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12
집밥을 너무 잘함 12화
‘자, 오늘이야말로 소불고기다.’
이번 주 내내 비가 왔었다는 게 거짓말처럼,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 소불고기를 만들기에 완벽한 날씨였다.
소불고기 덮밥을 만들려고 재료를 꺼내는 중에, 누군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 저 애는 저번에…….’
주말 아침부터 참치 주먹밥을 사 갔던 아이였다.
“안녕하세요. 혹시 참치 주먹밥 팔아요?”
“참치도 있고, 오늘은 소불고기도 있는데 어떤 거로 할래?”
잠시 아이가 고민하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소불고기요.”
“잠깐만 기다려 봐.”
우빈의 말에 아이는 또다시 단어장을 열심히 펼쳐서 외우고 있었다.
“그런데 왜 항상 주먹밥만 찾는 거야? 주먹밥을 좋아하니?”
“좋다기보다는…… 버스 기다리는 동안 간단하게 먹을 게 필요해서요. 저는 엄마랑 사는데 아침에는 엄마가 바빠서 사 먹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편의점 주먹밥도 먹다 보니 좀 질렸거든요.”
“그랬구나.”
우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항상 주먹밥만 사가는 건지 궁금했는데. 학원 가기 전에 먹을 음식이 필요한 거였다.
곧 앞에 따뜻한 소불고기 주먹밥이 놓였다. 아이가 잠시 단어장에서 그릇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노릇하게 구운 소불고기에서 나는 유혹적인 냄새. 밥알과 하나씩 천천히 맛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아이에게 그럴 만한 시간은 없었다.
소불고기와 대파, 밥을 아이는 씹지도 않고 계속 꿀꺽 삼켰다. 그 모습이 언뜻 보기에는 봄이와 비슷하면서도 또 달랐다.
봄이가 맛있어서 허겁지겁 먹었다면, 아이는 그저 식사하기보다도 배를 채우는 것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여기 따뜻한 차 줄 테니까 같이 먹을래?”
아이는 입안에 밥이 가득 차서 말을 할 수 없었다. 잠시 시계를 흘끗 쳐다보던 아이가 꿀꺽하고 또다시 밥을 삼켰다.
“괜찮아요. 이제 육 분 정도 남았으니까 슬슬 가야겠어요. 하나 더 포장해 주세요.”
아이가 주먹밥을 하나 더 받아들고는 부랴부랴 가게를 나섰다.
‘맛있다.’
우물거리며 이민준이 생각했다.
이민준은 소불고기 주먹밥을 입으로 욱여넣으며 학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제대로 씹지도 않고 입에 넣을 뿐이었다.
오늘은 정기 테스트가 있는 날이었다. 그리고 이민준은 반에서 하위권에 속했다. 만약 이번 테스트에서도 점수가 낮게 나온다면 영재반에서 일반반으로 내려가야 할지도 몰랐다.
어떻게 해서 올라온 영재반인데. 이민준이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민준은 초등학교 6학년으로 올라오면서 학원에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 학원에서 들은 말을 떠올렸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 좀 많이 늦은 편이에요. 벌써 수2까지 끝난 친구들도 많고요. 특히 영어유치원에서 올라온 애들은 영어는 이미 원어민 수준으로 하니까 다른 과목에 더 집중할 시간이 있거든요.”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쓴 학원장의 손에는 이민준의 테스트 결과지가 들려있었다. 그리고 그 말에 이민준과 이민준의 어머니인 성하영은 큰 충격을 받았다.
꿀꺽.
마지막 숟가락에 올려져 있던 소불고기를 삼키고는 손등으로 입가를 닦았다.
“잘 먹었습니다.”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이민준은 가게 밖으로 나섰다.
집 근처에는 이민준이 다닐 만한 학원이 없어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버스정류장은 이민준이 다니는 학교 앞에 있었다. 창살 너머로 학교 운동장이 보였다.
“야, 이쪽! 이쪽으로 패스하라고!”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축구를 하며 신나게 달리는 아이들로부터 이민준은 시선을 떼지 못했다. 가방끈을 쥔 손에 힘을 세게 주었다.
‘좋겠다. 나도 같이 축구하고 싶다.’
당장이라도 문제집이 잔뜩 들어있는 가방을 벗어 던지고 운동장에서 같이 달리고 싶었다.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 살랑이는 바람과 아이들의 함성을 들으면서 이민준이 홀린 듯 운동장을 지켜보다가 애써 시선을 돌렸다.
학원으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려던 차에 이민준의 발등 앞에 무언가가 떨어졌다.
‘축구공……?’
공이 담장을 넘어 날아온 모양이었다. 동그란 축구공을 보고 이민준은 눈을 깜빡거리다가, 얼떨결에 그 공을 주웠다.
“으앗! 죄송합니……. 어, 이민준! 너 왜 여기 있어? 오늘 토요일인데 학원 가?”
“……어.”
공을 받아든 건 같은 반 김현성이었다. 김현성은 이민준의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눈으로 살피고는 물었다. 이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축구하자!”
“축구?”
“응. 우리 안 그래도 지금 짝이 안 맞아서 지고 있었는데. 너 오면 숫자도 딱 맞겠다. 학원 하루만 빠져!”
“아니, 나는…….”
“아무튼 빨리 와! 그럼 나 먼저 간다!”
김현성은 이미 이민준이 올 거로 생각했는지 이민준을 놓고 다시 운동장으로 돌아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던 이민준이 마른침을 삼켰다.
딱 하루라면 괜찮지 않을까?
* * *
“패스해, 패스!”
책가방은 운동장 계단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진 채로, 이민준은 열심히 공을 향해 달렸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심장은 터질 듯이 벅찼다. 마침 공이 운 좋게 이민준 쪽으로 날아왔고 가슴으로 가볍게 트래핑 했다.
“받아!!”
좌우를 살피던 이민준이 공을 패스하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김현성이 다른 아이들을 앞지르고는 슛을 했다. 공은 골키퍼의 손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가고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갔어!’
골과 함께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김현성은 익룡처럼 마구 환호성을 지르고는 운동장을 가로지르다가 이민준을 보고는 얼싸안았다.
“야, 이민준! 네가 거기서 패스해 줘서 골 넣었어!”
“내가 패스를 좀 잘하긴 했지.”
칭찬이 싫지는 않았기에 괜히 으쓱댔지만, 사실 김현성이 잘해서 골을 넣은 거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때마침 공이 날아오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패스를 해주었더라면 골인까지 가기는 쉽지 않았을 터였다.
겸손하면서도 상대를 꼭 챙겨주는 김현성을 보며, 왜 김현성이 반에서 인기가 많은지 새삼 깨달았다.
“그래, 이렇게 축구를 잘하는데 왜 시합에 안 나오는 거야? 다음 주말에도 나와!”
‘다음에도?’
이민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김현성은 명실상부한 학교의 스타였다. 반에서는 물론, 축구를 잘해 축구부에서 주말마다 연습을 한다고 했다.
그런 김현성이 자신에게 직접 주말 시합을 제의하다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올 거지?”
반짝거리는 김현성의 눈을 보고는, 바로 대답하려던 이민준의 입이 턱 막혔다.
‘아, 맞다. 학원 가야 하는데! 지금 몇 시지?’
이민준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져 나갔다. 그제야 제멋대로 내팽개쳐 둔 책가방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 나…… 못 가. 학원 가야 돼.”
“응? 뭐라고?”
더듬거리던 이민준의 말을 못 알아들은 김현성이 되물을 때였다. 이민준이 책가방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가방을 메고는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갔다.
“야, 이민준!”
뒤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지만 뒤돌아볼 때가 아니었다.
‘큰일 났다.’
* * *
그리고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간 이민준의 눈앞에는 이민준의 엄마, 성하영이 팔짱을 끼고 이민준을 노려보고 있었다. 표범 앞에 서 있는 한 마리의 초식동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되어, 이민준은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어디 다녀왔어?”
“…….”
“이민준, 엄마한테 말 안 할 거야?”
날카로운 목소리가 날아들자 이민준이 몸을 움츠렸다.
“영재반 떨어졌다고 학원에서 연락 왔어.”
그 말에 이민준은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엄마, 그게…….”
“너 정말 엄마 쓰러지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 어떻게 오늘이 테스트인데 학원을 빠져! 다른 날도 아니고! 학원비가 하루에 얼마인지는 알아?”
“……죄송해요.”
성하영은 이민준에게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몰아붙였다. 길길이 날뛰는 동안 이민준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민준은 방에 들어가서 이불을 뒤집어썼다. 소리를 내서 울면 더 혼날까 봐 끅끅거렸다.
‘딱 하루였는데.’
속으로 억울했지만 들어줄 사람도 없었다. 당장이라도 어딘가로 사라지고 싶었다.
한참 시간이 흘렀지만 이민준은 결국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엄마는 안방에서 잠이 든 듯 코를 골고 있었다.
이민준은 눈이 빨개진 채로 겉옷을 챙겼다. 양말을 신은 채로 살금살금 현관으로 걸어갔다. 혹시라도 엄마가 깰까 봐 걱정되었지만 안방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현관문 버튼을 눌렀다. 띠리릭 경쾌한 소리는 주변이 조용한 밤이라 그런지 더욱 크게 들렸다.
이민준은 심장이 쿵쿵거리는 채로 밖으로 발을 살짝 디디었다. 그리고 현관문을 소리 나지 않게 닫고는 잠시 동안 기다렸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면 엄마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성하영은 나오지 않았다. 자는 걸까?
혹시 나간 걸 알면서도 자신이 너무 미워서 모른 체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민준은 계단으로 내려갔다.
밖으로 나가니 날씨가 제법 쌀쌀했고, 이민준은 땅을 보고 터덜터덜 걸었다.
이제 어떡하지? 영재반에는 항상 인원이 정해져 있었다. 이민준은 영재반에서도 꼴찌에 가까웠기에, 다시 올라갈 자신이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저번 시험에서 컨닝을 할 걸 그랬나? 특목반에 있는 윤지연이 컨닝을 해서 일등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학원에 퍼졌다.
‘아니, 그래도 그건 아니지.’
이민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학원을 땡땡이친 거로도 모자라 이제는 컨닝 생각까지 하다니. 자신이 생각해도 정말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러게 축구는 왜 했어가지고. 바보같이!”
이민준은 주먹으로 자신의 머리를 계속해서 쥐어박았다. 축구를 하지 않고 참았으면 학원에 갔을 테고, 시험을 잘 봤더라면 오늘같이 엄마가 화를 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이민준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저기.”
아까 참치 주먹밥을 만들어준 젊은 사장이었다.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 집에 가야 할 시간인 것 같은데.”
“……왜 집에 가야 해요?”
이민준은 잔뜩 볼멘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런 이민준에 사장이 당황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왜라니, 너무 늦으면 부모님이 걱정하시잖아.”
부모님이 걱정한다고? 이민준은 짜증이 났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어른들은 항상 왜 이렇게 말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어차피 이대로 없어져도 엄마는 별로 상관없을 텐데. 오히려 학원비를 아껴서 잘됐다고 춤을 출지도 몰랐다.
“무슨 상관이에요. 내가 집에 가든 말든. 어차피 엄마는, 엄마는…… 흐, 흐어어엉……!”
이민준이 서럽게 울기 시작하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끔힐끔 이쪽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무슨 말이든 해서 아이를 달래야할 것 같은데. 고민하던 우빈의 말에서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바, 밥은 먹었어?”
“……네? 아직 안 먹었어요.”
훌쩍거리면서도 아이는 순순히 답했다.
“그럼 일단 밥부터 먹자. 우는 것도 기운이 있어야 하지.”
* * *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람.’
우빈이 곤란한 표정으로 뺨을 긁적였다.
가게 마감을 하려고 잠시 나왔기에 망정이지. 부모님이 찾고 있을 테니 번호를 알려달라고 했지만 이민준은 고개를 세차게 저을 뿐이었다.
조용한 가게에서는 이따금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빈은 이민준에게 건네줄 소불고기를 만들고 있었다.
불과 고기를 더한 불고기라는 이름과 함께 그 조리법도 다양했다. 광양 불고기, 언양 불고기 등 주로 지역명과 함께 불고기의 특색을 분류했고, 오늘 우빈이 만드는 불고기는 서울 불고기였다.
눈물로 범벅된 민준의 얼굴은 도저히 입에 음식이 들어갈 만한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냄새가 지나치게 좋았다.
밥 위에 양파와 저민 불고기, 그리고 통깨가 올라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모습을 보자 민준이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조금 먹어볼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