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144
집밥을 너무 잘함 144화
우빈은 음료 냉장고에서 사이다를 꺼냈다.
“마셔요. 정신없었죠? 그래도 둘 덕분에 오늘 정말 수월했어요.”
“헤헤……. 수월했던 것……. 맞을까요?”
웃고는 있었지만 어딘가 나사가 하나씩 빠진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런.’
아무래도 오늘 저녁은 맛있는 걸 먹여야 할 것 같았다.
잠시 후.
지글지글 익어가는 양갈비. 양고기 특유의 향이 날 뿐, 심한 양 누린내가 나지는 않았다.
익어가는 양고기를 보면서 아르바이트생들이 애꿎은 방울토마토만 계속 몇 개 집어먹으면서 침을 흘리고 있었다.
“어디 보자, 이 정도면 될 것 같은데?”
우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르바이트생들이 젓가락을 가지고 양고기에 달려들었다.
“야, 그거 내가 먹으려고 한 거거든?”
“웃기시네. 이름이라도 써놓으셨어요?”
고기 앞에서는 티격태격. 양보와 배려 같은 건 없었다. 오로지 누가 고기를 먹을지 다투는 치열한 전투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둘은 남매 같았다.
“헤헤, 오늘밥집에 몇 번 온 적이 있었는데, 진짜 맛있더라고요.”
서지우의 지원 동기는 간단했다. 바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서였다.
서지우는 이전 오늘밥집에 왔을 때를 떠올렸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매일매일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마침 새로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고 있던 참이라, 시기도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역시 제 생각이 맞았어요! 이렇게 바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니…….”
서지우는 잔뜩 감동을 받은 표정으로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나야말로 잘 부탁해.”
그렇게 새로운 식구들과 함께 떠들썩한 저녁이 이어졌다.
* * *
허만옥은 아침에는 일을 마치면, 오후에는 노인정에서 조금 즐기다가. 밤에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남편과 산책을 하며 하루를 느긋하게 보냈다.
그리고 가끔은 우빈에게서 배운 반찬을 노인정으로 가져갔다.
“너어무 맛있다!”
오늘은 연근조림과 시래기된장무침. 연근조림은 달짝지근했다. 겨울의 별미인 시래기를 이용한 된장무침은 된장의 맛이 세게 배어있지 않으면서도 짭조름한 맛에 당장이라도 밥이 당기는 맛이었다.
“먹을 만해?”
“정말 맛있는데? 이야아, 이제 요리사네, 요리사야!”
“에이, 요리사는 무슨…….”
허만옥이 쑥스러운 듯이 목덜미를 만지작거렸다.
요즘 인생이 즐거웠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오늘밥집에서 일을 하고, 가끔은 옆에서 음식을 만드는 것도 배울 수 있었다.
같은 재료를 사용하는데도 맛이 어찌나 다른지. 역시 요리사는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씩은 복지센터에서 하는 그림그리기 강좌를 들었다. 물감으로 수채화를 그리는 강좌였는데, 꽤 마음에 들었다.
“넉넉하게 만들었으니까 마음에 들면 가져가.”
“이야아! 친구 한번 잘 뒀네.”
그렇게 허만옥의 주위는 떠들썩했다. 그런데 구석에 누군가 그런 허만옥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심씨 할머니였다.
‘에이, 꼴 보기 싫어.’
심씨 할머니는 왜인지 몰라도 허만옥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래처럼 잔뜩 기가 죽어서 다녀야 하는데, 오늘밥집인가 하는 가게에 다닌 다음부터 밝아지는 얼굴 모습을 볼 때마다 불쾌함을 느꼈다.
한구석에 앉아있는 심씨 할머니를 다른 할머니가 불렀다.
“언니, 언니도 빨리 먹어봐 봐. 맛이 아주 고소해.”
“나는 됐어.”
심씨 할머니는 흥하고 코웃음을 쳤다. 어차피 그저 그런 연근조림이었다.
“왜애? 언니, 오늘밥집 몰라? 거기 손님이 바글바글한 맛집이야.”
“그러니까 더 싫은 거라고.”
“응? 뭐라고?”
조용히 혼잣말하듯이 중얼거렸기 때문에 들리지 않았다. 되물었지만 심씨 할머니는 구태여 다시 입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불편한 심기를 굳이 감추려 들지 않았다.
어째서 허만옥이 그런 좋은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걸까?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어차피 그런데 가서 뭐 대단한 거나 배워오겠어? 가봤자 설거지같이 잡일이나 하다 오겠지.”
“에이, 말을 왜 그렇게 해.”
옆에서 말이 너무 심하다고 심씨 할머니를 툭툭 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이 나이가 돼서 일을 몇 년이나 한다고. 자식복이 제일 중요하지, 암.”
그러면서 심씨 할머니는 늘 하듯이 자식 자랑을 늘어놓았다.
심씨 할머니는 힐끗 허만옥을 쳐다보았다.
큰 목소리로 말했기 때문에 분명 허만옥한테도 들렸을 텐데.
허만옥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여전히 활짝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보기 싫어서 심씨 할머니는 고개를 휙 옆으로 돌려 버렸다.
* * *
‘오늘은 뭘 알려주는 게 좋으려나.’
브레이크타임. 우빈은 종종 이수호와 허만옥에게 요리를 가르치고는 했다.
허만옥과 이수호는 배우려는 의지가 가득한 열의에 가득 찬 학생이었다. 물을 빨아들이는 스펀지처럼 둘은 지식을 쑥쑥 흡수해서, 가끔은 우빈도 놀랄 정도였다.
가르치는대로 실력이 늘어나니 우빈도 가르치는 보람이 있었다.
최근에 반찬 같은 건 많이 만들어보았으니. 조금 색다른 게 없나 싶어 곰곰이 생각하던 우빈의 머릿속을 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 그게 있지.”
잠시 후.
세 사람 앞에는 당근이 놓여있었고, 우빈은 싱글싱글 웃었다.
“오늘은 푸드 카빙을 배워볼 겁니다.”
푸드 카빙. 수박이나 호박 같은 단단한 껍질을 아름답게 가공하는 작업을 일컫는 말이었다.
푸드 카빙은 샤토 나이프라는 전용 칼이 필요하다. 마침 우빈이 여분으로 가지고 있는 칼이 있어서 그걸 쓰게 했다.
“먼저 제가 하나 보여드릴게요.”
우빈은 그렇게 말하며 앞에 있는 당근을 손으로 가져왔다.
몇 번 칼로 다듬었을 뿐인데, 능숙한 솜씨와 함께 곧 우빈의 손에서 아름다운 장미가 피어올랐다.
“와아! 너무 예뻐요!”
당근으로 만든 하늘하늘한 꽃잎을 가진 장미를 보고 허만옥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우선은 사이즈가 작은 당근부터 만들어 보죠. 무엇보다 손을 다치지 않게 조심하는 게 제일이고요.”
우빈의 말에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신중하게 당근을 깎았다. 조금 어려운 기술을 요하는 부분은 우빈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당근을 깎아내고, 둘은 간단한 나비 모양의 당근을 만들 수 있었다.
“음, 양쪽 다 잘 만들었네요. 특히 여기 날개 부분은 어려울 텐데 깔끔하게 잘 정리됐어요.”
“정말요?”
우빈의 칭찬에 허만옥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나중에는 수박으로도 만들 수 있을까요?”
“그럼요. 오히려 수박이 크기가 커서 더 만들기 쉬울 거예요. 작을수록 섬세함을 더 요구하거든요.”
그리고 그날 밤.
침대에 누운 허만옥은 양손을 모으고 생각했다.
‘나도 언젠가는 그렇게 예쁜 꽃을 만들 수 있을까.’
한순간에 장미꽃을 만드는 우빈의 모습은 마술사나 다름이 없었다.
‘여기서 이렇게 깎아주고, 저기는 이렇게…….’
허만옥은 눈을 감은 채로 상상 속의 당근을 깎아냈다.
“뭐해?”
한참을 공중에서 팔을 허우적거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허만옥의 남편이 물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허만옥은 깜짝 놀라서 당근을 깎던 손을 멈추었다.
“빨리 자.”
남편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옆으로 몸을 빙글 돌리고는 코를 골기 시작했다.
빨리 내일이 와서 연습하고 싶다.
설레는 마음에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허만옥이 가져온 푸드 카빙을 보고는 이수호와 우빈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커다란 뿔이 달린 사슴. 당근으로 깎아낸 모습은 거의 조각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 듯했다.
“이, 이걸 직접 만드신 겁니까?”
이수호는 눈이 커져서는 숨을 들이켰다.
우빈도 자신이 가르쳐 주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빨리 실력이 늘줄 몰랐다.
“잘하시는데요?”
“그, 그래요?”
허만옥이 쑥스러운 듯이 미소 지었다. 허만옥은 그저 우빈이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허만옥의 실력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었다.
‘마음에 쏙 들어.’
무엇보다 푸드 카빙의 좋은 점은 잡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칼을 들고 단단한 수박 껍질로 섬세한 작업이 필요했기 때문에, 조금만 다른 생각을 하면 칼에 손이 베일 뻔했다.
‘후아, 위험했네!’
몇 번 위기를 넘긴 허만옥은 그다음부터는 다른 잡생각을 하지 않고 조각하기에만 몰두했다.
오로지 수박의 모습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는 것.
단지 그것만 생각했다.
그렇게 허만옥이 가져오는 작품은 나날이 스케일이 커졌다.
오늘 가져온 작품은 두 개였다. 하나는 모란꽃. 수박으로 꽃잎을 몇 개씩 파내어서 마치 모란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하얀 무로 조각한 백조였다. 유연하게 구부러진 백조의 기다란 목과, 섬세하면서도 아름답게 조각된 날개는 금방이라도 백조가 날아갈 것만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런 걸 저희만 볼 수는 없죠. 가게 카운터 옆에 장식해 두죠.”
“으응? 아, 아니. 그건…….”
쑥스러워하던 허만옥. 그리고 옆에 카운터에 놓으니 계산을 하던 손님들이 모두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리고 노인정에서 손님들이 우르르 찾아왔다.
“어우, 오늘은 말이야. 자식들이 스테이크집에 가야한다고. 아니, 생각해 봐. 우리처럼 이도 안 좋은 노인들한테 스테이크를 먹이겠다니. 괜찮다고 하니까, 꼭 어머님이 드셔야 한다나 뭐라나. 나원참, 곤란해 죽겠어.”
전혀 곤란하지 않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꺼내는 할머니의 말에 다른 사람들은 ‘또 저런다.’라는 식으로 보고 있었다.
심씨 할머니는 조르르 달려가서는 조각을 보고 손뼉을 쳤다.
“어머, 정말 솜씨가 좋으세요!”
이수호를 향해서 생글생글 미소를 짓는 심씨 할머니였다. 그리고 그런 심씨 할머니를 보고 다른 할머니들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아이참, 우리 언니 때문에 고생이 많죠? 워낙 느려가지고. 그래도 심성은 나쁘지 않으니까 잘 봐주세요. 오호호.”
“저…… 이건 제가 만든 게 아닙니다. 이건 허만옥 씨가 만드신 겁니다.”
“네에? 뭐라고요?!”
심씨 할머니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리고 옆에 있던 노인정 식구들이 그말을 듣고는 우르르 허만옥에게 다가갔다.
“이, 이게 언니가 만든 거라고?! 아이고야, 이런 재주는 또 언제 익혔대? 새가 금방이라도 퍼덕퍼덕거릴 것 같은데?”
“진짜 멋있다! 나도 가르쳐 줘.”
또다시 사람들이 허만옥의 곁으로 몰린 걸 본 심씨 할머니의 얼굴이 곧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결국 심씨 할머니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몸이 좋지 않다며 먼저 자리를 피해 버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다른 할머니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휴, 언니가 만들었다니까 입 싹 다무는 것 좀 봐. 그거 하나 칭찬하기가 그렇게 싫은가?”
이후로도 허만옥은 푸드 카빙을 계속했다.
종종 아침 도시락에는 허만옥이 깎은 당근 꽃이 장식으로 들어갔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아주 좋았다.
“손님들이 당근 꽃이 너무 예쁘다면서 좋아하네요.”
“정말요?”
예전 같았으면 자신이 한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손사래를 쳤을 허만옥이었지만.
그런 태도는 우빈에게도 실례가 될 수 있었기에 허만옥은 순순히 기뻐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당근이나 무같은 비교적 작은 채소를 사용하여 만든 작품들도 곧 수박과 호박 같은 커다란 재료를 사용하게 되었다.
오늘밥집에 온 손님으로부터 몇몇 의뢰를 받기도 했다.
“제가 고희연에 쓸 장식을요?”
놀라서 그저 눈만 깜빡이는 허만옥에게, 손님은 허만옥이 만든 조각이 너무 마음에 든다면서 명함을 건네고 갔다.
허만옥은 받은 명함을 꼭 쥐었다.
자신이 푸드 카빙에 재능이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정말 다행이야.’
그때 공고를 보고 용기를 내서.
고맙다고 말했지만 우빈은 “다 만옥 씨가 열심히 하셔서 좋은 결과가 돌아온 건데요.”라며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