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14
집밥을 너무 잘함 14화
“다른 엄마들 이야기 들으면 조바심 나고, 제 결정 때문에 나중에 우리 애만 뒤처지는 게 아닐까 싶고. 웃긴 게 저는 남들보다는 적게 시킨다고 생각했거든요.”
성하영의 말을 듣고는 우빈은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늘 처음 본 성하영보다는 그동안 자주 가게에 찾아온 민준이에게 훨씬 더 마음이 쓰였다.
‘민준이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직접 보기도 했고.’
하지만 벌게진 성하영의 얼굴을 보고는 우빈이 잠시 삐딱한 마음은 조금 접어두기로 마음먹었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여기까지 찾아와서 상담을 할까 싶기도 했다. 그리고 어차피 민준을 위한 길이니.
잠시 생각하던 우빈이 입을 열었다.
“민준이 어머님. 저야 전문가도 아니고 아이를 키워본 적도 없지만요.”
팔짱을 끼던 우빈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물론 공부도 중요하다는 건 저도 잘 압니다. 그걸 부정할 생각도 없고요. 그렇지만 지금밖에 또래 친구들이랑 어울려서 경험할 수 있는 게 있다고 생각해요. 하다못해 떡볶이도, 어렸을 때 친구들이랑 먹었던 떡볶이랑 지금 어른이 되어서 맛이 전혀 다른걸요.”
“……그건 그렇죠.”
당신이 뭘 알아, 라고 말하며 소리치면 어쩌나 내심 걱정했지만. 성하영은 전혀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우빈의 말에 동의하는 듯 한숨을 크게 내쉴 뿐이었다.
“제가 민준이한테 바보같이 군 건 저도 잘 알아요. 어떻게 해야 민준이가 다시 마음을 돌려줄지 모르겠어요……. 대화를 해보려고 해도, 입을 꾹 다물기만 하거든요.”
“음, 민준이가 주말마다 축구를 하러 가는 친구들이 부럽다고 하던데 같이 가보시는 건 어떠십니까?”
“민준이가 주말 축구에 가고 싶어 한다고요? ……전혀 몰랐어요.”
성하영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주말이면 수학학원이 겹치는데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자 성하영이 헛웃음을 지었다. 이 와중에도 학원 생각이 먼저 나는 자신이 우스웠다.
“맛있게 잘 먹었어요.”
우빈이 성하영이 가고 난 자리를 정리했다. 어차피 자신은 식당 사장일 뿐이었다. 그가 해 줄 수 있는 건 맛있는 음식을 내놓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정도.
하지만 우빈은 모쪼록 둘이 잘 해결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민준이가 어깨에 든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내려놓았으면 했다.
* * *
축구라.
성하영이 집에 돌아왔다.
민준이 방의 문은 꼭 닫혀있었다. 자신을 향한 민준의 마음이 닫힌 것처럼, 방문도 그런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다 자업자득이지.’
영재반이 도대체 뭐라고. 성하영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민준의 기억에 아버지가 거의 없을 정도로, 워낙 민준이 어린 나이에 민준의 아버지와 갈라섰다.
아버지만이 채워줄 수 있는 빈자리가 있을 거라 성하영은 내심 걱정했지만, 민준은 그런 하찮은 고민마저 깨끗하게 지워줄 정도로 착하고 예쁜 아들이었다.
아예 욕심이 없었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성하영은 민준이 원하는 곳에만 학원을 보냈다. 분명 처음에는 그랬는데.
계기는 친한 학부모와의 만남이었다. 같은 워킹맘이라 말이 잘 통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상대는 성하영과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했는지, 하루는 성하영의 앞에서 어떤 집의 흉을 보았다.
‘그 집은 아빠가 없어서 그런지 신경 안 쓴 티가 어쩔 수 없이 나더라고. 역시 아들한테는 아빠가 있어야 하나 봐.’
순식간에 성하영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혼했다는 걸 굳이 사람들에게 밝히지 않았고, 그 사람도 그런 사정을 모르고 꺼낸 말이었다.
화를 내고 그 학부모와는 다시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걸로 끝인 일은 아니었다. 가시가 된 말은 성하영의 마음 곳곳을 굴러다니며 아프게 찔러왔다.
절대로 민준한테는 그러한 말을 듣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후로는 교육에 더 신경을 쓰게 되었다. 민준은 중등 과정도 빠르게 학습했고, 고등학교 선행까지 따라잡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뿌듯하기까지 했다.
‘순서가 바뀌었어.’
민준이를 위한다고 말했지만, 정말 초등학생한테 고등학교 과정을 가르치는 것이 정상적인 일이었을까? 성하영이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똑똑.
성하영이 민준의 방문을 두드렸지만 방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자는 걸까?’
문손잡이로 손을 가져다 대던 성하영이 멈칫했다. 과연 이 문은 잠겨있을까? 아니면 열려있을까? 고민하던 성하영은 결국 문을 열지 못하고 거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무언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 * *
그리고 다음 날.
숙제하려던 민준은 거실 식탁에서 쪽지 하나를 발견했다. 민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쪽지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쪽지 끄트머리에는 민준이 즐겨보는 만화의 로봇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무슨 그림인지 못 알아볼 만큼 어설픈 그림 실력이었지만, 민준이 알아볼 수 있었던 건 성하영이 몇 번 이 그림을 민준에게 그려주었기 때문이었다.
“……왜 이제 와서.”
민준은 성하영이 원망스러웠다. 왜 처음부터 민준의 말을 들어주지 않은 걸까? 이렇게 입을 꾹 닫는 것보다 엄마와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용서하기 싫다는 유치한 마음이 더 컸다.
민준은 샤프로 수없이 많은 동그라미를 그려 나갔다. 낙서라도 하지 않고서는 못 배길 것 같았다.
이윽고 노트는 검은색 동그라미로 가득 채워졌다. 마치 민준의 머릿속처럼 잔뜩 엉켜있는 상태였다.
* * *
“안녕하세요, 민준이 어머님.”
“사장님…… 이번에도 잘 안 되었어요.”
성하영이 가게 문을 열고 힘없이 들어왔다.
오늘도 민준과의 대화는 쉽지 않았다. 조개처럼 앙다문 입은 좀처럼 열릴 줄을 몰랐다. 이미 이런저런 화해 방법을 시도해 보았지만, 별다른 소득 없이 시간만 흘렀다.
시무룩한 성하영을 보고는 우빈은 생각했다.
얼마 전에 민준이도 슬슬 엄마와 전처럼 지내고 싶은데, 막상 성하영이 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퉁명스럽게 대하고 만다는 말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서로 화해하고 싶지만 성하영은 미안함에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했고, 민준이도 민준이대로 마음이 온전히 풀리지는 않았기에 데면데면하게 구는 상황이었다.
“……혹시 이런 건 어떨까요?”
“네? 좋은 생각 있으세요?”
우빈이 생각한 방법을 성하영에게 설명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성하영은 조심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좋은 생각인 것 같은데, 그래도 괜찮을까요? 가게 장사도 하셔야 하는데…… 괜히 저 때문에 고생하시는 것 같아서요.”
“저는 상관없습니다.”
“그, 그러면 부탁드려도 될까요?”
성하영이 돌아간 뒤에 우빈은 팔을 걷어붙였다.
‘자, 그럼 나도 준비해 볼까. 흐음, 뭐 괜찮은 게 없을까?’
안 그래도 늘 찾아오는 민준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주먹밥 말고 가끔은 다른 음식도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공부하면서 먹기에는 주먹밥이 편하다며 고집을 부렸다.
‘이런 건 어떨까? 아니면 저렇게 만들어볼까?’
민준을 위한 음식을 구상하다 보니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새로운 메뉴를 생각하는 게 우빈에게는 무척 재미있고 보람찬 일이었다.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는 것보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만드는 음식이 더 동기부여도 되고 맛있게 만들어지기 때문이었다.
우빈은 그렇게 한참을 주방에서 머물렀다.
그리고 며칠 후. 우빈은 봄이와 함께 장을 보러 시장에 나왔다.
‘무언가 조금 허전한 것 같은데.’
민준이 다음번에 가게에 찾아왔을 때 무얼 만들어줄지는 이미 결정한 상태였다. 다만 옆에 곁들일 사이드 메뉴는 아직 생각이 나지 않았다.
뭔가 좋은 게 없을까 계속 생각하던 와중이었다.
“어, 봄아?”
봄이가 대뜸 앉아서는 무언가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우빈이 옆에 같이 쪼그려 앉아서는 봄이의 시선을 따라갔다.
봄이가 보고있던 것은 빨간색 플라스틱 바구니 안에 담겨있는 브로콜리였다.
“뺘아……?”
봄이는 의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하. 봄이가 이게 마음에 드나 보네.”
“그러게 말이에요. 평소에는 채소는 쳐다보지도 않더니. 하나 주시겠어요?”
웬일로 먹고 싶은 건가 싶어서 브로콜리 하나를 샀다.
봄이는 자유의 여신상처럼 오동통한 손에 브로콜리 하나를 들고는 씩씩하게 걸었다. 한참을 그렇게 걷던 봄이가 갑자기 나무 앞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뺘아, 뺘!”
봄이는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브로콜리와 나무를 번갈아 보았다.
“이게 같은 거냐고? 브로콜리가 나무는 아닌데…… 아니다, 그러네! 다시 보니까 작은 나무처럼 생기기는 했네!”
나무가 아니라는 말에 봄이가 시무룩해지는 것 같아서 우빈은 얼른 말을 바꾸었다.
가게로 돌아온 봄이는 브로콜리를 키우고 싶어 했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 하면.
“뺘아아!!”
브로콜리를 곧장 주방으로 가져가려던 우빈을 보고는 봄이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기 때문이었다.
“어라? 먹으려던 게 아니었어? 데쳐서 초장에 찍어 먹으면 맛있는데.”
도리도리.
격렬하게 고개를 흔들던 봄이는 우빈의 손에 달려 대롱거리던 브로콜리를 다시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키우고 싶은 거야? 그래도 이대로는 안 될 텐데…….”
몇 번의 설득으로, 컵 안에 흙을 담아 브로콜리 모종을 새로 사와 심는 것으로 극적으로 타결했다.
봄이는 이제야 만족한 듯이 턱을 양손에 괴면서 화분 안에 든 브로콜리를 보고는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에 들어?”
“뺘아아.”
봄이는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해맑게 웃는 걸 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바로 냄비 속 끓는 물에 넣으려던 것이 미안해질 정도였다.
‘가만, 브로콜리에도 꽃이 피던가?’
잠깐 휴대전화를 꺼내들어서는 재빨리 검색했다.
‘호오오. 브로콜리에도 꽃이 피는구나. 꽤 예쁘네.’
게다가 브로콜리가 꽃봉오리라는 건 우빈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꽃이 활짝 피기 전에 먹는 것이 브로콜리이고, 이대로 내버려 두면 예쁜 노란색 꽃이 피는 것이었다.
봄이와 같이 한참을 브로콜리를 구경하던 우빈의 머릿속을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봄아! 네 덕분에 어떻게 만들지 생각났어! 역시 봄이야!”
“뺘아?”
우빈이 봄이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며칠 동안을 아무리 생각해도 나오지 않았던 구성이 봄이 덕분에 완성이 되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던 봄이가 나중에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가게 창문 사이로 햇살이 부서졌다. 얇은 빛줄기와 함께 브로콜리 새싹이 푸르스름하게 빛나고 있었다.
* * *
그날은 민준이 여느 때처럼 오늘밥집에서 참치 주먹밥을 주문하던 날이었다. 그리고 민준이 응원하는 축구팀의 경기가 있는 날이기도 했다.
“일정 봤어요? 형은 어른이라 좋겠다. 밤에 축구도 볼 수 있고.”
“오늘은 그래도 조금 이르던데. 어, 여덟 시 반이니까 곧 하겠는데? 민준이 너도 같이 볼래?”
“안 돼요. 내일 학원에서 시험 있어요.”
말은 단호하게 했지만 조금은 아쉬웠다.
그리고 그때, 가게 문을 열고 성하영이 나타났다.
갑작스러운 성하영의 등장에, 민준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성하영은 가방에서 부스럭거리며 커다란 태블릿을 꺼냈다.
“사장님, 오늘 축구하는데 혹시 경기 좀 틀어놔도 괜찮을까요?”
민준은 우빈이 거절할 거로 생각했지만 우빈은 오히려 반갑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봄이는 이 층에서 자고 있었고, 가게는 세 사람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오, 저야 좋죠. 소리 크게 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민준아, 엄마랑 같이 보자.”
우빈의 허락과 함께 성하영이 민준의 옆에 앉아서는 태블릿으로 축구 경기를 틀었다. 그러고는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으로 태블릿 위치를 고정했다.
민준은 성하영이 앉았을 때 움찔거리기는 했지만, 자리를 피하지는 않았다.
이제 엄마가 전처럼 밉지는 않았다. 그동안 성하영은 민준에게 몇 번씩이나 사과했다. 다만 입을 다문 지 벌써 한 달 반이 넘었기에 어떻게 말을 걸면 좋을지 모르는 상태였다.
‘축구…… 나도 보고 싶기는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