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135
집밥을 너무 잘함 135화
“우와아, 안지희다! 싸인해 주세요.”
최근 안지희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것 같았다. 길거리 어디에나 가도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많은 토크쇼와 방송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면서, 늘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바쁘고 힘들기는 했지만, 이렇게 길거리에서도 자신을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신기하고, 또 한편으로는 뿌듯했다.
지난 비욘드K스타에서 우승한 이후로, 안지희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식지 않고 계속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의 본업은 어디까지나 노래를 부르는 것.
이제 새로운 앨범을 출시하기 위해 고민을 하고 있었다.
“지희야, 이번 앨범이 중요한 거 알지?”
“네, 알아요.”
안지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노래는 이미 녹음까지 모두 마친 상태였고, 이제 뮤직비디오를 찍을 차례였다.
안지희의 매니저는 헛기침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뮤직비디오는 너도 잘 알지? 한수연 감독님이 찍어주시기로 했어.”
“저, 정말요?!”
안지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영화에 관해서는 잘 몰랐지만, 한수연 감독이라면 이름을 들어본 적 있는 영화감독이었다.
그렇게 유명한 영화감독이 자신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기로 했다니. 안지희가 신나서 고개를 붕붕 끄덕였다.
“그러니까 뮤비 영상 걱정은 안 해도 돼. 우리는 스케줄 따라서 잡으면 되니까.”
“네! 그럼 저는 그동안 더 노래 연습을 하고 있을게요.”
하지만 한참을 그렇게 기다렸는데도 한수연 감독한테서 연락은 오지 않았다.
‘이제 안찍으면 슬슬 일정이 밀릴 수도 있는데.’
불안한 마음에 소속사에서 먼저 한수연에게 확인 전화를 걸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오랜만에 전화 드리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아니요오.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음산한 목소리에 팀장이 눈을 크게 떴다. 설마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캐스팅이 안 되고 있어서요…….
‘아, 이런.’
소문에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감독이라더니, 정말이었나 보다. 괜히 실험적으로 영화감독을 쓴 게 실수였나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언젠가 구하기는 구할 테니까…….
불안한 내용과 함께 전화가 끊어졌다.
‘……괜찮겠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모은 만큼, 지금 안지희의 대중적 인지도는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심할 수는 없었다.
연예계에는 언제나 새로운 스타가 나타나기 마련이니까.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전에는 동네에 있는 코인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스트레스를 풀고는 했는데, 요즘에는 얼굴이 알려져 있다보니 어쩐지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워졌다.
발랄한 성격의 안지희이지만, 그런 안지희도 가끔은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언제나 팬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만큼, 스트레스를 풀 시간도 필요했다.
‘하지만 나한테는 그런 장소가 이미 하나 있지.’
안지희가 자신만의 비밀 장소를 생각하면서 빙그레 미소 지었다.
“사장님, 저 왔어요! 와아, 뭔가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요? 오늘은 메뉴가 뭐예요?”
가게 문을 열고 쾌활한 목소리로 안지희가 외쳤다.
자리에 앉는 안지희를 보고는 우빈이 반가워했다.
“어서 오세요! 오늘은 재첩국입니다.”
재첩은 진흙이 있으면서 또 물이 맑은 곳에서만 살 수 있는 민물조개이다. 따라서 물이 맑은 섬진강에서 주로 재첩을 채취했다.
오늘은 미리 재첩을 해감하기 위해서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서 재첩을 손질했다.
깨끗하게 씻어서는 소금물에 담갔다. 최대한 바닷물과 같은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조개는 머금어내고 있는 모래를 뱉어낸다.
때문에 재첩을 통에 담고 뚜껑을 닫아 냉장고에 넣어주었다.
바지락 같은 경우는 두세 시간 정도면 충분하지만, 재첩의 경우에는 모래와 진흙이 많아 넉넉잡아서 여섯 시간 정도는 해감이 필요했다.
깨끗하게 세척한 재첩을 냄비 안에 넣는다. 그리고 재첩이 잠길 때까지 한가득 물을 부어준다.
보글보글 물을 끓이자 재첩국 특유의 희뿌연 색감이 맴돌았다. 그리고 물이 다 끓을 때즈음에 소금으로 간을 한다.
뽀얀 국물의 색감을 해치지 않기 위해 소금으로만 간을 하고, 미리 썰어놓은 부추를 넣어주면 완성.
한편, 부추를 채 써는 칼이 도마에 부딪히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다. 그리고 재첩국에서 우러나오는 향까지.
이윽고 음식 냄새가 코에 스칠 때, 안지희는 마음 속 쌓였던 피로와 스트레스가 한순간에 사라져 가는 것을 느꼈다.
“잘 먹을게요!”
안지희는 신나는 얼굴로 얼른 숟가락을 들어 재첩국을 한 모금 먹어보았다.
그리고 숟가락을 든 안지희의 손이 멈칫했다.
‘분명 부추 말고 다른 재료는 안 보이는데.’
재첩으로부터 우러나온 국물이 시원했다. 은은하면서도 맑은 국물은 속이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 맛이었다.
안지희는 우빈이 준비한 음식을 먹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맛이 엄청 깔끔해요! 재첩이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어요.”
재첩국은 말만 들어봤지 처음 먹어보는 안지희였다.
은은하면서도 맑은 국물을 후룩 들이켜자 절로 속이 맑아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편안한 마음. 우빈은 말이 많은 가게 주인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마음이 더 편안해졌다.
대화를 하지 않는데도 대화를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안지희는 기분 좋게 재첩국을 계속 먹었다.
이후로도 안지희는 오늘밥집을 자주 찾아오면서, 혼자만의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남들에게 자신의 노래로 희망을 주지만, 정작 자신이 받는 따뜻함과 편안함은 많지 않았는데.
우빈의 배려와 정성이 가득 담긴 재첩국은 그런 안지희의 마음을 사르르 녹였다.
“잘 먹었습니다, 사장님!”
* * *
“어서 오세요!”
그다음으로 오늘밥집을 찾아온 건 양준휘 PD와 한수연 감독이었다.
“요즘 몸은 좀 어떠세요?”
이전에 역류성후두염에 걸려 고생했던 양준휘 PD를 기억하기에 우빈이 물었다.
“네네! 만성질환이라서 계속 가져가야 하기는 하는데, 이제는 기침도 많이 나아서요. 가끔씩 먹는 건 괜찮대요. 혹시 오늘 메뉴가…… 오, 재첩국!”
양준휘가 마침 잘 되었다는 듯이 손가락을 튕겼다.
깔끔한 맛의 재첩국. 맵고 자극적인 맛을 좋아했던 예전의 자신이라면 눈길 하나 주지 않을 음식이었지만, 위를 위해 좋은 음식을 챙겨먹다 보니, 은은한 맛의 매력도 알게 된 그였다.
“그럼 저희도 재첩국 한 그릇씩 주세요.”
“예, 금방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양준휘 PD가 싱글벙글한 표정을 지으며 앉았다.
추운 밖에 있다가 가게 안으로 들어오니 절로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양준휘 PD와 한수연 감독은 걸신이라도 들린 듯이 열심히 밥을 먹었다.
재첩에서 우러나온 깔끔한 맛에 양준휘는 한입 먹자마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야아, 어쩜 이렇게 국물이 시원해?”
양준휘의 반응에 우빈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왜 사람들은 따뜻한 국물을 마시면서 시원하다고 말하는 걸까?
어쨌든 손님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만족스러웠다.
“진짜 대박이야! 이렇게 맛있는 재첩국은 처음 먹어봐.”
은은한 맛을 지닌 재첩국은 자칫하면 심심해지기 쉬운데, 지금 먹는 재첩국은 그저 깔끔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호로록, 호록.
맑으면서도 국물이 어찌나 시원한지.
‘이건 술 퍼먹고 다음 날 해장으로 먹으면 딱이겠는데 말이야, 쩝.’
술을 심하게 마신 다음 날 먹는 맛있는 해장 맛을 알기에, 갑자기 술을 마시지 못하는 상태가 아쉬워져서 양준휘 PD가 입맛을 쩝하고 다셨다.
“으아아, 덕분에 오늘도 힘내서 촬영할 수 있겠어요!”
한편, 한수연 감독이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리고 그런 한수연의 모습을 본 양준휘 PD가 눈썹을 치켜들었다.
“왜 이래? 밥맛 떨어지게 한숨이나 팍팍 내쉬고.”
“맛있기만 한데, 뭐.”
한수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밥을 먹었다.
“오늘따라 말하는 거 까칠하네. ……아, 알았다. 너 또 캐스팅 안하고 버벅 대고 있는 거, 맞지?”
“……시끄럽고 밥이나 먹어.”
정곡을 찔린 한수연이 까칠하게 대답했고, 양준휘 PD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낄낄 웃었다.
“하아.”하고 마른세수를 하던 한수연이 곧 입을 열었다.
“뮤직비디오 하나가 넘어왔는데. 기획안이 마음에 들어서 이번에 내가 담당하기로 했거든. 그런데 이미지가 안 맞아서.”
“많이 힘들겠네. 도대체 무슨 이미지이길래 그래?”
아역 배우를 전문으로 하는 소속사에서 계속 해서 프로필 사진을 보내왔다. 물론 예쁜 아이들이 많았지만, 그중에서 한수연이 생각하는 이미지에 어울리는 아이는 없었다.
“그게…… 일단은 아이인데. 겉모습은 사랑스러운데, 내면은 단단하면서도 야무진 아이거든. 눈망울은 크고, 또…….”
“어이고, 바라는 것도 많네.”
“나도 알아.”
그렇게 땅이 꺼질 것처럼 한숨을 내쉬던 한수연.
그리고 그때였다.
“아빠.”
봄이가 웃으면서 쪼르르 우빈에게 다가온 것은.
손가락을 꼽아가며 자신이 생각하던 조건을 하나하나 떠올리던 한수연 감독이 눈을 크게 떴다.
“잠깐만. 사장님, 사장님 따님 맞죠?!”
한수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세상에.’
그동안 내가 왜 생각을 못하고 있었지?
‘여기, 바로 앞에 역할에 딱 맞는 사람이 있는데!’
“사장님. 혹시 따님은 방송 출연 계획 없으세요?”
“방송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뮤직비디오 촬영 이야기였다. 그것도 안지희의.
안그래도 아까 안지희가 다녀갔다는 말에 양준휘는 “운명이네, 운명이야!”라는 말을 덧붙이며 웃었다.
하지만 우빈은 망설여졌다.
“연기는 조금 어렵지 않을까요? 봄이가 연기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대사가 있는 역도 아니고요. 꼭, 한번이라도 좋으니까 생각해 보시면 안 될까요?”
한수연의 제안에 우빈이 목덜미를 만지작거렸다.
‘으음, 어쩌지?’
슬기가 가지고 있던 커다란 카메라에 익숙해져서인지, 봄이는 카메라에 큰 거부감이 없었다.
게다가 봄이는 안지희의 노래를 좋아하기도 했으니까.
“일단은 봄이한테 물어보죠.”
뭐가 되었든 봄이의 의사가 제일 중요했다. 봄이가 하고 싶다면 한번쯤은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봄아, 지희 언니 알지? 언니가 이번에 큰 카메라로 촬영하는데, 같이 연기하는 사람이 필요하대. 봄이가 하고 싶으면 언니랑 같이 촬영을 할 수 있다는데, 봄이 생각은 어때?”
우빈의 이야기를 들은 봄이가 눈을 반짝였다.
“티비! 죠아요! 나도 나가고 시퍼요.”
제자리에서 방방 뛰는 봄이를 보고 우빈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음을 흘렸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그럼, 결정이네요.”
* * *
촬영장.
지난번 AM 리테일에 있던 스튜디오에서 카메라를 본 적이 있던 만큼, 봄이는 커다란 카메라에 꽤 익숙했다.
봄이가 화면에 나오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너무 귀엽다. 감독님, 어떻게 데려오신 거예요?”
“봄이야, 안녕!”
머리끝을 주홍색으로 염색한 스태프가 양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안뇽하세요.”
봄이의 인사에 스태프는 감격한 듯이 양손을 입으로 가로막았다.
“세상에에. 실물로 보게 될 줄이야. 귀여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정말 천사 같네. 우선 언니랑 같이 옷부터 갈아입을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봄이는 스태프의 손을 잡고 따라갔다.
잠시 후, 연하늘색의 원피스를 입은 봄이를 보며 스태프는 또다시 혼자 감탄사를 흘렸다.
깐깐한 뮤직비디오 감독이 이미지가 맞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해서 계속해서 일정을 미뤘었는데, 이렇게 귀여운 아이라면야 이해가 갔다.
스태프는 생화로 만든 화관을 봄이에게 씌워주기 전에 잠시 이야기 설명을 했다.
아이들에게는 최대한 동화처럼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아이 입장에서도 이해하기 좋았다.
“자, 우리 봄이는 요정이야. 그래서 이렇게 화관을 쓰는 거고!”
“?”
봄이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정령은 화관 가튼 거 안 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