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117
집밥을 너무 잘함 117화
우빈이 열심히 안마를 하던 봄이의 손을 떼어냈다.
“아빠는 이 정도면 괜찮아. 너무 열심히 안마하면 봄이가 힘들잖아.”
그렇지만 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나도 안 힘둘어요……! 나도 맨날 아빠한테 뭔가 바드니까, 안마 해주고 시퍼요.”
고사리 같은 두 주먹을 불끈 쥐는 봄이를 보고는 우빈이 픽 웃었다.
“이구구. 이쁜 것.”
우빈이 봄이의 얼굴에 부비적거렸다.
이전 레스토랑에서도 매번 사진을 보여주며 자식을 자랑하던 선배가 있었다.
그때는 저렇게 자랑해도 자랑해도 질리지 않을까 했는데. 이제야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만화영화에 나왔던 아기사자처럼, 봄이를 데리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은 마음.
우빈이 봄이를 꼭 끌어안았다.
* * *
다시 오늘밥집 앞으로 돌아온 최동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참, 욕심이 없는 애야.”
우빈이 이전 일하던 아씨에트라는 레스토랑은 최동희도 이름을 들어본 적 있는 곳이었다. 해외 유명 조리학교를 나온 사람들도 많다던데.
기왕 방송에 나온 김에 스타셰프가 될 생각은 하지 않고, 여전히 동네에서 백반집을 운영하고 있는게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다.
식당 주인이었던 남편을 따라 셰프가 된 아들. 어느 인터뷰에도 왜 백반집을 연 건지는 적혀 있지 않았지만, 최동희는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내심 반가워하기를 기대했는데. 생각보다도 차가운 표정을 떠올리자 가게에 들어가는 게 망설여졌다.
‘많이 미움 받고 있는 거려나.’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니었다.
어린 아들을 놓고 온 것은 미안하기는 했지만. 알아서 잘 컸으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가족이라.’
그녀에게는 여전히 낯선 단어였다.
요즘은 혼자서 술을 마시는 시간이 늘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평생 자신과 함께할 것만 같았던 친구들도, 이제는 나이를 먹으니 점점 가족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늘었다.
혼자 있을 때 가끔 우빈을 떠올리기는 했지만, 그 빈도가 그리 높지는 않았다.
이제 와서 엄마 행세를 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들이 만든 음식이 어떤 맛일지 궁금하기는 했다. 지금은 그 정도의 생각이었다.
“아씨에트에서 일할 때 알았으면 좋았을걸.”
최동희가 중얼거리면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아.”
활기차게 인사를 하던 우빈은 최동희를 보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오늘은 영업시간에 맞춰왔어.”
우빈은 앞치마를 단단히 동여맸다. 오늘 어떤 음식을 만들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오늘은 제가 만들어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으응, 그래?”
조금 놀란 최동희가 눈을 깜빡였다.
우빈이 어떤 음식을 준비한다는 걸까?
“그럼 그걸로 부탁할게. 뭔지 기대되네.”
우빈은 부엌으로 들어가 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먼저 참치캔을 따서 안에 있는 카놀라유를 팬에 둘렀다. 신김치는 칼로 한입거리로 다져주고, 마찬가지로 대파를 썰었다.
팬에 불이 들어오고 송송 썰은 대파를 먼저 볶았다. 센 불에 대파가 구워지면서 달큰한 향이 올라왔다.
신김치를 넣고 설탕을 작은 스푼을 하나 넣고, 매콤하게 먹을 수 있도록 고춧가루도 함께 넣어주었다.
참치 살코기와 진간장을 넣어 볶아주고, 미리 꺼내놓은 밥을 팬에 넣어주면 완성. 팬에 불을 끄고 참기름을 한 스푼 두른 뒤에 뒤섞었다.
다음에는 계란후라이를 할 차례.
그저 평소처럼 늘 그가 서 있는 오늘밥집에서 요리를 하고 있을 뿐인데. 그곳에 최동희가 있다는 것만으로 식은땀이 났다.
우빈은 애써 진정하면서 반숙 계란후라이를 완성해 냈다.
“김치볶음밥이에요.”
반숙 계란후라이가 올라간 먹음직스러운 김치볶음밥이었지만, 최동희는 약간 실망했다. 내심 화려한 음식이 나올 줄 알고 기대했었는데.
김치볶음밥을 쳐다보던 최동희가 입을 열었다.
“왜 김치볶음밥을 준 거니? 혹시 엄마가 오랜만에 찾아왔다고 푸대접하는 건 아니지?”
백반집에서 점심 메뉴로 김치볶음밥이 나오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최동희의 의견은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일단 드셔보세요.”
부드럽게 미소 짓는 우빈을 보니, 대충 이거나 먹고 떨어지라는 것 같지는 않았다. 최동희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쨌든 잘 먹어보마.”
김치볶음밥을 먹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원래도 크게 한식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다가, 평소에 식단 조절도 철저하게 했다.
치킨, 피자, 튀김같이 살찌기 쉬운 음식은 물론, 조금이라도 맵거나 기름진 음식은 먹지 않았다.
‘자기 관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니까.’
최동희에게는 방송이 전부였지만, 그녀를 대체할 수 있는 배우는 수를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래서 다음날 방송에 영향이 갈 수 있는 기름진 음식 같은 건 입에 손대지 않은 지 오래였다.
거의 샐러드 같은 양식을 챙겨먹는 최동희였기에, 이런 김치볶음밥은 정말로 오랜만에 먹는 음식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도 맛있어 보이네.’
즐겨먹는 음식은 아니었지만,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게 꽤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최동희가 김치볶음밥을 한입 가득 담았다. 적당히 시간이 지나 신김치로 만든 듯했지만, 설탕을 넣어 감칠맛이 도는 김치볶음밥.
워낙 자극적인 음식을 먹지 않던 최동희였기에, 이 정도의 매콤함만으로도 충분히 자극적이었다.
황금빛으로 주륵 흐르는 반숙 노른자가 고슬고슬 볶아진 밥알을 코팅했다. 아삭한 김치의 씹는 맛이 함께 곁들여졌다.
“역시 셰프가 만든 김치볶음밥이라서 그런가? 맛있네.”
항상 체중 조절을 위해 식사는 반만 먹고는 했지만, 결국에는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싹싹 그릇을 비웠다.
“후우.”
이렇게 배가 부르는 느낌은 오랜만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의아함은 남아있었다.
“그래서, 왜 김치볶음밥을 만든 거니?”
“계속 만들어드리고 싶었거든요. 제가 처음으로 만든 요리가 김치볶음밥이었어요. 물론, 요리라고 말하기에는 부끄러울 정도였지만요.”
우빈은 자신의 첫 번째 요리를 떠올리며 말했다.
지금은 예쁘게 노란색 탱글탱글한 모습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지만. 처음 우빈이 만들었던 계란후라이는 바싹 새까맣게 타버렸다.
맛도 물론 아버지가 만든 김치볶음밥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였다.
어머니가 떠나던 바로 그 전날, 자신의 생일.
“그때 어머니가 야근하실 때였는데. 제가 김치볶음밥이라도 만들면 조금 더 기운내시지 않을까 했었어요.”
이미 그때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는 산산조각이 나 있었지만.
“……그랬구나.”
최동희가 물끄러미 자신 앞에 놓인 김치볶음밥을 쳐다보았다. 담담한 목소리와 함께 우빈이 말을 이어갔다.
“어머니를 탓하는 게 아니에요. 물론 한번도 저를 보러오지 않으셨을 때는 조금 서운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시간도 많이 지났고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혼은 우빈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는 했지만, 그건 어쨌든 둘의 사정이었으니까.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기는 어렵지만, 우빈은 노력했다. 어머니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을 것이고, 그러한 사정을 다 모르는 우빈으로서는 쉽게 어머니를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기로.
목덜미를 만지작거리던 우빈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리고, 아버지한테 들은 적 있었거든요. 아버지가, 처음 어머니를 만났을 때 만들어준 요리였다고요.”
“……아.”
최동희가 가볍게 고개를 까닥였다.
너무 오래전 일이었기에 이미 기억은 잘 나지 않았지만.
“그래, 오래전에 그런 일이 있던 것 같기도 하네. 김치볶음밥,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그냥 가격이 싸서 먹은 건데.”
턱을 괴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젊었을 적의 시절. 가난한 배우였던 자신이 식당에서 먹을 수 있던 요리는 김치볶음밥이었다.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메뉴는 아니었지만. 그 가격에 든든하면서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또 없었으니까.
줄곧 배우를 꿈꿔왔지만 언제나 단역을 맡는 것에 그쳤다.
마지막 단계까지 갔던 오디션에 떨어졌을 때. 눈물 범벅인 최동희를 위로해 주던 다정한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 거 떨어졌다고 괜히 눈물 흘릴 필요 없어요. 명배우를 놓친 제작사가 후회하는 거지. 안 그래요?
매일 가던 식당의 요리사. 그렇게 점점 다정한 모습이 눈에 들어오더니 결국에는 사랑에 빠져 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김치볶음밥을 만들어주던 네 아빠가 좋았던 거지.”
중얼거리는 최동희의 말에 분위기가 조금 풀어졌다. 우빈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아버지가 김치볶음밥은 핑계고, 자기 얼굴 보러오려고 하는 거라고 늘 그러셨는데. 설마 진짜였어요?”
“네 아빠가 그러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대? 정말이지.”
툴툴거리던 최동희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다정한 사람이었어. 내가 욕심이 많았던 것뿐이지.”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는 최동희의 말에 우빈은 답하지 않았다.
최동희는 가족 대신 꿈을 좇았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 상처를 입은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비난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었으니까.
“우빈아.”
“네.”
“……음.”
최동희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나이가 먹으니까 가족들이랑 도란도란 지내는 모습이 부럽더라고. 아, 그래도 너한테 들러붙거나 하려는 건 아니야. 내가 그렇게까지 염치가 없는 건 아니란다.”
씁쓸한 표정으로 최동희가 말을 이어갔다.
“그냥 얼굴을 한번 보고 싶었어. 정말로 그것뿐이야.”
“……네, 알아요.”
그렇지 않았으면 이 김치볶음밥은 나오지 않았을 테니까.
적당히, 맛있는 메뉴로 최동희를 대접할 수도 있었지만. 우빈은 도망치지 않고 있는 힘껏 부딪히고 싶었다.
그리고 한동안 적막이 흘렀다.
이상했다.
분명 텔레비전에서 우빈을 발견했을 때는 만나기만 하면 할 말이 줄줄 쏟아질 것만 같았다.
‘해주고 싶은 말은 많았는데.’
나를 쏙 빼닮아서 잘생겼다든가, 아니면 아버지처럼 다정한 미소를 하고 있다든가. 토크쇼에서는 청산유수처럼 흐르던 말이 어딘가에 막힌 듯이 좀처럼 튀어나오지 않았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최동희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쩐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선 최동희는 가게문을 열고 들어오는 봄이와 시선이 마주쳤다.
‘……이 애는?’
자신을 보며 말똥말똥 눈을 동그랗게 뜨는 봄이와 시선을 마주치고는, 최동희는 무언가 말하려는가 싶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딸인지, 옆에 사는 아이인지. 묻고 싶은 것은 잔뜩 있었지만 그건 더 이상 최동희의 몫이 아니었다.
“참, 얼마 전에 아버지 기일이었어요. 혹시 시간 나시면 들러주세요. ……그리고.”
우빈이 최동희를 보며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혹시 김치볶음밥 생각나시면. 다음에 또 오세요.”
원망이나 미움이라고는 하나도 담겨있지 않은 우빈의 표정에 최동희는 내심 놀랐지만, 애써 표정을 숨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어.”
뚜벅뚜벅.
최동희는 문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문을 밀지는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잠시 후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맛있게 잘 먹었어. 잘 지내, 우빈아.”
“네. ……어머니도요.”
최동희는 살짝 미소 짓는 듯하더니 몸을 빙글 돌렸다.
그렇게 가게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
이번에도 최동희의 뒷모습이 보였지만, 우빈은 그때만큼은 쓸쓸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그릇을 정리하며 우빈은 생각했다.
‘괜찮아.’
그동안 전해주지 못했던 김치볶음밥이 계속 신경이 쓰였었는데. 이렇게나마,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다행이라고.
그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었다.
그리고.
“아빠!”
봄이가 웃으면서 우빈에게로 달려왔다. 그러고는 안아달라고 제자리에서 깡충깡충 뛰었다.
우빈은 웃으면서 봄이를 안아 올렸다.
이제는 정말로 괜찮았다. 곁에서 환하게 웃어주는 봄이가 있었으니까.
오늘따라 봄이의 품이 유난히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