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1
집밥을 너무 잘함 1화
가끔은 백 마디 말보다 맛있는 한 끼가 더 위로되는 날이 있다.
‘드디어 오늘이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다. 우빈이 삼 년 동안 일해왔던 레스토랑에 작별을 고할 날이기 때문이었다.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라는 마법의 주문을 외치자 매니저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는 어딘가에 급히 전화를 걸었다. 아무래도 레스토랑 오너에게 연락을 하는 것 같았다.
매니저는 일단 우빈을 직원 외 출입금지라고 적혀 있는 사무실에서 기다리라고 말했다. 사무실 안에는 크고 작은 상패들이 놓여있었다.
“그래, 무슨 일인데?”
레스토랑 오너가 들어왔다.
그를 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머리하셨네요, 라고 말을 하려다 다시 입을 다물었다. 얼굴을 자주 비치지 않았기에, 파마한 머리가 최근 일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오너는 빤히 우빈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만두어야 한다고 말을 해야 한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입이 쉽사리 떼어지지 않았다.
우빈은 살짝 심호흡하고는 입을 열었다.
“이번 달까지 일하고 그만두겠습니다.”
우빈의 말에 후우, 하고 레스토랑 오너는 얕은 한숨을 내뱉었다. 우빈의 말과 표정에 예상은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갑자기 왜? 누구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라도 있어?”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러면?”
“제 가게를 열려고요.”
우빈의 말과 함께 오너의 손에 빙글빙글 돌아가던 펜이 책상 한편으로 데굴거리며 굴러갔다.
당연히 다른 레스토랑이나 호텔 주방으로 이직하는 줄 알았던 레스토랑 오너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다.
“가게를 새로? 아니, 아니. 진짜야, 우빈아?”
“네.”
우빈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던 오너는 다시 여유를 되찾았다.
“돈이 모자라서 그래? 그럼 진작 말을 하지! 그런 건 내가 얼마든지 조정해 줄 수 있는데.”
오너의 뒤로 고급 위스키가 잔뜩 줄 세워진 선반이 보였다.
세련된 인테리어로 꾸며진 청담동의 제법 인기 많은 레스토랑. 성공에 힘입어 여기 말고도 다른 사업체를 몇 군데 더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다.
우빈에게 처음 셰프 자리를 제안할 때만 하더라도 손님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던 최동진이었다. 그 말이 마음에 들어 주저 없이 이 레스토랑을 선택했다.
둘 다 손님이 중요했지만 최동진에게 손님은 자신의 성공을 위한 징검다리에 불과했다.
누가 맞냐 틀리냐의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서로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말이었기에 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조차 못 했을 뿐.
우빈의 침묵이 길어지자 최동진의 얼굴에 점차 불쾌한 기색이 어렸다. 회유에 넘어가지 않자 최동진은 전략을 바꾸었다.
“우빈아, 우리 쉽게 가자고. 얼마가 필요한지 편하게 말해봐. 굳이 힘든 길 갈 필요는 없잖아?”
우빈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제 와서 더 실망할 일도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최동진은 단순히 우빈의 말을 월급을 더 달라는 시위로 이해하는 것 같았다.
의견이 부딪히는 건 처음이 아니었다.
다른 레스토랑의 인기 메뉴를 그대로 베껴오라고 말하거나, 무작정 가격을 인상하는 일이 벌어졌다. 최동진에게는 당연한 일이었을지 몰라도, 우빈은 이해할 수 없었다.
몇 번이나 대화를 시도했지만 처음부터 기준점이 달랐기에 대화는 계속해서 빙빙 돌아갔다.
우빈은 답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정말 독립해야겠다고.
완강해 보이는 우빈을 보고는 최동진이 인상을 찡그렸다.
“아니면 정말 가게를 열고 싶다는 거야? 너는 사업이 뭐 쉬운 줄 알아?”
“당연히 쉽지는 않겠죠. 그래도 한 번 해보려 합니다.”
레스토랑 일이 싫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기술을 섬세하게 가다듬거나 코스 메뉴의 구성을 균형 있게 짜는 일은 즐거웠다.
그렇지만 저녁 한 끼에 드는 비용이 누군가의 한 달 저녁을 책임질 수 있는 금액과 같다면. 오는 손님은 한정될 수밖에 없다.
더 많은 손님이 내 음식을 먹었으면 했다.
식사를 즐겁게 마친 손님과 눈을 마주치는 식당을 운영하고 싶었다.
가게를 왜 운영하냐고 묻는 것은 마치, 물고기에게 왜 쾌적한 땅을 내버려 두고 굳이 물에서 사냐고 의아해하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뻐끔, 뻐끔.
역시 이곳에서는 숨을 쉴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말해도 오너는 결국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줄곧 꿈이었으니까요.”
우빈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러나 곧은 눈빛으로 오너와 시선을 마주쳤다.
* * *
풍영시장은 꽤 시끌벅적하고 가게도 많은 편이었다. 시장에는 정육점과 과일과 채소를 파는 청과점뿐 아니라, 국화빵 같은 간식거리도 팔고 있었다.
그런 풍영시장 한구석에 우빈이 서 있었다.
정육점이나 청과점에 파는 물건들은 모두 싱싱했고, 임대료가 저렴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가장 큰 건.
바로 사람 냄새가 나는 이 떠들썩한 분위기.
지는 해와 함께 하늘은 주황빛으로 변했다.
노을을 배경으로 장바구니를 손에 들고 종종거리며 걸어가는 사람. 그리고 정육점 앞에서 고기를 기웃거리며 구경하는 할머니와 떡집 앞에서 시루떡과 호박떡을 들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우빈은 역시 이 동네에 가게를 얻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가게 오픈 준비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전기 배선과 벽 미장 작업이 겨우 끝난 상태였다.
그나마 우빈은 비어있는 자리를 얻었기 때문에 다행이었지, 원래 가게가 있던 곳은 철거 작업까지 해야 해서 시간이 더 걸린다고 했다.
‘오늘밥집, 2월 OPEN 예정’이라는 크림색 현수막을 내걸었다. 가게 전면의 유리창을 잔뜩 뒤덮을 만한 커다란 크기였다.
우빈은 뒤로 갔다가, 앞으로 갔다가 하면서 현수막이 잘 걸렸는지를 확인했다.
조금 왼쪽으로 기울어진 것 같아서 가게 안쪽으로 들어갈 때였다. 가게 앞에 검은 그림자가 창문에 비쳤다.
* * *
우빈이 잠시 가게 안으로 들어간 사이, 할머니 둘이 옹기종기 모여 가게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호기심으로 눈이 반짝였다.
“새로 뭘 여나 보네?”
김씨 할머니가 안경을 코끝으로 끌어내리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고는 천천히 글자를 읽어나갔다. 김씨 할머니보다 조금 더 시력이 좋은 정씨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밥집이라는데?”
밥집이라는 말에 김씨 할머니가 혀를 쯧쯧 찼다.
“아니, 여기에 밥집을 차리면 어떡해? 참 장사할 줄 모르는 양반이네.”
가게 밖에서는 한참 토론이 오갔다.
시장에 있는 야무진 할머니들이 밥을 바깥에서 사 먹겠냐면서, 차라리 들어온다면 햄버거 가게가 낫지. 아니, 햄버거가 무슨 말이냐. 아이스크림이 낫다. 옥신각신 싸우던 두 할머니 중에 김씨 할머니가 꽥 소리를 질렀다.
“아이스크림은 무슨, 이도 시려 죽겠는데!!”
‘으음, 나갈 타이밍을 못 잡겠네.’
멈출 줄 모르는 토론에 우빈이 뺨을 긁적거렸다. 아무래도 이 근처 사시는 분들인 것 같았다.
나가서 인사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도저히 끼어들 틈이 없어 보였다.
“아니면 그 카페라도 말이야. 젊은 사람이라도 풍영시장에 더 들어오게.”
김씨 할머니의 말에 정씨 할머니가 코웃음을 쳤다.
“카페는 무슨. 카페가 생긴다 해도 형님이 카페 갈 거요? 종이컵에 말아먹는 믹스커피가 최고라고 허구한 날 말하면서. 그리고 요즘 삼천 원이 어딨수? 손녀한테 오천 원 주면 커피 한 잔도 못 마신다고 타박을 받는디야.”
말세다, 말세. 결국에는 오르는 물가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언제 나가지?’
끝을 알 수 없는 할머니들의 수다.
결국 우빈으로서도 결단을 해야 했다.
“저…….”
우빈이 밖으로 나오자 두 할머니는 깜짝 놀랐다. 눈이 휘둥그레지고, 깜짝 놀라서 뒷걸음질을 치기도 했다.
“오메! 심장이 떨어질 뻔했네.”
정씨 할머니가 잔뜩 찡그린 얼굴을 하며, 왼손으로 심장 부근을 문질렀다.
“……다 들었수?”
정씨 할머니가 잔뜩 눈치를 보고 있었다.
새로 생긴 가게 앞에서 밥집보다 카페가 낫네, 여기에 밥집을 하면 누가 사 먹겠네, 를 왈가왈부하고 있었으니. 소금을 뿌리면서 문전박대를 해도 대꾸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우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 들었어요.”
“에그머니나!”
우빈의 대답에 할머니 둘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서로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마치 햄스터들이 모여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어 말을 걸려고 했지만 김씨 할머니가 먼저 도망쳤고, 그다음에 눈치를 보던 정씨 할머니가 “미안합니다.”라고 고개를 푹 숙이고는 김씨 할머니를 따라 허둥지둥 모습을 감추었다.
할머니들을 부르려던 우빈의 손이 갈 길을 잃고는 서서히 내려왔다.
우빈이 뺨을 긁적거리며 비뚤게 올린 현수막을 고쳤다. 이제야 조금 수평이 맞는 것 같았다.
현수막을 고치고는 다시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할머니들이 사라진 거리를 힐끗 쳐다보았다.
“……차라도 한잔하고 가시라고 말하려 했는데.”
내가 그렇게 무섭게 생겼나?
* * *
시장에 장을 보러 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우빈은 장바구니를 챙겨 시장으로 향했다.
가게를 열기 전에 아직은 메뉴 연습을 하고 있었다.
오늘밥집에서 십 분 정도 걸어가면 신선한 고기를 파는 정육점이 있다. 바로 그리고 옆에서 싱싱한 채소를 파는 가게에는 ‘농산물 도매 직거래’라는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한 특이점이 생겼다. 바로 정육점 근처를 돌아다니는 고양이 한 마리였다. 약간 통통한 모습에 연갈색을 하고 있었다.
“애오오.”
고양이는 계속해서 울었다. 우빈은 곤란한 듯 뺨을 긁적였다.
우빈은 고양이를 키워본 적은 없었지만, 얌전한 모습이 아주 귀엽다고 생각했다.
“안녕, 고양아.”
고양이는 가르릉거리며 우빈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홱 돌렸다.
고양이 중에는 살가운 녀석도 있다던데, 눈앞에 있는 연갈색 털을 가진 고양이는 전혀 우빈과 친해질 기색이 없어 보였다.
자신의 구역이라고 말하는 걸까? 우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육점에 갔다.
“오, 아침부터 일찍 나왔구먼.”
마침 가게에서 사람이 나왔다. 정육점 사장이었다. 샛노랗게 탈색한 머리에, 귀에는 주렁주렁 달린 피어싱까지. 가게 안에서는 헤비메탈이 시끄럽게 울려댔다.
“안녕하세요. 오늘 고기 어떤 게 좋아요?”
“고기야 다 좋지! 뭘 만들고 싶은지에 따라 다르지.”
사장이 껄껄거리며 웃었다. 사람 좋게 웃으면서. 자부심 넘치는 모습만큼 고기의 품질은 아주 좋았다.
가격과 품질은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 정육점의 고기도 그랬다. 모든 식재료가 그렇지만, 특히 돼지고기는 조금만 신선하지 않아도 비린내가 심해진다. 하지만 이 정육점에서 파는 돼지고기는 항상 신선해서, 믿고 살 수 있었다.
대량으로 고기를 납품받는 방법도 있지만, 우빈은 발품을 팔아 신선한 돼지고기를 조금씩 살 수 있는 시장이 좋았다. 또 가까운 것도 장점이었다.
“오늘 제육볶음 만들까 하고요.”
우빈은 고민하다가 돼지고기 앞다리살을 주문했다. 앞다리살과 함께 사장이 무언가를 하나 더 건네주었다.
“떡갈비는 서비스로 줄게. 아내가 좋아할 거야.”
“아내요?”
멀뚱거리는 우빈의 모습을 보고는 사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씨, 주부 아니야?”
사장의 말에 우빈이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매일 아침마다 소량으로 고기를 사가니 그렇게 오해할 법도 했다.
“가게를 열려고 준비 중입니다. 시장 입구 쪽에 있는 오늘밥집이라는 가게예요.”
“아, 사장님이셨구만? 나는 박길복이야. 가게 열면 놀러가야겠구만. 꼭 말해 줘.”
“네, 그럴게요. 참, 옆에 고양이가 있던데, 키우시는 고양이예요?”
고양이라는 말에 박길복이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니. 키우기는 무슨. 나 고양이 엄청 무서워해. 그런데 요 며칠 사이에 갑자기 얼굴을 비추더라고? 누가 버리고 간 건지, 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