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11
집밥을 너무 잘함 11화
가게로 돌아와서는 큰 스텐볼에 불고기용 소고기를 넣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다진 마늘을 넣고, 황설탕과 진간장을 넣고 버무렸다.
이렇게 고기를 양념에 재워두는 사이에 양파와 당근을 채 썰었다. 당근은 제외할 수 있지만 양파는 익으면 달달한 맛을 더해주기 때문에 반드시 넣어야 할 재료였다.
재운 고기를 프라이팬에 올렸다. 소고기는 세게 볶으면 고기가 질겨지므로 이른 시간 안에 볶아내야 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붉은 소고기의 색이 변해가면서, 고기 옆에 있던 양념이 지글지글 끓었다.
채 썰어놓은 양파와 당근을 프라이팬에 함께 숨이 죽을 때까지 볶아주었고, 마지막에는 불을 끄고 참기름을 둘러 완성했다.
접시에 소불고기를 올린 다음에 통깨를 솔솔 뿌리자 제법 먹음직스러운 모양으로 완성되었다.
“봄이야, 먹자.”
이 층을 향해 소리치자 봄이가 쪼르르 달려와 테이블에 앉았다.
소불고기는 부드럽게 입안에서 녹았다. 달달한 양파와 당근이 씹는 맛을 더해주고 있었다.
달짝지근한 소불고기 양념을 밥에 말아먹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얀 쌀밥에 곧 국물이 배어들었고 봄이는 거의 후루룩 밥을 마시듯이 빠른 속도로 먹었다.
‘체, 체하겠다.’
“봄아, 조금만 천천히 먹자. 밥을 꼭꼭 씹어먹고.”
체할 것 같아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봄이를 바라보았고, 결국은 밥알이 목에 걸렸는지 봄이가 사레에 들렀다. 기침을 하는 봄이를 보고 우빈이 등을 토닥여 주었다.
우빈은 턱을 괴고 불고기를 먹는 봄이를 보았다. 요즘은 봄이가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을 보는 게 낙이었다.
혼자 가게에 들어와 있을 때면 적막함이 느껴지고는 했는데, 그 자리를 봄이가 채워주고 있었다.
* * *
“비가 엄청 많이 오네.”
요 근래 날씨가 덜 추워졌다 했더니, 눈 대신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내리는 비가 심상치 않아 정말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렸나 싶어, 우빈이 하늘을 잠시 쳐다보았다.
먹구름이 잔뜩 끼고 어두운 날씨였다.
“봄아, 저녁에는 못 나가겠다.”
추우면 잔뜩 옷을 껴입고 나갈 수라도 있을 텐데,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는 엄두도 안 났다.
조금 비가 온다면 우비를 입겠지만, 괜히 봄이가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큰일일까 싶어서 오늘은 집에 얌전히 있기로 했다.
뾰로통한 얼굴의 봄이와 다르게, 봄이가 불러온 인어들은 어쩐지 활기가 넘쳤다. 원래도 활발했지만, 오늘은 어째 물줄기도 더 거센 것 같았다.
물 조절을 잘못해서 우빈의 얼굴에 정통으로 맞아버렸다.
“……!”
물줄기를 얼굴에 정면으로 맞아버린 우빈을 보고는 인어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우빈은 수건으로 얼굴을 슥슥 닦아내고는 손바닥을 내밀었다.
“괜찮아, 괜찮아.”
그릇을 닦으려 하자, 봄이가 우빈의 옷깃을 잡았다. 그러자 또다시 푸른 인어들이 나와 그릇을 닦기 시작했다.
편하기야 편했지만, 이렇게 익숙해져도 되는 걸까? 혹시 저 요정들을 부르는 횟수에 제한이 있으면 어쩌지? 아니면 요정을 부를 때마다 봄이의 수명을 깎는다던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우빈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봄아. 물어볼 게 있는데. 혹시 인어들이 나올 때마다 네가 위험한 건 아니지? 아니, 나는 걱정이 되어서…….”
봄이는 우빈의 설명을 듣다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우빈을 쳐다보더니, 곧 까르르 웃었다.
봄이가 다가와서 우빈의 머리에 손을 가져가다가 멈칫했다.
우빈과 봄의 시선이 마주쳤고, 우빈이 봄의 손을 잡아끌어 그의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
곧 어색한 손길로 우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양이의 털을 쓰다듬는다기보다는 카펫의 결을 쓸어주는 느낌에 더 가까웠다. 그 손길이 묘하게 안정이 되어서 우빈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괜찮다는 거지?”
“뺘.”
인어들은 활짝 웃으며 그릇을 닦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 인어들은 어디서 온 걸까? 언젠가 봄이가 말을 할 줄 알게 되어서, 모든 걸 설명해 줄 날이 오면 좋겠다고 우빈은 생각했다.
“손님도 없네.”
우빈이 중얼거렸다. 그야 이렇게 비가 쏟아진다면 자신이라도 집에 있고 싶을 것 같았다.
오늘은 조금 가게를 빨리 닫는 편이 좋을까? 미리 내일 재료를 다듬어둘까 생각하는 도중에, 누군가가 가게에 들이닥쳤다.
“어휴, 비가 쏟아지는구만.”
딸랑.
경쾌한 종소리와 함께 사람이 들어왔다. 허스키한 목소리의 큰 덩치.
박길복이었다. 우산이 없었는지 비에 쫄딱 젖은 행색이었다.
우빈이 얼른 욕실에서 수건을 가지고 왔다.
“이걸로 머리라도 말리세요.”
생각지도 못한 호의에 박길복이 쑥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가게는요?”
“음, 이렇게 비가 너무 많이 오는 날은 손님이 없어. 전화번호가 남겨져 있으니까, 급하면 그쪽으로 연락 올 거고. 갑자기 비가 이렇게 많이 올 줄은 몰랐네. 형씨, 배고픈데 뭐 먹을 거 있을까? 꼬맹이도 안녕?”
화려한 금발의 박길복을 발견하자, 봄이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하긴, 이런 날은 손님이 없을 테지.’
박길복의 말대로 궂은 날씨 탓인지 오늘밥집도 손님 하나 없이 썰렁했다. 매일 오는 김성훈도 오늘은 주말이라 본가인 창원에 내려가 있을 터였다.
“소불고기를 만들고 있기는 했는데요.”
“고기도 좋긴 한데, 그…… 다른 게 당기지 않아?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는.”
박길복이 히죽거리며 웃었다.
창밖을 보니 비가 꽤나 내리고 있었다. 잠시 턱을 쓰다듬던 우빈의 머릿속에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아!”
비 오는 날에 꼭 생각나는 음식이라면. 우빈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파전 하나, 맞으세요?”
“아니.”
박길복이 심각한 표정으로 우빈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손가락 두 개를 펼쳤다.
“두 장으로.”
쪽파를 깨끗하게 씻어 뿌리 부분을 손질했다. 그러고는 쪽파를 다졌다.
“흐흥.”
저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잘게 썰은 쪽파 위에 부침가루와 물을 비율을 맞춰 섞어 넣어주고, 그 위에 계란물을 들이부었다.
‘아, 이런.’
냉장고를 연 우빈이 미간을 찌푸렸다. 생각해보니 저번에 사 온 오징어는 냉장이 아니라 냉동이었다. 잠깐 마트에 가서 새로 오징어를 사오려는 우빈을 박길복이 붙잡았다.
“어디 가?”
“오징어가 냉동밖에 없어서 하나 사 오려고요.”
“나는 냉동도 괜찮아. 그보다 빨리 먹고 싶은데…….”
냉동 오징어는 우빈이 가볍게 먹으려고 산 재료였다. 손님에게 냉동 오징어를 내놓고 싶지는 않았는데.
‘하지만 손님의 요청이 먼저지.’
우빈은 살짝 체념한 기분으로 냉동 오징어를 가득 넣어서 다시 반죽을 섞었다.
요리에는 온도가 중요하다. 불 조절도 조금 더 세지면 음식이 새까맣게 타는 것처럼.
계란말이를 만들 때는 계란물이 차갑지 않고 조금 미지근해야 프라이팬에서 예쁜 모양이 나오지만, 부침개의 경우는 반대였다.
반죽이 조금 차가워야 먹을 때 더 바삭한 식감으로 변한다. 우빈이 반죽을 몇 번 더 휘젓고는 랩을 씌워 냉장고 안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에 미리 설거지를 하려 고무장갑을 끼려고 할 때였다.
고무장갑을 끼자 봄이가 쪼르르 다가왔다. 우빈이 조용히 봄이에게 속삭였다.
“지금은 안 돼.”
갑자기 인어들이 나타났다간……. 박길복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햄스터에서 인어들로 바뀔지도 몰랐다.
봄이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테이블로 돌아갔다.
“왜 비 오는 날에는 부침개를 먹고 싶은 걸까요?”
“왜, 기름에 부침개가 익는 소리랑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랑 비슷하게 들린다잖아.”
“정말 그래요?”
“요리사가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이따 들어보자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우빈이 냉장고에서 반죽을 꺼내왔다. 차가운 스텐볼로부터 프라이팬으로 반죽이 떨어졌다. 그러자 지글지글 소리와 함께 반죽이 노릇하게 익어가기 시작했다.
토독토독.
바깥에서 빗방울이 창문을 때리는 소리가 났지만 그런 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세 명의 눈은 모두 프라이팬 위의 부침개를 향해 있었다.
꿀꺽.
주변부터 바삭하게 익어가는 부침개를 보고는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우빈이 물었다.
“어때요, 비 오는 소리랑 비슷한 것 같습니까?”
“……그런 건 모르겠고 겁나 맛있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
“사실 저도요.”
“뺘아!”
노릇노릇하게 구워가는 냄새가 나니 삐쳐있던 봄이도 살랑거리며 다가왔다. 색감을 위해서 빨간 홍고추를 어슷하게 잘라 파전 위에 올려두었다.
“주문하신 파전 나왔습니다.”
테이블 위에 놓인 파전을 보고는 박길복이 침을 삼켰다.
바삭.
입에 넣자 파전, 특히 파전의 끝부분이 바삭 소리를 내면서 입안에서 흩어졌다.
‘식감 미쳤는데? 두 장으로는 모자라!’
박길복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기름을 잔뜩 먹어 바삭한 쪽파를 계란옷이 다시 한번 고소하게 잡아주고 있었다.
‘……왜 비가 오면 부침개가 먹고 싶어지는지 알았어.’
비는 그냥 기름이 잔뜩 들어간 음식을 먹기 위한 좋은 구실이었다.
우빈이 얼마나 잔뜩 기름을 넣었는지 바로 눈앞에서 보았으면서도, 박길복의 몸은 파전을 갈구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소스에 찍어 먹어볼까.’
이미 싱겁지 않게 파전 자체에 간이 되어있었지만, 소스맛이 궁금해진 박길복이 얼른 파전을 한 점 집어 들었다.
부침개 소스는 새콤하면서도 매콤했다. 같이 한잔 곁들일 막걸리가 생각이 나는 맛이었다.
바깥에는 이제 폭우라 해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여태까지 먹어본 파전 중에 제일 맛있는데? 진짜로.”
“제가 만든 거 처음 드셔보셨잖아요?”
“태어나서 먹은 것 중에 제일 맛있어.”
봄이는 파전에 든 오징어를 우물거리며 씹고 있었다. 봄이도 박길복과 마찬가지로, 기름에 튀겨 바삭바삭한 끝부분을 특히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세 명이 먹으니 두 장이 금방 사라졌다. 모두의 눈빛에서 아쉬움을 읽은 우빈이 주방으로 들어가서는 참치통조림을 찾았다.
“이번에는 김치부침개를 만들게요.”
“오오!”
“뺘아!”
만드는 방법은 비슷했다. 아까 파전에는 쪽파랑 오징어를 넣었는데, 이번에는 김치와 참치로 주인공이 바뀌었다.
잘 익은 김치를 냉장고에서 꺼내 잘게 다졌다. 그리고 김치를 참치와 부침가루로 섞었다.
기름져서 더 고소한 캔참치와, 잘 익은 김치를 다져넣었다. 그리고 조금 더 칼칼한 맛을 위해 청양고추를 잘게 썰어넣었다.
프라이팬에 김치 반죽을 올리기 전에, 우빈은 식용유를 가득 부었다.
치직, 칙.
끓는 듯한 기름에, 반죽을 넣자마자 치직거리며 반죽이 빠르게 익어갔다.
우빈은 프라이팬을 돌려가며 부침개 끄트머리를 튀기듯이 구웠다.
이미 파전을 맛본 뒤라 박길복과 봄이의 눈빛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거렸다.
‘됐다.’
잠시 부침개를 쳐다보던 우빈이 프라이팬으로부터 접시로 부침개를 옮겼다.
“김치부침개 나왔습니다.”
얼른 젓가락으로 부침개를 맛본 박길복이 탄성을 내뱉었다.
조금 전의 파전도 맛있었지만, 김치가 들어가 자극적인 맛이 더욱 업그레이드되었다. 청양고추로 매콤한 맛이 계속 나서, 질리지도 않고 입에 계속 들어갔다.
“진짜 바삭바삭해. 그런데 기름기는 또 쫙 빠진 느낌이야. 어떻게 이러지? 정말 맛있어!”
“뺘…….”
봄이도 옆에서 작은 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김치전을 먹어치웠다.
둘을 바라보던 우빈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비가 오는 날은 왠지 모르게 쓸쓸한 느낌이었는데. 이렇게 시끌벅적할 수도 있구나 싶어서 기뻤다.
고소한 부침개 냄새가 가게를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