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101
집밥을 너무 잘함 101화
[쏟아지는 달빛 아래 우리오늘도 이 무지개를 걸어]
기분좋게 울리는 기타 선율과 함께 안지희의 맑은 음색이 어우러졌다.
아이들이 안지희를 따라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들뜬 건 봄이였다. 얼마나 입도 딱 벌어져 있는지. 벌레가 들어갈 것만 같아서 우빈이 옆에서 턱을 살짝 눌러줬다.
그럼에도 들썩임은 감출 수가 없었다.
[나아가]노래 중반이 되어가면서 안지희 특유의 고음이 올라간다. 아무나 따라할 수 없는 트레이드마크인 고음을, 안지희는 그저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불렀다.
그리고 노래가 끝나자 아무도 숨쉬지 못하고 그녀의 노래를 숨죽이며 듣고 있었다.
적막함을 깬 건 안지희의 부드러운 미소였다.
“감사합니다.”
와아아아!
엄청난 박수 세례가 쏟아졌다. 보육원 안은 마치 콘서트장처럼 열기가 넘쳤다.
‘……꿈인가?’
한 아이가 혹시 자신이 꿈을 꾸고 있나 싶어 볼을 꼬집어 보았지만, 역시 아팠다.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고 말해도 좋을 만큼 예쁜 도시락을 먹었다. 그렇게 달걀 이불을 덮은 귀여운 토끼라니.
다시 생각해도 먹기 아까울 만큼 예쁜 도시락이었지만, 또 그와 동시에 먹지 않고서는 못 배길 맛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가수가 직접 자신들의 앞에 서 있었다.
볼을 꼬집을만큼 믿기지 않는, 기쁘고 행복한 날이었다.
노래를 마친 안지희가 웃으면서 아이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오늘 밥 맛있었어?”
“네에에! 엄청요. 매일매일 먹고 싶어요!”
“저는 하루에 다섯 번도 먹을 수 있어요!”
재잘거리는 아이들을 흐뭇한 미소로 쳐다보던 안지희가 손바닥을 들어 우빈을 가리켰다.
마치 공연 중간에 밴드 멤버들을 소개하는 모습과도 같았다.
“그럼 맛있는 저녁을 만들어준 분한테 박수!”
짝짝짝! 박수 세례가 쏟아졌다.
우빈과 이수호, 그리고 셀레스티아. 모두가 이런 박수가 멋쩍었다.
하지만 환한 미소로 박수를 치는 아이들을 보니, 기쁜 마음도 같이 들었다.
‘정말 맛있게 먹어주었구나.’
가게와 병행하느라 요 며칠간 고생하기는 했지만, 미소를 보니 지금 어깨에 쌓인 피로 따위는 전부 날아가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안지희가 기타를 케이스에 집어넣고, 우빈과 이수호도 모두 마무리를 짓고 떠나려던 때였다.
그때 아이 한 명이 생글거리며 우빈과 안지희에게 다가왔다.
“이거 받아주세요.”
“이건…….”
아이들의 편지였다.
삐뚤빼뚤한 글씨. 아직 글자를 모르는 아이들은 그림으로 고맙다는 편지를 적어놓았다.
하나, 둘. 편지를 읽어가던 우빈.
이렇게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기분이 묘했다.
이수호는 이미 훌쩍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수호를 아이들이 울보라고 놀리고 있었다.
“히히, 키는 커다란데 울보래요! 울보!”
“너희들, 삼촌들 놀리면 못 써!”
원장의 호통에도 아이들은 그저 해맑게 웃었다.
이수호를 놀리던 아이가 티셔츠 안에 입은 내복을 끄집어내서 살짝 보여주었다.
“이 내복, 엄청 따뜻해요. 전에는 새벽 되면 추워서 깰 때도 있었거든요.”
아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웃으면서 다시 친구들과 놀기 위해 뛰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오늘밥집 식구들과 안지희는 바깥으로 나와 있었다.
“추우신데, 안에 계셔도 되는데요.”
“배웅이라도 해야 제 마음이 편해서요.”
괜찮다고 하는데도 원장은 꿋꿋이 마중을 나왔다. 옆에서 이수호가 입을 열었다.
“아이들이 정말 착하고 귀여웠습니다.”
“그렇죠? 제 보물같은 아이들이에요.”
이수호의 칭찬을 들은 원장이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
“아이들에게 정말 좋은 추억을 선사해 주신 거예요. 아이들의 어릴 적 즐겁고 행복한 기억은, 정말 생각보다 큰 힘이 되거든요.”
우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 하더라도, 힘든 일이 있었으면 아버지와의 추억으로 버텨왔으니까.
“종종, 찾아오겠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안지희도 같이 우빈의 차에 타기로 했다. 안지희는 피곤했는지 푹 잠이 들었다.
이수호가 교대로 운전을 하겠다고 했지만, 어차피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니까 그냥 자신이 운전하기로 했다.
“……오늘 친구들 많이 만나서 좋았다, 그치.”
“웅! 다들 차카고 재미써써.”
봄이의 말에 우빈이 빙그레 웃었다. 그렇게 활짝 웃는 봄이의 모습을 셀레스티아가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그렇게 안지희와 이수호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봄이도 침대에서 눈꺼풀을 감는 모습까지 확인했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아서 피곤했던 건지, 봄이는 도롱도롱 코를 골면서 자고 있었다.
그런 봄이를 보고는 우빈이 옅게 미소를 지으며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리고 마저 정리하러 주방으로 내려왔는데, 셀레스티아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어떤 거?”
반사적으로 대답했지만 우빈은 대충 어떤 이야기일지 예상하고 있었다.
셀레스티아는 힐끗 고개를 돌려 주위에 아무도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러고는 한숨과 함께 말을 시작했다.
“……예전에 정령을 불러낸 한 사람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사람은 아주 나쁜 선례를 만들었죠.”
“그게 어떤 건지 말해줄 수 있어?”
“많은 사람을 죽였어요.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요. 그 이후로 그자와 계약한 정령은 힘을 빼앗기고 소멸되었고요.”
우빈은 아무 말도 하지않고 가만히 셀레스티아의 말을 들었다. 셀레스티아가 아무런 이유없이 정령계에 있었던 일. 그것도 좋지않은 일을 꺼내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렇게 정령의 힘을 악용한 사례가 있어서, 그 이후로 최상급 정령은 단기 계약만 할 수 있도록 바뀌었어요.”
셀레스티아가 입을 열었다.
“봄 님도, 그중 하나예요.”
“…….”
어쩌면 셀레스티아가 계속 힌트를 주고 있었지만, 자신이 계속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무시해 왔던 사실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빈이 주먹을 세게 쥐었다.
‘분명, 지난번에 봄이가 나와 어떠한 계약을 맺었다고 했어. 그럼, 단기 계약이라는 말은…….’
혹시 봄이와의 만남에도 끝이 있는 걸까.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우빈을 보면서 셀레스티아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지금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이 정도예요.”
그렇게 셀레스티아는 모습을 감추었다.
다음 날.
“사장님, 괜찮으십니까?”
“어? 어어. 괜찮아.”
평소보다 확연히 집중하고 있지 못하는 우빈의 모습에 이수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우빈을 쳐다보았다.
멍하니 있던 우빈은 식재료를 들고오다가 벽에 이마를 크게 부딪혔다.
데구르르 구르는 당근을 주운 봄이가 아장아장 우빈에게로 다가갔다.
“아빠아. 갠차나?”
“……응.”
우빈이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리 불안해도 자신은 봄이의 아빠였다. 그리고 이 불안함을 봄이에게 전염시키고 싶지도 않았다.
셀레스티아가 말을 해준 다음, 전날도 몇 시간 자지 않아 피곤한 상태였지만 우빈은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봄이에게 물어보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이렇게 흥분한 상태에서는 봄이가 겁에 질릴지도 못했다.
‘……만약, 물어보더라도. 조금 진정한 다음에.’
우빈이 얼얼한 이마를 손으로 문지르면서 셀레스티아의 말을 다시금 떠올렸다.
-지금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이 정도예요.
분명 셀레스티아는 지금 자신이 말할 수 있다는 정보가 한정되어있다고 했다. 다르게 말하면, 지금이 아닌 언젠가. 또는 셀레스티아가 아닌 누군가가 그에게 말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빈은 그게 봄이일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는 봄이를 믿었다.
봄이가 말하지 않는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빈은 봄이가 먼저 그에게 말을 해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스스로 봄이가 입을 열어줄 때까지는 평소처럼.
‘……아니, 평소보다도 더.’
그저 봄이를 아끼고 사랑해 주기로 우빈은 마음먹었다.
적어도 이 마음만큼은 누구한테도 질 자신이 없었으니까.
* * *
한편, 같은 시각.
서울에 위치한 어느 중견기업.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자가 작은 상자 하나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희끗한 머리의 남자는 다른 이들에게 김 회장이라 불렸다.
김 회장은 기계 부품을 제조하고 수출해서 먹고사는 사업체를 꾸리고 있었는데,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탄탄한 중견기업 중 하나였다.
이제 경영에서는 한발 뒤로 물러나 회장의 자리를 얻었지만, 그래도 직원들의 복지에는 여전히 신경 쓰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책상 앞에 놓여있는 이 상자, 바로 소원 수리함이었다.
소소한 불만부터 회사의 경영 방침을 바꿀 만한 큰 문제 제기까지.
직원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내용을 적을 수 있었다.
김 회장이 쪽지를 하나 뽑아서 소리내어 읽어보았다.
“해외영업팀에 채용이 너무 늦어지고 있습니다. 벌써 몇 달째 사람이 안 뽑히고 있는데, 무언가 대책을 취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음…… 그렇구만.”
“아이, 그게. 저희도 뽑아보려고 하는데 지원서가 영 들어오지 않아서요…….”
부장이 머쓱한 미소를 지어보이자 김 회장이 말했다.
“채용이 늦어진다는 건 그거지. 면접관 눈이 높거나, 돈을 적게 주거나. 그런데 그거 알아?”
김 회장의 눈이 빛났다.
“제일 꼴값은 돈도 적게 주면서 눈만 드럽게 높은 놈들이야. 적어도 꼴값은 하지 말아야지. 안 그래? 쯧, 이 돈이면 나라도 안 오겠다. 다른 데보다 더 높게 해서 얼른 채용공고 다시 올려.”
“아, 예, 예……!”
그리고 김 회장은 다른 쪽지를 꺼냈다.
“민초는 싫어요. ……민초가 뭔가?”
“민트초콜릿이라고 박하와 초코가 같이 들어간 과자를 줄인 말입니다. 치약 맛이 나죠.”
직원은 자신의 사견을 듬뿍 담아서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는 직원이 “그 상큼함이 좋은 건데…….”라고 입을 삐죽였다.
박하랑 초콜릿을 함께 먹는다니.
요즘 젊은이들 취향은 알 수 없다고 생각하며 회장이 의아함을 드러냈다.
“그래도 이미 탕비실에 민초가 있다는 건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는 거 아닌가? 다른 종류도 넉넉하게 사도록 해.”
“예, 예. 알겠습니다.”
다소 장난스러워 보이는 쪽지라도 누구나 자유롭게 낼 수 있는 소원 수리함.
장난식으로 보일지라도, 일단 자유롭게 의견을 내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이 소원 수리함의 진정한 의미가 생기는 까닭이었다.
소소하게는 탕비실의 간식 개선부터, 심각하게는 사내 괴롭힘과 내부 비리까지 다양한 내용이 담겨왔다.
비록 부장들에게는 귀찮은 물건이기는 했지만, 이 소원 수리함 덕에 큰 사고를 몇 예방할 수 있었다는 건 대체로 모두가 인정하는 바였다.
그렇게 하나씩 쪽지를 읽어가던 김 회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기민하게 그 모습을 눈치챈 직원들이 몸을 움찔였다.
“이번에는 제발 체육대회 배식 업체 좀 바꿔 주세요. 밥이…… 너무 맛이 없어요?”
김 회장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음식의 맛이야 주관적일 수 있다지만, 문제는 그런 쪽지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
비슷한 내용의 쪽지를 테이블에 쭉 늘어놓은 김 회장이 입술을 깨물었다.
어렸을 적 배를 곯던 그였고, 다시는 그런 배고픔을 누리지 않기 위해 이 자리까지 오르기에 얼마나 노력했는가.
다시 쪽지를 보았지만 ‘너무 맛이 없어요’라는 글자는 그대로 쪽지에 적혀져 있었다.
이마의 핏줄이 툭툭거리며 불거졌다.
“밥이 맛이 없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우리 체육대회랑 하는 업체, 거기 다원 아닌가?”
“마, 맞습니다.”
인자하고 너그러운 표정의 김 회장의 얼굴이 순식간에 야차의 얼굴로 바뀌었다.
“몸을 쓰는 체육대회에 밥이 맛이 없는 게 말이 되나? 당장 다원이랑은 그만두고, 업체 다시 찾아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