보면서 신호를 보냈다.
검을 날려달라는 손동작을 하면서 그에게 눈으로 다른 말을 건넸다.
나에게 전해주지 말고 내 뒤의 마왕을 바로 겨냥하라고.
이스마힐은 그 뜻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은 우리가 한 말을 알아들었겠지만 그 후의 일을 피하지는 못했다.
이스마힐의 검이 날아가는 궤적과 속도에 맞춰 나는 내 마검과 함께 마왕에게 달려들었다.
클레이튼과 그리니치, 그리고 율레인 단장이 달려나온 것은 그때였다.
세트 플레이라는 게 있는데 말이야.
평소에 그들과 같이 앉아서 노닥거리면서 자주 했던 얘기가 있었다.
잘 짜여진 공격을 제때 하기 위해서 그 상황을 사전에 미리 짜놓고 연습하는 것에 대해 말하자 클레이튼은, 무슨 대단한 말이 나오려나 해서 열심히 들었다며 구시렁거렸다.
나는 클레이튼의 뒤통수를 매만져주었고 우리는 그 후로 몇 가지를 연습해 두었었다.
그리니치의 열 배 정도 강한 몬스터가 나타났을 때를 가정해서, 내가 마검을 들고 공격을 하면 그때 내 분신들처럼 측면에서 나와 비슷한 속도로 달려나가 주어서 적의 주의를 흐트려 달라고 주문을 했었지만 그때의 우리들은 나나 그들 할 것 없이 오합지졸이었다.
그때가 아마 그리니치가 막 잡혀 들어왔을 때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나는 내 몸의 언어를 그들이 알아들을까 했는데 모두가 내 그림자처럼 따라 움직여 주었다.
마왕은 그깟 공격으로 자기가 당할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