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116
집밥을 너무 잘함 116화
“나는 상관없지만 애한테는 관심을 가져야할 거 아니야. 어떻게 생일에도 아예 안 들어올 수가 있어? 하다못해 빈이한테는-”
“일 때문이라고 했잖아! 갑자기 촬영이 길어진 걸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이후로 옥신각신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말다툼을 한 이후.
방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최동희는 여행용 트렁크를 가지고 나왔다.
‘엄마.’
씩씩거리는 최동희와 우빈의 시선이 마주쳤다.
무언가 말을 하려했지만 우빈은 입을 뻥긋할 뿐, 결국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최동희는 그런 우빈을 잠시 쳐다보고는 휙 고개를 돌렸다.
계단에서 덜그럭거리는 여행용 트렁크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우빈은 트렁크를 끌고 집 밖으로 나가던 최동희의 모습을 가끔씩 떠올리고는 했다.
그때가 마지막이라는 걸 알았다면. 만약 우빈이 가지 말라고 했다면 지금쯤 결과가 달라졌을까?
우빈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 * *
“아빠, 오늘은 계란말이 만들어 봤어요. 어때요?”
“이걸 우빈이 네가 만들었다고? 세상에, 내가 천재를 키우고 있었네, 천재를!”
열심히 연습한 계란말이. 몇 번의 실수를 거쳐 이번에는 제법 완성된 모양이 되었기에 자랑스럽게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이야, 모양은 완벽한데 맛은 더 기가 막히네! 부드럽고 간도 딱 맞는다.”
“정말요?”
아버지의 칭찬에 우빈의 얼굴에 화색이 맴돌았다.
“그럼, 언제 내가 거짓말하는 거 봤어? 최고야, 최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함박웃음을 짓는 아버지. 내심 긴장된 마음으로 아버지를 쳐다보고 있던 우빈이 그를 따라 빙그레 미소 지었다.
결국 우빈의 부모님은 그가 초등학생일 때 이혼했다.
아버지는 우빈의 앞에서는 밝게 웃는 모습만 보여주려 했지만, 가끔씩 주방에서 술잔 앞에 앉아 훌쩍이는 아버지를 발견할 때도 있었다.
이후로 어머니에게는 아무런 연락도 받을 수 없었지만, 다행히 아버지의 사랑 덕에 우빈은 그닥 부족함 없이 자랐다.
“최동희가 누군데?”
“그 왜, 엄마 역할로 자주 나오는 배우 있잖아. 조금 떴다고 바로 짐 싸고 나가 버렸다야. 애가 불쌍해서 어째.”
수군거리는 말은 우빈이 뒤를 휙 돌아보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뿔뿔이 흩어졌다. 우빈이 목덜미를 만지작거렸다.
‘앞에서 못할 말이면 뒤에서도 하지 말지.’
가끔 이렇게 우빈의 사정을 알고 쑥덕거리는 동네 사람들이 있었지만. 따뜻한 아버지의 품만 있다면 크게 상관없었다.
“정말로 요리사가 되겠다고?”
“네.”
우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식당을 하는 아버지 곁에 늘 있다보니 어느새 우빈의 꿈도 자연스레 요리사가 되었다.
때문에 조리고등학교로 진로를 정했다. 조리고등학교에서는 한식과 중식, 양식을 두루두루 배울 수 있었지만, 우빈은 이미 하고 싶은 것이 뚜렷했다.
‘한식을 전문으로 하는 요리사가 될 거야.’
우빈이 입을 열었다.
“우선은 조리고등학교에 진학한 다음에, 대학교도 조리학과로 진학하려고 해요. 그리고 그다음에는…….”
우빈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돈을 모아서 백반집을 열 거예요.”
잠시 적막이 흘렀다.
매번 우빈을 지지해 주는 아버지도 이번만큼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곰곰이 우빈의 말을 듣고 있던 아버지가 넌지시 물어왔다.
“우빈아. 양식은 어떻겠니?”
갑작스러운 말에 눈을 깜빡였다. 언제나 우빈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아버지였기에 더욱 놀랐다.
“하지만……. 전 한식이 좋은걸요. 아버지와 같은 백반집을 만들고 싶어요.”
우빈의 말에 빙그레 미소 짓는 아버지. 그 표정은 이제 더 바랄 게 없다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아버지가 고개를 떨구었다.
“나도 백반집이 좋아. 하지만, 가끔은 다른 요리도 할 수 있었으면 한단다. 네가 충분히 다른 요리의 기술을 배우고, 그러고 나서도 백반집을 차리고 싶다면 말리지 않으마.”
스스로 걸어온 길이기에 얼마나 또 험난한지 잘 알고 있었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이, 아버지 또한 우빈이 그런 울퉁불퉁한 길보다는 평탄한 길을 걸어가며 행복하기를 바랐다.
아버지가 말을 이어갔다.
“만약 내가 백반집이 아니라, 하다못해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었더라면. 네 엄마도 나를 떠나지 않았을까 해서 말이다. 네게는 그런 길을 걷게 하고 싶지 않구나.”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씁쓸하게 미소 짓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우빈이 중얼거렸다.
가끔씩 아버지가 백반집을 두고 저렇게 이야기할 때가 있었다.
어머니와 헤어졌을 때도 이런 후회를 했을까.
매번 자신 없이 고개를 떨구는 아버지를 보면 화가 나기도, 또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우빈에게 아버지는 최고의 아버지이면서, 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을 만들 수 있는 훌륭한 요리사였는데.
한참 뒤. 고개를 들어올린 우빈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버지, 일단은 양식을 배울게요. 다만, 나중에는 백반집을 열 거예요. 저는 이미 정했어요.”
“우빈아.”
아버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자신을 불렀지만 이것만큼은 우빈도 양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시선을 마주쳤다.
“언젠가는 최고의 백반집을 만들어 보일게요. 아버지도 인정할 수 있도록요.”
모두가 인정할 만한 유명한 호텔과 레스토랑을 거쳐온 다음.
보란 듯이 백반집을 차릴 것이다.
‘꼭 증명해 보일 거야.’
훌륭한 요리사가 반드시 유명 레스토랑에 가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걸.
그리고,
아버지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 * *
그렇게 우빈은 착착 목표로 하던 길을 걸어갔다.
수석 졸업 이후, 내로라하는 호텔에 첫 취업. 그리고 나중에는 그 경력을 살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까지.
늘 아버지의 휴대전화 배경화면은 졸업식에서 촬영한, 누구보다도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활짝 웃고 있는 우빈의 사진이었다.
‘내 자식이지만 참 잘나게 생겼단 말이지, 허허.’
흐뭇하게 사진을 보고 웃고 있는데, 누군가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우빈이었다.
반가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에 아버지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빈아, 일도 바쁜데 뭣하러 왔어. 오늘은 안 와도 된다니깐.”
“……지금 일이 문제가 아니잖아요. 일어나지 마세요.”
우빈을 보고 몸을 일으키려는 아버지를 우빈이 다시 병실 침대에 눕혔다.
허허 웃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우빈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언제나 건강하던 아버지는 치료를 위해 머리를 모두 민 상태였다. 검진 이후로 곧바로 입원했지만, 이미 너무 진행이 많이 된 상태였다.
-원래 이 병이 증세가 없어서 조기에 발견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빈을 위로하듯 건네는 의사의 말이었지만 그때는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건강하던 분이었는데.’
아버지가 흘끔 창밖을 쳐다보았다.
“오는데 안 추웠냐?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 것 같네.”
“오늘 바람이 좀 많이 불기는 하네요. 혹시 창문 옆이라 추우세요? 그러면 바로 자리 바꿔 달라고 해볼게요.”
우빈은 서둘러 창가로 향했다. 혹시라도 바람이 들어올까 봐 수건으로 창문 틈을 막아놓았었는데.
“으응, 아니야. 답답했는데 이렇게 밖이라도 볼 수 있어서 좋네.”
“…….”
지금은 살까지 쪽 빠진 아버지를 보며 우빈이 입을 다물었다.
강도 높은 치료와 함께 점차 식사도 하지 못하게 된 아버지였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우빈은 마음이 착잡했다.
매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요리를 만들지만, 정작 이제 아버지를 위해서는 음식을 만들 수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무너졌다.
하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치료가 많이 힘들 텐데도, 늘 웃는 얼굴로 우빈을 대하는 아버지를 봐서라도.
오늘도 빙글 웃고 있던 아버지가 부스럭거리며 옆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우빈아, 이거 받아라.”
“……이게 뭔데요?”
아버지가 우빈에게 건넨 건 한 노트였다. 노트를 펼쳐보니, 안에는 그동안 아버지가 백반집에서 팔아왔던 메뉴의 레시피가 적혀있었다.
노트의 페이지를 넘기는 우빈의 손이 조금 떨렸다.
“전부 다…… 아버지가 적은 거예요?”
“그래.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너한테 음식 만드는 법 좀 가르쳐 줄 걸. 뭐하러 아껴놨는지 모르겠다.”
아버지가 씁쓸한 미소와 함께 중얼거렸다.
이제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동안 살아온 인생을 정리하면서, 마지막으로 우빈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
“물론 요리야 우리 빈이가 훨씬 잘하겠지만. 그래도 아빠가 만들었던 맛은 아직 똑같이 못 만들 테니까 말이야. 안 그래?”
아버지가 넉살 좋게 웃었다.
혹시라도 아버지가 만든 맛이 그리울 때면. 이걸 펼쳐놓으면 된다는 말은 굳이 꺼내지 않았지만.
둘은 모두 알고 있었다.
여전히 손에 노트를 든 우빈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우빈을 보면서 아버지가 우빈의 머리에 손을 톡 얹었다.
한 평생 요리해서 거칠거칠하고 굳은살이 잔뜩 배겨있었다.
“다 큰 녀석이 울긴 왜 울어, 인마.”
핀잔을 주면서도, 아버지의 입가에는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 * *
여전히 맞은편에 앉아있는 최동희를 바라보면서 우빈은 말없이 차를 들이켰다.
“그동안 정말 보고 싶었단다.”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자 최동희는 한숨을 내쉬었다.
“배우라는 직업은 힘들어. 하는 말이 모두 연기라 의심받을 수도 있으니까.”
“연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최동희의 한숨에 우빈이 짤막하게 대답했다. 회의적이기는 했지만 저 말이 모두 거짓말이라 생각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랜 시간을 찾아오지도, 연락도 하지 않은 사람의 ‘보고 싶다’라는 말의 무게가 그리 무겁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도 함께였다.
애초에 최동희가 연기를 할 만큼 우빈에게 깊은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닐 테니.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었는지 최동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밥 한 끼 정도는 먹을 수 있지 않겠니? 어디 보자, 여기는 무슨 메뉴가 제일 괜찮아?”
급하게 메뉴판을 뒤적이는 최동희의 모습에 우빈이 머리를 쓸어올렸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래, 손님이라고 생각하자.’
눈앞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아버지와 어릴 적 자신을 버리고 간 엄마가 아니다. 그냥, 식사를 한 끼 먹으러 온 조금 까다로우면서 껄끄러운 손님일 뿐.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다만 아직은 준비가 되지 않았다.
“지금은 영업 끝났어요. 식사하고 싶으시면, 나중에 영업시간에 다시 찾아와 주세요.”
“우빈아…….”
무언가 더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이 움직였지만, 단호한 우빈의 표정에 결국 최동희는 뒤로 물러섰다.
“그래, 그러면 다음에 다시 찾아올게.”
최동희가 가게를 떠난 이후에도, 우빈은 여전히 쿵쿵대는 심장과 함께 테이블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후우.’
우빈이 가볍게 한숨을 내뱉었다.
요리를 업으로 삼는 만큼 담배는 피우지 않았지만, 이런 날에는 왜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는지 알 것만 같았다.
왜 이제야 찾아온 걸까.
원망스러운 마음조차 가실 정도로 긴 시간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도 묘에도 한 번도 기일에 찾아오지 않은 어머니였다.
혹시 금전적인 도움을 받고 싶어서는 아닐까 생각했는데, 또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보고 싶었다, 라고.’
테이블 위에 놓인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단순히 포옹 한 번과 만남이면 그동안의 응어리가 없어질 거라 생각하다니. 예전 어린아이였을 때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때 봄이가 말을 걸어왔다.
“아빠아.”
“……봄아.”
어느새 곁에 있던 봄이는 커다란 눈망울을 깜빡거리며, 마른세수를 하던 우빈을 쳐다보고 있었다.
“갠차나요?”
“응.”
고개를 갸웃거리던 봄이가 우빈의 뒤로 가더니 어깨를 조물조물 주물렀다.
작은 손이었지만 나름 힘이 들어가서 시원했다.
“저번에 슬기 엉니가 해줘써요. 이러케 안마 바드면 시언해요.”
봄이는 그렇게 말하며 열심히 우빈의 어깨를 꾹꾹 눌러댔다.
‘내가 그렇게 피곤해 보였나?’
우빈은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살짝 쳤다. 봄이를 더 이상 걱정시키기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