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125
집밥을 너무 잘함 125화
요즘에야 마트만 가도 호떡 믹스 상품을 파니, 간편하게 호떡을 만들 수 있지만, 기왕 시장에 방앗간이 있으니 찹쌀가루부터 사서 만들어 보기로 했다.
우빈은 커다란 볼에 강력분과 찹쌀가루, 드라이 이스트를 넣어 섞었다. 설탕물을 넣고, 녹인 버터를 함께 모두 넣어 섞었다.
다음에는 반죽을 할 차례.
미지근한 물을 넣고, 비닐장갑을 끼고는 말랑말랑한 호떡을 반죽해 주었다.
그러고는 반죽의 발효를 조금 기다려야 했다.
“올마나 기다려야 해요?”
“음…… 한 삼십 분 정도. 봄이는 그동안 아빠랑 동화책 읽고 있을까?”
“웅!”
봄이는 그렇게 신이 나서 동화책을 하나 가지고 왔다. 그렇게 우빈의 이야기를 듣던 봄이가 피곤했는지 어느새 잠들어 있었다.
‘많이 피곤했나 보네.’
앞에 마주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봄이를 보고, 우빈이 담요를 둘러주려고 할 때였다.
몸을 흠칫하던 봄이가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아직 안 자요! 호떠 만드 꺼야.”
분명 눈꺼풀은 졸려죽겠다는 듯이 계속해서 내려오는 것 같은데, 고집을 부리는 봄이를 보니 말릴 수도 없어서 우빈이 픽 웃었다.
다시 부엌으로 돌아가 보니, 반죽이 아까보다 꽤 많이 부풀어있었다. 커다란 반죽을 소분하고, 호떡 속에 넣을 재료인 해바라기 씨앗과 설탕을 준비했다.
“다음에는 반죽을 넓게 펼치면 돼.”
“웅. 나 이거 할주 아라. 만두랑 똑가타.”
“그렇네. 대신 오늘은 터뜨리면 안 돼?”
우빈이 장난스럽게 말하며 눈을 휘었다. 봄이가 입을 삐죽 내밀고는 설탕을 조금 넣어 호떡의 속을 채웠다.
그렇게 호떡소를 다 채워준 후에는 구울 차례.
오늘 우빈은 특별히 버터를 아끼지 않고 듬뿍 사용하기로 했다.
시간을 두고 달군 팬에 버터를 녹인 다음, 소를 넣은 호떡 반죽을 팬 위에 올렸다.
노릇노릇 구워지자 뒤집개로 꾹꾹 누르면서, 설탕이 삐져나오지 않도록 구워준다.
“바로 먹을까?”
“웅!!”
신이 난 봄이가 우빈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뜨거우니까 조금 식혀서 먹자.”
“호오, 호오.”
봄이가 자기 앞에 놓인 호떡에 호호 김을 불었다. 그렇게 빨리 먹고 싶은가 생각이 들어서 우빈이 픽 웃고 있었는데, 봄이가 호떡을 우빈에게 건넸다.
“이고 아빠 꺼.”
“고마워!”
호떡을 반으로 가르자 안에 있던 꿀이 줄줄 흘러나왔다.
겨울철 간식으로 제일 마음에 드는 간식 중 하나였다. 그렇게 호떡을 즐기던 우빈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아, 그러고 보니.’
“잠깐만. 먹고 있어 봐, 봄아.”
봄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양손에 든 호떡을 오물오물 먹었다.
우빈은 곧 냉장고에서 하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꺼내왔다. 그리고 호떡 위에 아이스크림을 올렸다.
“이렇게 먹으면 너무 뜨겁지 않게 먹을 수 있으니까.”
그러면서도 동시에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즐길 수 있다.
“우와아! 잘 머그께요.”
봄이가 반색했다.
호떡 안에서 달콤한 꿀이 주르륵 흘렀다. 너무 뜨겁지 않게 호호 입으로 김을 불어가며 식혀먹었다.
우빈의 접시에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봄이의 앞에는 초콜릿 아이스크림이 각각 호떡 위에 얹어졌다.
사각사각거리며 차가운 아이스크림과 함께 호떡을 즐긴 봄이.
배가 부르다면서 통통거리며 자신의 배를 두드렸다.
그러나 우빈은 알 수 있었다. 봄이의 눈이 여전히 살짝 부어있다는 걸.
마음이 무거워진 우빈이 입을 열었다.
“봄아.”
“웅.”
“혹시라도 봄이가 말하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줘. 아빠는 기다리는 게 힘들지는 않아. 그런데…….”
우빈이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툭툭 쳤다.
“너무 말 안 하고 혼자 봄이 안에만 갇혀있으면, 우리 봄이가 아플까 봐 걱정돼서 그래. 그건 좀 힘들 것 같아.”
말이라는 게 그랬다.
안에 꾹꾹 담아두면 가슴 한켠에 조금씩 쌓여가서, 어느덧 알아채면 무거워진다.
하지만 의외로 말을 뱉으면 가볍게 흩어질 때도 있는 법이다.
물론 우빈은 셀레스티아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봄이가 품고 있는 말의 무게가 그리 쉬울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봄이와 함께 하고 싶어.’
설령 어떤 말이 튀어나오더라도. 우빈은 봄이의 무거운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싶었다.
“……정마로? 갠차나?”
봄이의 커다란 눈망울이 우빈과 마주했고, 우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망설이는 듯하던 봄이가 곧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아빠.”
“응.”
무슨 말이 나오더라도 들을 준비는 되어있었다. 우빈은 어깨를 피려 의식했다.
봄이가 숨을 한번 들이쉬고는 입을 열었다.
* * *
정령계는 평화로웠으나 또한 지루했다.
정령의 샘에서는 물에 비친 모습을 통해 인간계의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래서 봄이는 자주 정령의 샘에 놀러갔다. 그곳에 가는 건 금지되어 있었지만, 그렇게나마 다른 세상을 엿볼 수 있는 것이 즐거웠다.
그렇게 빠질듯이 샘을 쳐다보던 봄이. 이제는 돌아가야지 하고 일어서는데, 갑자기 발걸음을 헛디뎠고, 샘에 빠져 버렸다.
그렇게 봄이는 인간계에 오게 되었다.
신기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것도 잠시. 큰일이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상급 정령의 모습은 인간 아이의 모습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갑자기 아이의 모습으로 나타나면 큰 혼란이 날 것이라며, 이전에 주의를 받고 또 받았다.
이렇게 몰래 정령의 샘으로 오게 된 것도 모자라, 만약 이 모습으로 인간에게 들켜서 큰 소란이라도 벌어진다면…….
어쩌면 세계수로부터 큰 징계를 받을지도 몰랐다.
상상만 해도 등골이 오싹했다.
봄이는 그렇게 고양이의 모습으로 살금살금 다녔다.
좋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가끔은 돌을 던지며 못되게 구는 이들도 있었기에 경계를 바짝 세워야만 했다.
그렇게 며칠 지내다보면 다시 정령계로 올라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런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갑자기 눈바람이 휘몰아쳤다. 정령계에는 이런 추위는 없었기에 봄이는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눈 속에 파묻혔다.
이렇게 죽는 걸까 생각했는데, 그때,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이 다가왔다.
처음에 우빈을 만났을 때. 갑자기 베푸는 호의에 봄이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며칠 동안 자신을 따뜻하게 돌보아주는 우빈. 어쩌면 믿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볍게 품었다.
실수로 고양이의 모습이 풀리고 아이의 모습이 되었을 때. 봄이는 약간 당황했지만 일단 웃었다. 그리고 계속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려고 애썼다.
그래야만 이곳에 남아있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
하지만 우빈은 자신의 생각과 달랐다.
-네가 원하는 만큼 여기에서 머물러도 돼.
늘 따뜻하게 자신을 품어주는 우빈.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자신이 어떤 모습이든 간에 따뜻하게 사랑해 주었을 거라는 확신이 지금에는 있었다.
우빈과 함께 하면서 봄이는 많은 것을 새롭게 배웠다. 사람의 말과, 그림을 그리는 법. 그리고 자신이 먹을 음식을 만드는 방법까지.
처음에는 다시 지루하고 혼자 쓸쓸히 서 있는 정령의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파왔지만, 나중에는 어떤 얼굴을 하고 우빈을 떠나야 할지 상상만으로도 막막했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마다 우빈과 함께하는 특별한 순간들이 점점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지는 것을 알면서도 힘차 오르게 끝내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식물처럼.
* * *
“……구래써요.”
우빈은 다시 봄이가 설명해 준 내용을 되짚어보았다.
“그러니까 봄이는 정령이었고, 처음에는 고양이 모습으로 다니다가, 얼떨결에 모습이 풀리고 나를 만난 거구나. 맞아?”
“우웅. 마자요.”
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빈과 같이 지내면서, 우빈이 이름을 줌으로서 계약이 성립되었고, 그렇게 계약이 성립된 정령은 일 년 동안 지상에 머무를 수 있었다.
‘일 년이라. 그럼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네.’
봄이를 처음 만난 날은 새하얗게 눈이 내리던 날. 이제 다시 겨울이 찾아왔으니 봄이와의 만남도 어느새 끝을 다해가고 있다는 말이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봄이를 도와주고 싶었다.
‘정령이고 뭐고 그런 건 몰라. 하지만…….’
잠시 적막이 흘렀고, 봄이와 시선이 마주쳤다. 봄이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봄이가 우빈의 손을 꼭 잡았다. 평소와 달리 차가운 손이어서, 우빈은 얼른 봄이의 손을 감쌌다.
“손은 또 왜 이렇게 차가워.”
우빈은 자신의 손으로 봄이의 작은 손을 감쌌다. 이렇게 작은 손인데.
가긴 어딜 간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먹먹한 마음이 들어 둘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돌아가기 전까지는 아빠 딸로 있고 시퍼요.”
“…….”
우빈은 그제야 왜 봄이가 계속 속상해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어차피 끝은 정해져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둘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도 속상해할까 봐 봄이가 일부러 아빠한테 말을 안 했던 거구나.”
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는 발랄한 봄이였기에, 그 모습이 더욱 무거워 보였다. 맨날 재잘거리던 애가 말도 제대로 못하다니.
이제까지 얼마나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던 걸까.
“그동안 힘들었지.”
“아빠…….”
우빈은 눈가가 그렁그렁한 봄이의 등을 토닥였다.
“봄이는 언제까지나 아빠 딸이야. 봄이가…….”
봄이가 사라지는 건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만약에 끝이 정해져 있다면.’
머무르는 동안이라도 최대한 행복하고 즐거운 추억만 가져갈 수 있도록.
우빈은 결심했다. 그리고 봄이를 꼭 끌어안았다.
“봄아. 우리 재미있게 지내자.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지금보다 더 즐거운 곳도 놀러가고.”
지난번에 다녀왔던 야광 해파리가 있던 수족관이나, 반딧불이가 반짝이는 곳처럼.
‘더, 많은 추억을 만드는 거야.’
“웅……!”
그제야 슬픈 얼굴을 하고 있던 봄이가 미소를 지었다.
둘이 서로를 꼭 끌어안았다.
언제, 어떻게 헤어질지는 모른다.
지금 있는 순간만큼은 최선을 다하기로.
* * *
그렇게 한번 마음을 터놓으니 봄이도, 우빈도 훨씬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봄이는 이전보다 훨씬 여유로운 표정이 되었다.
이전에 위태위태하게 웃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김치 시져~!!”
“편식하면 안 된다니까!”
어느새 기운을 차린 봄이는 또다시 편식하기 시작했다.
원래 봄이는 매운 음식을 좋아하기에 김치도 잘 먹는 편이었는데, 오늘 나온 김치는 오이소박이. 물컹물컹한 식감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양손으로 입을 꼭 가리고 도망가는 봄이를 보고 우빈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었다.
‘차라리 이게 나은가.’
요 며칠간 기운 없어 보이는 모습보다는 훨씬 낫기는 했는데. 또 채소를 안 먹기 시작했다.
골고루 먹어야 한다고 말했더니 후다닥 도망을 갔다.
‘맛있는데.’
혼자 남은 우빈이 남은 오이소박이를 젓가락으로 집어먹어 보았다. 아삭아삭 씹히는 게, 감칠맛도 좋았다. 역시 맛의 문제는 아니었다.
오이소박이가 싫다면 백김치를 만들까 고민 중이었는데. 장을 보다보니 양배추가 눈에 띄었다.
“오, 이것도 괜찮겠는데?”
우빈이 중얼거렸다.
싱싱한 양배추를 보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맵지 않으면서도, 깔끔한 맛을 자아내는 반찬이.
‘오늘은 좀 색다른 걸 만들어볼까?’
그렇게 결심한 우빈은 양배추 절임을 만들기로 했다.
사우어크라우트라고 불리는 독일식 양배추 절임.
깨끗한 양배추를 도마 위에 올려놓자, 이수호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다가왔다.
“오늘은 뭘 만드시려는 겁니까, 사장님?”
“사우어크라우트라는 거야.”
낯선 이름에 이수호가 되물었다.
“사…… 뭐라고 하셨습니까?”
“독일 양배추 절임인데, 사우어크라우트라고 불러. 신맛이 나는 양배추라는 뜻이래.”
식당에서 돈가스처럼 기름진 음식을 내놓을 때는 으레 샐러드로 채 썬 양배추를 많이 제공한다. 그런 것처럼 느끼한 음식과 함께 양배추를 내놓는 건 좋은 생각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