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102
집밥을 너무 잘함 102화
지난 체육대회는 배식이 아닌 도시락으로 제공되어 있었다.
그리고 분명 자신이 기억하기로는, 김 회장만 특별히 제공된 도시락을 먹지는 않았다. 그러니 아마 일부 도시락에 품질 문제가 있었던 듯했다.
‘그런데 그게 일부가 아니었던 거지.’
김 회장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것들이 나를 뭐로 보고. 검수도 제대로 안한 도시락을 보내줬다고? 괘씸한 것들.’
게다가 마음에 걸리는 건 하나 또 있었다. 짜증이 난 김 회장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김 회장이 거칠게 욕설을 내뱉었다.
“내가 또 그놈들이 의기양양해하는 꼴을 봐야 하잖아.”
-김호석이, 니네 회사는 밥도 맛이 없다며?
주식회사 선경. 사사건건 김 회장을 방해하는 라이벌 업체였다.
어찌나 신경을 쓰는지. 체육대회를 시작했더니 그게 좋아보였는지, 그다음 해부터 갑자기 체육대회를 시작했다.
무슨 호텔 셰프를 영입했다면서 어찌나 자랑질을 하던지.
속에서는 천불이 났지만 김 회장이 애써 조용히 물었다.
“우리가 돈이 없냐, 가오가 없냐?”
김 회장의 물음에 부장들이 땀을 뻘뻘 흘렸다.
둘 중에 뭐를 골라야 하지? 원래는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였지만. 회장 앞에서 가오가 없다고 말하면 불호령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런 직원들을 보던 김 회장이 빽 소리를 질렀다.
“돈도 가오도 둘 다 챙겨야지! 돈은 얼마가 들든 좋으니까 가장 맛있는 곳으로 구해와!”
* * *
며칠 후.
집으로 돌아온 직원, 고동규가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아으으. 이제 일주일도 안 남았는데, 맛집을 어디서 찾아서, 또 리스트를 만드냐고.”
“왜 이래, 저녁 앞에서 밥맛 떨어지게 한숨이나 팍팍 쉬고 있고. 무슨 일 있어?”
아내의 말에 고동규가 오늘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러자 아내가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에이, 밥이 좀 맛없는 것 가지고 그렇게 심각할 일이야? 회장님까지 나서서?”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사람들 이야기 들어보니까 상한 반찬이 나오기도 하고, 비용 자체도 다른 업체랑 비교하면 싼 것도 아닌데……. 그동안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다 하고 넘어가던 게 터진 거지, 뭐.”
고동규가 미간을 찌푸렸다.
고동규가 다니는 경용기공은 어차피 거래처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보통 한번 거래를 튼 거래처와는 계속 일을 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별다른 의심 없이 계속 진행을 해왔었는데, 이번에 일이 터진 것이었다.
“우리가 물렀지, 뭐.”
고동규가 씁쓸한 표정으로 맥주를 들이켰다.
“내가 먹어도 밥이 맛이 없긴 했어. 샘플이랑도 전혀 다르고…… 나는 그냥 내 것만 상태가 이상한 줄 알았는데.”
지금 배식 업체는 다원이라는 곳으로, 무려 십 년을 넘게 거래한 업체였다. 매년 조금씩 반찬이 부실해지기는 했지만, 모두가 같이 불만을 느끼고 있을 줄은 몰랐다.
확인 전화를 위해 배식 업체에 전화를 해보았지만, 업체 대표는 그저 뻔뻔하게 나올 뿐이었다.
-작년에 식자재가 상했었다고요? 그럴 리가 없는데…… 다른 회사만큼 주시면 저희도 반찬이 잘 나오겠죠. 선경 같은 데는 많이 주던데……. 하하, 농담입니다.
심지어는 경쟁사 이름까지 들먹이는 업체 대표였다. 불쾌한 기억을 떠올린 고동규가 다시 씩씩거리면서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오, 말이면 다인 줄 아나, 진짜! 뭐? 선경? 선겨어엉? 이번에는 꼭 좋은 곳으로 찾아야 해!’
고동규는 자신의 회사에 김 회장만큼은 아니더라도 꽤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중견기업이기는 하지만 복지가 좋아 근속연수도 길었고, 퇴사자도 은퇴자를 제외하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이제 꼭 김 회장의 말이 아니더라도 업체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줄 만한 더 좋은 곳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아내가 입을 열었다.
“여보, 당신 친구 중에 한 명 VJ 한다는 사람 있지않았어? 그, 불룩인가 뭐 있잖아. 그 사람한테 물어보는 건 어때?”
“BJ 말하는 거야? 내 친구 중에…… 아아, 아!! 신형섭이! 불룩체인!”
불룩체인. 먹음직스러운 영상과 과하지 않은 재치 있는 입담으로 벌써 오십만 구독자를 모은 유튜버이자, 그의 친구였다.
남자가 이마를 탁 쳤다.
왜 여태까지 생각을 못한 건지 의아할 정도였다.
직원은 재빨리 연락처에 있는 전화를 걸었다.
“어, 어. 형섭아. 잘 지냈지? 난데. 혹시 추천해 줄 만한 맛집 알고 있냐?”
다음 날.
‘……형섭이가 추천해 줘서 일단 오기는 와봤는데.’
고동규는 의심쩍은 표정으로 가게 앞에 서 있었다.
하지만 BJ를 시작하기 이전에도 원래 미식가로 유명했던 불룩체인의 말인지라, 고동규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일부러 점심시간을 피해 일찍 왔는데도, 생각보다 바글바글한 인파에 고동규는 깜짝 놀랐다.
‘얼레, 그냥 동네 가게 아니야? 사람이 되게 많네.’
“과장님! 저도 왔습니다.”
오늘 메뉴는 콩나물밥, 장똑똑이, 그리고 조개미역국이었다.
볶은 다진 소고기와 함께 아삭아삭한 콩나물이 씹힌다. 다진 대파와 함께 고소한 참기름의 맛과 함께 고춧가루의 매콤함이 더해졌다.
콩나물밥의 양념장을 숟가락으로 휘둘러주었다. 그러자 양념장이 은은하게 밥 사이사이로 스며 들어갔다.
양념에 들어간 참기름과 통깨가 고소한 맛을 더해준다.
“이거, 물건이네요. 콩나물밥이라고 해서 게다가 콩나물 비린내도 하나도 안 나요.”
감탄하며 콩나물밥을 먹는 사이에, 장똑똑이를 먹은 직원의 눈이 크게 떠졌다.
“잠깐, 이것도 진짜 맛있는데요? 이 고기 반찬?”
“장똑똑이 말하는 거야? 그거 맛있더라.”
“똑똑이? 무슨 반찬 이름이 그래요? 아무튼 장조림 같기도 한데 맛이 짭짤하고 고기가 꼬들하게 씹히는 게 제 스타일이에요.”
조금은 생소한 이름에 이 대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튼 이 장똑똑이는, 소고기를 길쭉하게 잘라 간장으로 양념을 한 음식이었다. 짭조름하게 간이 되어 언뜻 맛은 소고기 장조림과도 비슷하지만, 염도는 낮았다.
‘맛있다.’
고동규는 생각했다.
물론 불룩체인만큼의 미식가나 먹방 BJ는 아니었지만, 고동규도 나름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신선한 고기를 사용했다는 걸 알 만큼 잡내라고는 하나도 나지 않았다. 장똑똑이를 씹을 때마다 육즙과 함께 고기에 배인 양념이 흘러나왔는데, 그게 또 기가 막혔다.
송송 올려진 쪽파에서는 향긋함이 가득해서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장조림의 균형을 산뜻하게 잡아주었다.
어느 특정 하나의 반찬이 맛있는 게 아니라, 반찬 하나하나에 특색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또 모든 반찬의 균형이 어우러져 하나의 밥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식사를 하던 세 사람의 시선이 서로를 오갔다.
이번 체육대회의 도시락 선정은 신중해야만 했다.
‘그런데…….’
맛이 너무 압도적이었다.
누가 먼저 말을 꺼낼까 하고 기다리고 있던 참에 이 대리가 입을 열었다.
“괜찮을 것 같은데요? 며칠 동안 방문했던 곳 중에서 여기가 제일 맛있어요.”
“맛있긴 하네. 이 정도면 소개시켜 드려도 되겠어. ……그럼 여기로? 찬성하는 사람 손 한 번 들어봐.”
막내인 이 대리가 손을 올렸고, 점차 하나씩 손이 올라갔다.
“웅?”
티라노 인형을 안고 도도도 우빈에게 달려가던 봄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빠아, 죠기 따람들 손 오리고 이써. 버서는 거야?”
“벌은 아니고…… 아마 기도하는 거 아닐까?”
손을 든 테이블을 보고 우빈이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 * *
“…그래서, 저희 생각에는 오늘밥집이라는 이 식당 사장이 적합한 인물로 보입니다.”
턱을 괴고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앉아있던 김 회장이 입을 열었다.
“내가 직접 가보지.”
“예? 아, 아니. 회장님께서 직접 가실 필요는…….”
“아니. 내 눈으로 봐야 안심이 될 것 같네. 쇠뿔도 단김에 빼라했지. 지금 당장 출발하자고.”
김 회장은 그렇게 오늘밥집에 들어섰다.
동네 백반집 치고는 나름 규모가 있고 깨끗하게 관리가 되고 있는 식당이었다.
“도시락이 그렇게 맛있다는데, 나도 좀 먹어볼 수 있을까요?”
“도시락은 이미 품절이 되어서요. 대신 점심 메뉴와 도시락은 구성이 동일합니다. 점심 정식으로 하나 준비해 드릴까요?”
도시락을 먹지 못하는 건 좀 아쉬웠지만, 어쨌든 오늘은 맛을 살펴보러 온 것이었으니까.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스러웠다.
우빈은 소고기 등심을 칼등으로 두들겨 고기를 부드럽게 해주었다.
핏물을 빼고, 양념을 재워 구우면 완성.
김 대표는 중견기업 사장인 만큼 맛있고 비싼 음식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깐깐한 그의 입맛에도 너비아니는 흡족스러웠다.
부드럽게 흩어지는 고기, 물엿과 간장, 참기름 등 간단한 재료를 썼을 뿐인데 양념장에서는 아주 산뜻한 맛이 났다.
“음, 식당 비법이라 원래는 알려드릴 수 없는데.”
우빈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된장 소스를 겉에 바른 겁니다. 구수한 맛이 나도록요.”
검증은 끝났다. 더 이상 확인해볼 것도 없다 생각한 김 회장이 우빈에게 물었다.
“네, 지금은 저 이외에 직원은 한 명이라서요.”
“한 명이요? 이런, 그럼 안 되는데…….”
김 회장이 난색을 표했다.
“무슨 일이기에 그러십니까?”
“사실은 말이지…….”
김 회장은 얼마 전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사내 체육대회에 제 도시락을요?”
의외의 제안이었지만 우빈은 굳이 굴러온 기회를 걷어차는 타입은 아니었다.
우빈을 제외한 정직원은 한 명밖에 없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우빈은 기회를 그대로 없어지게 두고 싶지는 않았다.
단기 아르바이트를 채용하거나, 아니면 계량은 그대로 한 채로 위탁해주는 전문 업체들도 많을 것이었다.
“총 몇 개가 필요하죠?”
“관계자들 것까지 포함해서 삼백 개일세.”
하지만 고작 사장과 직원 하나로 되어있는 동네 가게에서 도시락 삼백 개를 조리할 수 있을까?
김 회장이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이런 젊은 사장이라면 객기일지도 몰랐다.
얼른 다른 도시락 전문업체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자꾸만 마음이 끌렸다.
아는 사람을 총동원하더라도 인력은 부족할지도 몰랐다.
“그럼-”
우빈이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그때 누군가 오늘밥집으로 들이닥쳤다.
“안 됩니다, 안 돼요!”
헉, 헉.
금방이라도 뛰어온 듯이 숨이 벅찼다.
뛰쳐 들어온 남자의 얼굴을 본 김 회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배식업체 다원의 사장이었다.
“회, 회장님! 체육대회는 벌써 십 년이 넘게 진행해 오지 않았습니까. 저희가 알아서 잘해 드릴 텐데 왜 갑자기 바꾸자고 하시는 건지…… 혹시 비용 문제 때문에 그러면 저희가 더 노력해 보겠습니다!”
남자가 말 그대로 손을 싹싹 비볐다.
이미 이번 경용기공의 사내 체육대회 예산을 받아올 생각을 하면서, 따뜻한 동남아에 가서 골프를 치고 호화로운 여행을 즐기는 것으로 이미 이야기가 다된 상태였다.
다된 밥에 재를 뿌리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남자가 가지고 온 샐러드를 김 회장 앞에 내밀었다.
“그, 그러지 말고. 이거라도 좀 먹어보시죠. 이걸 포함해서 도시락 구성도 미리 만들어놓고 단기 아르바이트도 다 뽑아놓은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제 이야기는 들어보시지도 않고 뚝 끊으시면 제가 섭섭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김 회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 싸가지 없는 새끼.’
남의 가게에 들어와서는 사장의 눈치는 보지도 않고 있었다. 최원호의 시선은 오직 김 회장에게만 가 있었다.
김 회장이 제일 싫어하는 유형 중 하나였다. 이런 업체와 십 년이나 넘게 같이 일을 하고 있었다니. 그때의 자신도 아직 사람 보는 눈이 없었다며 혀를 끌끌 찼다.
샐러드를 받은 김 회장이 우빈에게 물었다.
“혹시 괜찮다면, 자네도 조금 들겠나?”
“예, 알겠습니다.”
김 회장의 권유에 우빈은 앞에 놓인 샐러드를 한입 먹어보았다. 난데없이 가게에 쳐들어온 남자의 실력이 어떤지 궁금하기도 하던 참이었다.
‘……이 맛은.’
샐러드를 한입 집어먹은 우빈의 눈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